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청바지 시장 단물은 외국 상표가 다 빼먹는다
  • 金芳熙 기자 ()
  • 승인 1995.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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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천억 시장의 45% 점유, 고가품은 모두 외제…국산 73%, 상표도 없는 ‘비지떡’
‘사랑과 평화’라는 록그룹이 70년대에 부른 <청바지 아가씨>라는 노래 가운데는 이런 구절이 있다.‘청바지의 어여쁜 아가씨가 날 보며 윙크하네. 어~허 이것 참 야단났네’. 상대방 여성이 청바지 차림이라는 이유로 뭇 사내가 가슴을 두근거리던 시절의 풍속도다.

청바지를 즐겨 입던 그 아가씨는 더 이상 청바지를 즐겨 입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노래가 불릴 당시의 아가씨들은 이제 청바지가 어울리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어 버렸기에.

그렇다고 청바지가 한물 갔다고 생각하면, 당신의 패션 감각은 그야말로 시대착오적이다. 요즘 아가씨들이 다시 전처럼 청바지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똑같이 청바지를 자기들의 젊음과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다. 아니 지금은 성별과 나이를 불문하고 청바지가 가장 인기 있는 캐주얼 웨어 품목이 되어 가고 있다. 93년께 한때 주춤하기도 했던 청바지 시장이 빠른 속도로 다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청바지 아가씨>라는 노래가 최근 리메이크돼 히트한 것은 우연의 일치였을까.

해마다 12%씩 10년간 성장 예상

올해 청바지 시장의 규모는 7천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청바지 수로 환산한다면, 1천1백40만개 가량 된다. 우리 국민 4명 가운데 한 사람은 청바지를 하나씩 갖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지난해에 견주어 18% 증가한 규모이다. 청바지의 ‘복권’으로 청바지 업계가 크게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청바지의 인기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본다. 앞으로 10년 간은 매년 12% 정도의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이런 성장 속도는 같은 기간 7%대 성장에 머무를 것으로 보이는 의류업계에서는 유난히 돋보이는 것이다.

청바지는 비교적 유행을 덜 타는 의류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왜 유독 청바지가 다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을까. 전문가들은 경제적인 관점에서 두 가지 이유를 꼽는다. 청바지를 즐겨 입는 나이층이 크게 늘고 있다는 점과, 청바지를 다른 옷에 다양하게 맞춰 입는다는 점이다. “지금은 검은 정장 수트에 물 빠진 청바지를 받쳐 입는 30대가 많다.” 신세계백화점 마케팅부 김기대 부장이 청바지를 입은 30대를 가리킨다. “나이나 패션 감각으로 볼 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일 아닌가.” 더욱이 40대들도 70년대에 처음 접한 청바지를 여전히 즐겨 입는다. 이제 청바지는 10대와 20대의 전유물만은 아닌 것이 분명해진 셈이다.

그러나 청바지 시장의 급성장은, 청바지 제조업체의 호황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국내외의 수많은 업체가 이 시장에 뛰어들어 생사를 건 싸움을 벌이기 때문이다. 이 땅에 최초의 청바지 붐이 불었던 70년대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청바지는 국내로 밀반입된 외국산이었다. 80년대 들어서면서 뱅뱅·핀토스·화이트호스 같은 국산 상표 제품이 청바지 시장을 휩쓸기 시작했다. 이런 추세는 80년대 중반까지 계속됐으나, 89년을 고비로 외국 유명 제품들에 자리를 내줘야 했다. 당시 호경기와 해외 여행 자유화 영향으로 청바지 시장이 크게 확대된 데다가, 이를 노린 외국 상표 제품들이 대거 상륙한 것이다.

92년께부터는 고가의 개성적인 청바지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 이듬해부터는 유통 시장 개방 2단계 조처로 일정 규모의 외국 점포 설립이 자유화되면서 외국 제품이 또 한 차례 쏟아져 들어왔다. 바야흐로 청바지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현재 전체 청바지 시장에서 외국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45%이다. 외국 제품 가운데서 순수한 수입품은 15%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외국 청바지 제조업체에 로열티를 지불하고 국내에서 생산하는 제품이다(표1 참조).

