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 맞바람 맞으며 ‘아내’에서 ‘동지’로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1997.0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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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는 ‘여사’라는 호칭이 관용구처럼 붙어 있다. 그리고 그는 준 정치인 대접을 받는다. 물론 이씨가 정치 전면에 나선 적은 없다. 그러나 민주화 투쟁의 대표 주자이자 세 번이나 대통령에 도전한 야당 거목의 아내라는 자리는 이씨에게 정치인 못지 않은 이력과 정치 감각을 남겨 주었다. 정치인의 아내로서 이씨만큼 화려한 각광과 엄혹한 시련을 동시에 받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실 조건만 따진다면 이씨는 당시로서는 ‘밑지는’ 결혼을 했다. 20~30대에 그는 잘 나가는 신여성이었다. 남들은 감히 대학을 엄두도 못낼 때 그는 미국 유학까지 다녀왔다. 사회 활동에 대한 욕구도 왕성해 대학 강사와 여성단체 간부를 두루 맡았고, 이태영·김정례·박순천 등 쟁쟁한 인물들과 어울려 다녔다.

반면, 당시 정치인 김대중은 한마디로 낭인이었다. 연거푸 국회의원에 떨어진 끝에 겨우 강원도 인제 보궐선거에서 당선했으나 5·16 쿠데타가 일어나는 바람에 의사당에도 들어가보지 못했다. 김총재는 젊은 시절 뛰어난 사업 수완으로 꽤 재산을 모았으나 결혼 무렵에는 거듭된 낙선으로 가산을 탕진한 상태였다. 게다가 그는 아이가 둘이나 딸린 홀아비였다.

당연히 이씨 집안의 반대가 거셌다. 하지만 이씨는 김총재의 조건보다 가능성에 자신의 미래를 걸었다. “그의 수첩은 항상 쓸 곳이 모자랐다. 그는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꼼꼼히 적었다가 반드시 실생활에 옮기는 치밀함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그의 신념에 이끌려, 그를 돕는 것이 나의 운명이라고 믿게 됐다”라고 이씨는 회고한다. 마음 편했던 시절은 결혼 초 10년뿐

그로부터 35년을 정치인의 아내로 살아 오는 동안 이씨에게 마음 편한 시절이 있었다면 결혼 초 10년이다. 63년과 68년 김총재가 목포에서 내리 금배지를 달았고, 셋째 아들 홍걸이 태어났다. 더욱이 70년 남편이 경쟁자 김영삼씨를 제치고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을 때는 막연하나마 퍼스트 레이디가 된 자기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71년 대선에서 박정희 후보에게 패한 후부터 김총재는 엄청난 정치적 시련에 부딪혔다. 망명 생활을 시작으로 납치·구금·연금 등이 10여 년간 이어진 것이다.

이런 역경은 이씨를 점차 강한 여자로 만들었다. 남편이 없는 자리를 메워야 했기 때문이다. 세 아들에게는 아버지 역할까지 했고, 잡혀간 비서들을 챙겨야 했으며, 외신 기자와 만나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국제 여론을 환기하는 일도 해야 했다. 그 사이 이씨는 아내라기보다 ‘동지’의 위치에 올랐다.

김총재도 이씨를 동지라고 표현한다. 가장 어려운 시대를 흔들림 없이 함께 지내온 영원한 동반자라는 것이다.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김총재는 이씨에게 많은 것을 의논하곤 한다. 정계를 은퇴할 때나 복귀할 때도 김총재가 유일하게 상의한 사람이 아내다.

김총재 주변에 포진한 처가 인맥도 막강하다. 처조카인 이영작 박사는 미국 인권문제연구소 소장을 맡아 김총재의 미국 핫라인 노릇을 하고, 여행사를 운영하는 처남 이성호씨는 다양한 인맥을 동원해 김총재를 돕고 있다. 이홍구 신한국당 대표와 김총재를 처음 연결한 끈도 이대표와 미국 에모리 대학 동창인 이성호씨다. 또 김총재가 은밀한 일이 있을 때 애용하는 ‘목동 안가’는 이씨 여동생의 집이다.

이런 부부 간의 깊은 신뢰를 아는 사람들은 이씨를 통해 청탁을 넣기도 한다. 이씨는 민원이 들어오면 일단 총재에게 가감 없이 전달한다. 가끔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결정은 남편이 하는 것이고, 아직까지 남편의 결정에 실망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씨는 애교 있고 상냥한 여성적 스타일이 아니다. 자신을 꾸미는 데 별 관심이 없어서 미장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머리 손질을 할 정도다. 주변에서 이제는 좀 이미지 관리가 필요하지 않느냐고 충고도 하지만 천성이 꾸미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이씨는 정치인의 아내가 된 것을 오히려 다행으로 생각한다. ‘여자’가 아닌 ‘동지’라는 잘 어울리는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올 대선이 마지막 기회인 만큼 남편도 모르게 어떤 역할을 할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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