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하는 관광 한국, 왜 이러나
  • 장영희 기자 (view@sisapress.com)
  • 승인 1996.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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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여행 요금, 단조로운 상품으로 외국인 여행객 급감…가격 낮추고 ‘五感’ 만족시켜야
 
여름 휴가 절정기인 7월 말과 8월 중순만 되면 동해안·경주·부산·제주도 등 전국의 관광지는 북새통을 이룬다. 천신만고 끝에 항공권을 구해 방을 잡거나 교통 체증과 싸우며 피서지에 도착해도 관광객을 기다리는 것은 바가지 요금과 불친절이다.

이같은 상황이 빚어지는 것은 8월 성수기 관광량이 2월 비수기의 4.4배나 되는 등

관광객이 한꺼번에 몰리는 탓이 적지 않지만, 휴가지로서의 한국은 평소에도 신통치 않다. 여행 경비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지만 관광지에서 받는 만족도는 도리어 낮아졌다는 불만이 많은 것이다.

사람들이 해외 관광지로 눈을 돌리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방콕·사이판·괌에 가는 것이 제주도를 여행하는 것과 경비 면에서 큰 차이가 없는 데다가 그곳에서는 편안함을 제공받기 때문이다. 한국관광공사(관광공사)의 한 관계자는 자기에게도 이번 여름 휴가가 휴식이 없는 고통의 시간이었다며 내국인이 외면하는 관광지를 외국인이 찾아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올해 관광 수지 적자 14억달러 예상

실제로 여행사들의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일컫는 이른바 인바운드에 적신호가 켜졌다. 올들어 6월 말까지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7% 줄었다. 전체 입국자의 44%를 차지했던 일본인 관광객은 9.1%나 줄었다. 이같은 감소 추세는 7월 들어 한층 가속화하고 있어 관광업계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인바운드 붕괴론’마저 고개를 들고 있다.

 
85∼90년 외국인 관광객 증가율은 연평균 15.7%에 달했고, 벌어들인 외화 수입은 35억3천만달러나 되었다. 90∼95년은 연평균 증가율이 둔화했지만 절대 규모 자체가 줄어들기는 올해가 처음이다. 관광 수지는 지난해 3억2천만달러 적자를 기록했으며, 올해는 이미 상반기에 7억달러를 넘어서 적자 규모가 14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관광 수지 적자의 주범은 89년 여행 자유화 후 봇물처럼 터진 내국인의 해외 관광 러시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외국인 유치 부진도 큰 요인이다. 인바운드가 침체한 직접 원인은 한국 관광상품의 가격 경쟁력이 최근 1∼2년 사이에 급격히 추락한 탓이다. 관광공사가 최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영국 여행사 오리엔탈매직이 판매하는 5박6일짜리 서울 관광상품은 1천1백파운드(약 1백40만원)로 6백68파운드인 방콕 관광상품의 거의 2배나 된다. 싱가포르(9백30파운드)·콸라룸푸르(8백12파운드)·마닐라(9백69파운드)·자카르타(9백27파운드) 같은 도시의 7박8일짜리 상품보다도 비싸다. 미국에서 동양권 상품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TBI 투어스가 판매하는 상품의 경우에도 한국 상품은 2박3일짜리가 3백75달러로 같은 기간의 대만·콸라룸푸르 상품보다 비싸다.