외국 업체들은 품목을 선정하거나 옷을 체형에 맡게 고치는 일, 점포를 확보하는 일을 국내 회사가 맡아 해준다는 이점 때문에 로열티를 받고 국내 생산을 허락하는 경향이 있다. 잘 알려진 상표를 활용해 마케팅 비용을 줄일 수 있어서 우리 업체로서도 이 생산 방식을 선호한다. 업계에서는 외국 업체에 지불하는 로열티 규모가 매출액의 3∼8% 정도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나머지 국산 제품 대부분은 상표가 없는 것들이다. 국산 제품의 27%만이 이름난 상표 제품인데, 이들도 4만원 미만 중저가가 대부분이다.
치열한 격전을 치르고 있는 청바지 업체들의 유일한 생존 전략은 차별화다. 남과 다른 품질로 남다른 이미지를 소비자에게 전한다는 전략이다. 청바지는 청바지 섬유 소재와 만듦새, 마무리에서 차이가 두드러진다. 리바이스코리아사 윤상영 부사장은 “제품을 차별화하기 위해서는 품질 좋은 천과 물 빼는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국내외를 불문하고, 유명 상표의 청바지 천은 대부분 수입된다. 이 가운데 60%가 미국산이다.

청바지 제조업체들의 차별화 노력으로 현재는 대부분의 상표 제품이 가격대 별로 뚜렷이 세분화돼 있는 상태다. 가장 싼 2만원대 상표들이 있는가 하면, 8만원을 웃도는 최고급 상표 시장도 형성돼 있다. 가장 고가 제품으로는 유럽계 상표인 페르(Ferre)가 있고, 대부분의 미국산 청바지도 고가 제품군을 형성하고 있다. 저가 상표 대부분은 에드윈이나 뱅뱅 같은 국산 상표 제품이다(표2 참조).

업체들의 주장이 각기 달라 상표별 시장점유율을 추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시장 판도가 대충 정해졌다는 것이 지배적인 분석이다. 이른바 8대 청바지 업체로 게스(Guess) 캘빈클라인(Calvin Klein) 리바이스(Levis) 겟 유스트(Get Used) 블루패밀리(Blue Family) 엠에프지(MFG) 인터크루(Intercrew) 베이직(Basic)이 꼽힌다. 상표의 국적을 살펴보면, 상위 4개 상표가 미국산이고, 블루패밀리와 MFG는 유럽산, 인터크루는 일본산이다. 국산 상표로는 유일하게 GV사의 베이직이 포함돼 있다. 이 가운데서도 게스가 가장 인기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제품 복병으로 등장

소비자들이 미국 상표를 선호하는 것은 미국 상표의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미국 제품들은 청바지 형태가 비교적 단순하고 실용적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어 앞으로도 미국산의 강세가 이어지리라는 것이 업계의 추정이다. 다만 국내에 들어온 지 얼마 안되는데도 두드러진 강세를 보인 일본 제품이 다크호스로 등장할 공산이 크다. 국내 소비자 취향에 잘 맞는 일본 청바지는 앞으로 미국 제품 시장을 상당 부분 잠식할 수도 있다.

외국 청바지의 경우는 주로 백화점에서 팔린다. 아직도 백화점은 의류 판매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리만큼 중요한 유통 경로이다. 청바지 제조업체들은 고급스러운 제품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백화점을 선호하는데,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 단점이다. 전통적으로 업체들은 백화점 판매액의 30∼35%를 수수료로 부담해야 한다.

그래서 새롭게 주목받는 곳이 전문점이다. 한 매장에서 다양한 상표의 청바지를 구비해 놓고 있는 것이 전문점이다. 지난해부터 등장한 이런 유형의 점포들로는 논노의 지오와 쌍방울의 인터진을 들 수 있다. 청바지 제조업체들인 한주·삼도·E-랜드·일경도 모두 이런 개념의 전문점 개설을 서두르고 있다.

더욱이 96년이면 유통 시장이 완전 개방돼 외국 업체가 제한 없이 직접 대리점을 개설할 수 있게 된다. 현재는 한 업체가 3천㎡ 이하의 점포를 20개 이내에서 운영할 수 있다. 새로운 유통 경로를 통해 청바지 전쟁이 격화되면, 청바지를 수용하는 세대와 방법은 더욱 다양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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