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도쿄 지자체 운영 수준 비교
  • 최영재기자 ()
  • 승인 1996.08.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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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도쿄 지자체 운영 수준 대비/정치·경제·문화 중심지 닮은꼴… 행정 여건과 교통·환경 문제 해법은 비교도 안돼
 
서울시와 도쿄도는 닮았다. 두 도시는 똑같이 천만이 넘는 인구를 품고 있다. 산간 도서 지역의 27시(市), 6쵸우(町), 8손(村)을 뺀 평탄한 시가 지역 23개 자치구만 놓고 보면 도쿄도는 서울시와 면적도 비슷하다. 정치·경제·사회·문화 중심지이고 역사가 오래된 고도(古都)라는 점도 닮은꼴이다.

그러나 서울과 도쿄는 다르다. 과밀로 생기는 도시 문제를 똑같이 안고 있지만 이를 푸는 방식과 수준은 다르다. 이는 하루에 약 2천7백만이라는 비슷한 통행 인구를 가지고 있는 서울과 도쿄가 교통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서울에서는 대중 교통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면서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한 승용차가 교통난을 부채질하고 있다. 수송 분담률이 14.5%밖에 안되는 승용차가 도로 통행량의 65% 이상을 차지해 시민의 발목을 잡고 있다. 서울은 이처럼 비합리적인 교통 구조를 가지고 있다.

도쿄도, 교통 인구 86.7% 전철이 수송

도쿄도는 교통 문제를 전철로 해결하고 있다. 도쿄도 전역을 거미줄처럼 잇는 전철은 교통 인구의 86.7%를 실어 나르고 있다. 지상 교통 여건은 오히려 도쿄가 서울보다 열악하다(표 참조).

도쿄의 자동차 수는 서울보다 2.5배 정도 많은데 도로율은 서울보다 낮다. 그래서 도쿄는 승용차 통행을 철저히 억제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시내에는 차를 댈 공간이 거의 없고, 변두리 주택가 골목길에도 주차할 수 없다. 만약 주차했다가 견인이라도 당하면 우리 돈으로 최소한 20만원이 넘는 벌금을 물어야 한다. 개인 주차장이 없으면 아예 차를 살 수 없는 곳이 도쿄이다.

도쿄에서는 차보다 사람이 우선이다. 운전자가 지켜야 하는 교통 법칙은 서울보다 까다롭고 엄격하다. 그러나 보행자에게 적용하는 법은 서울보다 관대하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질서 잘 지키기로 유명한 도쿄 사람은 무단 횡단을 밥 먹듯이 한다. 도쿄도 아다치구에 사는 재일 교포 이성아씨(24)는 “사실 도쿄 사람은 무단 횡단이 불법이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아무 곳에서나 길을 건너더라도 자동차가 정지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경찰관도 걷는 사람을 처벌하는 경우가 드물다”라고 말했다.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도 서울과 도쿄는 다르다. 두 도시의 쓰레기 정책은 눈여겨볼 만하다. 쓰레기를 처리하는 방법은 크게 매립과 소각 두 가지가 있는데, 현재 서울은 주로 매립 처리하고 있다(95년 말 현재 매립 70.2%, 소각 0.5%, 재활용 29.3%). 문제는 서울에 더 이상 쓰레기를 묻을 곳이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서울시는 지난해부터 자치구마다 소각장을 하나씩 만드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 주민의 격렬한 반대로 부지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자기 지역에 쓰레기 처리 시설을 만드는 것을 반대하는 현상을 도쿄는 이미 경험했다. 71∼74년 도쿄도의 고토구와 스기나미구가 벌인 ‘쓰레기 전쟁’이 대표 사례이다. 도쿄도에서 나오는 쓰레기의 대부분을 처리하는 광역 매립장을 안고 있던 고토구는 71년부터 도쿄도에 불만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72년 연말 도쿄도는 스기나미구에 임시 쓰레기 적치장을 설치하려 했다. 연말연시는 평소보다 쓰레기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교통량을 줄이기 위해 1t 쓰레기차를 3t 쓰레기차로 바꿔 운행하는 장소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에 스기나미 주민들은 임시 적치장을 실력으로 저지하는 소동을 벌였다. 분노한 것은 고토구 주민들이었다. ‘우리는 광역 매립장도 참는데 그 정도도 참지 못하느냐’는 것이었다. 고토구는 스기나미구의 쓰레기차를 광역 매립장에 들어올 수 없도록 했다. 사태가 계속되자 스기나미구에는 쓰레기가 산더미같이 쌓이고 썩는 냄새가 진동하였다.

