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늪에서 97년의 희망 찾자
  • 崔一男 (작가) ()
  • 승인 1996.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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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도 좋지만 ‘끝남’도 괜찮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끝이 있어 시작도 있다는 따위 떫은 객담을 주워섬길래서가 아니다. 일단 일의 단락을 지은 다음에 그러안는 뿌듯한 감정이야 말해 무삼하리. 그만 못한 ‘상미성공(尙未成功)’의 처진 기분 또한 마음을 차분하게 다스려 준다는 측면에서 깊은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더구나 잔치의 파장은 그렇다. ‘결국은 조금씩 취해 가지고’ 자리를 뜨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찌 기쁘기만 하랴. 오히려 허전한 느낌이 더할지도 모른다. 서정주의 시가 이 대목을 잘 짚었다.

‘잔치는 끝났더라/마지막 앉아서 국밥들을 마시고/빨간 불 사르고/재를 남기고/포장을 걷으면 저무는 하늘/일어서서 주인에게 인사를 하자/결국은 조금씩 취해 가지고/우리 모두 다 돌아가는 사람들’

시인의 술회에 따르면 <조선일보> 학예부장 김기림(金起林)의 청탁을 받고 이 신문의 폐간(1940년) 기념시로 지은 것이라고 했다. 그 때문인지 제목은 <행진곡>이다. 내일을 위한 은유로 붙였을 게다.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최영미는 또 노래한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그것이다.

‘잔치는 끝났다/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그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최영미 역시 여운을 남겼다면 남겼다.

사람들이 살아낸 올 한 해를 느닷없이 잔치에 빗댈 수 있을까. 가당찮은 일일 것 같다. 하지만 포장을 걷는 이 시간의 표정이나 심상풍경(心像風景)만을 따로 떼어 생각하면 어지간히 비슷하리라 믿는다. 노소 두 시인의 시작(詩作) 경위는 물론, 시대 배경과 동기가 판이하기 때문에 양자를 한데 뭉뚱그려 오늘의 인심에 뜯어맞추려 들다니 어쭙잖다. 그러나 세모에 바짝 몰린 시점에서 누구에겐가 인사를 하고 마지막 셈을 마치려는 한국인의 관습은 어디 가지 않을 터이다.

잔치는 또 즐거운 장소만을 전제하지 않는다. 모임을 조직한 축이 있으면 훼방꾼이 있다. 벌겋게 취한 얼굴에 말짱한 소안(素顔)마저 섞인다. 곁다리로 끼여들어 어서 끝나기를 바라는 구경꾼이라고 어찌 없을까. 이렇게 저렇게 어울려 한바탕 북새를 떤 우리들의 발자국은 그러므로 차라리 어지럽다. 그래도 기억할 건 기억하고 챙길 건 챙김으로써 무엇이 나아도 나은 내일을 겨냥해야 한다.

하면 무엇부터 떠올리는 것이 좋을까. 순서대로라면 정이월로 거슬러올라갔다가 ‘깐깐 오월’이나 ‘건들 팔월’을 거쳐 공연히 싱숭생숭한 섣달로 내려오는 것이 격에 맞다. 그럴지언정 기왕지사 지나온 길을 돌이키는 마당에 차례는 무슨 차례냐는 심정에 사로잡힌다. 둘쭉날쭉 고개를 쳐드는 일들 가운데 골라잡아 가닥을 추리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사건·사태 상황이 특정 일월(日月)을 미리 정해 놓고 나타나는 것이 아닌 바에야 거꾸로 간들 상관없을 듯하다. 기억의 선도(鮮度)로는 되레 생생하기 때문이다.

저문 해의 끄트머리에서 맞이한 17명의 탈북 가족은 반갑다. 유난히 소설보다 기이한 일들이 많은 한국 사회에서 그것은 이미 ‘이야기’수준을 넘어섰다고 본다. 그 정도의 대부대가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장장 40여 일 만에 남녘땅을 밟은 사실은, 감동·자유 이상의 울림으로 다가왔다. 제대로 산다는 것은 이렇게 뜨겁고 엄숙한 것인가 말을 잃었다.

김포에 내리자마자 찍은 사진을 보았는가. 나는 그 중에서도 세 살, 다섯 살, 여섯 살, 아홉 살 짜리 아이들을 눈여겨보았다. 저것들의 앞날에 다시는 질곡의 세상이 없기를 기원하는 심정으로 가득했다. 칠흑의 밤을 타고 떠난 고향을 언젠가 다시 찾아 유년의 참담한 기억을 평화롭게 반추하기를 희원했다.

