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압박할 '공안 태풍' 온다
  • 김 당 기자 ()
  • 승인 1997.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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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 황장엽 파일 연계 ‘야당 압박용 편향 수사’ 조짐
오익제 전 천도교(天道敎) 교령(敎領)의 월북을 계기로 공안풍(公安風)이 불어닥칠 조짐이다. <시사저널>은 오씨의 월북 직후 그 태풍의 한 자락을 내비친 바 있다.

<시사저널>은 지난호에서 △오씨가 월북한 동기가 무엇이든 오씨의 월북 사건 자체가 이른바 황장엽 파일의 연장선 상에 있다 △안기부는 오씨의 행적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황 파일에도 올라 있는 핵심 인물(이산 가족 상봉 및 고향 방문 유형)을 극비리에 내사해 왔다 △공안 당국이 관리·수사하는 황 파일은 ‘양날의 칼’이자 ‘판도라의 상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그리고 안기부에 정통한 한 소식통의 입을 빌려 ‘황 파일은 파면 팔수록 여권이 다치게 되어 있다. 안기부는 오씨 월북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까지도 황 파일 수사 발표를 대선 이후로 미룰 방침이었다’고 보도했다.

단순 월북에서 고정간첩 귀환으로 돌변

그렇다면 황 파일은 왜 판도라의 상자일까? 왜 파면 팔수록 여당에 불리할까? 기자는 지난 7월16일 처음으로 황장엽 파일의 명단을 실명으로 공개했다(<시사저널> 제404호 커버 스토리 ‘독점 공개 황장엽 파일’ 참조). 기자는 이 기사에서 황장엽·김덕홍 씨와 직·간접으로 접촉한 인사 20여 명을 접촉 배경에 따라 △사업 △선교·학술 △북한 붕괴 공작 △정치 공작 △이산 가족 상봉 및 고향 방문 등 다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야권보다는 여권 인사가 훨씬 더 많은 정치권의 경우에는 대공 용의점이 없어도 이름이 거론된 것만으로도 정치적으로 이용될 소지가 있는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시사저널>은 대공 혐의점이 없다고 판단된 일부 여권 인사를 공개하면서 ‘야당 인사도 1∼2명 포함되어 있다’고 익명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오익제씨 월북이라는 돌발 변수를 계기로 황 파일 수사는 정치권, 특히 야당에 대한 내사 쪽으로 반전되었다. 처음에는 단순 월북 쪽에 비중을 두고 내사해온 공안 당국이 오씨를 북한 지령에 따라 월북한 ‘고정 간첩’으로 단정하고 오씨 집에 대한 압수 수색, 예금 계좌 및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실과의 전화 통화 기록 추적 쪽으로 선회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방향 전환은, 오씨와 황 파일의 ‘연계 수사’가 특정 정당에 한정한 축소 수사로 흐를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을 뜻한다. 안기부 최고위층이 황 파일의 정치적 이용을 배제하겠다는 방침을 공언한 것과는 달리 정치에 이용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시사저널>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 황 파일 2차 명단(21쪽 상자 기사 참조)을 공개하는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이다.

황씨가 망명한 배경과 황 파일에 대해 가장 정확한 ‘준비된 정보력’을 갖춘 정치인은 임복진 의원(국민회의 안보특위 위원장)이다. 임의원은 이 문제를 당의 안보뿐 아니라 국가 안보 차원에서 대처해 왔다. 안기부를 통제하는 정보위 소속인 임의원과 보좌진은 안기부 관계자뿐만 아니라, <시사저널>이 공개한 황 파일에 올라 있는 거의 모든 당사자들을 만나 관련 정보를 수집했다.

