미국의 ‘변심’은 작전상 후퇴인가
  • 남문희 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4.0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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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북·일 교섭을 앞세워 2차 6자 회담 사전 조율에 나서면서 대북 유화정책으로 선회했다. 부시 행정부가 궁지에 몰린 지금이야말로 한반도 주변국 들이 북핵 문제에 대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보기드문 국
오는 2월25일로 예정된 2차 6자 회담을 10여일 앞두고 일본이 선수를 쳤다. 지난 2월11일부터 14일까지 일본 정부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것이다. 지난 2월14일자 일본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양측은 현안인 납치 문제 해결에는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양측은 2차 6자 회담과 병행해 해결한다는 데에는 의견 일치를 보았다.

일본 대표단의 이번 방북에서 다나카 히토시(田中均 ) 외무성 외무심의관이 북한측 요청으로 포함되었다는 점은 주목한 만한 일이었다. 게이오 대학 오코노기 마사오 교수는 일본 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하기 직전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다나카 심의관이 포함됐다는 점, 그리고 베이징이 아니라 평양에서 회담이 있었다는 점이 특히 중요하다. 이 한번의 회담으로 획기적인 해결책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북한이 다나카 심의관을 특별 초청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인 셈이다. 오코노기 교수는 납치 문제와 북·일 수교 회담, 그리고 6자 회담 등을 상호 연계한 단계적 이행 방안만 나와도 평양 회담은 성공이라고 말했다.

오코노기 교수는 북한이 2차 6자 회담이라는 큰 사안을 앞두고 일본을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2년 전의 외교 행태를 되풀이했다고 지적했다. 2002년 8월 말에도 다나카는 평양에 있었다.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이었던 다나카는 당시 평양측과 놀라울 만한 합의를 이끌어냈다. 북·일 정상회담에 전격 합의한 것이다. 당시 평양의 관점에서 볼 때 북·일 정상회담은‘일본을 앞세워 미국을 돌파한다’는 외교 전술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이번 북·일 교섭 역시 북·일 관계 차원뿐 아니라 2차 6자 회담을 겨누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회담을 앞두고 미국의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일종의 유화책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이번 6자 회담에서 새로운 양보안을 낼 가능성도 있다는 다소 성급한 분석도 나오고 있다. 기존 ‘핵 동결 대 보상 요구’ 중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 △정치·경제·군사 제재와 봉쇄 철회 등 두 가지는 포기하고 △중유와 전력 등 에너지 지원 하나만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번 북·일 회담은 이처럼 2차 6자 회담을 앞두고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6자 회담과 관련된 국가의 입장을 타진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최근에는 워싱턴 정가를 중심으로 북·일 회담의 배후에 미국이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주장이 등장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즉 일본이 북한과의 갑작스런 회담에 나서게 된 배경에는 2차 6자 회담에 대한 미국의 전략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대표단의 갑작스런 방북 과정을 천착해보면 그 이면에서 미국의 움직임을 발견할 수 있다. 현재 일본 내에서도 정부대표단 방북 경위는 불분명하다. 일본의 한 한반도 전문가는 “바로 한 주일 전까지만 해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고이즈미 총리 주변에서 뭔가 돌파구를 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고이즈미 총리 주변 인물로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관방장관을 지목했다. 후쿠다 장관이 외교부에 강력하게 주문해 방북단이 결성된 것 같다는 분석이다. 그는 북한과의 교섭 창구는 “북·일 당국자 간의 기존 루트에다 이번에는 중국측이 다리를 놓은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왜 1주일 전에 고이즈미 총리 주변에 기류 변화가 생겼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었다. 과거의 경험을 살펴보면 일본이 대북 정책에서 중요한 전환을 이룰 때마다 미국의 한 유력 인사가 도쿄에 모습을 나타냈다. 2002년 8월 말 다나카 히토시 국장이 평양에서 북·일 정상회담을 협의하고 있을 때에도 미국의 유력 인사가 도쿄에 있었다. 그래서 한때 그가 북·일 정상회담에 깊이 관여했다는 얘기가 떠돌았다. 그가 바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이다.

