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허파’ 속에 들어선 아방궁
  • 丁喜相 기자 ()
  • 승인 1995.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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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그린벨트에 호화 별장 천여 채…법망 교묘히 빠져나가 제재 어려워
수도권 그린벨트는 서울의 일부 사회 지도층 인사들과 부유층이 앞장서 잠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그린벨트 내에 많게는 수백만 평에서 수십만 평에 이르는 땅을 매입해 두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린벨트 지역에서도 경관이 뛰어난 곳에는 예외 없이 이들의 호화 별장이 들어서 있다.

건설교통부가 파악하고 있는 수도권 그린벨트 지역내 별장은 총 70여 건 1백70여 채, 잠식된 면적은 7만여 평이다. 그러나 수도권의 특정 지역 현장을 직접 조사한 결과 이 집계는 형편없이 적게 잡힌 것으로 드러났다. 가령 남양주시의 경우만 하더라도 건설교통부는 관내 호화 별장 수를 15개로 잡고 있지만, 현장 취재 결과 관내 49개 호화 별장 중 23개가 그린벨트 내에 있었다.
그린벨트 지역의 호화 별장 소유자들은 대부분 서울에 거주하는 재벌·정치인이거나 부유층인 것으로 나타났다(오른쪽 표 참조). 이들은 일찍이 해당 지역 원주민들이 나무 한 그루, 기왓장 하나 손댈 수 없던 시절부터 대규모 호화 별장을 가꾸고 여기에 정원·연못·수영장·간이 골프장·사슴목장 따위를 만들었다. 최근 들어 그린벨트 지역내 가옥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자 서울 부자들이 대거 그린벨트내 별장 꾸미기에 나서 그 숫자는 계속 늘어나는 실정이다. 그린벨트내 별장은 이들이 임야를 낀 농가주택을 사들여 증·개축하는 방법으로 법망을 교묘히 피해 들어서고 있다.

정몽헌 회장 ‘별장 세금’ 연간 5천8백만원

대부분의 호화 별장에는 일반인들이 위화감을 느낄 정도로 넓은 부지에 철망이 둘러쳐 있다. 팔당호의 낙조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조안리 산 175번지 일대에는 대규모 호화 별장 3채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 묘소 초입에 위치한 이곳은 상수원 보호 구역이다.
약 3만여 평의 부지 둘레를 2m 높이로 철망을 둘러친 한 별장의 육중한 철문을 두드렸다. 별장 주인은 현대전자 정몽헌 회장. 관리인이 나왔다. 별장 내부 취재를 요청했더니 그는 “한 시간 후 정몽헌 회장이 도착하므로 근처 창호리에 있는 제2 별장으로 가라”며 한사코 출입을 막았다. 울창한 잣나무 숲속에 별장 건물 2채가 있는 이곳은 정회장과 그 가족이 불시에 찾아와 쉬고 가는 곳이라고 한다. 남양주시청 재산세과에 문의한 결과 정몽헌 회장 별장에 부과되는 세금만도 연간 5천8백만원에 달한다고 한다.

정회장 별장 바로 옆에는 김영진씨(한독약품)와 한태원씨(백수제약)의 별장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역시 2m 높이의 철조망으로 주변을 둘러친 이 별장들은 각각 4천여 평 부지 위에 꾸며져 있다. 김씨의 별장 입구에는 ‘濟石苑’이라는 돌간판이 세워져 있고, 50여 m인 진입로 주변은 갖가지 조각품과 석등으로 장식돼 있다.

건설교통부 집계에 따르면, 수도권 호화 별장은 주로 팔당 상수원 보호 구역인 광주군(28개) 남양주군(23개) 하남시(8개) 양평군(4개)에 몰려 있다. 이들 지역에 호화 별장이 난립한 것은 남한강·북한강이 합류하는 곳으로 주변 경관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팔당 호반에 자리한 광주군 남종면 분원리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김아무개씨는 “팔당호 주변 대로변 농가주택은 나오는 즉시 나가버려 매물이 없다. 호수에서 10여 ㎞씩 들어간 곳의 농가주택도 평당 백만원에 거래되는데, 보통 백평부터 시작해 4천~5천 평까지 나오고 있다. 주로 서울 사람들이 매입해 별장을 짓는다”고 말한다.
경기도에 따르면, 수도권 그린벨트 지역에는 세법상 별장으로 분류되는 집말고도 사실상의 ‘호화 별장’이 천여 채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냥 고급 주택으로 분류되는 이들 별장은 시가 5억원대를 웃도는 집들이다. 이와 관련해 남양주시 도시과의 한 관계자는 “별장 개념이 개인이나 가족의 휴양·피서·위락 시설로서 상시 거주지가 아닌 경우라고 돼 있기 때문에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주민등록만 옮겨놓고 거주자인 양 신고하거나 주민등록상 관리인에게 전세를 준 것처럼 위장한 경우, 영업용으로 쓰겠다고 신고한 경우 등은 수시로 신고 사실을 확인하지 않는 한 어쩔 도리가 없다”고 말한다. 별장에 부과되는 과세액은 일반 주택보다 17배나 높다.

그린벨트 관리 규정과 세법 등 관련 법망마저 교묘히 빠져나간 채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수도권 그린벨트내 별장 실태는 오늘날 한국 사회가 처한 계층 갈등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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