그 중에서도 ‘특급 정보’는 당시 자기 당의 오익제 고문을 공안 당국이 황 파일 수사의 연장선 상에서 문제삼을 소지가 있다는 점이었다. 보좌진은 황 파일 명단 중에서 공안 당국이 주시하는 한 핵심 인물의 행적을 추적해 본 결과 이 인물이 오익제 고문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그의 행적을 추적해, 지난 7월 김대중 총재 비서실에서 ‘불길한 초청장’을 하나 발견했다. 바로 공안 당국이 주시하는 장승학씨(사단법인 한겨레평화통일협회 이사장 및 효도회(孝道會) 회장·23쪽 인터뷰 참조)가 주도한 효천대제(孝天大祭)에 참석해 달라는 초청장이었다. 임의원은 즉시 김총재에게 극비 보고서를 만들어 제출했다. 그러나 임의원은 이 문제를 당의 안보뿐만 아니라 국가 안보 차원에서 접근하되 만일 여권에서 이를 문제삼을 경우 ‘비장의 카드’를 내놓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효천대제는 김일성 기제사인가

앞서 지적한 대로, 공안 당국이 주시한 핵심 인물은 장승학씨이다. 또 장씨가 회장으로 있는 효도회 멤버들과 효도회가 추진한 효천대제도 주시 대상이다. 백 년 전 고종황제가 원구단(圓丘壇)을 만들어 부활시킨 제천의식을 기념하고, 단기 4330년을 맞이해 경복궁에서 ‘민족의 잘못을 회개하고 국태민안(國泰民安)과 평화 통일을 기원’하려던 이 제사는 공교롭게도 처음에는 7월7일로 잡혔었다. 그후 7월17일로 연기되었다가 무산되었다. 또 오익제씨는 당초 효천대제 제례(祭禮) 준비위원이었다가 2차 제사 때는 그 명단에서 빠졌다. 장승학 회장은 오씨가 명단에서 빠진 까닭은 일부 위원이 오씨의 정치적 발언을 문제삼았기 때문이고, 제사가 무산된 배경은 기독교 일부에서 우상 숭배라고 반발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오씨를 친북 인사로 단정한 이 모임의 한 회원은 제사가 무산된 배경을 “7월8일이 김일성 사망일임을 고려할 때 이 행사는 ‘김일성 제사’일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누군가 경복궁 관리소장에게 이 사실을 제보해 장소 허용이 취소되었다”라고 주장했다. 이 회원은 또 “오씨가 왜 준비위원(2차) 명단에서 빠졌는지 그 시점이 중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즉 오씨가 2차 명단에서 빠진 것은 황장엽씨의 기자회견(7월10일)을 계기로 황 파일이 언론에 크게 보도되고 공안 당국이 황 파일에 대한 내사 방침을 밝힌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 회원은 또 “공식 제사는 무산되었지만 오씨는 이 날(7월17일) 경복궁에 참석해 몇몇 회원과 약식 제사를 지냈다”라고 주장했다.

효천대제 제례 준비위원(1차)을 보면, 김형근(순국선열유족후원회장·준비위원장) 김 집(한국청소년연맹 총재) 박재창(고당 조만식 기념사업회 상임위원장) 안춘생(전 독립기념관장·안중근 의사의 조카) 안호상(대종교 총전교) 오익제(전 천도교 교령) 조영식(경희학원장) 최창규(전 독립기념관장·의병장 최익현의 증손) 한양원(민족종교협의회장) 한완상(전 부총리 겸 통일원장관) 등이다. 이 중 상당수는 김대통령이 의장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평통) 전·현직 자문위원들이다.

이 중 김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스승이자 학술원 및 헌정회 원로 회원인 안호상 대종교(大倧敎) 총전교(總典敎)는 95년 4월 실정법을 어기고 측근 김선적씨와 함께 방북한 적이 있고, 역시 3대 민족 종교의 하나인 천도교의 교령을 지낸 오익제씨도 월북했다. 한완상 전 통일원장관은 극우 세력과 일부 언론에 의해 공개적으로 색깔 공세를 당한 바 있다. 대공 혐의점은 없지만 조영식 총장은 황장엽 리스트에 올라 있다. 명망가인 이들의 공통점은 대개 이북 출신으로서 항일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고, 이념보다는 민족·평화를 앞세우는 종교인이라는 점이다. 그밖에 항일 독립 유공자 후손으로 독립기념관장을 지낸 안춘생·최창규 씨는 안기부 협조 아래 황장엽 망명 공작을 수행한 북한민주화촉진협의회(북민협)의 이연길 회장·전태준 감사와 가까운 사이이다. 결국 이들은 모두 직·간접으로 황 파일 명단에 올라 있거나 관련된 사람들이다.