한국 상품 가격이 영국·미국에서 거리가 비슷한 아시아권의 다른 나라 상품과 가격 차가 크게 나는 것은 여행 요금에서 비중이 높은 항공 요금과 호텔 요금이 전반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홍콩의 호텔 경영 컨설팅 업체인 PKF사가 최근 발표한 ‘95년 아시아 지역 13개 도시 특급 호텔 경영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에 있는 특급 호텔 평균 객실 요금은 홍콩·북경·마닐라·방콕·발리보다 10∼100%가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관광 비용은 방콕보다 2.82배가 비싸고 싱가포르·홍콩·대만보다 1.33∼2.59배가 더 든다. 한진관광 김윤구 이사는 “과거 싱가포르와 대만이 호텔 요금을 대폭 올렸다가 일본인 관광객이 격감하는 바람에 몇년 고생했던 전철을 우리가 밟는 것 같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지난 7월3일 한국은 민관 합동으로 구성한 대규모 판촉단을 일본에 급파했다. 이 자리에서 일본교통공사(JTB) 등 일본 유력 여행사들, 그리고 관광 전문 언론인들의 반응은 단순했다. 좀더 경쟁력 있는 상품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판촉단 일원이었던 한 여행사 임원은 “한국을 혼내주자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실제 히로히토 전 일왕 탄생일과 노동절·어린이날이 들어 있는 4월27일부터 5월6일까지의 ‘골드 위크’에 한국 여행사들은 일본인 관광객을 모으는 데 실패했다. 지난해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한국 관광산업이 위기를 넘기기 위해서는 일단 가격 떨어뜨리기부터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 대한여행사 전규섭 상무의 진단이다. 객실료·음식값·전화요금 등을 더한 한국의 호텔 하루 체류비(평균 3백95달러)는세계 7위, 식사비(한 차례 59달러)는 세계 3위인데 이 기록으로는 도저히 손님을 끌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격을 낮추는 것만으로는 한국의 관광산업이 다시 떠오르지 못한다. 세방여행사 이상현 사장은 외국인 관광객 유치가 부진한 원인을 관광 기반 시설이 매우 열악하고 흥미를 유발하는 관광 상품이 없는 데서 오는 구조적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선 관광업계를 고무하는 정부 지원이 필요하며, 관광 ·레저 시설 미비를 빠른 시간 내에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화 ‘빨아들이는’ 컨벤션센터 건설 시급

 
관광산업은 서울올림픽이 끝난 직후 사치성·소비성 사업으로 분류되어 금융 지원과 조세 혜택이 거의 끊긴 상태다. 관광 개발을 환경 파괴와 등치시키는 시각이 많아 시설 허가 자체도 매우 까다로워지고, 수익이 적어 시설을 개발하려는 사람도 매우 적어졌다. 4계절형 복합관광단지 개발이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되지만 이런 대규모 사업은 초기에 조 단위의 엄청난 투자비가 든다. 때문에 재벌이 아니고서는 엄두를 내기가 어렵다. 가격 경쟁력 추락의 주범 격인 특급 관광 호텔도 마찬가지다. 5백실을 기준으로 해도 건축비와 땅값을 감안하면 최소 4천억∼5천억원이 든다.

지난 6월 관광진흥 10개년 계획이 나오면서 관광산업에 대한 정부의 시각은 소비성 산업에서 흥국 산업으로 변했다. 관광업계는 한국 관광의 침몰을 부른 근본 원인을 관광산업을 사치성·소비성 산업으로 평가절하해 89년부터 온갖 규제로 숨통을 죈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관광연구원 최승담 관광정책연구실장은 “관광은 인간의 기본권이다. 외국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선 내국인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민간업계에 유인을 줘 관광 기반 투자를 과감히 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투자 여건 미비가 관광 레저 시설 공급 부족을 낳아, 결국 급증하는 국민 관광 수요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민간 기업의 투자가 활성화해도 정부가 할 일은 많다. 인구 밀집 지역이 아닌 곳에 설치해 수익성이 떨어지는 캐빈·캠핑장 같은 환경 친화적 공익 시설은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 저소득층 관광 소외자들을 위한 프랑스의 가족 휴양촌, 일본의 국민 휴가촌 같은 값싼 시설들은 정부의 절대적인 지원에 의해 만들어진 예이다.

