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왕국' 막강 친위대 기조실장회의
  • 이교관 기자 ()
  • 승인 1996.10.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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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년 출범, 정부 정책 비판·막후 교섭 통해 ‘재벌의 논리’ 구축
 
봄이 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차가운 바람이 불어 옷깃을 여며야 했던 93년 3월4일이었다. 이 날 저녁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 50대 초반으로 중후한 풍채를 지닌 기업인 30명을 태운 검은 세단 30대가 미끄러지듯 모여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 다 모였음을 확인한 이들은 36층 홀에서 회의를 시작했다. 비밀 결사 조직처럼 재계의 이해를 막후에서 조정해오던 30대 그룹 기조실장회의가 공식 출범하는 순간이었다.

회의가 시작되자 좌중에는 긴장이 감돌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각 그룹에서 총수를 보좌해 그룹 경영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것 자체가 예삿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최종현 회장의 제안이 30대 그룹 기조실장회의 구성에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전경련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주요 그룹 기조실장들이 회장단을 실무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현안들을 풀어 나가는 데 효율적이라고 최회장이 취임하면서 제안했던 것이다.

그러나 최회장의 제안처럼 30대 그룹 기조실장회의가 단순히 전경련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구성된 것은 아니었다. 이 날 참석한 기조실장 대부분이 이를 모를 리가 없었다. 전경련 회장단이 굳이 30대 그룹 기조실장회의를 출범시킨 것은, 전경련 조직만으로 대처하기 힘든 상황이 발생했음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재계로서는 당시 막 출범한 김영삼 정부의 재벌 정책에 맞서 무언가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30대 그룹 기조실장들이 공식 회의를 가진 것은 롯데호텔 모임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주요 그룹 기조실장들은 그 전에 은밀하게 활동해 왔다. 삼성·현대·LG·대우·선경 등 5대 그룹이나 10대 그룹 기조실장들은 긴급히 공조를 취할 사안이 있을 경우 은밀히 모이곤 했다. 단지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푸코의 추>에서 세계 지배를 꿈꾸는 지하 비밀 결사 ‘장미 십자단’처럼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재계가 30대 그룹 기조실장회의를 김영삼 정부 집권 초기에 공식 출범시킨 것이다. 이는 재계가 그만큼 정부에 대해 조직적인 반격을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것이 당시 ㅎ그룹 기조실장의 증언이다. 그래서 최근 정부의 재벌 정책이 무산되고 청와대가 올 봄에 개혁 차원에서 추진했던 노동 관계법 개정이 사용자측 위주로 반전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기조실장회의를 모르고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정부 정책 움직이는 ‘재계의 정치국’


5, 6공 때까지만 해도 정부의 재벌 규제가 조금이라도 수위가 높다고 판단되면 전경련이 취한 대책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에서 밝혀진 것처럼 재계가 청와대에 적절한 규모의 정치 자금을 제공함으로써 재벌 규제 움직임을 사전에 차단했다. 또 하나는, 정부의 경기 대책이나 산업 정책이 재계의 입장에 반하는 것이면 자체 부서가 마련한 각종 논리를 통해 정부 정책을 바꾸는 데 주력했다.

그런데 재계는 김영삼 정부 들어 이 두 가지 방법이 먹혀들 것 같지 않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재벌 총수들은 자신들을 보좌해 그룹 경영을 담당할 정도로 능력이 있고 재계와 정치권간 역학 관계를 누구보다 잘아는 기조실장들에게 돌파구를 기대하게 되었다. 유비가 제갈량을 찾아 삼고초려했던 것이 제갈량이 천하를 얻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던 것처럼. 30대 그룹 기조실장회의가 탄생한 배경은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재계가 정부의 재벌 정책 등에 대처하는 수준이 달라지게 되었다. 이전에는 전경련이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재계의 입장을 단순히 정리한 문건을 회장단이 검토해 발표하는 형식이었다. 그러나 93년 3월4일부터는 30대 그룹 기조실장회의가 당장 문제가 되는 정부의 정책과 그 대책을 검토해 올리면 전경련 회장단이 이를 추인하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30대 그룹 기조실장회의가 재계의 정치국(政治局)으로 떠오르게 된 것은 이 때부터다.

30대 그룹 기조실장회의는 93년에는 매월 넷째 화요일에 정기적으로 열렸다. 회의는 주로 롯데호텔이 아니면 신라호텔에서 열렸다. 전경련 회장단 회의같이 전경련회관에서 열리는 일은 없었다. 회의가 정부의 경제 정책이나 재벌 정책에 대한 비판과 그 대책 등 예민한 사안을 다루다 보니 은밀하게 이루어졌던 것이다. 회의에서 결정된 안건은 다음달 둘째 화요일에 열리는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올려 재계의 공식 입장으로 발표했다.