또 한편의 현실은 그 다음을 걱정하게 한다. 국회에서는 벌써 더 많이 밀려올 탈북자들에 대한 대비책 강구 소리가 나왔다. 남의 일로만 치부했던 보트 피플이 이번에는 이 땅에서조차 재현될 조짐 앞에서 감동은 차츰 엷어지고 정책이 전면에 떠올라야 할 국면에 이르렀다. ‘인민’들의 배조차 채워주지 못하는 주제에 ‘어버이’를 세습하는 막가는 사회와 무력 대결을 하는 일방으로 탈북자들을 보살필 부담까지 떠맡게 되었다. 올해가 바로 그런 시련의 구체적 ‘원년’인 셈이다.

이런 분위기 직전에 치른 것이 잠수함을 타고 침입한 남파 간첩들의 도발과 살상 행위다. 일당을 섬멸하는 전과를 올렸으나 우리측의 희생도 적지 않았다. 멀쩡하게 눈 뜨고 당한 허점이 여러 각도에서 드러났다. 그 때문에 군단장을 비롯한 책임자 20명이 보직 해임 등 문책을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어떻게든 북을 달래고 어르면서 당초 자기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한국 정부를 오히려 경원하는 눈치다. 돈을 대는 건 누군데, 자본주의의 본산인 미국으로서는 우리 돈주머니를 풀게 하기 위해서 그나마 유화책을 쓰는 기미다. 그게 아니었다면 더 좀 냉정하게 따돌릴지도 모른다는 서운한 경험을 지금 하고 있다.
‘생태’처럼 좋은 시절 직장에 바치고
‘명태’대접도 받지 못하는 ‘명퇴’자들


따라서 어느날 갑자기 미국의 무리한 요구를 도리 없이 수용하여 북의 적대 집단으로 하여금 회심의 미소를 짓게 하기보다는, 굶주리는 동족은 동족대로 돕는 샛길 하나쯤 터놓는 것도 나쁘지 않다. 민간 조직들이 벌이는 쌀 보내기 운동도 그래서 착수한 것일 게다.

모를 건 세상사다. 만약 그들이 식량 축내는 자기네 ‘식구’를 덜 요량으로 한쪽 구멍을 어물쩍 열어 탈북을 눈감는 기교를 부렸을 때, 우리가 겪을 이중의 부담이 두렵다. 물정 어두운 한 서생의 망상이 지나치다면 할 말이 없지만.

눈을 국내 문제로 돌리면 한총련 사태가 우선 크게 들어온다. 무려 6천명이 연행되고 그 중 4백여 명이 구속되었으며 3천4백여 명이 불구속 입건되었다. 3백70명은 즉심을 받았다. 그러고도 한총련 비판의 화살이 이때껏 거세다. 실패한 학생운동을 넘어 국민의 마음과는 너무 괴리된 행동 탓이다. 낡은 메시지는 차라리 초라하고 쇠파이프로 경직된 사고는 동료들의 지지마저 적잖이 잃었다.

‘자유의 종’을 난타하는 데서부터 비롯된 이 땅의 학생운동은 누가 뭐래도 찬연했으며 현 정권 탄생 배경과도 결과적으로 무관하지 않다. 어떻든 역대 정부가 평화적인 목소리엔 귀를 기울이지 않고 과잉 방어에만 치중하는 까닭에 반사적으로 행동이 과격해지는 이유도 있다. 그럴망정 평양의 주장에 고스란히 동승하는 통일운동은 최소한의 독자성조차 의심받을, 법 이전의 문제다. 국민 감정에 어긋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생성된 후유증의 하나가 곧 지식인 사회의 완강한 침묵이다. 여간해서는 입을 열지 않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보수 기운은 더 기승을 부린다. 한 사회의 적절한 균형을 위해 필요 불가결한 토론 풍토가 그 때문에 더욱 경색될까 걱정이다. 때마침 들이닥친 경제 침체가 이론(異論)의 여지를 덩달아 좁힌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어느 나라나 비슷했다.

역사상의 경험으로 미루어 그렇다. 불황 바람이 불면 보수의 소리가 높아지고 이에 대응하는 개혁파 지식인들의 목소리는 안으로 잦아들기 마련이었는데, 지금이 바로 그런 때인 것 같다. 게다가 내년으로 박두한 대통령 선거가 또 있다. 이상하게도 선거는 누가 보수를 더 많이 포용하는가에 따라 유·불리가 갈리기 쉬웠다. 북에 공산 정권이 버티고 있는 우리는 하물며 그랬다. 색깔 논쟁의 불쾌한 구습을 떠올릴 것마저 없이.

