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생은 '바늘구멍 앞의 낙타'
  • 宋 俊 기자 ()
  • 승인 1998.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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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생 취업률 최악…발령 연기 등 기업 횡포에 울기도
온나라가 실업 회오리에 휩쓸려 전전긍긍하는 마당에, 실업자로서 사회에 첫걸음을 내디디는 사회 초년생의 처지는 더욱 막막하다. 이·공학 계의 몇몇 전문 분야를 제외한 대학 졸업자는 상당수가 실업 회오리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실직자의 경우는 그래도 사회 돌아가는 속내를 알고 있는 데다가, 경력이나 인맥 따위 ‘비빌 언덕’이라도 있는 편이다. 이에 견주면 막 상아탑을 나온 초년생은 문제의 심각성조차 실감하지 못하는 듯하다.

각 대학 취업정보센터는 4∼5월이 되어야 졸업자 취업 실태의 윤곽이 드러나리라고 예상한다. 그러나 4월께부터 대기업·금융기관·정부가 본격적으로 구조 조정에 들어갈 것을 감안하면, 4~5월로 예정된 취업 ‘끝물’에 장밋빛 기대를 걸기도 난망하다. 게다가 몇몇 대기업의 파행적 행태는 취업 대기자를 더욱 곤혹스럽게 한다. ㅅ전자·ㅇ그룹·ㅎ그룹 등은 신입 사원 합격자를 선정했다가 상황이 악화하자 발령을 연기하거나 합격을 취소했다.

2월 초 회사로부터 발령 무기 연기 통보를 받은 ㄱ씨(ㄱ대학 정외과 졸업)는 “미련과 불안감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끝내는 그 회사에 대한 배반감이 들어 포기했다”라고 말했다. ㅎ씨(여·ㅇ대 경영학과 졸업)는 빠른 시일 안에 입사 일자를 알려 주겠다는 회사의 통보를 믿는 경우다. “합격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다시 학교를 찾아 추천서를 받기도 민망하고, 눈앞이 캄캄하지만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현행 법규에는 이같은 대기업의 조처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다. 더구나 개정 노동법은 정리 해고한 뒤 2년 이내에 직원을 뽑을 때는 해고 직원을 우선 채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이 강제 조항은 아니지만, 대기업에는 대부분 강력한 노동조합이 버티고 있다. 노동조합이 해직 동료의 복직 문제를 따지고 드는 한 대기업이 이를 무시하고 신규 사원을 채용하기는 쉽지 않다. 이래저래 대학 졸업생은 중소 기업과 개인 회사를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들 중 많은 회사가 대기업의 하청 업체여서 불황 도미노를 겪고 있다.

노동력 공급 과잉은 기업의 ‘콧대 높이기’로 이어졌다. 토익 점수 평가가 좋은 예다. 예년에는 8백50점이면 무난했는데 올해는 9백50점 안팎이 안정권이 된 것이다. “면접 때 컴퓨터 실력을 하도 까다롭게 따져 주눅이 들었었는데, 입사해 보니 회사 PC 주종이 386·486 급이었다.” ㅇ씨(ㅇ여대 비서학과 졸업)의 말이다. ㅈ씨(ㅅ여대 경제학과 졸업)는 고교 졸업자들의 일자리였던 경리직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그래도 서울 지역 대학 출신의 취업률(대학원 진학자 등 제외)은 그다지 나쁘지 않다. 취업 정보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른바 일류 대학의 경우는 60∼70%, 그밖의 대학은 대략 50% 안팎으로 추산된다. 특채를 포함해, IMF 한파가 몰아치기 전인 9∼10월에 입사한 사람이 적지 않은 덕분이다. 대규모 공채에 치중해 온 지방 대학의 경우는 뾰족한 대책이 없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IMF 한파 피해 해외로 나가기 경쟁

“대기업 특채를 우습게 여기다가 IMF 된서리를 맞고 후회하는 친구들이 적지 않다”라고 ㄱ씨(ㅅ대 법대 졸업)는 말했다. 때를 놓친 데 대한 회한으로는 취업 재수생과 휴학으로 졸업이 늦어진 경우, 대학원 졸업자 들의 탄식도 마찬가지이다. ㅇ씨(여·ㅅ대 대학원 영문과 2년)는 취업이 되는 대로 대학원을 그만둘 생각이라고 밝혔다.

과외나 아르바이트 전선에 나선 사례도 그다지 많지 않다. 대부분 도서관으로 ‘출근’하는 것이 취업 예비군의 풍경이다. 서울시 교육청에 따르면, 지난 2월 시내 10개 주요 도서관 이용자 수(47만7천6백47명)는 지난해 2월에 견주어 27%나 늘었다.

IMF 한파가 물러날 때까지 해외에서 경험을 쌓으며 때를 기다리자는 ‘미래파’ 대열에 서기도 쉽지 않다. 캐나다·호주 등지에서 1년간 취업·여행·어학 연수를 할 수 있는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받거나, 외통부 산하 한국국제협력단의 한국청년해외봉사단에 지원자가 몰리고 있는 것이다. 워킹홀리데이협회(02-723-4646)에는 2월에만 매일 3백50건 가까운 비자 문의(방문 및 전화)가 빗발쳤고, 해외봉사단 지원자는 경쟁률이 12 대 1에 달했다(문의:02-740-5114).

이들이 귀국할 즈음에 경제가 나아질지는 알 수 없지만, 당분간은 해마다 바늘 구멍 앞에 늘어선 ‘낙타’들의 장사진이 끝없이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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