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미디어’ 위성 DMB가 뜬다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2004.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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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과 이동통신 기술을 결합한 뉴미디어 DMB 서비스가 시작된다. 이동통신 단말기를 통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프로그램과 데이터를 시청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1세기 정보 고속도로를 거침없이 질주할 ‘
‘텔레비전이 내 손 안에!’. 방송과 통신이 결합하는 새로운 매체가 등장한다. 이름하여 위성 DMB. 저궤도 정지 위성을 통해 콘텐츠를 송출하고 이동통신 단말기로 시청하는 디지털 멀티 미디어 방송(Digital Multimedia Broadcasting)이다.

세계 최초로 위성 DMB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TU미디어콥(사장 서영길)은 빠르면 오는 7월 첫 전파를 송출할 예정이다. DMB 서비스가 상용화하면 이동통신 단말기를 통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뉴스에서부터 드라마, 영화, 스포츠 중계, 음악, 교양물 등 공중파 방송 프로그램이나 교통, 날씨, 주가 지수와 같은 데이터 방송을 시청할 수 있게 된다.

DMB 전용 위성은 고도 3만6천km 상공에서 지구 자전 방향과 속도에 맞추어 도는데, 지상 방송사는 프로그램과 데이터를 압축해 주파수 대역 13.824~13.888GHz로 위성에 송출한다. 위성은 이 신호를 다시 12.214~12.239GHz로 지상에 있는 중계기(갭 필러)로 되쏜다. 이 중계기에서 콘텐츠를 휴대전화나 PDA 같은 단말기로 보낸다.

위성 DMB의 음질은 콤팩트 디스크(CD), 화질은 고화질 텔레비전(SD급) 수준이어서 기존 공중파 프로그램이나 데이터 방송을 시청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TU미디어콥은 39개 채널(비디오 11개, 오디오 25개, 데어터 3개)을 운영할 계획이다. 가입비는 2만원 내외, 기본 수신료는 월 1만2천~1만4천 원 수준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위성 DMB가 가져올 새로운 미디어 환경은 유비쿼터스와 디지털 컨버전스로 요약된다. 디지털 유목민들은 디지털 정보의 ‘내부’에서 삶을 영위하고, 통신·방송·인터넷 등 통신·전자 기기들이 하나의 단말기로 통합되는 것이다.
위성 DMB 업체 TU미디어콥의 임직원들은 3월24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3월13일 2시41분 미국 플로리다 케네디우주센터에서 쏘아올린 DMB (Digital Multimedia Broadcasting) 방송용 정지 위성이 제 궤도에 안착했기 때문이다. 위성 이름은 ‘별’. 별은 지구 자전 속도와 방향에 맞추어 초속 3km 속도로 저궤도를 따라 돌고 있다. 위성은 궤도에 진입하자마자 3월 28~29일 이틀에 걸쳐 양 날개를 펼쳤다. 양 날개는 햇빛을 전기로 바꾸어 위성 본체에 전력을 공급하는 발전 장치이다. TU미디어콥 CR전략실 박기한 상무는 “세계 최초로 위성DMB 방송 위성을 쏘아올린 것이여서 혹시나 발생할지 모르는 오작동을 걱정했으나 궤도에 무사히 진입했다”라고 말했다.

한별이 궤도에 안착하면서 위성DMB 사업의 첫 고비는 넘겼다. 서비스 개시까지 두 번째 고비는 사업자 선정 과정이다. 사업 개시 시기가 늦어질수록 위성 공회전에 따른 손실이 늘어나는 TU미디어콥은 사업을 빨리 시작하자고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를 설득하고 있다. 하지만 SK텔레콤을 제외한 후발 이동통신 사업자들은 서비스 채비가 갖추어져 있지 않아 사업 개시를 늦추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SK텔레콤은 2001년부터 위성DMB 사업을 추진해 다소 느긋한 처지이다. TU미디어콥도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SK텔레콤 산하 사업 부문에 불과했다.
위성과 이동통신 기술이 발전하면서 파생시킨 이 뉴미디어는 기존 방송과 통신 시장을 뒤바꾸는 지각 변동의 진앙지로 부각되고 있다. DMB의 가장 큰 장점은 ‘유비쿼터스(ubiqitous)’다. 유비쿼터스는 사용자가 언제 어디서나 휴대 전화기나 PDA로 인터넷에 접속해 정보를 검색한다든지 집과 사무실에 있는 가전제품이나 컴퓨터를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을 일컫는다. 위성DMB가 도입되면, 위성 수신용 단말기로 언제 어디서나 방송을 시청해 유비쿼터스 발전을 촉진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존 지상파 TV, 케이블 TV, 스카이라이프가 고정된 TV 수상기를 통해 시청해야 한다는 제약을 단숨에 뛰어넘을 것이다. 이동하면서 프로그램과 데이터를 보는 DMB는 이른바 디지털 노마드(nomad·유목민) 시대를 앞당긴다. 디지털 노마드는 디지털 정보로 무장한 유목민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다.