아미티지 부장관은 미국 고위 인사 중 대표적인 일본통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일본 내에도 광범위한 인맥을 구축하고 있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한다. 이번에도 그는 어김없이 도쿄에 모습을 나타냈다. 1월31일∼2월1일 베이징을 방문한 뒤, 도쿄로 날아가 2월2일부터 4일까지 머물렀다. 그는 도쿄에서 2차 6자 회담이 곧 열릴 것이라고 예고해 언론의 눈길을 끌었다. 자신의 방중·방일 목적이 2차 6자 회담과 깊숙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아미티지가 중국과 일본을 연달아 방문한 데에는 그보다 더 깊숙한 용무, 즉 북·일 당국자 회담을 위한 사전 조율이라는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중국측에는 북한측에 주선을 의뢰하고, 일본에는 북측과 교섭해도 좋다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 앞의 한반도 전문가는 “지금과 같은 시점에서 미국과 협의 없이 일본이 단독으로 북한과 협상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아미티지가 베이징을 다녀간 뒤 북·중 간에도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2차 6자 회담의 북한측 수석대표를 맡은 것으로 보이는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중국측 초청으로 베이징에 나타난 것이다(2월7∼9일). 큰 회담을 앞두고 북측 수석대표가 방중하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다. 6자 회담 조율 못지 않게 갑자기 돌출한 북·일 회담에 대한 사전 협의 성격이 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미티지가 중국과 일본을 방문한 시점은 북한에 대한 워싱턴의 태도가 그 전에 비해 유화적으로 바뀐 직후였다. 1월 말 이후 국무부를 중심으로 북한이 그동안 제시해온 ‘말 대 말의 공약과 핵 동결 대 보상 약속’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난 2월4일자 <워싱턴 타임스>는 ‘1월31일∼2월4일에 있었던 호주대표단 방북 때 미국은 북한이 바라는 상응 조처를 구체화하기를 꺼리면서도, 경제 지원과 안전 보장에 대한 기본 입장을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의 요지는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미국이 경제 지원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 정부대표단은 미국측이 북한에 제시했다는 경제 지원이 빈말이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방북했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남북 관계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지난 2월3∼6일 서울에서 벌어진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남북 양측이 개성공단 사업에 박차를 가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회담 기간에 정부 고위당국자는 “개성공단 사업에 대해 미국측의 부정적인 시선이 최근 들어 많이 완화됐다”라고 말한 바 있다. 또한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은 2월5일 “북한의 핵 동결에 대한 상응 조처로서 안전 보장과 에너지 지원, 경제 지원 문제 등을 고려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결국 갑작스런 일본 대표단의 평양 방문은 2월 초 남북 장관급회담과 같은 맥락이며, 그 배경에는 미국의 대북 유화 정책이 깊이 개입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문제의 본질은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나타난 미국의 대북 유화정책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미국의 대북 유화정책은 본질의 변화가 아니라 표면의 변화일 뿐이다.

2차 6자 회담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지난해 말 이후 몇 차례 변화해 왔다. 지난해 12월 2차 회담을 무산시켰을 때만 해도 미국은 서슬이 퍼랬다. 북한이 무조건 핵 폐기에 응하지 않는 한 2차 회담은 없다는 것이었다. 12월4일 한·미·일 고위당국자 회담에 잔뜩 기대를 걸었던 한국 정부는 미국의 느닷없는 강경 태도에 당혹해 했다.

당시 미국의 경직된 태도 이면에는 그보다 한달 전 있었던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일본 방문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이 나왔다. 럼스펠드 장관이 이시바 시게루 방위청 장관으로부터 ‘6자 회담에서 미국이 북한에 대해 핵 불사용을 약속할 경우 일본의 안전은 누가 보장하나’라는 항변을 받고 귀국한 이후 미국의 6자 회담 정책이 크게 선회했다는 것이다.

국방부를 중심으로 한 매파가 6자 회담 정책을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6자 회담이 타결 될 경우 미국의 미사일 방어(MD) 정책이나 일본의 재무장 등 동북아에서 미국의 국가 이익이 훼손될 수 있다는 점이 새롭게 강조되었다. 1월 말까지만 해도 미국은 △ 일단 회담을 열기는 하되 논쟁거리를 만들어 무산시키거나 △ 북이 내건 조건부 회담 제의는 응할 수 없다는 식으로 대응한다는 시나리오를 짜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1월 말 이후 몇 가지 변수가 발생했다. 그 하나는 미국 대선에서 부시의 당선이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흐름이 나타난 것이다. 이라크 상황이 계속 악화하고 있는 데다가 부시 정권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D) 위협을 과장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부시는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민주당에서는 케리 후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떠올랐다. 시나리오대로 6자 회담을 무산시킬 경우 잘못하면 이라크 전쟁에 이어 북한 핵 문제를 파탄시킨 책임까지 뒤집어쓰게 될 판이었다.

또 한가지 요인은 중국의 반발이다. 지난해 8월 1차 6자 회담에 이어 연말로 예정되었던 2차 6자 회담까지 무산되자 중국은 거듭 미국을 압박했다. ‘6자 회담을 위해 북한은 이미 할 만큼 했다. 이제는 미국 차례다. 2차 회담에서도 미국이 성의 있는 안을 내놓지 않으면 북한은 회담장을 박차고 나갈 것이다. 그러면 중국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원래 6자 회담은 중국을 끌어들여 북한을 봉쇄하기 위해 기획된 것이었다. 그런데 현재와 같은 구조대로 간다면 중국이 미국 편에 서기는커녕 오히려 북한 편에 설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 것이다.

미국은 1월 말에서 2월 초의 대내외 상황으로 인해 일시적이나마 북한에 대해 유화 제스처를 취할 필요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유화정책은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부시 행정부가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시적 변화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측이 작전상 후퇴하고 있다고 해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다(76쪽 기사 참조). 북한의 선택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한국·중국·러시아 등 아시아 주변 국가들이 강력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보기 드문 국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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