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중, 북한내 군사 거점 쟁탈전 치열
  • 南文熙 기자 ()
  • 승인 1997.10.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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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중, 북한내 거점 확보 각축도 치열
한반도 주변 열강의 북한 진출 전략에 근본적 변화가 일고 있다. 미국의 북한 접근 전략이 크게 수정되면서 일본이 새로운 파트너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8월21일 북경에서 열린 북·일 회담을 계기로 시작된 일본의 떠오름은 미국과 중국 양자 구도로 진행되어 온 한반도 질서 재편에 새로운 변수가 되었다.

<시사저널>이 최근 확인한 바에 따르면, 당시 북경회담을 주선한 것은 미국의 고위 외교 채널이었다. 그 배경은 미국이 단독으로 북한에 진출하려던 전략에서 일본과 동반 진출하는 전략으로 수정한 데서 기인한 것이다. 북한 진출에 절호의 기회를 맞은 일본은 북한내 특정 지역을 자국의 세력 거점으로 만듦으로써, 21세기 일본의 생존 전략인 해양 대국화를 완성하기 위한 시동을 걸고자 한다. 중국 역시 북한내 거점 확보 전략을 노골화하고 있어 북한이 새로운 국제 분쟁 지역이 될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최근 북한 진출에서 나타나고 있는 미국과 일본의 새로운 제휴 관계는, 9월24일 최종 타결된 ‘미·일 신안보조약’의 한반도판이라고 부를 만하다. 그 변화의 바람은 지난 7월 중순 워싱턴에서부터 일기 시작했다. 7월 중순 워싱턴에서는 북한 정책에 관여하는 미국 고위 실무자들의 비공개 회의가 열렸다. `‘워싱턴 한반도 고위 전략 회의’라고 불릴 수 있는 이 회의에는, 국무부·국방부·중앙정보국(CIA)·국방정보국(DIA)·의회·학계 등 그동안 공식·비공식 라인에서 북한 정책에 관여해 온 고위 관계자들이 모두 참여했다.

워싱턴 고위 전략 회의는 미국과 북한 관계가 본격화하기 시작하면서 개설된 것으로, 미국의 한반도·북한 정책의 실질적 최고 결정 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회의는 3개월 단위로 열려 왔다. 지난해에는 3·6·9·12월 네 차례 열렸고, 올해는 이례적으로 2월에 열렸다. 이 회의에서는 각 기관·개인·단체의 분기별 활동 성과를 종합 토론하고, 다음 단계의 활동 목표 및 방향, 서로의 역할 분담을 결정한다.
미국, 중국의 4자회담 ‘무임 승차’에 거부감

워싱턴의 한 고위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 7월 회의 분위기는 전례 없을 정도로 격렬했다고 한다. 지난해에서 올해 상반기까지 진행된 미국의 북한 진출 정책이 예상치 못했던 부작용을 파생하면서, 전략의 실효성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특히 4자 회담을 위한 예비 회담이 8월5일로 예정되고 이 회의에 중국이 참여하게 된 `‘불상사’에 대해 집중 성토가 있었다고 한다. 그동안 이 문제를 다루어 온 국무부와 국방정보국 관계자들에 대한 책임 추궁도 있었다.

이같은 사태가 벌어진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4자 회담에 대해 미국이 한국 다음으로 적극적인 것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겉모습일 뿐이다. 실제로 미국의 한반도 정책 실무를 담당하는 국무부와 국방부 인사들은 중국을 4자 회담 테이블에 끌어들이는 것에 대단한 거부감을 보여 왔다. 북한과 대화 채널을 개설하기 위해 미국은 94년부터 3년 동안 온갖 공을 들여 왔다. 그런데 중국이 어느날 갑자기 `‘입장료’도 없이 끼여들게 됨으로써 `‘죽 쒀서 개 준 꼴’이 되어 버린 것이다.

미국은 한국이 중국을 끌어들이기 위해 그토록 노력해온 것은 미국을 불신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래서 그동안 미국의 북한 진출 정책이 한국의 불만을 지나치게 키워 놓았다는 사실이 지난번 회의에서 쟁점이 되었다.
미국이 한국과의 파트너십 포기한 까닭

불안감을 느낀 것은 한국만이 아니다. 북한은 북한대로 부담을 느껴 왔다. 대표적인 것이 평양 연락사무소 개설 문제이다. 실무 절차까지 다 끝났다는 연락사무소가 아직도 개설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북한은 초기에는 미국 연락사무소 개설을 김정일의 치적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앞으로 미국의 북한 거점(post)이 될 연락사무소를 북한의 안방인 평양에 내준다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일방적인 북한 접근 전략이 중국을 자극해, 중국이 러시아와 새로운 파트너십을 건설하게 되었고, 북한과의 군사 동맹을 강화하게 만든 것도 반성의 초점이 되었다. 특히 올해 출범한 클린턴 2기 행정부는 1기 행정부와 달리, 중국과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고 새로운 협력 관계를 모색한다는 이른바 `‘건설적 개입 전략’을 공식화하고 있다. 미·중 간의 새로운 분위기도 감안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워싱턴 소식통에 따르면, 논쟁은 주로 중앙정보국과 국방정보국 사이에 벌어졌다고 한다. 현재 미국의 북한 정책은 주로 국방부 산하 국방정보국이 담당하고 있다. 미국이 북한 문제를 군사 문제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국방정보국은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를 무너뜨려 자본주의 시장 경제 질서로 전환시키겠다’는 붕괴 시나리오를 정책의 기조로 삼고 있다. 중앙정보국측 주장은 국방정보국의 이같은 강경 일변도 정책이 앞서의 부작용을 낳게 했다는 것이다. 중앙정보국은 북한의 지정학적·전략적 위치를 중시한다. 따라서 더 정치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을 강조한다.