무엇보다도 위성을 통해 전파를 송출하므로 지상파 TV 난시청 지역 주민의 불편을 해소할 수 있다. 태풍이나 폭설 같은 자연 재해를 맞은 주민들도 재난 방송을 전천후로 수신할 수 있다. 2002년 태풍 루사가 강타했을 때 지상파 TV의 중계 시설이 물에 휩쓸려가 정작 재해 지역 주민들은 재난 방송을 보지 못하고 도시 주민들만 재난 방송을 시청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 적이 있다. TU미디어콥이 지난해 4월 기상청과 재해 방송 관련 협정을 체결한 것은 이 때문이다.

위성DMB는 또 하나의 정보 인프라스트럭처이다. 정보가 흐르는 고속도로인 것이다. 고속도로는 편이성을 높이지만 그 위를 달리는 차량의 흐름에 따라 가치가 결정된다. 정보 가치가 높은 프로그램들로 채워지면 위성DMB의 순기능이 강화되겠지만 선정적인 오락물로만 채워지면 정보 쓰레기의 여과와 처리라는 과제가 대두될 것이다.

유비쿼터스와 함께 정보화 시대의 성격을 규정하는 키워드는 디지털 컨버전스(digital convergence)다. 통신·방송·인터넷 등이 통합되면서 갖가지 통신·전자 기기들이 하나의 단말기로 합쳐진다는 것이다. 위성DMB는 방송과 통신의 융합이라는 본질적 특성상 디지털 컨버전스의 대표 사례로 각광받고 있다.

전자·통신 업체에게 디지털 컨버전스는 새로운 기회의 땅이다. 갖가지 통신 단말기와 가전 기기를 언제 어디서든지 제어할 수 있게 되어, 네트워크로 통합된 가전 기기와 통신 단말기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통신 부품 제조업체들은 위성DMB 특수를 기대한다. 디지털 컨버전스의 부산물인 위성DMB도 예외가 아니다. 삼성전자·LG전자·팬택&프리텔은 위성DMB 수신용 휴대전화를 출시하고 SK텔레콤·KTF·LG텔레콤은 가입자 수가 늘어나는 한편 새로운 수익원이 창출될 것으로 확신한다.
하드웨어 산업 못지 않게 소프트웨어, 즉 콘텐츠 산업도 성장한다. 언론학자 마셜 맥루한이 ‘미디어는 메시지다’라고 지적했듯이, 위성DMB는 단지 미디어 하나가 추가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메시지가 출현한 것이다. 공중파 TV 방송물이 휴대전화나 PDA에도 방송되겠지만 그 의미와 속성은 새로운 매체를 거치면서 굴절된다. 시청자가 늘어나 방송사는 영향력 증대와 함께 광고 수입이 늘어나고 광고주가 선호하는 방송의 황금 시간대 개념도 바뀌게 된다.

위성DMB가 통신 설비와 콘텐츠 산업이 불러올 경제적 효과를 수치화하면, 서비스 개시 후 10년 동안 생산유발액은 9조원, 부가가치 유발액은 6조3천억원이고 고용 창출 효과는 18만4천명에 이른다. 참여정부가 디지털 위성 방송을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선정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시청자들이 위성DMB를 즐기기까지는 풀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TU미디어콥은 5월 시험 방송을 거쳐 7월부터 서비스를 개시할 계획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SK텔레콤과 협의해 위성DMB용 단말기 개발을 마치고 양산 채비를 갖추고 있다. 국회는 지난 3월2일 방송법을 통과시키면서 위성DMB 도입에 필요한 법적 기틀을 마련했다. 시행령을 제정하고 사업자만 선정하면 서비스 도입에 필요한 사전 작업은 모두 마치게 된다.

