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것 베껴서 쉽게 돈벌자"
  • 宋 俊·蘇成玟 기자 ()
  • 승인 1998.07.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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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에서 음반까지 ‘베껴서 쉽게 벌자’ 활개…공짜 근 성·느슨한 단속·소모적 재판 등이 ‘악의 꽃’ 부추겨
생활 한복 전문업체 (주)질경이 이기연 대표는 지난 오뉴월에 IMF 파동보다 더한 충격을 겪었다. 질경이가 개발한 신상품이 남의 가게 전시장에 버젓이 진열되어 있는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출고를 앞두고 개발 상품의 마무리 작업에 여념이 없던 무렵의 일이었다.

어렵사리 문제의 옷을 구해서 살펴보니, 소매 길이며 어깨 품이며 옷의 치수가 질경이의 것과 한치도 다르지 않았다. 부랴부랴 진상을 알아본 이대표는 6월 초 (주)한국퍼시픽 ‘나누리’를 부정경쟁방지법과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서울지방검찰청에 고소했다. 신상품뿐만이 아니었다. 인기리에 시판되어 온 질경이의 옷 여러 벌이 색상과 옷감만 조금 바뀐 채 나누리 상표를 달고 버젓이 나와 있었다.

‘여럿이함께’는 또 다른 피해 업체다. 여럿이함께를 괴롭힌 상대는 (주)니마스. 외제 속옷 수입업체 니마스는 ‘명주실’이라는 생활 한복 상표를 만들어 대리점을 모집하면서 여럿이함께의 카탈로그 사진을 광고에 전용하고 디자인까지 도용했다. 여럿이함께로부터 항의를 받고 니마스는 △일간지에 사과문을 싣고 △디자인 도용 제품을 폐기하기로 약속했다.

명주실의 진면목은 그 다음에 나타났다. 슬그머니 부도를 내 대리점 가입비를 ‘꿀꺽’하는 수법이었다. 지방을 돌며 ‘대리점 모집→부도’를 몇 차례 더 반복한 뒤 지난해 12월 초부터는 ‘물항라’라는 새 상표를 들고 나왔다.

청바지 전문업체 (주)잠뱅이도 상호 도용으로 짜증이 난 상태다. 별표를 박은 디자인까지 꼭 닮은 잠뱅이표 슬리퍼가 유통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종석 사장은 조악한 슬리퍼로 인해 잠뱅이의 명예가 훼손될 것을 걱정해 소송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주)SM코퍼레이션과 캐릭터 작가 박소연씨는 지난 6월 배성철씨를 상표법과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SM코퍼레이션은 상당액의 사용료를 지불하고 박씨의 캐릭터 ‘모비독’으로 연속 무늬를 도안하여 ‘신생아 속싸개’ 상품을 개발했다. 그런데 배씨가 색상만 약간 바꾼 채 똑같은 상품을 무단으로 시판한 것이다.

이 비뚤어진 상거래 관행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IMF 이후 경제가 어려워지자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자칫 영세 업체의 생존 몸부림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이 관행은, 그러나 단순히 개인의 소송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한 나라 전체의 창의력과 경제 활동 의욕을 좀먹는 전염병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거의 자포자기

여러 해 자금과 인력을 투입해 개발한 새 상품과 디자인을 살짝 베껴 쓴다면, 시간과 비용을 많이 절약할 수 있다. 원가를 절감한 만큼 싼 가격을 무기로 덤핑 경쟁에 나설 수도 있다. 어느덧 ‘베껴라’가 생존 제1 조건으로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주)폴리텍은 더욱 어처구니없는 경우를 겪었다. 93년부터 연구에 몰두해 신형 가스 밸브를 개발했는데, 어느 틈에 유사품이 나와 선수를 쳤다. 납품 입찰 때면 유사품의 가격 경쟁력이 위력을 발휘했다. 생산 라인 설비에 투자한 비용마저 난감해진 폴리텍은 유사품에 대해 판매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지루한 소송 과정과 막대한 재판 비용으로 또 한번 진저리를 칠 판이다.