장씨가 회장인 효도회 회원으로 범위를 넓히면, 안호상·오익제 씨말고도 92년 8월 북한 거물 간첩 이선실 및 ‘남한 조선노동당’ 사건으로 검거되어 고정 간첩 혐의로 무기 징역이 확정되어 수감된 김낙중씨(전 민중당 공동 대표)가 회원이었고, 같은 사건으로 검거되어 93년 1월 1심 결심 공판을 앞두고 서울구치소에서 옥중 자살한 권두영씨(전 민중당 고문 겸 평화통일연구회 운영위원장)도 효도회와 관련이 있다. 공안 당국으로서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그러나 과연 이 대명천지에 의심받을 것이 뻔한데도 청와대 앞에서 여야 대통령 후보들을 포함한 각계 지도층 인사 2백여 명을 초청해 ‘김일성 제사’를 지낸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진보적 인사들, 용공으로 몰릴 수도

장씨는 말도 안되는 억측이라며 펄쩍 뛴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보다 민족을 지고지선의 상위 개념에 두는 민족 종교의 생리에서 보면 가능할 법하다. 이같은 사실은 장승학씨가 쓴 <天孝>라는 책에 잘 나타나 있다. 한완상씨와 함께 목사 없는 평신도교회 신도이면서도 무교회·무교파 주의 기독교 신자인 장씨는 남북한의 자본주의 및 공산주의 체제를 모두 부정하고 ‘효(孝) 사상을 근본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민족민주공화국’을 꿈꾸는 이상주의자임을 알 수 있다. <천효>의 한 대목을 옮기면 이렇다.

‘한민족(한겨레)이 통일이 되려면 먼저 사상 면에서 통일 사상이 나와야 한다. 북한은 주체사상을 중심으로 통일한다고 하나 우리는 그것마저도 없고 오로지 자유민주주의와 경제 우위적 통일을 말할 뿐 구체적 통일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우리는 제3의 현실성 있는 통일론이 필요하다.… 통일 민족의 현실을 위해서는 어디까지나 도덕성에 근본을 두어야 한다. 민족 통일도 효도에 근본을 두고 충(忠)으로의 연장선에서 민족의 대동단결로 성취해야 한다.’

공안 당국이 주목하는 대목은 장씨가 자신의 효 사상과 주체사상이 충효(忠孝) 개념상 맞닿아 있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천효>의 한 대목을 더 인용하면 이렇다.

‘우리 민족은 반만 년 유구한 역사 속에서 단일 민족으로 살아왔는데 국토가 분단되다 보니 동족까지 원수가 되고 말았다. 사대사상(事大思想)은 종교나 정치뿐이 아니다. 이제 사회 문화까지 병들어, 남쪽은 민족 주체사상은 간 곳이 없고 서양 문명이 판을 치고 있을 뿐이며, 북쪽은 사이비 주체사상으로 민족을 오도하려 하니 이러다가는 망국의 날만을 기다리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우리 민족을 회복하는 새로운 7천만의 주체사상을 우리는 개발해야 할 것이다.’(밑줄은 기자가 강조한 것임)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주장이다. 바로 인간 중심의 새로운 사회주의와 민족 중심의 신주체사상을 역설한 황장엽의 발언과 비슷한 맥락이다. 실제로 장씨는 95년 자기가 쓴 <천효>에서 앞서 기자가 밑줄 친 대목을 칼로 오린 채 이 책을 황장엽씨에게 전달한 적이 있다. 이 대목이 황씨를 자극하리라는 우려와 동시에 이 책을 소지한 황씨의 신변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장씨는 왜 이 책을 황씨에게 주었을까?