일사천리로 추진되던 위성DMB 사업은 방송위원회라는 ‘암초’에 걸렸다. 시행령을 제정하고 사업자를 1차 선정해 정보통신부에 추천해야 할 방송위가 시행령 제정을 미루고 있는 것이다.

국회는 방송법을 개정하면서 디지털 방송 송출 방식을 규정하지 않고 방송위에 그 권한을 넘겨버렸다. 디지털 방송 송출 방식은 미국식이냐 유럽식이냐를 놓고 관계 당국과 방송사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짧은 시간 안에 결론이 나지 않을 전망이다. 또 위성DMB 사업과 관련해 지상파 DMB 방송사, 위성 방송, 케이블 TV 방송사의 반발이 예상보다 크다. 따라서 위성DMB 시행령을 따로 제정하지 않는다면, 방송법 시행령 일정에 따라 마냥 늦추어질 소지가 있다.

가장 큰 논란은 위성DMB 서비스를 중계할 이동통신 사업자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다. SK텔레콤은 2001년부터 준비한 만큼 오는 7월 서비스가 개시되면 곧바로 단말기를 출시하고 서비스에 들어갈 방침이다. SK텔레콤은 지난해 말 일본 MBCO와 함께 TU미디어콥을 설립했다. SK텔레콤은 2001년 9월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 위성 궤도 주파수 할당을 신청하면서 위성DMB 사업을 본격 추진했다. 지난해 말까지 쏟아 부은 투자 자금만 1천6백5억원. TU미디어콥은 앞으로 3천1백60억원을 더 투자해 위성DMB용 방송센터와 중계기(갭필러)를 설치하고 전문 인력을 충원할 계획이다.

TU미디어콥의 직원 70%는 SK텔레콤 출신이다. 업무 협조와 기술 협의가 긴밀히 이루어지고 있어 SK텔레콤이 가장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KTF와 LG텔레콤은 7월 서비스 개시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금부터 단말기 개발을 서두른다고 하더라도 7개월 늦게 전용 단말기가 출시된다. 통신 서비스 시장에서 선점 효과는 매우 크다. 박연일 KTF 사업전략팀장은 “SK텔레콤이 위성DMB 서비스를 6개월 가량 먼저 시작한다면 KTF와 LG텔레콤 가입자들이 SK텔레콤으로 대거 이동해 가입자 ‘쏠림 현상’이 심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국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SK텔레콤이 위성DMB 서비스를 먼저 시작한다면 SK텔레콤의 시장점유율은 55%에서 65%로 늘어난다(아래 도표 참조).
SK텔레콤은 수천억원을 들여 위성DMB 사업을 시작했으므로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는 시장 선점은 경쟁 업체들이 용인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기한 상무는 “위성DMB 방송을 추진한다고 하니까 KTF와 LG텔레콤은 코방귀를 꼈다. SK텔레콤이 의욕적으로 추진하지만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하다가 이제 수천억원을 들여 밥상을 차려 놓으니까 아무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숟가락만 놓겠다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류재영 정보통신부 위성DMB 담당 사무관은 “방송위를 통과한다면, 업체들이 서비스를 개시하겠다는 것을 막을 제도적 근거가 없다. 대신 정통부는 후발 주자들이 빨리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도록 기술 지원과 업무 협조를 아끼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박연일 KTF 팀장은 “공정 경쟁에 어긋나고 특혜 논란이 일고 있는 와중에 서비스 개시 시점을 늦추지 않아 발생하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정통부가 책임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미국은 DAB(Digital Audio Broadcasting) 방송을 이미 송출하고 있다. 곧 DMB로 옮겨갈 방침이다. 일본은 SK텔레콤과 도시바의 합작사인 MBCO가 주축이 되어 한국과 비슷한 시기에 전파를 송출한다. 중국·유럽·중남미도 일정에 다소 차이가 있지만 곧 위성DMB 서비스를 개시할 전망이다. 몇가지 부작용이 예상되더라도 서비스 개시를 서둘러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시장 선점 효과는 서비스 개시가 늦어질수록 그만큼 줄어든다.

한국은 CDMA 이동통신 서비스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해 휴대전화 단말기 세계 1위에 올랐다. 위성DMB는 CDMA와 비슷한 CDM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세계 최초로 위성DMB 방송을 개시한다면, 한국은 위성DBM 단말기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된다. 제 2의 CDMA 신화가 눈앞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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