 
이 사건 이후 도쿄도는 쓰레기를 자기 지역에서 처리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주민을 설득해 구마다 쓰레기 소각장을 세웠다. 물론 최대한 공해를 방지하게 만들고, 이 과정에 주민 대표를 참석시켰다. 현재 도쿄도는 쓰레기의 60%를 태워서 처리하며, 각 자치구의 소각 공장은 태울 때 나오는 열을 이용해 발전까지 하고 있다.

서울시장, 인사권·조직권 거의 전무

자치단체를 평가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법·제도·관행 같은 행정 여건과 역량이다. 특히 인사권과 조직권은 지방 자치단체에게는 필수 권한이다. 우리나라는 이들 권한이 법률에 지나치게 세세하게 규율되어 서울시장 재량권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래서 서울시는 지난 7월1일 펴낸 <민선 1년 백서>에서 내무부장관이 가지고 있는 간부 공무원(3급 이상) 임용권을 서울시장이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도쿄도는 간부 공무원 임용까지 원칙적으로 인사위원회가 맡고 있다. 인사위원회는 인사 행정을 민주적으로 처리하기 위하여 만든 행정위원회이며, 도의회와 각 기관장으로부터 독립된 전문 집행 기관이다. 여기에는 임기 4년인 위원 3명이 있고, 의사 결정은 합의제로 한다. 그런데 위원 선임권이 지사에게 있기 때문에 도쿄도지사는 간접적이지만 도청 직원 인사권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행정 기구와 정원을 조정하는 권한에도 차이가 있다. 한국은 대통령령으로 국(局)과 과(課) 수를 명시하고 있다. 그 때문에 대통령령을 바꾸지 않고서는 서울시장이 행정 기구와 정원을 조정할 수 없다. 그러나 도쿄도 지사는 상당한 정원 조정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일본 자치법 제158조와 도쿄도 조직 조례는 ‘지사가 국을 새로 만들 때(법과 조례가 정한 범위를 넘는 경우)는 자치대신과 협의해야 하지만 국 산하에 부와 과를 신설·폐지하는 것은 지사 권한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도쿄도는 재정 적자를 극복하기 위해 지사 권한으로 도직원을 79년 2천6백69명, 83년 9천2백55명, 84년 7백90명, 85년 4백66명, 86년 1천8백98명 삭감한 사례가 있다.

 
교육과 경찰 행정에서도 큰 차이


교육과 경찰 행정 또한 서울과 도쿄의 큰 차이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나라는 지방 교육 사무를 교육부 산하의 시·도 교육청에 배분하고 있기 때문에 서울시는 지방 교육 사무에서 완전히 소외되어 있다. 지방 경찰도 마찬가지로 서울시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의사 결정 구조를 가지고 있다.

도쿄도에서는 교육 행정을 도 산하 교육위원회가 맡고, 경찰 행정은 공안위원회가 담당한다. 그러므로 실제로는 지사가 교육과 경찰 행정을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지사가 두 위원회의 인사권과 예산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과 도쿄가 이같은 차이를 보이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두 나라의 사회·경제 수준이 다르고 지방 자치 역사가 다르기 때문이다. 1백8년 역사를 가진 도쿄 지자제와 1년밖에 안된 서울시의 지자제를 견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재정경제원 이호철 서기관은“도쿄도를 거쳐간 여러 지사들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겠지만, 모두 다 해당 시기가 요구한 역할을 원활히 수행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의 서울을, 중앙 정부의 독주를 견제하고 주민 자치를 실행하는 신기원을 열었지만, 석유 위기 뒤 방만한 재정 운영으로 재정 파탄을 가져온 미노베 지사 시절(67~79년)의 도쿄에 비유했다. 전문가들은 사회·경제 수준과 역사가 다른 서울과 도쿄를 계량적으로 빗대는 것은 무리지만, 도쿄와 서울의 도시 정책 차이점과 정책 우선 순위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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