평남 중화 출신으로 중국 단동에서 메리야스 공장을 경영하고 있고 통일원 자문위원이기도 한 장씨는 오래 전부터 이산 가족 상봉 및 고향 방문에 남다른 애착을 보여 왔다. 장씨는 중국에서 사업을 추진하다가 94년 황씨가 자신의 신주체사상을 전파하는 국제주체재단을 설립·운영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중국에 내보낸 측근 김덕홍씨와 처음 만나 이 문제를 상의했다. 황씨가 이사장인 국제주체재단의 대외 위장 명칭인 여광무역총회사이라는 이름도 이때 두 사람이 의논하는 과정에서 지은 것이다.

김씨는 특히 95년 이후 해마다 2∼3명씩 남한 이산 가족을 북경에서 상봉시켜 주고 편지를 통해 북쪽에 있는 남한 이산 가족의 주소를 파악해 주었다. 이 과정에서 이북 출신인 삼천리그룹의 (주)삼탄 유성연 명예 회장도 북에 두고온 딸 등 가족을 만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회장은 이때 황장엽씨와도 직접 만나 북한 식량난을 덜어주기 위한 지원 방안을 협의하기도 했다. 장씨 또한 김씨를 통해 상당수 실향민들의 재북 가족 생사 여부를 확인하고 상봉을 직접 주선하기도 했는데, 같은 평남 출신(평남 성천)인 당시 오익제 교령의 가족 상봉도 주선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장씨는 93년부터 오씨와 함께 북한 주민 접촉 승인을 받아 북경에서 북한 관계자들을 접촉한 적이 있는데, 이번 오씨 월북 사건을 계기로 오씨가 딸을 만난 사실이 보도되었다.

종교적 동기에서 방북한 안호상 총전교가 오씨의 입북을 보는 시각은 훨씬 더 단순하다. 안씨는 지금도 자기가 단군 할아버지 제사를 드리러 밀입북한 사실을 거리낌없이 자랑스럽게 여긴다. 안씨가 기자에게 밝힌 자신의 입북 배경과 오씨의 입북에 대한 견해를 간추리면 이렇다.

‘원래 94년 10월 북한에 가서 김일성 주석과 함께 개천절 제사를 모시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그런데 김주석이 갑작스레 사망하는 바람에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음력 3월 보름 어천절(단군 기일)을 기해 방북해 제사를 올렸다. 북한에 가 보니 동명왕릉은 40만 평인데 단군릉은 2백만평이나 되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김일성은 참 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이 단군릉을 잘 보존하고 김일성이 조상(단군)을 잘 모신 것이 자랑스러웠다. 오씨는 같은 민족 종교 책임자로서 자주 만났지만 개별적으로 만난 적은 없다. 고향이 평남인 오씨한테는 남한이 객지이고 천도교에서 말년에 설움도 받다 보니 고향을 찾아간 것 아니겠는가. 또 원래 천도교가 융성한 곳이 이북이니 가고 싶었을 것이다. 효천대제를 같이 모시기로 했는데 왜 무산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오씨 월북 사건의 핵심은 가족 상봉 및 고향 방문이냐, 아니면 황 파일 수사에 위기 의식을 느낀 도피냐 하는 것이다. 물론 위기 의식을 느낀 나머지 죽기 전에 가족이나 보고 죽자는 복합적인 동기에 의한 입북이라고 추정할 수도 있다. 오씨가 입북한 직후 <한겨레>가 입수해 공개한 ‘나의 고백’이라는 편지 내용에 따르면, 오씨의 입북은 순전히 개인적인 동기에 의한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장승학씨는 오씨가 평소 늘 북에 두고온 어머니에 대한 불효를 한탄하고 가족을 그리워했다고 말했다. 장씨는 또 평소 김 구 선생을 흠모해온 오씨의 민족적 통일관과 북한과 천도교의 특수 관계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러나 공안 당국은 ‘나의 고백’ 자체를 월북 동기를 위장하기 위한 술책이라고 본다. 황장엽 망명 공작에 개입했던 한 핵심 인물은 장씨와 오씨를 친북 인사라고 단정했다. 황씨 망명 공작을 추진한 북민협 간부들을 후원한 안기부 조직도 같은 시각에서 이들을 내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즉 오씨가 황씨 기자회견 이후 효천대제 제례위원 명단에서 빠졌고, 제사가 무산된 뒤에 오씨가 8월15일 입북을 결행한 것은 결국 ‘계산된 입북’이 아니냐는 것이다.
장씨 또한 자신을 그렇게 보는 시각이 있다는 사실은 알지만, 모함일 뿐이고 자기는 거리낄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공안 당국의 주류는 오씨가 월북한 동기를 북한의 이른바 ‘영향 공작’ 탓으로 보는 듯하다. 즉 옛 소련의 첩보기관인 국가보안위원회(KGB)가 세계 여론 주도층을 대상으로 친소·반미 감정을 확산하기 위해 구사했던 것처럼, 북한이 최근 몇 년 사이 유력 인사들을 초청해 환대하고 명예욕을 자극하는 등 광범위한 영향 공작을 적극 추진해 왔다는 것이다.

