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도소의 '인권 창살'
  • 김 당 기자 ()
  • 승인 1995.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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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적 행형 제도로 ‘인권 사각지대’
한국 교도소만큼 일제의 잔재가 남아있는 곳도 드물 것이다. 감방의 구조와 사동의 배치는 물론 거기서 쓰이는 행형 징벌 도구와 쓰임새마저 판박이처럼 흡사하다. 한국과 일본 양쪽의 교도(형무)소에서 징역을 산 사람은 드물겠지만, 출소자들이 책으로 본 일본의 감옥은 한결같이 한국의 교도소와 그 실태가 “놀라우리만큼’ 똑같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일본인 화가 노나카 히로시씨가 저술한 <일러스트 감옥 사전>과 <일러스트 일기>에 드러난 일본 교도소 모습은 한국의 그것과 매우 닮아 있다. 이 화가는 사진 촬영이 허용되지 않는 감방의 인권 실태를 사실적으로 고발하기 위해 일부러 징역살이를 한 뒤에 수백 장의 스케치와 글을 담은 책을 두 권 펴냈다. 집필권을 제한 받는 한국의 감방 실정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한국의 감방은 여전히 성역이다. 그러나 이 두 권의 일본책은 그 성역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 기회를 뒷받침하는 것은 출소자들과 전·현직 교도관들의 생생한 증언이다. <시사저널>은 유서 사건의 강기훈씨(32), 경동산업 노동자 박선태씨(32), 서울대 부총학생회장 출신 조형곤씨(28), 군복무중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감된 박영생씨(26) 등 시국사범 출소자 4명(왼쪽 사진)과의 집단 인터뷰와, 안동 교도소에서 근무하다 최근 교도소의 실상을 일지 형태로 고발한 <범털과 개털>이라는 책을 펴내고 사직한 박갑로씨(35), 수도권의 한 구치소에 근무하는 20년 경력의 ㄱ씨 등 전·현직 교도관 2명과의 개별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감옥을 들여다보았다. 육군 교도소를 포함한 교도소 일러스트는 국내 최초로 시도하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교도소 감방을 생각할 때 창살로 막힌 폐쇄 공간과 어둠침침한 분위기 그리고 창문으로 비치는 한 줄기 빛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감방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캄캄한 곳은 아니다. 오히려 감방은 바깥 세상보다 밝다. 바깥 세상은 불이 꺼져도 감방은 하루 24시간 형광등이 켜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빵’에 처음 들어간 사람은 그 밝음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는다. 밤이건 낮이건 불이 켜져 있어 좀처럼 잠을 이루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감방 생활을 오래 한 `‘빵잡이’들은 밝은 세상에 나와서 다시 불면증에 시달린다. 불을 켜놓지 않고서는 쉽게 잠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독거 생활을 오래 한 장기수들은 빛에 무척이나 민감하다. 바깥 세상과의 유일한 통로인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한 줄기 빛은 이들이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생명의 빛이다. 그래서 장기수들은 대개 바람에 실려와 창틀에 얹힌 이름 모를 씨를 틔워, 빛으로 가꾼 창틀 화단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다.

빛의 민감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교도관들은 장기 독거수 방의 창문을 봉쇄해 이를 징벌 수단으로 쓰기도 한다. 공안수가 많아 서울 영등포 교도소와 함께 전국적으로 `‘악명 높은’ 대전 교도소도 과거에 징벌 수단으로 창문을 막았다가 당시 15사 장기수들이 ‘빛을 보고 싶다’는 목표 하나로 목숨을 걸고 단식 투쟁을 벌이자 창문 가리개를 떼어낸 적이 있다.

그런데 최근 영등포 교도소에서 다시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독거수 감방의 창문을 철판으로 가로막은 것이다(45쪽 기사 참조). 물론 교도소측에 따르면 이는 징벌 수단이 아니라 `‘자살 방지용’이다. 그러나 교도관들도 인정하듯, 교도관들이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지켜도 죽기로 작정한 사람의 자살을 막을 방도는 없다. 죽기로 작정한 재소자는 감방의 벽에 머리를 부딪뜨릴 수도 있고, 접시물에 코를 박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영등포 교도소측이 독거수 감방의 창문을 봉쇄한 데는 그럴 만한 사유가 있다.

