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씨 소설은 간접 매춘 상품”
  • 권장희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정책실장) ()
  • 승인 1996.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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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도구’로 노골적 성 묘사 이용…중견 출판사의 출간 더 놀라워
예술이냐 외설이냐. 창작 표현의 자유와 한계를 논할 때마다 화두가 되는 이 말은, 전 연세대 교수 마광수씨의 소설 <즐거운 사라>와 문신근씨의 연극 <미란다>로 한동안 도마에 올랐었다. 그 결과 마광수씨는 사법적으로는 외설로 판정을 받고 실형까지 선고되었지만, 사회적으로는 오히려 일간 신문의 칼럼니스트로, 시사 주간지의 논객으로, 억압된 사회 구조를 ‘성’을 통해 개혁하는 혁명가로 등장하여 <즐거운 사라>보다 더 강력하고 직접적인 언어들을 써서 성 해방을 주장하고 있다. 문신근씨도 마찬가지로 사법적 심판을 받았지만, 그에게 돌아간 것은 그가 원했던 흥행 수입이었다.

이러한 사실들은 우리 사회의 ‘성 상품화’내지는 ‘성 표현의 자유’가 사법적으로 제어할 단계를 넘어섰음을 보여준다. 언론사들이 발행하는 스포츠 신문에 실리는 만화나 연재물, 선정적인 사진, 심지어는 사회면 기사들까지도 <즐거운 사라>나 <미란다>를 넘나들고, 공중파 방송에서도 온갖 불륜과 선정적인 영상들이 노골적으로 표현되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가 분명 성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향유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이 보는 만화(주로 일본 만화 복제품), 청소년들이 즐겨 보는 성인 잡지, 최근에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도색 소설, ‘젖소부인’으로 대표되는 음란 영상물, 대학로 연극 등은 ‘성을 팔아서 돈을 버는’ 간접 매춘의 도구가 되어 가고 있다.

이들 간접 매춘 상품들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성 표현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성을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묘사한다는 것이고 둘째, 그동안의 성적 금기들, 예컨대 동성애·근친상간·수간·가학·혼음과 피학적 성행위 등을 다룬다는 것이며 셋째, 10대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는 것이다.

장씨의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아무리 포장을 잘한다 해도 그 구성에서 80%를 노골적인 성묘사, 동성애, 가·피학적 성행위, 심지어는 똥을 먹는 장면, 여주인공을 10대로 설정한 것 등, 위에서 지적한 간접 매춘 상품의 요소를 골고루 갖춘 음란물임을 숨길 수 없다. 장씨가 표현의 자유를 등에 업고 또 하나의 하드코어 포르노그라피를 써냈다는 것보다는, 중견 출판사로서 독자들에게 신뢰를 얻고 있는 출판사가 이러한 책을 출간했다는 것이 더 놀라운 일이고, ‘성상품화’에 물든 우리 사회의 도덕적 불감증이 심각함을 보여준 것이었다.

시민단체가 장씨의 책을 발간한 김영사에 대해 불매운동을 하겠다고 경고하고 공개 사과와 책을 전면 회수토록 항의운동을 전개한 것은, 단지 하나의 문학 작품에 재갈을 물리기 위함이 아니었다.

예술 또는 자율의 이름으로 생산되는 문화 상품의 매춘화(돈벌이의 수단이라는 점에서)를 견제하고 막기 위한 시민 사회의 규제 장치를 ‘문화 소비자 주권’이라는 이름으로 실천한 것이다. 그리고 장씨 소설 규제 운동의 성과는 시민 사회의 규제가 사법적 규제보다 훨씬 효과적이고 영향력이 있음을 보여 주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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