며칠을 두고 전개된 난상 토론의 결론은 이렇다. 그동안 미국의 북한 정책이 몇몇 성과에도 불구하고 일부 부작용을 초래한 까닭은 미국이 혼자 모든 것을 다 하려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미국과 호흡을 맞출 파트너를 선택해 동반 진출하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

그 파트너는 누구인가. 바로 일본이다. 왜 한국이 아니고 일본인가. 김영삼 정부 이래 북한 정책을 둘러싼 한·미간 갈등사가 그 해답이다. 미국은 김영삼 정권 초기부터 한국 정부에 대해 북한에 동반 진출하자고 종용해온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같은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북한의 김영남 외교부장도 얼마전 `‘다음 정권이라면 몰라도 현정권과는 대화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사실 미국의 북한 실무자들 역시 비슷한 심정이다.
북·일 수교 회담, 미국이 성사시켜

서울의 외교 소식통은 최근 “북한 프로젝트를 둘러싸고 한국 정부 또는 안기부와 미국 기관 사이에는 의미 있는 어떠한 접촉도 없다”라고 단언했다. 사실 미국의 북한 실무자들은 지난해 한·미간 갈등이 계속 드러날 때 `‘한국이 미국의 속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계속 제동을 걸면, 미국은 일본과 손잡고 한반도 현안을 풀어 나갈 수밖에 없다’고 수차례 경고했다고 한다. 이제 그 경고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워싱턴 7월 회의는 바로 미국이 북한·한반도 정책에서 한국과의 파트너십을 포기하고, 일본을 새로운 협력자로 끌어들인 분수령이 되었던 것이다.

<시사저널>은 일본이 떠오르는 계기가 된 지난 8월21일 북·일 수교 회담의 막전 막후에서 미국의 고위 외교 채널이 결정적인 중재 역할을 한 사실을 최근 확인했다. 이름 밝히기를 거부한 해외의 한 정보 소식통이 밝힌 진상은 이렇다. 지난 7월 워싱턴 회의가 끝난 직후 미국의 고위 외교 사절단이 도쿄를 거쳐 평양에 들어간 적이 있다.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 미국 대사와 샘넌 전 상원 군사위원장이다. 두 사람은 8월20일 도쿄에서 미국 공군 특별기를 타고 평양을 방문했다가 8월22일 한국에 들러 평양 방문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두 사람의 북한 방문은 클린턴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런 비중에 비해 그들이 서울에서 발표한 방북 결과에는 특별히 새로운 내용이 없었다.

이와 관련해 해외의 소식통은 “그것은 그들의 진짜 방북 목적이 남북간 현안이 아니라 북·일간 현안을 중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레이니 전 대사와 샘넌 위원장은 7월 워싱턴 회의와 관련한 미국 국무부의 메시지를 휴대하고, 도쿄에 들러 일본 외교 당국과 북·일 교섭 재개에 대해 사전에 조율했다. 평양에서도 역시 조정을 거친 다음, 일본에서 또다시 재조정하는 실질적 중재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중재에 따라 북한은 김정일이, 일본은 하시모토 총리가 직접 결단을 내림으로써 8·21 북경 수교 회담이 열렸다는 것이다.

8월10일에서 14일까지 미국의 또 다른 고위 외교 채널이 똑같은 경로와 방식으로 평양에 들어갔다. 하원 정보위원장인 포터 고스 의원(공화당·플로리다 주)을 단장으로, 민주·공화 양당 하원정보위 소속 의원 6명으로 이루어진 방북단이다. 이들 역시 미국 군용기 편으로 8월10일 도쿄를 출발해, 12일까지 평양에 체류하고 13,14일 서울을 방문했다. 방문 목적은 레이니·샘넌과 같은 것으로, 북·일 회담을 위해 막바지로 조율하는 것이었다. 해외 소식통은 “이들의 순방 외교는 워싱턴·도쿄·평양을 연결한 한편의 외교 드라마였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거듭된 중재 끝에 8월21일 북경에서 열린 북·일 수교 회담은 현안으로 제시된 일본인 처 고향 방문 및 북·일 수교 회담 본회담 조속 개최라는 극적인 합의를 이루어냈다. 당시로서는 대단히 놀랄 만한 사건이었지만, 실제로는 예정된 순서였다.