영등포 교도소서 2명 폭염 못견뎌 사망

지난해 여름 영등포 교도소에서는 폭염 때문에 재소자가 2명 사망했다. 당시 이 사건을 특종 보도한 인권 전문 팩스 신문 <인권하루소식>(발행인 서준식)에 따르면, 이종식씨(19)는 독거 수용중인 징벌방 창틀에 목을 매 자살했고, 또 다른 희생자인 견정삼씨(49)는 장애인 수용사동인 8사에 독거 수용된 상태에서 작업 준비를 하다가 쓰러져 사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대한변호사협회는 안상수·차병직 두 변호사에게 `‘영등포 교도소 재소자 사망사건 조사결과 보고서’를 내게 하고, 교도행정 업무 개선을 촉구하는 서한을 법무부장관에게 보냈다.

두 변호사의 조사 보고에 따르면, 이씨의 죽음은 검찰과 교도소측 주장대로 자살임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으나, 열악하고 가혹한 교도소 환경이 이씨의 자살 원인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갖게 한다. 당시 이씨는 사고 발생 하루 전인 7월19일 같은 사방의 재소자 2명과 싸운 것이 발각돼 철제 수갑과 포승으로 결박 당한 채 징벌방에 분리 수용되었고, 수용된 지 하루 만에 순찰중인 교도관에게 목맨 시체로 발견되었다.
변협의 조사 보고에 따르면, 당시 이씨는 협소한 시설에서 상당한 이유도 없이 포승 결박과 수갑을 채워 감금 당하고, 그 상태에서 식사와 생리 현상을 해결해야 했다. 이씨가 수용된 징벌방(일반 독거방)의 넓이는 약 0.78평(폭 1.2m, 길이 2m) 정도로, 바닥은 목재로 되어 있고 창문(가로 62㎝, 세로 35㎝)은 지면으로부터 약 2.5m 높이에 설치되어 있다.

일반적인 징벌 수용자의 독거실 수용 실태를 보면, 수용 기간은 1개월 정도이고 식사 또는 대소변 때도 포승과 수갑이 채워진다. 이씨가 수용된 당시의 기온은 최저 섭씨 26.2도~최고 34.2도였다. 징벌방은 단지 방충망이 달린 아크릴 유리창을 통해 환기가 가능할 뿐이어서 이씨는 살인적인 무더위에 시달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견씨는 당시 영등포 교도소 장애인 수용사동인 8사에 독거 수용된 상태였다. 견씨는 사망 당일 낮 12시께 작업을 나가려던 순간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했으나 도착했을 때는 이미 뇌사 상태였다. 8사의 경우 높이 20㎝, 가로 30㎝ 정도의 구멍 하나만이 복도 쪽에 뚫려 있어 공기가 거의 통하지 않아 실내 온도가 무척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견씨의 경우 평소에 고혈압과 심장질환을 앓고 있었으므로 이처럼 높은 실내 온도가 사망을 촉진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두 사건은 교도소 내의 자의적인 징벌 관행과 독거 수용의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내 준다. 특히 이씨의 경우, 징계위원회의 징계가 확정되기도 전에 온몸이 결박당한 채 독거실에 수용된 것은 종전의 악습이 그대로 되풀이되고 있는 증거인 셈이다. 또 수갑·포승·족쇄 같은 징계 도구(계구)를 사용할 때는 계구사용허가부에 기재하여 교도소장의 허가를 받도록 규정돼 있으나 이같은 절차는 대개 `사후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전해진다.

“통기구 없는 먹방, 교도소마다 4~5개 있다”

출소자와 교도관들에 따르면 징벌방 중에는 일반 독거보다 더 심한 엄정독거방(일명 먹방)이라는 것이 있다. 먹방 수감자에게는 사형수에게 채우는 가죽 수갑을 채우는 것이 보통인데, 먹방은 복도와 접한 식구통을 제외하고는 공기가 통할 구멍이 전혀 없어 무더위 속에서 포승과 수갑으로 결박된 먹방 수용자는 식구통에 코를 박고 헐떡거리며 숨을 쉬게 된다. 교도관 경력 20년인 ㄱ교도관에 따르면, 원래의 감방 안에 또다른 방을 만든 이중 방인 먹방은 5공화국 초기에 만들어졌는데 전국 교도소마다 4~5개가 있다. 지난해 9월 교도관 5명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감사원 부정방지대책위원회가 펴낸 <행형 부조리 실태 및 방지 대책>(대표집필 박찬운 변호사)에서도 먹방의 존재는 교도관들한테서 확인된다.