문제는 오씨 월북이 자신의 계산된 입북이건 영향 공작 탓이건 이 사건이 특정 정당을 겨냥한 황 파일과 연계한 편향 수사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고, 특히 정부간 대화에 한계를 느껴 민간 주도의 이산가족 상봉 및 고향 방문을 추진해온 이북 출신 인사들과 진보적 통일관을 가진 인사들이 대거 친북·용공 주의자로 내몰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공안 당국이 오씨의 전화 통화 내역을 추적해 오씨가 7월 중순께 김대중 총재실 및 아태재단 이사장실과 20여 회 통화한 사실을 공개해 김총재의 사전 인지 혐의를 유포한 것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김총재가 오씨와 직접 통화한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데다 공안 당국도 통화 내역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에게 북한 공작금이 흘러들어간 것처럼 보이게 하며 압수한 오씨의 예금 통장 90여 개에서도 특이점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장승학씨는 김총재뿐만 아니라 각당 대선 후보들에게도 초청장을 보냈는데, 김총재로부터는 당시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고 말했다. 따라서 오씨가 어찌된 일인지 확인하려고 전화했을 가능성도 있다. 어쩌면 당의 고문인 오씨가 총재 비서실에 전화한 것을 문제삼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오씨는 야당에 잠깐 몸 담았을 뿐 기본적으로 친여 성향의 인사이고, 월북할 당시에도 평통 자문위원이었다는 사실이다.

오익제씨, 김영삼 대통령도 만났다

오씨는 한국전쟁 때 군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 영예인 화랑무공훈장을 받았고, 국방부 문관으로 활동했으며, 17년 동안이나 평통 자문위원을 지내면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평통 위원은 의장인 대통령의 평화통일 정책 자문에 응할 뿐만 아니라 대통령이 정례적으로 참석하는 평통 자문회의에서는 안기부의 북한 동향 보고가 제공된다. 게다가 장승학씨에 따르면, 오씨는 지난해 11월에도 통일 유관 단체 임원 자격으로 청와대에서 김대통령을 만난 것으로 전해진다. 김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이산 가족 상봉을 위한 전향적인 조처를 건의받고 이를 다른 어떤 정책보다도 우선 순위로 다루라고 통일원에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오씨는 통일원에 방북 신청을 냈으나 두 번이나 거부당해 더는 정부의 전향적인 조처가 나올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자의로 입북했을 가능성도 크다.

문제는 오씨 월북의 책임 소재를 떠나 그의 월북을 계기로 일부 공안 당국과 극우 세력이 이번 사건을 황 파일과 연계한 기획 수사 쪽으로 몰아가는 음모가 싹트고 있다는 혐의이다. 그렇다면 장씨는 억울한 희생양인 셈이다. 야권으로 한정한 이같은 편향 수사는 형평에도 어긋날 뿐더러 자칫 여권에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뜨거운 감자’이다. 그러나 만약 이 음모가 여야를 초월한 것이라면, 이는 정치권은 물론 우리 사회 전체를 사상 논쟁과 공안 분위기에 휩쓸리게 할 ‘판도라의 상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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