이래저래 요새 사람들은 웬만한 일에 열정을 불태울 줄 모른다. 풀 죽은 모습으로 연말을 보내거니와 지식인들의 무기력과 조신(操身)이 특히 눈에 띈다. 해가 바뀌면 달라질까. 대선 열풍이 불면 잠행하던 비판 의식이 또 한번 불꽃을 피우랴. 고여 있는 사회, 썩은 늪처럼 잠잠한 사회는 국가의 총체적 건강을 위해서도 바람직스럽지 않다. 고개를 쳐들고, 용기를 가지고, 조국의 앞날을 멀리, 그리고 깊이 생각할 일이다.

아무리 그렇기로 명예 퇴직으로 고개 숙인 남자들에겐 섣불리 ‘격려가’를 불러주기 어렵다. 허망한 격려사에 고무되기엔 그들의 나이가 어지빠르다. 늙지도 젊지도 않은 처지에 직장이라는 컨베이어 시스템에서 튕겨나온 것 같은 ‘탈직자(脫職者)’ 신세는, 아니할 말로 어감이 비슷한 명태의 일생을 연상시킨다. 동해에서 갓 잡아 올린 생태는 비싸다. 그만 못한 동태는 그렇다 치고, 명태도 명태 나름이다. 대관령 찬바람에 꾸덕꾸덕 말린 노랑태는 일명 더덕북어라 하여 제법 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명퇴’자는 어디 그런가. 생태같이 물 좋은 시절을 직장에 바치고 바짝 마른 만큼 욕심없이 멸사봉공할랬더니 지천꾸러기 내보낸 꼴이다.

웃자고 갖다 붙인 농담이지만, 이런 식으로 대량 해고된 것이 올해의 명예퇴직자들이다. 전부터 조금씩 있기는 있었으나 금년 들어 일반화한 폭이거늘, 제도 아닌 이 제도가 던진 파문과 상실감은 아주 크다. 개인의 좌절로 이어졌을 뿐만 아니라 조직과 개인의 일체감을 와해시켰다. 회사는 그동안 임금과 승진으로 종업원의 생활을 보장하고 능력을 평가했다. 개인은 노력과 충성심으로 이에 보답했는데, 앞으로는 오직 능률만을 사겠다는 태도로 나온 것이다.

어쩌면 예정된 코스를 밟아 가는지도 모른다. 직장에서 밀려난 사람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는 현상은 지금까지의 우리 사회가 얼마나 ‘직분 사회’로 일관해 왔는가를 반증하기도 한다. 무슨 전문가 아무개보다는, 어떤 회사의 사원 대리 과장 부장 이사 직함을 지녀야 스스로 안심하고 행세할 수 있었다. 그러한 관념이 갑자기 뒤집히는 바람에 너나없이 당황하기 시작했는데, 장차의 계약 사회는 싫건 좋건 개인 중심으로 나갈 듯하다. 겉 다르고 속 다른 ‘명퇴’에 끼기 전에 미리미리 생각해 둘 일이다.

명퇴 해당자들의 억지 퇴직이 대다수 국민의 연민을 사고 봉급생활자들을 우울하게 했다면, 한 분야의 우두머리로 앉아 떵떵거리던 위인들의 옷벗기와 몰락은 분노와 더불어 살 맛까지 잃게 만들기에 족했다. 일국의 국방부장관이, 은행장이, 그리고 일일이 거명하기조차 지겨운 부패 행렬의 당사자들이 연중 내내 이 바닥의 ‘하수도’로 구실하며 오물을 뿌렸다. 그러고 보면 특별시의 하수도 국장도 끼어 있었지.

뚜껑을 여는 족족 드러난 부패의 냄새는 끝이 없었다. 그것도 이른바 ‘사회 지도층’에 많았다. 누가 붙인 이름일까. 사회 지도층이라는 말 자체가 우습다. 직위가 높고 권세가 있으면 자연히 따라붙는 ‘별도 계층’이 우리말고 어느 하늘 아래 다시 있을까 의심스럽다.

남들이라고 그런 ‘덕망가’를 별격으로 존경하는 관례가 없지는 않지만 그에 따른 의무를 엄격히 요구한다. 흔히 말하는 노블리스 오브리즈(noblesse oblige)인가 머신가가 그거다. 요컨대 귀족이면 귀족, 특권층이면 특권층답게 고상하게 놀라는 뜻이리라. 특권에는 그만한 의무가 따르고, 귀족은 귀족으로의 책무가 있다는 의미다.