그러나 교도소나 법무부 측은 먹방의 존재를 한번도 인정한 적이 없다. 또 교도소나 법무부 측은 교도 행정의 기준이 되는 행형법 및 시행령, 시행규칙을 제외한 훈령, 규칙, 지침 등이 대외 비밀이라는 이유로 이를 비공개하고 있다. 결국 징벌방에서의 재소자 사망 사건은 대외비라는 이유로 자의적인 징벌이 은폐되고 있는 현실 아래 발생한 것으로, 밀실 행정의 병폐를 그대로 드러낸 셈이다.
법무부가 지난 4월1일 전국 30여 교도소에 지시한 `‘자비 부담 물품 공급관리 개선대책’ 지침 또한 자의적인 행정편의주의의 대표적 사례이다. 최근 면회자들에 따르면, 대부분의 교도소가 현재 이 지침을 면회실 옆의 구매물품 반입 창구 옆에 붙여놓고 구매품 반입을 제한하고 있다. 이같은 조처로 대부분의 교도소에서 그동안 재소자들이 자비로 구매하던 꽁치 통조림, 무말랭이, 깐마늘, 훈제 돼지고기, 고등어 통조림 등 수십 가지 부식류가 완전히 금지돼 자비 구매 품목이 절반 가량이나 줄어든 상태이다.

법무부는 이 조처에 대해 ‘그동안 각 교도소는 행형법 22조 1항, 동 시행령 91조에 따라 재소자 자비 부담으로 부식 등 물품을 판매했으나, 업무가 번잡하고 고기류 등 일부 품목이 변질되어 재소자의 건강을 해칠 염려가 있어 공급 품목을 대폭 축소 조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소자와 가족들은 이같은 조처가 교도소 현실을 외면한 탁상 행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특히 서울 구치소같이 비교적 규모가 크고 시설이 좋은 곳이라면 몰라도 수용 인원이 적고 시설이 열악한 일부 지방 교도소의 경우 구매 물품 자체가 제한돼 있고, 교도소가 제공하는 음식만으로는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또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등 재야 단체는 `‘재소자 건강’은 핑계일 뿐이고 실제로는 구매 품목이 많을수록 관리하기가 귀찮고 구매와 관련한 비리 소지가 크기 때문에 내린 행정편의주의라고 반발하고 있다. 민가협 남규선 간사는 “비록 재소자일망정 자기 돈 내고 음식을 사먹을 권리마저 빼앗을 수는 없다. 더구나 행형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규정된 자비 부담 구매 물품을 자의적인 지침으로 제한하는 것에 대해 법적 대응을 강구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당국 “자비 구매 제한은 비리 막기 위한 것”

재야 및 인권단체에서는 법무부가 이같이 조처한 배경을 지난해 추석 때 서울 구치소에서 터진 통닭 사건에서 찾고 있다. 민가협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구치소에서는 `‘추석 특식’으로 삶은 통닭 3천여 마리를 팔았는데, 이 중 절반이 곰팡이가 슬었거나 아주 차가운 상태였다. 이를 먹은 재소자 50여 명이 집단 식중독을 일으키자 일부 재소자들이 문제를 제기해, 당시 이 구치소 구매 담당 관계자들이 문책을 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교도행정 당국도 할말은 있다. 지난 2년 간의 개혁과 사정 작업으로 교도소·구치소의 인사 비리 등 부정이 많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비리 소지는 여전히 널려 있다. 이를테면 행형 시설 내의 구매, 사취(사식 취장), 용도 구입 등 이른바 이권 부서로 배치되는 것과 관련된 비리의 경우, 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라진 것은 아니다. 특히 교위(주임) 이하의 하위직일수록 이권 부서로 가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구매 품목은 교정협회가 정하여 납품하는 부분과 소장이 정하고 일반 업자로부터 납품 받는 부분으로 나뉘는데, 대개는 협회가 대부분의 물품을 정하고 과일·채소류는 교도(구치)소 소장이 업자를 정한다. 따라서 협회가 정하는 물품을 납품하는 업자는 으레 로비를 하게 된다.