정부 정책에 대한 전경련 회장단의 비판은 이 때부터 점차 구체성을 띠게 되었다. 국내총생산의 약 90%를 차지하는 30대 그룹 기조실장들이 재계의 입장을 함께 조정하는 만큼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이 구체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재계의 이해에 어긋나는 정책이라면 크든 작든 간에 무조건 시비를 걸었던 것은 아니다. 고민은 오로지 한 가지였다. 어떻게 하면 정부가 재벌의 소유 구조를 개편하는 것을 막아내느냐였다.

이것만이 주군(主君)인 총수들이 군사(軍師)인 자신들에게 부여한 ‘역사적 사명’이라고 기조실장들은 판단했던 것이다. 정부가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해 30대 그룹에 여신 규제를 한다거나 그룹 계열사간 채무 보증 금지 조처를 취하거나 해도 소유 구조만 개편되지 않으면 괜찮다는 것이 기조실장들의 인식이었다. 왜냐하면 여신 규제나 채무 보증 금지 조처들은 언젠가 상황이 바뀌면 철회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민이 현실화하는 조짐이 나타났다. 김영삼 정부가 집권 초반에 취한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의 재산 공개나 하나회 같은 정치 군인을 일거에 제거한 군 개혁은 재벌로 하여금 재벌의 소유 구조 개편이 임박한 것처럼 걱정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군부 정권의 폭정에 시달렸던 국민은 이같은 개혁을 환영했으나 재벌은 ‘오랑캐 땅에 꽃이 피지 않으니 봄이 와도 봄이라고 볼 수 없는(胡地不開花春來不似春)’ 심정이었던 것이다.

 
‘현행 재벌 소유 구조를 사수하라’


30대 그룹 기조실장들은 고민 끝에 주군들에게 비장의 대책을 내놓았다. 재벌이 스스로 계열사를 줄이고 정부가 부르짖는 세계화에 앞장서자는 방안이었다. 중소기업의 고유 업종을 불문하고 막강한 자본력으로 문어발식 업종 다각화를 이룬 재벌들이 계열사를 줄이는 것은 ‘뼈를 주고 살을 받는’전략이었다. 그럼에도 정부로 하여금 재벌이 스스로 개혁한다는 인식을 갖게 하려면 이 방법 외에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재벌이 뼈를 준 것은 없다. 다시 말해서 30대 그룹이 정리한 계열사는 주로 생산 활동이 거의 없는 명목상의 회사들이었다. 더욱이 몇 달 지나지 않아 30대 그룹의 계열사는 오히려 늘어났다. 특히 ‘신경영’을 부르짖으며 정부의 세계화 캠페인에 앞장선 삼성그룹의 경우 계열사 수가 94년 들어 전년도에 비해 5개나 늘어났다. 어쨌든 김영삼 정부는 금융실명제 같은 개혁 조처를 취하면서도 재벌의 소유 구조에는 칼을 대지 않았다. 결국 30대 그룹이 계열사를 감축한 것은 정부로 하여금 재벌의 소유 구조를 개편하지 못하게 하는 데 결정적인 효력을 발휘했다.

30대 그룹 기조실장회의는 94년까지 매월 정기 회의를 가지다가 지난해 들어서는 거의 열리지 않았다. 그 까닭은 무엇보다 김영삼 정부 집권 초기와 달리 집권 세력과 재계 간에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95년 당시 재계는 정부가 재벌의 소유 구조 개편과 같은 극단적인 재벌 정책을 펴지 않으리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실제로 작년에 공식으로 열린 30대 그룹 기조실장회의는 고작 두 차례였다.

올해 들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사정은 작년과 정반대였다. 지난해 말 노씨 비자금 사건이 터지자 다시금 ‘재벌 망국론’이 휩쓸었다. 정치권과 재계간 음성적인 정치 자금 수수가 재벌의 전근대적인 소유 구조에서 말미암는다는 점을 삼척동자도 아는 판국에 언제 재벌의 소유 구조를 개편하는 조처가 취해질지 모를 상황이 대두한 것이다. 그런데도 기조실장회의가 열리지 않았다. 그만큼 재벌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았기 때문이다.