우리는 어떤가. 귀족과는 상관이 없으니 제쳐놓자. 특권층에는 의무 대신 돈이 따른다고 인식하는 편이다. 그게 틀린 말도 아닌 현실을 신물나게 목격했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밥먹 듯이 잡혀 가고 떡 먹듯이 나오기도 잘한다. 그통에 본인은 물론 빤히 지켜보던 사람도 전과자 대우를 않는다. 정치적 양심범이라면 모를까, 부정한 수법으로 허천나게 돈을 긁어 모으고도 선선한 얼굴로 대로를 활보한다. 오히려 ‘의리의 돌쇠’니 사나이답다느니 칭송이 자자하다. 외국의 예를 두 번 들기 민망한 노릇이되 그쪽 같으면 그렇게 뻔뻔하기 힘들다. 생각하면 무서운 세상을 살고 있다.
性이 천덕스럽게 마구 굴러다니고
짐승만도 못한 욕정의 폭력이 난무한다


5·18 특별법에 따라 재판 받는 두 전직 대통령 이하 여러 면면들을 보라. 더 두고봐야겠으나 누구 하나 그 점은 잘못되었노라고 잠시나마 고개를 떨군 적이 있던가. 기천억의 돈도 기백 명의 죽음도 나와는 상관 없다고 당당히 뻗대는 가운데 96년이 저문다. 거기다가 심심하면 새어나오는 사면설과 대선 관계설이 있다. 을축갑자의 세상을 또 살라고?

지난 가을엔 김 구 선생 암살범 안두희씨가 버스 기사 박기서씨의 손에 살해되었다. 그전에는 그를 응징하기 위해 12년을 쫓아다닌 권중휘씨가 있었다. 그 이전에도 같은 목적으로 행동한 이가 있었고… 대를 잇다시피 하면서 몇십 년을 두고 나름의 의(義)를 집행하고자 한, 그것도 중년의 나이에 그토록 집요했던 사람들이다. 이로써 역사의 진실이 영영 어둠 속에 묻히게 된 것을 관계자들은 아쉬워한다. 줄기차게 안씨를 쫓은 당사자도 바로 그 진상을 밝히기 위해 무진 애를 쓰다가 비극을 저질렀다.

미처 매듭을 풀지 못하고 꼬리를 감춘 사건이 한둘이 아닌 현대사를 떠올리며 김 구 선생이 좌우명으로 삼았던 글귀를 읊는다.

‘내가 밟고 가는 눈 덮인 들판길 조심하여 헛밟지 말지어다. 오늘 걷는 나의 발자취가 뒤에 오는 이의 이정표가 될 것임에(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이번에는 화제를 바꾸기로 한다. 1년간 일어난 무수한 사건 사고를 추리기도 수월하지 않거니와, 세상은 반드시 덩지 큰 일에서만 사람살이의 내력을 더듬을 것이 없다는 느낌에서다. 그렇다면 문학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게 어떨까. 올해가 문학의 해인 것과는 상관없이 문학의 외설 시비가 마침 눈에 띈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언제나처럼 문학권 밖에서 말썽의 봉화를 올리고, 뒤이어 공권력이 사법 처리하겠다고 나섰다. 작품을 펴낸 출판사 간부가 구속되면서 파문이 더욱 번졌다. 문학의 성 표현 한계는 어디까지이며, 이 작품이 외설이냐 예술이냐에 대한 상투적인 논의는 그나마 산발적으로 조금 일다가 말았다. 다만 장정일씨 작품의 외설성에 공감하는 문학인조차도 검찰의 사법적 제재에 대해서는 문화의 후진성을 들어 반대하는 편이다.

마광수씨 때도 그랬지만 당사자들을 우선 가둬 놓고 보는 조처는 지나치다. 설사 법조문이 지시하는 구속 요건이 충분하다 하더라도, 자유로운 처지에서 신문하고 대답하는 열린 자세를 보고 싶었다. 우리 사회가 그런 기회를 통해 해묵은 난제에 대처하는 노하우를 쌓아가기 위해서도.

이와는 다른 제3의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왜 번번이 ‘외설 시비’냐는 점이다. 그밖의 사안으로 문학이 법 앞에 서야 한다기보다는, 어쩐지 멋적고 싱거운 감이 있다. 소설을 읽고 한층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소설보다 기이한 사건의 범람은 성의 세계에서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소녀 성폭행이 잇따랐는데, 특히 늙은 ‘수심(獸心)’들의 행패가 심했다. 아니다. 짐승들에게 부끄러워서도 수면인심(獸面人心)으로 표현을 고치는 게 낫다. 그들의 짝짓기는 종족 보존을 위한 계절적 욕구에 국한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새끼를 상처내기는커녕 적의 습격으로부터 어린 것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 바쳐 싸운다. 한데 소수의 막가는 욕정덩어리들은 어린 떡잎을 아무데서나 짓밟았다. 아, 교장(敎場)에서조차.

