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음악에도 ‘악마의 메시지’ 판친다
  • 成宇濟 기자 ()
  • 승인 1997.09.0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정 관념 파괴하는 데스 메탈 현주소
‘악마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면서 데스 메탈에 대한 관심 또한 커지고 있다. 악마주의가 한국 젊은이 사이에 새로운 유행으로 떠오른 터에 검찰의 단속은 이를 부채질했다. 지난 7월 검찰이 미국의 대표적 데스 메탈 그룹 카니발 콥스의 음반을 불법으로 들여온 음반업자를 구속한 데 이어, ‘악마주의 그룹’의 음반 유통에 대한 수사를 확대하겠다고 공표하자 국내 팝계가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언더그라운드 중의 언더그라운드’로 불리는 음악의 한 장르가 한국에서는 음악 외적인 이유로 급작스레 땅 위로 솟아오른 셈이다.

대중 음악 장르의 기원을 정확하게 따질 수는 없으나(음악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평론가들이기 때문에), 팝계에서는 데스 메탈이 80년대 초 영국의 그룹 베놈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본다. 베놈의 뒤를 이어 미국과 스웨덴·핀란드 등 북유럽에서 밴드들이 속속 탄생했고, 80년대 중반 메틀리카를 거쳐 80년대 말 데스·오비추어리·세풀투라·슬레이어·디어사이드 같은 밴드가 등장하면서 데스 메탈은 록의 어엿한 지류로 자리잡았다.

50년대 초반에 태생한 록 음악은 새로운 시대에 대응하는 새로운 장르로 가지 치기를 하면서 끊임없이 영역을 확대해 왔다. 데스 메탈은 록 음악의 수많은 장르 가운데서도 그 형식과 내용이 가장 극단적이다. 전기 기타와 드럼을 증폭한 무겁고 강력한 사운드의 헤비 메탈을 더 강하게 밀고 들어간 장르가 스래시 메탈이라면, 데스 메탈은 스래시 메탈보다 더 극단으로 치달은 음악이다. 현존하는 대중 음악 장르 가운데 가장 무겁고 빠른, 그래서 그 형식이 ‘갈 데까지 간’음악인 것이다.

저음 위주로 강하고 빠르게 연주되는 데스 메탈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보컬이다. 데스 메탈이 처음 등장했을 때 웬만한 록 애호가들도 당혹스러워했던 이유는 공포 영화의 괴물 소리 같은 무시무시한 음성이 들려 왔기 때문이다. 이같은 극단적인 형식 때문에 데스 메탈은 대중의 호응을 얻는 데 별로 성공하지 못했고, 데스 메탈 밴드들도‘자기 표현’에만 만족할 뿐 상업적 성공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다만, 메이저 음반사들이 상품이 될 만한 밴드를 찾아내 앨범을 제작했고, 여기에 힘입어 극단적인 충격에서 즐거움을 찾는 마니아들이 생겨났다.

영어권에 사는 사람들도 데스 메탈 가사는 2~3개 단어도 알아듣기 힘들다. 위악적이고 기괴한 목소리일 뿐 아니라, 속도가 빨라 가사가 거의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로 적힌 가사를 읽어보면, 음악 형식 못지 않게 그 내용도 공격적이고 파괴적이다. 죽음·살인·전쟁·방화·섹스·마약 등 인간 내부에 의식·무의식으로 잠재해 있는 파괴 본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들에서 그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리는 음악 장르인 셈이다.
악마주의는 데스 메탈의 부분적 소재일 뿐

데스 메탈의 파괴적인 성향은 음악의 형식과 내용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데스 메탈 밴드들의 음반 재킷은 온통 피로 물들어 있다. 어떤 그룹의 공연에서는 연주자가 자기 팔뚝을 물어뜯으면서 관객을 흥분시키기도 했다. 그룹 카니발 콥스는 한 음악 전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사방에 엉긴 핏덩어리를 표현하고자 궁리했다. 단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고 싶었다. 우리는 잔인한 모든 것을 원했다.”

장르 자체가 폭력성과 기괴함으로 가득 차 있으나, 데스 메탈이 곧 악마주의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악마주의는 데스 메탈을 연주하는 수많은 그룹 가운데 일부가 사용하는 소재일 뿐이다. “악마주의를 표방하는 밴드는 고딕 스타일을 내세우는 북유럽에만 있을 뿐 미국에는 거의 없다. 북유럽 밴드들은 민속 종교와 결합해 중세풍의 음산한 분위기를 풍긴다. 게다가 악마주의를 내세우는 그룹은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그같은 사실을 분명히 밝힌다.” 3년 전 한국에서 처음으로 데스 메탈의 성향을 분석했던 대중 음악 평론가 이 원씨의 말이다.

악마주의를 표방하든 그밖의 다른 폭력을 노래하든, 중요한 사실은 영화나 소설처럼 데스 메탈의 효용도 억눌린 감정을 푸는 차원에서 끝난다는 점이다. 팝계에서는 ‘데스 메탈의 내용은 상상의 소산일 뿐 사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만일 폭력을 행동 강령으로 내세워 대중을 선동하고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났다면, 데스 메탈 뮤지션들은 지금쯤 모두 감옥에 가 있어야 할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 데스 메탈이 뒤늦게 화제가 되고 있으나, 본고장에서는 흥분이 거의 가라앉았다. 록 음악의 언더그라운드 장르로서 소수 마니아들이 즐기는 음악으로 기억되고 있을 뿐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