다시금 겨울이 찾아왔다. 비자금 사건에 연루된 주군들이 줄줄이 법정에 서는 것을 보고도 군사들은 힘을 쓸 수가 없었다. 물론 기조실장들의 처지에서 총수들의 사법 처리를 막는 것도 중요했지만, 정부가 재벌에 대한 비난 여론을 이용해 또다시 강력한 재벌 정책을 펴는 것을 막는 것이 더 시급했다. 그럼에도 재계는 기조실장회의가 공식 모임을 통해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여론만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다가 재계가 그토록 우려하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박세일 사회복지 수석이 중심이 된 청와대 개혁팀이 노사 관계 개혁을 추진하고 나선 것이다. 재계는 청와대가 구상하고 있는 신노사 관계가 복수 노조와 3자 개입 그리고 노조의 정치 활동을 허용하는 등 노동계의 요구를 대폭 반영하는 방향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런데도 재계는 대통령 직속인 노사관계개혁위가 주최한 노동관계법 개정 공청회에 재계 총본산인 전경련의 하급 단체에 불과한 한국경영자총연합회(경총)를 대표로 내세웠다.

사실 청와대가 구상한 대로 노동 관계법이 개정되면 가장 타격을 입는 쪽은 재벌을 중심으로 한 사용자측이다. 그럴 경우 이는 소유 구조 개편만큼이나 재벌에 치명적인 타격이 될 수 있다. 그런데도 재계가 경총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경총이 매년 재계를 대표해 정부와 노사 문제를 다루어 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비자금 사건으로 인해 재벌에 대한 여론이 나쁜 마당에 30대 기조실장회의가 중심이 된 전경련이 나서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공청회에서 재계의 요구 사항으로 제기된 정리해고제·변형시간근로제·근로자파견제 도입 등은 경총이 자율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은 요구들은 30대 그룹 기조실장회의에서 논의를 거쳐 결정된 것이라고 경총 김영배 상무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 점에서 30대 그룹 기조실장회의가 청와대가 추진하는 노동 관계법 개정 방향을 사용자측에 유리하게 반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막후에서 해왔음이 확인되었다.

하지만 경총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특히 경총이 공청회에서 복수 노조 도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자 재계는 경악했다. 그런데도 30대 기조실장들은 개입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비자금 사건에 연루되어 기소된 재벌 총수의 사법 처리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 ㅅ그룹 관계자의 증언이다. 만약 개입할 경우 비자금 사건으로 촉발된 재벌 비판 여론을 자극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한 것이다.

그런데 재계로서는 하늘에 감사할 일이 벌어졌다. 올 상반기 경기가 예상보다 나빠진 것이다. 무엇보다 반도체 국제 가격이 하락하면서 무역 수지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경기 침체는 주기(週期)로 보아 예상한 것이었으나 여론은 ‘경제 위기’로 치달았다. 재계는 가뭄에 시달리다 단비를 맞는 농부의 심정이었다. 경제위기론을 활용하면 노동 관계법 개정을 사용자측에 유리하게 반전시킴과 동시에 재벌 정책까지 무산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30대 그룹 기조실장회의가 다시금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7월23일 30대 그룹 기조실장들은 롯데호텔에서 진 념 노동부장관과 회동했다. 여기서 기조실장들은 진장관에게 복수 노조와 3자 개입을 허용하면 안된다는 점과, 정리해고제 도입이 시급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현 경제 위기를 타개하려면 기업의 고용 방식이 유연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즉, 기업으로 하여금 노동자를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게 정부가 도와 달라는 얘기였다.

 
정부 관계자 “대선 위해 재벌 정책 포기”


그러나 진장관과의 회동은 30대 그룹 기조실장들이 정부의 재벌 규제와 친노동계적인 신노사 관계 개혁 방향에 대해 취한 공세의 서막에 불과했다. 7월과 8월 하계 공세는 두 가지 점을 여론화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우선 현 경제 위기는 공정거래위의 재벌 규제가 대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어서 기업 활동이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발생했음을 강조했다. 다음으로 부각한 것은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주범이 고임금이라는 점이다.

기조실장회의는 9월6일 신라호텔에서 모임을 갖고 각계에 임금 동결을 촉구했다. 물론 목적은 임금 동결에 있지 않았다. 임금을 동결해야 할 만큼 경제가 어렵다는 점을 여론화하면서 정부의 재벌 정책을 무산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는 것이 앞서의 대기업 관계자의 지적이다. 마침내 기조실장회의의 전략은 성공했다. 재경원이 정리해고제 도입을 검토함과 아울러 계열사간 채무 보증 금지 조처를 연기하고 사외(社外) 이사제 도입을 철회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물론 경기 침체의 근본적인 원인은 기업들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사업 구조를 조정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정부도 안다는 것이 한 정부 관계자의 지적이다. 그러나 내년 대선에서 여당이 재집권하기 위해 재벌 정책을 포기해서라도 경기를 부양할 필요성이 있었다고 그는 밝혔다. 김영삼 정부의 재벌 정책이 루비콘 강을 건넌 사연은 여기에 있다. 마침내 30대 그룹 기조실장회의가 실질적인 ‘대한민국 이익 집행 위원회’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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