5천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전문 컨벤션 시설이 전무한 것도 관광 진흥에 장애 요인이 되고 있다. 전문 컨벤션 시설은 이벤트·전시회·국제 회의를 열고 부대 시설로 호텔과 쇼핑몰 등을 갖추면 외화를 벌어들이는 데 일등 공신이 될 수 있다. 싱가포르는 1만2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인터내셔널 컨벤션 앤드 엑지비션 센터’를 만들어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볼거리·먹거리·놀거리·살거리 두루 갖춰야


관광 기반 시설을 확충한다고 해서 관광 진흥이 곧 오지는 않는다. 기반 시설은 관광 진흥을 담아낼 그릇 (사회간접자본)일 뿐이다. 한국의 모든 것을 상품화할 수 있어야 한다. 관광 진흥을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나라들은 자기네 역사와 민족성의 결정체인 문화 유산을 관광 자원화하고, 세계적인 축제로 발전시켜 유일성과 특이성을 강조하고 있다.

외국인들이 관광 한국의 문제점으로 지적한 것은 한국의 관광 자원이 고궁·사찰·산에 바탕을 둔 단조로운 소재에 국한되어 있고, 축제·문화 공연·음식 등 사람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상품 개발이 미흡하다는 점이다. 이런 지적은 지난해 18개 인바운드 여행사가 판 인기 상품을 보면 잘 드러난다. 1박2일 상품은 경복궁·국립중앙박물관·민속박물관·롯데월드를 돌아보는 서울 관광이었고, 2박3일의 경우도 민속촌·통일전망대·자연농원으로 다소 다원화되었을 뿐 서울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3박을 넘는 상품은 경주·부산·설악산·제주 등을 연계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외국인들은 서울 근교 상품을 더 다양화하고, 강원도와 백제문화권, 전라도 지역의 상품화가 절실하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이 지역들은 숙박 시설과 교통이 매우 열악해 뛰어난 상품성에도 불구하고 관광객을 유치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서울동방관광 한명석 회장은, 관광은 볼거리(행사·축제) 먹거리(식도락) 놀거리(오락) 살거리(쇼핑)가 두루 충족되어야 관광객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제가 있는 여행> 등 여행 관련 글을 쓰고 있는 여행 작가 송일봉씨는, 자신은 천혜의 자원이 없다는 비판에 반대한다며 단지 관광 상품으로 개발하는 역량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나이아가라 호수 시가 ‘버나드 쇼 연극제’등 다양한 공연물을 엮어 하루 돌아보면 그만인 나이아가라 폭포 관람객을 사흘 이상 잡아놓고 있는 것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20㎞ 떨어진 작은 도시 오번도르프가 <고요한 밤 거룩한밤>이라는 노래가 처음 불린 곳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로 엄청난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 좋은 예라는 것이다.

 
세계 유명 관광국의 사정을 보면 이 지적이 설득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탈리아·프랑스·스페인 같은 나라들은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 풍부한 역사 유물, 현대화한 시설을 두루 갖추어 관광 선진국으로 성장한 복 많은 나라지만, 일본·미국·싱가포르·서인도 제도같이 자원이 빈약하거나 역사가 일천한 경우도 관광 대국이 되었다. 이들 나라는 인위적으로 자원을 개발하고 평범한 사실에도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수백억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반면 중동 국가들과 캄보디아, 아프리카와 중남미 일부 국가, 필리핀 등은 관광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편견, 역사·문화 자원 파괴, 군사적 이유 등으로 자원이 풍부하면서도 관광 대국이 되는 데 실패했다.

관광산업은 해외 마케팅 능력과 국내 수용 태세 선진화를 요하는 고도의 서비스산업이다. 여행사 팜플렛의 관광 안내 외에도 밝고 안전한 국가 이미지, 안정된 물가, 편리한 교통 접근성과 잘 정비된 안내 체계, 호의적이고 친절한 국민성과 훈련된 관광 인력, 청정한 자연이 그 나라 관광산업의 경쟁력을 결정한다. 한국관광연구원 김철용 원장은 한국이 이런 종합 평점에서 모두 수준 이하라고 지적했다. 정부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 열거만 하지 말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찾아 실천할 때 침몰하는 한국 관광 붐이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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