소내에서 따로 구매하는 품목(과일·채소·반찬류)은 50여 가지인데, 그날그날 시세가 다른 품목이 많아 업자와 짜고 이중 장부를 만들어 차액을 횡령하는 경우도 있다. 수용 규모가 3천5백~4천명쯤인 서울 구치소의 경우 구매 금액은 하루 평균 1천5백만원(1년 54억원) 이상이며, 규모가 적은 영등포 교도소도 하루 5백만원 이상이다. 이렇게 많은 돈이, 그것도 현금으로 오가며 통제마저 미흡한 상태이기 때문에, 행형 시설의 구매 부서는 처음부터 비리가 생길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사취의 경우에도 사정은 비슷하다. 납품업자들은 보통 계약금의 5%쯤을 사취·구매 주임에게 건네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테면 서울 구치소의 경우 명절 때 쇠고기· 통닭·케이크 등 교정협회 목록에서 제외된 특별 품목을 판매하면서 차익을 남기기도 하는데, 평소에 볼 수 없는 색다른 음식에 대한 재소자들의 수요는 폭발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협회의 관리에서 제외되는 품목이 많을수록 부정 소지는 크다.

청원서 내면 미군은 본국행, 한국인은 독방행

최근 전국 교도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자의적 조처들은 전근대적인 행형 제도의 실상을 드러내 준다. 그것을 요약하면 결국 ‘그것이 빛이건, 공기이건, 통닭이건 문제의 소지가 있으면 일단 막고 보자’라는 것이다. 한 출소자는 “통닭에 문제가 있으면 통닭을 위생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지 무조건 막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열악한 행형 환경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다”라고 꼬집어 말했다. 그러나 전국의 교도소가 다 이런 식이다. 문제가 생기면 원인을 분석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기보다는 막고 걷어내면 된다는 식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일제의 유산인 엄벌징계식 교도행정과 일본의 감옥법을 답습한 행형법 때문에 발생한다. 아시아 최대의 중구금 시설이라고 자랑하는 대전 교도소 신건물 또한 일제가 지은 서대문 형무소를 그대로 본뜬 것이다.

구금과 차단의 성역에서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아니 예외도 있다. 교정 당국이 자랑하는 국내 유일한 개방 교도소인 천안 교도소는 윤금이씨 살해범 마이클 이병 같은 ‘치외법권자’에게는 개방돼 있다. 마이클 이병은 한국에서 가장 좋은 개방 교도소에 있으면서 “한국 교도소에 있으면 생명에 지장이 있다”라는 청원서 한장으로 본국으로 이감되었다. ‘미국 정부가 신병을 요청하면 한국 정부는 이를 고려해야 한다’는 불평등한 한미행정협정 때문이다. 반면 거의 같은 시기에 대구교도소에 수감중인 강용주씨(34·구미학생 사건)는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청원서 한장으로 안동교도소 6사 중층 독거방에 강제 이감되었다.

한국이 자랑하는 대전 교도소 15사에는 한 노인이 있다. 비전향 장기수 김선명. 그 안에서의 이름은 3579번이다. 그는 44년째 옥살이하는 세계 최장기수이다. 전쟁중(51년 7월5일) 간첩혐의로 체포돼 아직 한번도 면회가 허용된 적이 없다. 그러니 사진이 있을 리 없다.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가 선정한 양심수이다. 민가협은 지난해 자의적 구금 사례로 유엔인권위에 제소하려 했으나 서류에 붙일 사진을 구하지 못했다. 교정 당국은 비전향 장기수에 관한 것은 모든 것이 비밀이라고 거절했다. 그래서 옥중 동지들의 증언을 토대로 그린 초상화가 그가 바깥 세상에 내보낸 유일한 흔적이다. 그만큼 한국 교도소는 ‘갇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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