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 도시 호치민의 ‘개발후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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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0.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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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 시, 고층 건물 난립해 ‘부조화’ 몸살
넓이가 2093㎢인 경제 도시 호치민 시는 아직 전원 도시의 미관을 유지하고 있다. 개방 쇄신 정책인 도이모이에 따라 낡고 찌든 건물을 단장하는 보수작업을 활발하게 추진하고 새 건물을 많이 지어 도시가 매우 산뜻해졌다.

그러나 도심 지역은 20층이 넘는 새 고층 건물 10여개가 여기저기 돌출하여 이미 개발에 따른 부조화 증세를 드러내고 있다.

호치민 시 중심의 미관은 성모마리아 대성당(노틀담 성당), 통일궁, 중앙우체국과 파리코뮌 광장(전 케네디 광장), 4·30공원 일대의 조화에서 나온다. 수령이 100년을 넘은 공원의 푸르고 드높은 나무들은 건물들과 어우러져 도시 미관의 극치를 이룬다. 또 하나 미관 지구는 시인민위원회·국립극장·캬라벨 호텔·컨티넨탈 호텔이 둘러싼 레로이 대로의 녹지대와 분수이다.

한국 자본과 기술로 지은 복합 건물 다이아몬드 플라자의 위치는 성모마리아 대성당과 녹지를 가운데 두고 마주한 곳이다. 레두안 대로를 따라 프랑스와 미국의 총영사관이 이웃해 있다.

포스코 시공 다이아몬드 플라자에도 찬반 분분

시공자는 포항제철 계열인 포스코 개발(포스코 엔지니어링 & 컨스트럭션)이다. 1997년 2월 착공해 2년 반 만인 1999년 7월에 완공했다. 베트남 최초의 철골 아이빔 건물로 공사비가 1억 달러에 이른다. 철근을 쓰는 일반 공사보다 3배 비싸게 들었다고 추정하는 사람도 있다. 건물은 흰색 4층짜리 상가와 청색 14층짜리 사무실·20층짜리 아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시행자는 합작 법인인 아이비씨 코퍼레이션(한국측 지분 70%, 베트남 국영회사측 지분 30%)이다. .

연면적 57,000㎡인 다이아몬드 플라자가 호치민 시내에서 가장 웅장한 건물이라는 데는 이론이 없다. 그러나 건축의 조화미와 건물의 투자 가치에 대해서는 상반되는 평가가 나온다. 시행회사측은 최첨단 건축의 꿈을 담았다고 자평한다. 이 건물 아파트에 새로 입주한 한국 부총영사는 ‘한국 기업 진출의 힘’을 상징하는 복합 건물이라고 칭찬한다. 한국 공관원 중에는 이와 반대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다이아몬드 플라자는 문제가 많은 건물이어서 쳐다보기도 싫다는 것이다. 때와 장소를 잘못 판단하고 투자해 국민 세금을 낭비한 사업이라는 비판적 관점이다. 다이아몬드 플라자 옆에는 놀리고 있는 금호그룹의 대지가 있다. 1억5천만 달러짜리 건물 신축 계획을 세웠다가 토지 보상비 2천만 달러만 지급한 채 공사를 미루고 있다는 것이다.

1995년을 전후해서 호치민 시에는 동시 다발로 고층 비즈니스 빌딩이 많이 들어섰다. 신축된 고층 건물들은 국제통화기금 사태의 영향으로 각국 기업이 썰물처럼 철수하는 바람에 입주율이 매우 낮다. 웬후에 거리에 홍콩과 일본 자본이 세운 비즈니스 센터인 선화 타워와, 30층으로 높이가 베트남에서 두 번째인 사이공 센터 빌딩 등은 입주율이 40%라고 알려진다. 성모마리아 대성당을 가운데 두고 다이아몬드 플라자와 마주하고 있는 신축 건물 더 메트로폴리탄은 청색 돔과 대리석 외벽으로 환경친화적 조화미가 돋보인다. 그러나 이 건물 입주율도 절반에 못 미친다고 알려졌다.

다이아몬드 플라자 운영 책임자인 이문표 대표는 다른 고층 빌딩과 비교해 전망이 좋다고 주장한다. 아파트는 미국 총영사, 호주 영사, 메르세데스 벤츠 사 대표 등이 입주해 42세대가 다 찼으며, 사무실은 계약율이 75%(임대료는 ㎡ 당 20 달러 전후)라는 것이다.

그는 8월에 문을 여는 상가의 운영 전망도 낙관했다. 그러나 이 건물은 차입금 이자가 1년에 6백만 달러에 이른다. 투자 비용을 회수하고 수익성을 확보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도시 조화미를 둘러싼 개발 논쟁은 호치민 시 인민위원회 건물 뒤편에 세워진 회색 빌딩에서 비롯했다. 건물 이름은 162 파스퇴르 비즈니스 빌딩. 호주 노포크 개발 그룹이 대외협력투자위원회(SCCI) 하노이 본부의 승인과 호치민시 인민위원회 건축국의 신축 허가를 받아 1992년에 착공했다. 논쟁은 이 건물의 우중충한 측면이 시인민위원회 건물 뒤로 돌출하면서 불붙었다. 시인민위원회 건물은 1세기 전 프랑스 기술로 지은 우아한 건물이다. 도시 심장부에서 산뜻한 베이지 색으로 눈부신 모습을 뽐내고 있다.

공산당 기관지 <사이공 지아이 풍(해방)>은 1995년 5월4일자에서 인민위원회 건물의 역사적 미관이 외국 투자 기업의 조악한 11층 건물에 침해당했다고 비판했다. ‘인민위원회 지붕 위로 5층 높이나 삐죽이 솟아오른 꼴사나운 회색 빌딩 때문에 여러 해를 지켜온 인민위원회 건물의 조화미가 망가지고 있다. 우리 견해로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빌딩 상층부 5개 층을 잘라내든가 빌딩 전체를 허물어 버리는 것이 상책이다.’

<사이공 지아이 풍>이 이렇게 문제를 제기하자 보반키엣 당시 총리는 즉각 호치민 시인민위원회에 도시 미관을 보전할 대안을 찾으라고 지시했다. 그로부터 언론·시인민위원회·시의회·베트남경제협회 중앙본부와 중앙 정부가 4개월 동안 갑론을박의 논쟁을 벌였다. 이 논쟁에서 신중론을 편 것은 하노이의 베트남경제협회 중앙본부였다. 결국 이 문제는 7월에 열린 호치민 시 인민회의 20차 회의에 상정되었다. 인민회의는 표결했다. 인민회의는 균형 있게 보수하라는 권고안을 만들어 7월29일 하노이 중앙 정부의 보반키엣 총리에게 보냈다. 총리는 8월11일 외벽을 보수하고 개축하여 조화를 꾀하도록 한다는 호치민시 인민위원회의 권고안을 승인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총리의 최종 방침은 내각 공보로 호치민시 인민위원회와 대외투자환경위원회에 전달되어 개발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베트남은 1990년대에 개발을 추진하면서 보존 문제를 차츰 심각하게 느끼게 되었다. 인민위원회 뒤편에 솟아있는 빌딩의 회색 측면은, 개발을 잘못하면 엎지른 물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실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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