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 “작가는 바깥에서 사유하는 사람”
  • 李文宰 기자 ()
  • 승인 1996.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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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장정일씨 인터뷰/“판매 금지 조처 흔쾌히 받아들인다”
장정일씨는 아내 신이현씨(소설가)와 함께 현재 파리에 체류하고 있다. 2년 전 작가로서 재충전을 하기 위해, 마침 유학을 계획하고 있던 아내와 프랑스로 향했다. 지난 여름 일시 귀국해,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화가 이상남씨와 대담집을 펴내기 위해 미국에 가려다가 비자 절차가 너무 까다로워 포기하고 지난 10월 초 파리로 돌아갔다. 그는 파리행이 이번 소설과 전혀 무관하다며, 일부에서 제기하고 있는 도피설을 일축했다. 그의 파리 생활은 서울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다. 책읽기와 글쓰기, 음악 감상, 미술관 순례 등으로 채워지고 있다.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음란물 판정에 대하여 작가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회적 통념에 도전하는 작가와 그것을 보존하려는 간륜의 처지가 서로 틀리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간륜이 꼭 필요악으로 존재해야 한다면 좀더 민주적인 절차를 택해야 한다. 출판 금지라는 극약 처분에 앞서 작가로 하여금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은 대다수 국민이 모르고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누구에 의해, 어떤 논의 끝에 내 책이 음란물 판정을 받았는지 모르고 있다. 변론권도, 공개성도 없는 비밀 재판이 그 어느 분야도 아닌 문화의 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내 소설의 외설 시비를 떠나 슬픔을 준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해 소환을 요구하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기소된다면 될수록 빨리 재판을 마치고 내 시간으로 돌아오고 싶다. 역사가 입증하듯이 작가는 언제나 정부나 법보다 의연했다.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작가와 출판사의 각오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있다.

음란 도서와 작가, 출판인에 대한 제재는 세 가지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첫째, 인신 구속과 같은 사법 처리. 둘째, 판매 금지. 셋째, 통신 판매나 비닐로 포장하기, 혹은 미성년자 판매 불가와 같은 유통상의 제재가 그것이다. 나는 인신 구속이 중세를 재현한다는 점에서, 판매 금지는 작가의 실존적 체현물인 동시에 경제 수단을 원천 봉쇄한다는 점에서 반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판매 금지 조처를 쾌히 받아들인다. <즐거운 사라> 때의 사법 처리보다는 진일보한 단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잠정적 희망은 영화의 예에서 이미 정착되었듯이 유통방법상의 제재라는 울타리 안에 모든 법적 강제력을 가두는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그와 같은 법이 없었기 때문에 작가 인신 구속이나 작품 판금이라는 극단적 방법이 사용되고 있다. 출판사의 굴욕적 공개 사과는 이인삼각 경기처럼 나에게도 충격을 주었지만, 나 때문에 출판사가 화를 당한다면 죄책감에 시달릴 것이다. 출판사는 책을 회수하고 공개 사과까지 했으니 불문에 부쳤으면 한다.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모든 일은 나 혼자 떠맡고 싶다.

계간지 <리뷰> 대담에서 ‘표현의 자유를 구걸하지 않겠다’라고 했는데 무슨 뜻인가?

작가란 바깥에서 사유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표현의 자유를 법과 정부에 보장해 달라고 하는 것은 모순이다. 만약 그들이 표현의 자유를 무한정으로 보장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작가로서 그 속에 있는 금기를 찾아낼 것이다. 그럼으로써 바깥에서 사유하는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자 할 것이다.성에 대한 묘사가 지나쳐 작품이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를 덮어버렸다는 평가가 있다.

소설이 말한 내용으로부터 내가 전달하려는 주제를 추출하려는 일은 내 의도를 다 반영하지 못한다. 문제가 되고 있는 지루한 성묘사, 즉 포르노로 치장된 형식을 함께 살펴야 소설의 주제가 명료해진다. 내 소설은 과도한 형식 때문에 주제와 내용이 늘 찌부러져 왔으며, 언제나 형식이 우위였다.

이번 소설을 통해 독자들을 위무하지 않고 충격을 주고 싶었다고 했는데, 독자들이 그 충격을 거부한다면?

기질상 맞지 않기 때문에, 또는 이런 충격은 이미 충분히 거쳤기 때문에 의미 부여를 할 필요가 없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나 자신도 이런 충격은 두 번 의도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음에는 좀더 전통적인 방법을 택하고 싶다.

자기 모멸을 통한 풍자 혹은 구원이 소설의 메시지라면, 그토록 말이 많은 성이 아니라 다른 소재를 택할 수는 없었는가?

록 가수가 공연 중에 자신의 경제 수단이며 표현 수단인 악기를 때려부술 때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여기며, 그것 또한 메시지로 받아들여야 한다. 포르노로 치장된 형식이라는 흉기를 빌려 나는 소설가라는 특권과 소설이라는 신성한 근거를 때려부수고 싶었으며, 내 혼과 육체를 완전히 화장하기 위해서는 포르노적인 형식이 꼭 필요했다.

많은 독자가 이번 소설에 등장하는 비속어들에 거부감을 품고 있다. 그 말들에는 어떤 의도가 숨어 있는가?

포르노 형식을 동원한 소설은 그 자체로 문어체로 굳어 있는 제도권 문학과 달리 구어체로 존재한다. 내 소설에 등장하는 비속어와 의성어들은 구어체를 복원하고자 하는 장치들이다. 소설 속에서까지 구어체가 억눌려 있다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강박 속에 살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문학에서 아버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커 보인다.

나에게 아버지는 여러 가지를 의미한다. 생부는 물론 모든 경전들, 제국주의·전체주의·종교…. 이번 소설에서 ‘신버지’라는 말이 고안된 것은 기독교 교회 속에서 신도와 장로, 장로와 그리스도, 그리스도와 하느님은 항상 신부와 신랑의 관계로 상징된다는 것에서 암시 받은 것이다. 이번 소설을 쓰면서 모든 작가들이 ‘가상의 혈육’을 만들어 왔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무너뜨릴 적을 발견하고 그것과 싸우는 일에서 나는 내 문학의 동력을 얻어왔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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