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협상 ‘4대 전술’
  • 김용호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
  • 승인 1995.04.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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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조성·강압적 요구·옹고집·주변국 이용’ 통해 양보 얻어내기
경수로와 관련한 북한의 대미 협상 목표는 한국표준형이 아닌 원자로를 채택하고 한국의 중심적 역할을 축소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한국형 대신 미국형을 채택하고, 주계약자로 한국 기업이 아닌 미국 기업을 원한다. 북한이 이러한 협상 목표를 세운 것은 복합적인 이유 때문이다.

첫째, 북한은 한국형 원자로 채택에 따른 남북 간의 대규모 물적·인적·기술적 교류가 북한 사회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막으려는 것이다. 더욱이 북한은 한국의 경수로 건설 참여 범위가 넓을수록 북한의 대남 원자력 기술 의존도가 높아지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둘째, 북한은 경수로 협상에서 미국으로부터 새로운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한국형에 대한 반대 의사를 더욱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예를 들면 북한은 송·배전망 건설을 지원하고, 원자로 운영 기술자 훈련을 위한 시뮬레이터를 북한 내에 건설하라는 등 경수로 공급의 통상적 범위를 넘어서는 요구를 하고 있다.

셋째, 북한은 경수로와 관련한 남북 협상이 자국의 대미·대일 관계개선을 지연시키거나 방해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한국을 철저히 배제하려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과의 직접 협상을 통해 정전협정 대체 문제 등을 해결하고, 대일 수교 교섭을 통해 배상금을 얻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따라서 경수로와 관련한 남북 협상이 기존의 미국 및 일본과의 협상을 약화시킬 것을 걱정하고 있다.

북한은 협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첫째, 북한은 4월21일까지 경수로 공급 협정을 맺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미국이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핵동결 조처를 일부 해제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북한이 4월21일을 단순히 목표 시한(target date)이 아닌 최종 시한(deadline)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대미 압력 수단이며, 또한 4월21일까지 공급 계약이 체결되지 않을 경우 그 책임을 미국에 전가해 핵동결을 해제할 근거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4월21일 이후 핵동결 해제 등으로 새로운 위기를 조성해서 미국이나 한국의 양보를 얻어내려는 협상 전술이다.

‘핵협상’ 교착 상태 빠질 가능성 높아

둘째, 북한은 송·배전 시설, 연수용 시뮬레이터 건설 등 새로운 요구를 제시하여 협상을 주도해 나가고 있다. 북한의 이러한 요구는 경수로 공급의 통상적인 범위를 넘어서는 강압적 요구이다. 그럼에도 북한은 미국의 합리적인 대응을 이용하여 양보를 얻어내려는 것이다. 이처럼 북한은 협상을 종결 없는 거래로 보고 합의 사항을 이행하는 과정에서도 협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셋째, 북한은 ‘한국형 절대 불가’라는 입장을 거듭 제시함으로써 미국에게 자신의 입장이 견고하고 양보할 수 없는 사항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어, 미국의 양보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즉 미국의 기대 수준을 낮춤으로써 최대한 양보를 얻어내려는 협상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이러한 협상 전술은 약소국이 강대국을 상대로 협상할 때, 강대국이 국제 사회에서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기 때문에 협상 목표를 관철하려는 집념이 약해지는 것을 이용하여 양보를 얻어내는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것은, 북한 당국이 미국과 한국 사회 내의 의견 차이와 한·미·일 정부의 정책 우선 순위의 차이를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또 미국과 일본의 정치인·학자·전직 관리·기업인의 방북 초청과 북한 외교관들의 외국인 접촉을 통해 북한의 입장을 지지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북한의 웨스팅 하우스사 접촉, 일본 연립 3당 초청, 박길연의 기자 회견이 대표적인 사례다.

현재 한국·미국·일본·북한의 국내 사정과 협상 진행 상황에 비추어 볼 때 경수로 협상은 당분간 교착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지방자치 선거를 앞둔 한국의 경우 중심적 역할 없이 재정만을 부담하는 양보는 거의 불가능하다. 미국 공화당은 클린턴 행정부에 더 이상 북한에 양보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강력히 표명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 경수로와 관련한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은 불가능하다. 북한과의 수교 협상을 재개하기로 한 일본이 경수로 건설비를 떠맡을 가능성은 현재 희박하다. 북한은 김정일 체제 결속과 핵확산방지조약(NPT) 연장 문제 등을 고려하여 미국으로부터 많은 양보를 얻어내려고 시도할 것이기 때문에 쉽게 타협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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