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의 철강왕 박태준, 돌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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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6.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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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모시기’ 경쟁, 대선 정국 앞두고 주가 상승…마지막 승부수 던질 가능성
‘박태준을 잡아라!’ 정치권에 때아닌 ‘박태준 모셔오기 경쟁’이 소리 없이 치열하다. 4년 전 정계를 떠나 이국 땅에 칩거하는 박태준씨를 끌어들이기 위해 여야가 발벗고 나설 만큼 그는 ‘살아 있는 신화’인가. 과연 박씨는 97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 재진입할 것인가. 점차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 가던 박씨가 대선 정국의 길목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오고 있다.

김포 공항에서 나리타 공항을 거쳐 박씨가 사는 시미나토 구 시바공원 근처의 14평짜리 월세 아파트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대략 5시간. 그러나 박씨에게는 그 거리가 물리적으로 계산할 수 없으리만큼 멀다. 현해탄을 수시로 넘나들고 왕년의 전우들을 스스럼없이 만나기에는 아직도 정치 여건이 여의치 않다. 지금도 그에게는 보이지 않는 눈이 뒤쫓고 있다.

박씨가 포철 명예회장 직을 포함해 모든 공직을 버리고 사실상 망명길에 오른 것은 현 정권이 출범한 직후인 93년 3월. 이후 현재까지 겨우 세번, 그것도 잠깐 귀국했었다. 모두 어머니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한국을 다녀간 것은 모친상 2주기인 금년 10월13일. 박씨가 귀국하자 최형우 고문 등 현 정권의 실세를 비롯한 많은 정치인이 박씨를 만나려고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철강왕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최고문이 그와 단독 면담을 한 것을 두고 정가에는 YS의 메시지가 전달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돌기도 했다.

‘ 밀짚 모자 대신 중절모를 쓴 박태공’. 일본 도쿄에서 외부 접촉을 철저히 차단한 채 은둔 생활을 하는 박태준씨를 두고 하는 말이다. 도쿄 번화가인 신주쿠나 아카사카 거리를 부인과 함께 걸어가는 모습이 교포들의 눈에 드물게 띌 뿐이다. 어렵사리 알아낸 전화 번호를 누르면 부인인 듯한 여인이 다소 퉁명스럽게 ‘박회장님은 지금 외출 중’이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는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어김 없이 전화 번호가 바뀐다. 벌써 여러 차례 전화 번호가 바뀌었다.

세인의 눈길을 피해 지내는 박씨가 가끔 모습을 드러내는 곳은 아카사카에 있는 설렁탕집 ‘일용’. 1주일에 한번꼴로 트레이드 마크인 검은색 중절모를 쓰고 정장 차림으로 부인과 함께 이곳을 찾는다. 최근 박씨는 이 음식점에서 일본에 잠시 머무르고 있는 한 야당 중진을 만났다. 그동안 꾹꾹 눌러 참아온 설움이 고국의 정치인을 만나자 한꺼번에 터진 것일까. 박씨는 거의 2시간에 걸쳐 정계 은퇴 뒤 겪은 온갖 고초, 예컨대 생활비가 떨어져 일본 지인들의 도움을 받고, 수술비가 없어 쩔쩔맸던 얘기를 털어놓았다고 한다.

불운의 철강왕, 지금은 복지부동이 상책

박씨는 자기가 힘이 있을 때 몰려들어 아쉬운 소리를 하던 사람들이 현 정권으로부터 탄압을 받자 우수수 떨어져 나가더라면서 정치의 무상함을 한탄했다고 한다. 박씨는 또 15대 총선 때 자기와 가깝게 지내던 출마자들에게 격려 편지를 띄운 것이 문제가 된 데 대해 “직접 못가는 대신 격려 편지 좀 보낸 것이 뭐가 잘못이냐”라고 반문했다. 박씨는 15대 총선 직전인 3월 말께 귀국해 10여 일 동안 총선 현장을 돌며 깊은 인연을 맺었거나 자기가 어려울 때 찾아준 여야 후보들을 지원할 계획을 세웠다가 돌연 취소했었다.

그는 자신의 30억 횡령 혐의에 대해 “내가 그 돈을 챙겼겠는가, 주변 사람들에게 다 썼지…”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고 한다. 박씨와 모처럼 회포를 푼 이 야당 정치인은 10월30일 기자에게 “한때 이 나라를 움직인 거물 정객이 이국 땅에서 쪼들리며 쓸쓸한 말년을 보내는 것이 마음 아팠다”라고 말했다.

박씨가 속마음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은 10월23일 도쿄 중앙대에서 있었던 고(故) 이재형 국회의장 흉상 제막식. 그는 강영훈 대한적십자사 총재와 고흥문 전 국회부의장, 김태일 주일대사 등 국내외 인사가 많이 참석한 이 날 제막식에 모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묵묵히 제막식을 지켜본 박씨는 행사가 끝난 뒤 한 지인에게 4년 만에 처음으로 공식 자리에 참석한 소감과 그간 심경을 털어놓았다. 그는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일본에 오게 되었으며, 이국 땅에 혼자 떨어져 있으니 마음이 편해서 좋기는 하지만 우리 경제 사정이 어렵다니 큰일이라고 걱정했다.