지적재산권 침해 문제가 더욱 두드러지는 곳은 음반 시장과 컴퓨터 분야다. SM기획 정해익 사장은 불법 복제 테이프 때문에 속이 썩는다. 6인조 신인 그룹 ‘신화’를 발굴·육성하는 데 벌써 수억원이 들었는데, 데뷔 음반이 나오기도 전에 어찌된 일인지 리어카 행상에서 복제 테이프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정사장은 단단히 적자를 각오하고 있다. 컴퓨터 소프트웨어 분야는 불법 복제에 중독된 지 오래다. (주)한글과컴퓨터가, 현재 한글 워드프로세서 시장의 80%를 지배하는 ‘아래아 한글’을 포기하고 마이크로소프트에 무릎을 꿇은 것도 그 때문이다.

큰사람정보통신(주)이 막 출시한 최신판 통신 프로그램 이야기 7.7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CD 가격 ‘6천6백원’에는 의미심장한 뒷얘기가 담겨 있다. 96년 8월 이야기 7.3 출시를 전후하여 1주일 만에 무려 2만여 명이 이 프로그램을 불법 복제한 사건이 발생했다. 여론은 갈팡질팡하면서 양비론으로 치달았다. 불법 복제는 나쁘지만, 정품 값(16만5천원)이 비싸기 때문에 불법 복제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8월에 출시된 이야기 7.5(11만원)도 어김없이 불법 복제의 몸살을 앓았다. 이야기 7.7은 음성 메일·음성 채팅 등 새 기능을 첨가하면서도 통신 판매 방식을 택해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추었다. 머지 않아 가격과 불법 복제의 상관 관계가 밝혀지게 될 판이다.

정품 이용에 대한 정부측 태도도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지난달 마이크로소프트가 한글과컴퓨터와 지분 참여 계약을 맺자, 공정거래위원회는 불법 복제해 사용 중인 한글 워드프로세서 정품을 구입하기 위해 예산을 7백여 만원 책정했다. 96년 11월 정보통신부가 각 정부 부처와 85개 정부 투자·출연 기관의 복제 소프트웨어를 정품으로 교체하겠다고 밝힌 뒤에도 상당수 부처가 여전히 불법 프로그램을 사용해 왔던 것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통신과 인터넷 기술이 급진전하면서 소프트웨어의 무한 복제가 가능해졌다. 인터넷에 해킹용 프로그램이 공개 발표되기도 한다. 바야흐로 불법 복제가 새로운 지평을 맞고 있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거의 자포 자기에 가까운 반응이다. 한글과컴퓨터의 김정수씨는 “불법 복제만이 유일한 경쟁 상대였다. 힘겨운 싸움이었다”라고 말했다. 큰사람정보통신의 안효홍씨는 “정품 구매자를 대상으로 투자할 뿐, 전체 이용자 수는 의미가 없어 따져 보지도 않는다”라고 밝혔다.독일, 공테이프 값에 복제 비용도 포함

외국의 경우는 오래 전부터 지적재산권 침해 문제를 전문으로 해결해 주는 대행사가 큰 역할을 해왔다. BSA(Business Software Alliance)가 좋은 예다. 미국에 본사를 둔 이 비영리 단체의 한국 지부에는 마이크로소프트 등 6개 업체가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핫라인(080-555-5556) 등을 통해 신고를 받고, 단속·소송을 대행한다.

핑커톤은 산업재산권·저작권 침해 사례를 전문으로 조사하는 세계적인 회사다. 위조 상표·불법 유통 따위를 귀신같이 추적한다. 94년 문을 연 한국 지부가 1년에 적발하는 위반 사건은 평균 75건 정도. 해당 업체와 계약을 체결하면, 이후 검사·변호사를 통해 수사·단속에서 법적 해결까지 ‘전체 서비스’를 완결 형식으로 책임진다.

94년 11월 제임스 딘의 유족들을 대신해 (주)좋은사람들(대표 주병진)과 특허청을 상대로 법적 투쟁을 벌였던 커티스 매니지먼트 사도 좋은 사례다.

