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조실은 '황제를 위하여' 무엇이든 한다
  • 이교관 기자 ()
  • 승인 1996.10.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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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조실, 총수 사적 이익을 기업 활동보다 우선…비자금 조성·전문 경영인 입지 약화 등 폐단도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주요 재벌 그룹의 기획조정실(기조실)은 규모를 축소 당하는 비운을 맛보아야 했다. 재벌의 폐해가 일정 부분 그룹내 기획·인사·자금 부문에서 그룹 총수를 보좌하는 기조실의 규모와 기능이 너무 막강하다는 점에 기인한다는 비판 여론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삼성그룹과 현대그룹을 비롯한 주요 재벌 그룹들이 기조실 인원과 부서를 과감히 줄였다.

특히 삼성그룹의 경우 그룹 기조실 격인 회장 비서실의 규모를 축소하면서 정보팀을 각 계열사로 분리하는 데 가장 신경을 썼다. 이는 무엇보다 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정치 분야의 정보 수집력도 막강한 삼성그룹 비서실에 대한 여론이 곱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그룹의 정보 수집력은 노태우 대통령 재임 당시 청와대까지 삼성그룹의 정보에 의지할 정도로 막강했다. 6공화국이 ‘삼성공화국’이라는 말까지 나돌았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재벌 소유 구조 바뀌면 기조실 자동 해체

그러나 주요 재벌 그룹들의 기조실은 마치 형상 기억 합금인 듯 축소 이전으로 되돌아간 지 이미 오래다. 제아무리 여론이 나빠도 한때뿐이라는 점을 재벌 그룹들이 몸소 입증해 보인 것이다. 물론 기조실 규모가 소리 소문 없이 원상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한번 지나가면 뒤도 안돌아보는 여론의 무정함에도 원인이 있다. 그러나 본질적인 원인은 정부가 소유와 경영권이 총수에게 집중되어 있는 재벌의 전근대적인 소유 구조를 개혁하지 못한 데 있다.

사실 기조실은 재벌의 소유 구조를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방향으로 개혁하면 자연히 해체될 수밖에 없다. 기조실이나 비서실 자체가 그룹의 소유와 경영을 모두 장악한 총수의 그룹 총괄 경영을 보좌하는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룹 총괄 경영권을 여전히 장악하고 있는 총수가 기조실에 대한 비판 여론이 지나간 마당에 기조실 규모를 원상 회복하지 않으면 그것이 더 이상하다는 것이 경제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실제로 삼성그룹은 지난 8월20일 94년 3월에 폐지했던 그룹 회장 비서실 차장 제도를 부활하고 이학수 삼성화재 사장을 임명했다. 이로써 삼성그룹 비서실에는 비서실장인 현명관 사장을 포함해 사장급 인사가 2 명으로 늘어났다. 게다가 정보 수집 기능도 다시금 강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그룹은 정몽구 회장 취임을 계기로 하여 박세용 기조실장을 중심으로 기조실을 강화하는 조처를 취했다. 대우그룹도 인력개발원과 홍보실에 흩어져 있던 인사·홍보 업무를 올해 초 비서실로 일원화하면서 정보팀도 신설했다.

 
기조실은 총수의 처지에서는 매우 유용한 조직이다. 그룹 안팎의 모든 정보가 집결되고, 충성심으로 무장된 직원들을 갖춘 기조실은 총수의 지시를 일사불란하게 처리한다. 문제는 기조실이 그룹 내에서 우월적 지위를 누리면서 총수에게 사조직처럼 충성한다는 데 있다. 무엇보다 기조실이 ‘총수의 사적 이해’와 ‘기업의 이해’를 구분하지 못하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한 예로 기조실 재무팀은 회사의 재무 관리와 함께 총수의 재산 관리까지 맡고 있다. 기조실 재무팀이 ‘작은 재경원’으로 불리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게다가 비자금 조성도 기조실이 중심 역할을 맡아왔다. 계열사 별로 얼마씩 만들어내라고 지시하면 쉽게 뭉칫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조실의 폐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업 경영이 전문화되기 위해서 필요한 전문 경영인들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데도 기조실이 한몫 단단히 한다. 전문 경영인 사장도 기조실의 결정이라면 하자가 있어도 총수의 의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간주해 최우선으로 집행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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