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北行 다음 순서는 평양에 무역관 개설
  • 李敎觀 기자 ()
  • 승인 1995.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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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회담으로 실마리…남북한간 실무 합의 이미 끝나
북한 국제무역촉진위원회 이성록 위원장이 일본을 방문해 쌀을 제공해 달라고 요청한 때는 지난 5월 말이다. 그 뒤 일본 정부가 한국과 상의하지 않고 그같은 요청을 신속히 수락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 나가자 한국 정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승수 대통령 비서실장은 일본의 유명한 정치 평론가 다나카 나오키씨에게 서신을 띄웠다. 일본 정부의 의도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다나카 나오키씨는 일본 정부가 북한에 쌀을 제공한다는 정보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그는 평소 절친한 사이인 <아사히 신문> 정치부장에게 의견을 구했다. <아사히 신문> 정치부장은 정치부 기자들을 동원해 일본 정부와 연립 여당의 의도를 알아보았다. 그 결과 북한 노동당 비서이자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인 김용순이 일본 자민당 가토 고이치 정무조사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6월20일께 일본의 네 군데 항구에서 쌀을 실어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당시 김용순의 전화를 받은 가토 회장은 6월8일 일본 정부내 쌀 제공의 실무 주역인 외무성 가와시마 아주국장과 식량청 우에노 차관과 협의했다. 이들은 한국 정부의 양해가 없이 북한에 쌀을 제공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그러나 북한의 절박한 식량 사정을 고려해 쌀 30만t을 나고야를 비롯한 네 항구에 미리 준비하기로 했다는 결정을 김용순에게 통보했다. 이상이 <아사히 신문> 정치부가 취재한 당시 일본 정부 및 연립 여당의 입장이었다.

다나카 나오키씨는 이러한 취재 내용을 중심으로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는 <아사히 신문> 서울지국을 경유하여 극비리에 한승수 실장에게 전달됐다. 정부의 대북 문제를 총괄하고 있는 그에게 이 보고서는 많은 도움을 주었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국가안전기획부를 비롯한 국내 대북 정보기관들은 일본 정부와 연립 여당의 대북한 쌀 제공과 관련한 입장을 정확하게 읽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가토·김용순, 남북 회담 ‘형식적 개최’ 밀약

그 보고서가 한실장에게 전해진 날짜는 6월10일이다. 그러나 그 전에 이미 북한은 대한무역진흥공사(무공) 홍지선 북한실장을 통해 북경에서 남북한 당국자 회담의 가능성을 타진해 놓고 있었다. 한 일본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의 이같은 ‘양동작전’은, 가토 회장이 김용순에게 북한이 한국과 먼저 ‘형식적인’ 회담을 가져야 일본이 쌀을 제공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고 말하고 김용순이 이를 수락 한 뒤에 나온 것이다. 그 시점은 가토가 가와시마·우에노와 협의를 갖기 며칠 전이다.

가토와 김용순이 전화 통화로 북경에서 남북한 당국자 회담을 개최할 것을 합의한 때는 6월1~2일이다. 한편 북한이 홍지선 실장을 통해 한국 정부에게 북경 회담의 가능성을 타진한 시기는 6월2~7일이다. 당시 다른 문제로 북경을 방문하고 있던 홍실장은 북한 대외경제위원회 소속 인사들과 접촉하다가 갑자기 그같은 제안을 받았던 것이다. 이것이 홍실장이 부랴부랴 귀국해 통일원 등 관계 당국에 보고하게 된 경위이다.