북한 문제에 관한 한 일본은 카멜레온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수교 자금과 매년 3백만t 이상 남아도는 쌀 등을 활용해 다양한 정책을 펼 수 있는 나라가 일본이다. 따라서 일본이 무엇부터 시작할지, 또 어느 방향으로 선회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우선 일본은 `‘일본 인맥’을 북한에 심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유의해 보아야 할 것이 북·일 간에 최근 구체적 합의에 도달한 일본인 처 고향 방문 문제이다. 북한내 1천8백여 명(그 중 절반은 이미 사망했다고 함)에 이른다는 일본인 처의 고향 방문이 계속 이어질 경우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일본의 북한 인맥, 또는 일본과 북한 간의 직접적인 메시지 전달 통로가 될 수 있으리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중국이 북한에 살고 있는 화교들을 북한에 개입할 수단으로 유효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고, 또 한국이 중국의 조선족을 예비군으로 가지고 있는 것과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은 그동안 마땅한 북한 채널이 없어 고심해 왔다. 조총련이 그 역할을 담당해 왔으나, 일본은 조총련을 친일본 세력으로 보지 않는다. 따라서 지난해부터 조총련이 주선하는 정당간 교섭 창구를 폐쇄하고 정부간 교섭으로 북한 채널을 일원화한 것도 바로 이런 점이 배경에 깔려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와중에 일본인 처 고향 방문 문제가 등장한 것은 눈여겨 보아야 할 대목이다.

북·일간 수교 회담 본회담 타결은 과거 한·일 교섭 사례에서 보듯 상당한 기간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관심의 초점은 일본이 수교 협상이라는 과정을 유지하면서, 단기적으로 획득하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북한 전략이 일본을 앞세우는 형태로 전환한 것을 감안할 때, 일본의 연락사무소가 먼저 진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일본의 단기적 목표 중 아직 부각되고 있지 않은 것이 북한에 지역 거점을 확보하는 문제이다. 일본이 수교 교섭의 반대 급부로 북한내 특정 지역을 일본의 세력 거점화할 가능성이 매우 높고, 북한은 북한대로 최근 일정 지역을 외국에 위탁해 대리 개발하는 전략을 일부 흘리고 있는데, 이 점에서 양자의 이해가 일치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첫 번째로 지목되는 곳이 원산이다. 최근 국내 한반도 전문가들 사이에 원산 문제가 떠오른 계기가 있었다. 지난 7월 말∼ 8월 초 일본 내각조사실 조사팀이 극비리에 원산 지역을 상세히 조사했다는 정보가 입수된 것이다. 이 조사는 극도의 보안 속에 이루어졌고, 따라서 겉으로는 내각조사실 명의가 아니었다. 그러나 내각조사실의 자금과 계획에 의해 추진된 것이 분명하다고 한다.

내각조사실은 일본의 대표적인 국가 정보 조직이다. 이 조직은 웬만해서는 직접 표면에 나서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난해 김정일의 건강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을 때, NHK에 자금을 지원해, 김정일을 촬영한 비디오 테이프를 정밀 분석하는 등 중대 사안에 대해서는 직접 나서는 경우가 종종 있다. 따라서 내각조사실이 직접 원산을 조사했다는 것은 이 문제가 일본의 북한 정책에서 중대 사안으로 떠올랐음을 반증한다.

일본이 원산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역사·경제·문화·외교안보 차원 등 수없이 많다. 일제 시대 원산은 한반도내 일본의 대표적인 공업·상업 거점 도시였다. 미쓰비시·미쓰이 등 일본 굴지의 재벌 회사들이 원산에서 현지 공장을 운영했고, 현재도 니가타 항과의 사이에 만경봉호가 운항되고 있는, 북·일간 해상 교통로의 중심 항구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일본, 원산 쟁탈전?

외교안보 측면에서도 원산은 일본의 모든 도시와 직접 연결이 가능하다. 따라서 다른 세력이 원산을 장악하게 될 경우 일본의 안보는 위협받게 되고, 반대로 일본이 원산을 장악할 경우는 대륙으로 통하는 진출로를 확보하게 된다. 현재 원산에 대해서는 미국도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소식통에 따르면, 앞으로 미국이 오키나와 주둔 미군 중 일부를 북한으로 옮길 경우 원산을 최적지로 보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일본은 미국과도 미묘한 선점 경쟁을 해야 할 처지이다.

일본이 원산을 장악하게 될 경우 일본은 현재의 직선 기선에 따른 2백 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을 발판으로 한 해양 세력권(파워 존)을 한반도 쪽으로 훨씬 전진시키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 경우 북으로는 북방 열도에서 시작해 원산을 중간 기착지로 하고, 다시 남으로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일으키는 조어도(센카쿠 열도)를 연결하는 광대한 세력권을 형성하는 것이다. 한국과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독도는 자연히 이 속에 파묻히게 된다.

바로 이 점이 일본이 북한 진출을 통해 단기적으로 기대하는 최대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즉 일본이 21세기 생존전략으로 설정해 놓은 해양 대국화는 원산을 확보하는가 못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은 이처럼 자국 방어망을 북한 지역에까지 확대함으로써 앞으로 예상되는 중국과의 패권 다툼에서 유리한 고지를 장악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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