박고문이 외부, 특히 국내 언론을 피하기로 굳게 마음먹은 계기는 지난 3월 현 정권에 대한 불만스런 감정이 본인 의사와 전혀 무관하게 보도되었기 때문이다. 박고문은 평소 가깝게 지내던 도쿄의 한 언론인에게 이런저런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시름을 달래곤 했는데, 그 언론인이 대화 내용을 허락도 없이 책으로 내버린 것이다. 국내 정가가 한바탕 발칵 뒤집혔음은 물론이다.

사실 박씨로서는 국내 정치가 안개에 싸여 있는 현 시점에서 바짝 엎드려 있는 것이 상책이다. 현 정권의 위세가 여전히 등등한 판에 특정 정파에 발을 들여놓거나 말을 함부로 했다가 재기 불능의 화를 입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3공 때부터 여권에 몸담아 온 그는 권력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박고문이 철두철미하게 은둔 생활을 한 덕택에 그의 주가가 올라갔고, 그를 영입하려는 정치권의 몸도 한껏 달아올랐다.

정치권은 왜 그토록 박태준을 탐내는가. 사실 박씨는 뚜렷한 지역 기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조직이나 자금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박씨에게는 현 정권으로부터 박해 받은 구 여권의 최고위직 인사라는 그럴듯한 상품성이 있다. 또한 6공에서 현 정권으로 넘어오는 과도기에 집권당 최고위원을 지낸 만큼 92년 대선 자금과 같은 정권적 차원의 비밀을 알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 박씨가 여권을 향해 포문을 열 경우 태풍이 몰아칠 수도 있다. 여권 핵심부가 그에게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박씨의 최측근인 황경로 전 포철 회장에게 자리를 마련해 주는 등 무마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박씨가 보수 세력, 특히 재계에 인맥이 두텁다는 점도 야당을 끌어당기는 요인이다. 앞으로 정치권의 최대 화두는 남북 문제와 경제 문제이다. 포철왕, 3공 경제 개발의 견인차라는 이미지를 가진 박씨야말로 이런 경제 난국을 돌파할 이미지로 적격이라는 것이다.

이번 민단 50주년 행사에 참석하러 간 여야 정치인들 사이에서도 한바탕 ‘박태준 붐’이 일어났다. JP는 10월29일 자기가 박씨 쪽에 접촉을 시도했다가 거절 당했다는 동경발 기사를 팩시밀리로 받아본 뒤 크게 역정을 내며 말했다. “올 때부터 박태준씨를 만나러 오는 것처럼 집적대더니 그렇게 쓸 기사가 없어? 이런 터무니없는 기사를 쓴 기자가 누구야. 얼굴 좀 보자.”

한일의원연맹 회원 자격으로 동행한 국민회의 김봉호 의원이 10월27일 일행에서 혼자 빠져나갔을 때도 ‘혹시 박태준씨에게 DJ의 밀서를 전달하러 간 것 아니냐’는 의혹이 즉각 제기되었고, 김덕룡 장관을 둘러싸고서도, 그가 박씨를 만났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박태준 “감정 누르고 이성을 키우자”

정가 일각에서는 박씨가 지나치게 과대 포장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박정희 정권의 전폭 지원이 있었기에 포철 신화가 가능했으며,기업을 비민주적인 군대 방식으로 운영한 그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언론과 정치권이 합작해 만들어낸 허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박태준의 주가는 여전히 수그러들 줄 모른다.

박씨는 고희(70세)를 맞는 11월9일 한국을 떠난 이후 네번째로 귀국해 1주일 정도 서울에 머무를 예정이다. 일본에서 그를 만난 정석모 의원에 따르면, 그는 이번 귀국을 계기로 앞으로 자주 한국에 드나들 것이라고 한다. 주변 사람들 말로는, 박씨가 기회를 보아 어떤 형태로든 현실 무대에 복귀할 뜻이 강해 보인다고 한다.

박씨의 측근인 조용경씨는 “현재로서는 자기 의지대로 움직일 때가 아니므로 당분간 공개 활동은 어렵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여전히 주변 상황이 박고문의 의지를 억누르고 있지만, 때가 되면 공개 활동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얘기다. 10월28일 도쿄에서 박씨에게 JP의 ‘안부’를 전한 자민련 정석모 의원도 박씨가 경제 문제, 특히 중소기업이 일본에 어떻게 뿌리를 내리는지에 관심이 많더라고 전했다.

박씨가 자주 쓰는 말이 있다. ‘10년 후의 자기 모습을 그려라. 그러면 두려움이 사라지고 용기가 샘솟 듯 솟아 오를 것이다’‘감정을 누르고 이성을 키우자’. 지난해 신병을 치료하느라 미국에 체류하면서 하나님을 영접했다는 박씨는 ‘당신들은 나를 해치려 하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선하게 바꾸신다’는 창세기 50장 20절을 곧잘 외운다고 한다. 박씨는 자신의 10년 후를 내다보면서 새로운 승부수를 던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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