결국 남북간 차관급 쌀 회담이 북경에서 열릴 수 있었던 것은 가토와 김용순 간의 합의 때문이었다는 것이 유력한 분석이다. 가토가 북한으로 하여금 ‘형식적으로라도 한국과 회담하라’고 권고한 까닭은 무엇인가. 그리고 김용순이 이를 받아들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근본적인 해답은 일본 자민당이 국내 정치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북한과의 수교를 서두르고 있으며, 북한도 일본과의 수교를 절실히 바라고 있다는 데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 북한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일본 자민당에서 대북 수교를 주도하고 있는 인물은 김용순과 핫라인을 가동하고 있는 가토 고이치 정조회장이다. 그는 북한에 대한 쌀 제공을 곧바로 북한과의 수교로 연결시킬 수 있는 호재로 파악했다. 그러나 한국의 양해 없이는 힘들다는 사실을 인식한 가토는 북한에 ‘형식적으로’ 남북한간 쌀 회담을 하라고 권유했던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의 남북 대화가 그러했듯이 비록 북경에서 남북 회담이 열려도 북한은 갖가지 이유를 내세워 회담을 무산시킬 것으로 믿었다.

이와 같은 배경 아래 6월17일 북경에서 개최된 남북한간 쌀 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나리라고 믿은 국내 북한 전문가와 외교 소식통은 거의 없었다. 1년여 만에 성사된 남북 당국자 회담을 북한측이 기술적으로 어떻게 무산시킬지가 관심이었다. 사실 북한은 지난해 7월 김일성이 사망한 직후 한국 정부가 조문 사절을 파견하지 않았다고 비난을 퍼부었었다. 북한이 ‘조문론’을 다시 제기해 회담을 무산시킬 것이라고 상당수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그러나 이러한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회담은 뜻밖에 성공적으로 타결되었다. 6월22일 남북 양측은 한국이 북한에 쌀 15만t을 무상으로 제공한다고 합의한 것이다. 한국측 수석 대표인 이석채 재경원 차관은 회담이 끝난 뒤 1차분 5만t은 이 달 말까지 선박을 이용해 나진항으로 수송하게 된다고 밝혔다. 2차분 10만t은 7월 중순 다시 회담을 가진 뒤 제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2차 회담의 시기와 장소는 7월15일 북경이 될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외의 부정적인 전망 속에 열린 북경의 쌀 회담이 전격 타결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상당수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어떤 난관이 있어도 이번 남북 당국자 회담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쌀이라는 곡물은 남북한의 주 식량이라는 점에서 한민족의 정서를 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정부는, 북한에 쌀을 제공하는 것이 교착 상태에 빠진 남북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신뢰를 구축할 계기로 판단했던 것이다.

북한도 한국과 관계 개선 의지 내비쳐

쌀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북한은 한국이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을 내세워 회담을 어렵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북한측은 한국이 쌀을 제공하려면 전량 민간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설령 그 쌀을 받더라도 쌀 포장지에 한국이라는 원산지를 표기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그런데 한국측은 북한측의 까다로운 요구를 모두 수용했다. 한 북한 전문가는 “이러한 한국의 태도는 어떻게든 회담을 성공시켜 남북한 관계 개선을 이루겠다는 의지의 산물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로지 한국 정부의 강한 의지 때문에 회담이 타결되었다고 보기에는 무리한 점이 있다. 북한이 한국 쌀을 받기로 결정한 것은 미국·일본과 수교하더라도 여전히 한국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북경 회담에 한국측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여한 한 정부 관계자는 “북한측이 매우 어려운 조건을 내걸면서 회담에 임하기는 했으나 어느 정도 한국과 관계를 개선하려는 의지도 엿보였다”고 말했다.

북한이 정말로 한국과 관계를 개선할 필요성을 인식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는 북한이 미국·일본과 수교를 하는 데 한국과의 관계 개선이 불가피하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무공 홍지선 북한실장은 “어차피 북한은 한국을 무작정 배제하고 미국·일본과 수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북한은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미·일과의 수교가 드러난 뒤로 늦추어 왔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북한이 미·일과 수교를 서두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북한은 미국보다 일본과의 수교에 더 집착한다. 수교가 이루어지면 막대한 전후보상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안기부는 와타나베 전 외무장관이 지난 3월 평양을 방문해 북·일 수교 때 1백20억달러의 전후보상금을 제공하기로 약속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밝힌 바 있다. 게다가 북한은 조총련의 막대한 동산 자금을 합법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 길이 뚫리기를 원하고 있다.