이들은 침해 사범을 찾아내는 데 적극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위반 가능성을 방어하는 데도 치밀한 모습을 보여준다. 94년 애틀랜타 올림픽 때 공식 휘장업체로 지정된 코카콜라 사의 ‘영업 비밀에 관한 지침’은 귀감이 될 만하다. 당시 코카콜라 사는 “경쟁사의 영업 비밀은 아예 듣지도 말라. 우리가 이미 개발해 둔 비법일지라도 나중에 영업비밀침해죄로 몰릴 우려가 있다”라고 직원들에게 주지시켰다고 전해진다.

이같은 치밀함은 단시일 내에 억지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복사기 이용 관행은 지적재산권에 대한 국민적 인식의 수준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학교 앞 복사점에서 수업 교재를 복사할 때도 저작권은 작동한다. 점원이 학술저작권단체에 온라인으로 문의해 복사비와 함께 해당 저작권료를 대신 챙겨 주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는, 녹음·녹화용 공테이프를 판매할 때 미리 복제 비용을 받는다. 이른바 ‘사적 복제 보상금 제도’다. 공테이프가 무엇인가를 복제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일정 액수의 사전 보상금을 떼어내 저작권 단체에 넘겨 주는 것이다. 녹음기·녹화기·복사기 값에도 보상금이 얹힌다.

무단 복사 일상화한 대학 사회…‘공짜 불감증’

이들이 일상을 통해 지적재산권을 학습하는 동안, 우리는 불법 복제와 무단 도용을 생활화하는 길을 걸어 왔다. 교재의 일부는 물론 전체를 복사해 책으로 묶어 쓰는 일은 한국 대학생 사회의 흔한 풍경이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장영태 계장은 복사기 복제로 인한 출판계의 연간 피해액이 2백억∼3백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그럴수록 좋은 책을 출간하기가 더 힘들어지고, 공부할 여건은 그만큼 더 나빠진다는 지적이다. 특히 김승옥 교수(고려대 ·독어독문학)는 “대학생의 리포트는 남의 연구 논문을 무단 도용하는 훈련장과 같다. 각주도 달지 않고 이 책 저 책의 일부를 짜깁기하는 것이 도둑질 아니고 무엇인가”라고 지적한다.

교과서·참고서의 횡포도 매한가지다. 실린 글에 대해 저작권료를 지불하는 것이 마땅한데도 현실은 그 반대다. “업자들이 주장하는 발행 부수를 계산해 보아도 권당 백원꼴밖에 안되는데 그걸 아낀다. 철저하게 저작권료를 요구할 계획이다”라고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 최진숙 연구원은 밝혔다. 이 ‘공짜 근성’이 불법 복제·무단 도용으로 자라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다행히도 최근 들어 지적재산권의 각 분야에서 새로운 양상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지난해 8월 문을 연 경찰청 산하 컴퓨터범죄수사대(02-392-0330)는 차츰 걸음을 빨리하고 있다. 주로 통신·인터넷 범죄와 해킹·바이러스 유포·사이버 금융 사범 등을 수사한다. 불법 복제 사례는 지방청 수사 2계(지능범 담당)로 이첩한다. 지난 6월 초부터는 경찰수사연수소에 컴퓨터 범죄 수사 교육 과정이 개설되었다. 전국 수사 2계 경찰 가운데 60명을 뽑아 4주 과정으로 1기 교육을 마쳤다.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산하 소프트웨어재산권보호위원회(SPC)는 미국의 BSA와 닮은꼴이다. 37개 업체가 회원사로 가입해 있으며, 이들을 위해 검찰과 연계해 불법 복제 사례를 단속·적발한다. BSA 한국 지부와 연대해 활동하는데, 지속적인 성과를 올리기 시작한 것은 2∼3년쯤 된다. 이밖에 문화관광부는 음반·게임·영상 재산권 침해 사례를, 특허청은 상표 도용 범죄를 검찰·경찰과 합동으로 조사·단속한다.

이같은 활동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지적재산권 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고 국민의 ‘공짜 근성’도 여전하다. 왜 그럴까. 한국영상음반협회 서희덕 이사는 “재산권 소유자 스스로 권리를 지키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지적재산권은 대부분 친고죄다. 침해를 당한 사람이 고소해야만 처벌이 가능하다. 그런데 피해자 태반이 법정 투쟁을 하기보다 단속과 처벌이 미흡하다고 주장하는 선에서 머무른다는 지적이다.