덧붙이건대 이 바닥만큼 성이 천덕스럽게 마구 굴러다니는 곳도 드물다. 예전의 이발소 그림으로 걸려 있던 동화의 성 같은 집들이 방방곡곡의 명당자리에 빼곡하다. 거지반이 러브호텔이다. 러브하는 남녀의 익명성을 보호하기 위해 내부 구조는 미로를 닮았다. 어떤 방에는 물침대가 있다. 열락의 평화를 그것이 출썩거리게 하는 모양이다.

촌스럽게, 또는 다 늦게 넘쳐 흐르는 막강 정력의 분출 장치에 놀라지는 않는다. 다만 기우한다. 아무리 그렇기로 나는 회의한다. 젊은이 상대의 텔레비전 프로마다 ‘섹시하다’는 말을, 스므나문 살 처녀가 아침이고 밤이고 밥 먹듯이 뇌까리는 것은 성의 건전한 개방 풍토에 무엇을 기여하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러 신비스럽게 놔두는 것도 있고 감출 줄도 알아야지, 모조리 까발리면 무엇이 남겠느냐? 잔소리가 하고 싶어진다.

마지막으로 언론 이야기가 남았다. 계기는 물론 살인으로까지 발전한 언론의 무한 경쟁이다. 해마다 꼽는 10대 사건에 언론 문제가 포함되기는 흔치 않은 일인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사태의 일각(一角)을 드러냈을 뿐 그 밑에는 거대한 빙산이 도사리고 있는 까닭이다. 그걸 죄 점검할 겨를이 없다. 여기서는 오직 ‘경쟁’의 근본 핵심을 건드릴 수밖에 없거니와 그것은 일언이폐지하여 극에 달한 상업주의로 요약된다.
선정적이고 선동적인 언론
그들의 화두는 ‘상업주의’


상업주의의 좋고 나쁨은 잠시 접어두기로 한다. 요컨대 체면 불고, 염치 없음이 지나치다는 점이다. 매체마다 극성스런 자기 선전으로도 알조다. 자기 자랑의 실제적 표현인 사고(社告)를 본다. 안 실리는 날이 없는 건 고사하고 하루에 두서너 건씩, 때로는 1면 중간 톱으로도 나온다. 사장 동정은 말할 나위 없다. 기자협회가 발표한 올 1월부터 11월 중순까지의 4개 신문 발행인 동정 기사 집계에 잘 나타나 있다. 78건이 최고였다. 4일에 한 번꼴이다.

과도한 자기 피아르(PR)의 다른 측면은 유아독존의 서슬 푸른 표정을 동반하기 쉽다. 전에는 언론 보도의 기본권이 침해당할 우려가 있을 때 옆으로의 유대가 직업의식의 내림에서 이심전심으로 형성되었거늘, 지금은 없다. 선의의 경쟁은 가뭇없고 나부터 살고 보자는 자세가 더 적극적이다.

그리하여 언론 전반의 기류는 어느덧 살벌하다. 기사를 다루는 데에서도 잘못하면 선동적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과대 포장하는 경우가 잦다. 남보다 앞서가려는 건 좋으나 독자의 눈을 확 잡아당기겠다는 의욕이 지나친 나머지 먼저 흥분하고 너무 빨리 식는 경향이 드세다. 더 자극적인 것, 따분하게(?) 문제의 원인을 캐기보다는 화제 중심으로만 지면을 메우려는 경박한 풍토를 거기서 읽는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문물을 분석하고 심심찮게 읽을거리를 제공하는 노력이 아쉽다.

한 해 동안의 여러 가지 일을 어떻게 파악하고 무엇을 느꼈는지 저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 아무려나 헌 달력을 떼고 새 달력을 거는 마당에서, 내년은, 더구나 대선이 벌어지는 내년에는 한 발자국이라도 더 나은 세상이 열리기를 희망할 수밖에 없다. 상투적인 ‘말놀음’에 불과하지만, 희망에 대한 믿음 없이 빡빡한 이 세상을 어떻게 살겠는가. ‘희망의 접시’에 무엇을 담을까? 하는 것도 막연한 노릇이긴 한데, 웬만한 일들이 모두 우리 손에 달렸다는 것도 변함없는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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