북한이 미국과의 수교를 바라는 이유는, 정치적으로 보면 미국과의 수교를 통해 국제 사회에서 더 이상의 고립을 막아보자는 데 있다. 그러나 경제적인 이유가 더 크다는 것이 홍실장의 지적이다. 북한은 나진·선봉 자유무역지대를 설치하면서 제한적으로 경제 개방을 했으나 외국 기업들이 투자를 꺼려 왔다. 외국 기업들은 북한이 서방과의 외교 관계가 없어 투자 보장이 안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은 미국과의 수교에 매달려 왔다는 것이다.

미·일과의 수교는 북한의 극심한 경제난을 해결할 돌파구가 된다. 때문에 북한은 체제에 위기를 가져다줄 수 있는 한국과의 경제 협력보다는 미·일과의 관계 개선에 주력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에게는 한국과의 관계 개선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경수로 제공에 필요한 자금을 한국이 부담하고, 게다가 한국과 미·일 관계의 특성을 고려하면 북한이 한국을 배제한 채 미·일과 수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평양 무역관은 한국 정부 연락사무소 될 것”

이 때문에 남북한 관계는 앞으로 상당히 진척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의 한 고위 소식통은 쌀 제공을 계기로 실마리를 찾은 남북한 관계 개선은 무공 무역관이 평양에 들어가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무공의 평양 무역관에 대해서는 이미 남북한 실무 합의가 모두 끝났다. 양측이 이를 대내외적으로 발표하는 것만 남은 것으로 안다. 이 작업은 무공 북한실이 전담해 왔으나 사실은 정부가 주도했다. 평양 무역관은 한국 정부의 연락 사무소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정부 소식통이 밝힌 대로 평양 무역관 개설은 지난 2년여 동안 청와대와 안기부의 주도 아래 무공 북한실이 전면에 나서 추진해 왔다. 청와대와 안기부의 목표는 북한이 미·일과 수교하기 전에 남북 관계를 개선해 양측이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단계까지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는 남북 관계가 경색되어 있는 상황에서 미·북한 및 북·일 외교 관계가 수립되면 한국은 앞으로 대북 관계를 개선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무공 북한실은 원래 무역관을 평양이 아닌 나진시에만 개설하려고 했다. 당시 북한이 한국과 외국 기업들의 투자 진출을 나진·선봉 자유무역지대에만 국한시켰기 때문이다. 만약에 사무실·주택·통신시설을 확보하기 어려우면 나진에서 가까운 청진시에 설립하는 방안도 고려했었다. 그러나 정부는 작년 10월 미·북한간 제네바 핵 협상이 타결되자 평양에 무역관을 개설하는 것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북한 핵 문제가 위기 국면에서 벗어난 이후 북한의 대미·대일 관계 개선이 드러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37쪽 기사 참조).

청와대와 안기부의 협조 아래 무공의 북한실은 이미 구축된 북한 인맥을 통해 평양 무역관 개설을 추진했다. 이러한 노력이 성과를 맺기 시작한 것은, 무공이 올해 초 북한 접촉선을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김정우 라인으로 바꾼 뒤였다. 현재 무공 북한실과 북한의 대외경제협력추진위는 남북한 상호 연락사무소 성격의 무역관을 개설하는 데 실무적인 합의를 모두 마친 상태다. 안기부의 한 관계자는 “북한이 미국·일본과 수교하기 이전에 평양 무역관이 설치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북한 전문가들은, 한국의 쌀 제공은 남북 관계개선을 위한 신뢰 구축에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이를 계기로 남북 관계는 남북 무역관 개설을 향해 행보를 가속화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 시기는 북한의 대미·대일 수교 시기와 맞물려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일본이 대략 7월이나 8월 쯤이면 북한과 수교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7월15일께 2차 남북 쌀 회담에서는 남북 정상회담과 무역관 개설 시기가 합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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