캐릭터 작가 정연종씨는 모호한 법 적용과 소모적인 재판 과정이 더 심각한 문제라고 주장한다. 정씨는 롯데월드의 마스코트 ‘로티’의 최초 캐릭터 저작권 소유자로서, 87년부터 92년까지 ‘마라톤 재판’을 벌인 바 있다. “저작권 수호의 한 전례를 세우겠다는 각오로 집을 날리면서 덤볐지만, 재판에 지는 바람에 최악의 선례만 남기고 말았다”라고 정씨는 당시를 회상했다. 권종칠 담당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만 불복할 방법이 더 이상 없어 유감’이라고 밝혔다. 계약에 의해 캐릭터를 수정해야 하더라도 저작권은 작가 스스로 수정할 수 있도록 보장하므로, 타인이 임의로 수정한 것은 위법이라는 논지였다.

정씨는 그 이후에도 하회탈을 활용한 문화 상품, 코흘리개 꾸러기를 도안한 인형 따위를 만들었다가 복제품에 밀려 본전도 못건진 적이 몇 차례 더 있었지만 법정에 나갈 엄두가 안 나더라고 말했다.

프랑스 디자이너 프랭클린 루프라니 씨의 재판은 저작권을 바라보는 한국의 눈높이를 잘 보여준다. 유명한 ‘스마일 캐릭터’로 71년 프랑스에서 저작권을 획득한 루프라니 씨는 한국 봉제업자가 이를 무단으로 사용했다며 저작권 침해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었다. 지난해 12월 서울지법 동부지원 민사 1부는 이에 대해 “독립적인 예술적 특성이나 가치 있는 창작물로 보기 어려워 저작권을 인정할 수 없다”라고 판결했다. “특허청 심사 관행도 문제”

특허청의 심사 관행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대부분의 변리사는 실용성과 미적 감성에 대한 시대의 요구는 빠르게 변하는데 산업재산권을 심사하는 데는 보통 1∼3년씩 걸려 정작 권리 인정이 된 뒤 때를 놓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입을 모은다. 신청자의 심사비 부담이 과하다는 주장, 특허청의 권위적 자세가 초래하는 폐해를 꼬집는 지적도 있다.

의장권 부문의 개선을 바라는 소리도 적지 않다. 특히 디자인계나 미술계의 안목과 특허청의 시각이 차이를 보이는 것도 이 부문이다. 간혹 모방 혐의가 풍기는 것도, 색상과 부분적인 도안이 다를 경우 별도 사안으로 판정하는 경우가 있다.

올해 초 개원한 특허 법원도 아직 기틀을 잡지 못한 상태다. 김영철 변호사 겸 변리사는 “왜 일반 제소 사례를 제쳐놓고 특허청에서 올라오는 사건만 다루는가. 처리할 일이 산처럼 쌓여 있다”라고 말했다. 이영신 변리사는 특허 법원이 아직까지는 전문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문제는 기술에 대한 판단력이 부족한 판사가 기술심리관을 부를 수도, 거절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기술 전문 판사 제도를 하루빨리 도입할 필요가 있다. 무수한 시행 착오 재판을 거치면서 점진적인 변화를 기다리기에는 IMF의 물결이 너무 험하다”라고 이변리사는 말했다.

물론 어떤 판정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정답은 없을지도 모른다. 요는, 권한을 강화하든 무겁게 처벌하든 선진국일수록 창작자의 권리와 의욕을 북돋는 방향으로 판정의 가닥이 잡혀 간다는 사실이다. 특허청의 심사도 법원의 판결도 아직은 창의력보다 신중함에 무게를 두는 것처럼 보인다.

이 참에 지난 5월27일 준비위원회를 발족한 ‘지적재산권 제도 개혁 시민 모임’(위원장 박길린 변리사)은 변화를 꾀하는 모처럼의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읽힌다. 변리사와 저작권 전문가, 벤처 기업가 등 30명 안팎의 구성원은 오는 9월 창립을 목표로 바삐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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