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기무사, 조직 관리 구멍났다
  • 김 당 기자 ()
  • 승인 1996.06.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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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비육사 출신 대립, ‘내부 비리’ 새나가…비리 폭로한 ‘작은 언론사’ 사찰·감시·위협
5·18 광주민중항쟁을 기제로 삼아 권력을 움켜쥔 보안사령관 출신 전직 대통령 2명이 재판을 받는 가운데 국군 기무사(사령관 임재문 중장)가 다시 흔들리고 있다. ‘요람을 흔드는 손’ 때문이다.

흔들림의 직접적인 발단은 <시사뉴스>(발행인 강신한)라는 격주간지의 연속적인 기무사 관련 보도이다. 이 주간지는 기무사 내부의 인권 탄압 사례를 고발한 77호(2월14일 발매) 기사에 이어 82호(5월14일 발매)에서는 임재문 사령관의 개인 비리에 초점을 맞춘 기사를 내보냈다. 그러자 관련 당사자인 박효준 준장(제1처장) 등 기무사측은 4월24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이 잡지 강신한 발행인과 이용만 사회부장을 서울지검에 고소했다. 그러자 <시사뉴스>측은 발행인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이 발부된 상황에서 5월3일 기무사의 인권 탄압과 언론 탄압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러나 이를 취재한 신문·방송은 한 줄도 이를 보도하지 않고 있다.

왜 신문·방송은 입을 다물고 있는가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왜 신문과 방송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일까. 거기에는 몇 가지 석연찮은 이유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은 보안을 생명으로 삼는 기무부대 조직의 특성에서 오는 사실 관계 파악의 어려움이다. 기무사측은 공식 발표문에서 민간인 사찰 및 언론 탄압 여부를 전면 부인했을 뿐만 아니라 <시사뉴스>와 그 발행인을 사이비 언론(사주)으로 몰아가고 있다. 기무사측은 관계 요로에 유포한 △발행인의 전과(전과 18범 혹은 29범) △기사를 미끼로 한 협박·거래 △기사 내용의 사실무근함을 들어 이를 ‘흔히 사이비 언론이 보여주는, 세인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대표적인 행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과 18범’ 같은 주장은 관계 기관에 확인해 보면 사실이 아님을 금방 알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무사측은 이 문제를 언론이 기사화하는 것을 막을 목적으로 사실(발행인 전과 기록)을 왜곡했거나 적어도 과장했음을 알 수 있다.
기사를 미끼로 한 거래·협박 주장은 양측이 팽팽히 맞서는 부분이다. 기무사가 70일 만에 <시사뉴스>를 고소한 사실이나, 비록 기무사의 회유와 협박 때문에 후속 보도가 늦어진 것이라고 해명하지만 <시사뉴스>측이 4호를 걸러서 석 달 만에 후속 기사를 실은 사실은 그 기간에 둘 사이에 어떤 거래가 있지 않았느냐 하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와 관련해 기무사의 한 관계자는 “후속 보도가 나오기 전에 강사장이 책을 사달라고 전화한 적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이 사건을 취재한 다른 언론사에도 비슷한 주장을 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기무사측은 그같은 주장을 입증할 증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강신한 발행인은 “4월24일 나를 고소하기까지 그들은 어떻게든 후속 보도를 막기 위해 먼저 내게 연락을 취했지 내가 그들에게 만나자거나 뭔가를 요구한 일이 없다. 77호를 발행한 이후 <시사뉴스>가 발행될 때마다 기무사 간부들이 ‘몇천 부씩 팔아주고, 광고도 잘 들어오도록 협조할 테니 이 선에서 끝내자’고 했다”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기무사측이 후속 보도를 막는 과정에서 강발행인과 접촉하며 나눈 대화 및 통화 내용을 기록한 녹음 테이프 같은 관련 증거를 <시사뉴스>측이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증거들에 따르면, 기무사측은 임재문 사령관의 개인 비리에 초점을 맞춘 후속 보도를 막으려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자 검찰에 고소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무근함을 근거로 한 까닭 없는 음해와 모략’이라는 기무사측의 주장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없지 않다. 이 주간지의 기무사 관련 기사(77·82호)가 모두 특정인(박효준 준장과 조헌규 대령·임재문 사령관)을 겨냥한 표적 보도라는 인상이 짙기 때문이다. <시사뉴스>측 또한 후속 보도가 봉쇄되는 과정에서 감정적으로 대응한 측면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눈길을 끄는 것은 이 주간지의 기사가 전적으로 까닭 없는 음해와 모략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른바 기무사 조직 내의 ‘세력 암투 및 대리전’ 의혹이다.
이같은 시각은 기무사 관계자들도 사석에서 대부분 인정하는 것이지만 기무사의 공식 발표에서도 그 한 자락을 내비쳤다. 즉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단행된 개혁 조치 시에 기무사를 떠난 일부 전직 부대원이 불만을 품고 사실을 왜곡되게 언론에 제보하여 세인의 이목을 끌기 위한 행태’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 기무사 관계자들은 더 구체적으로 “조직에서 정리(원복 또는 전역)된 일부 세력이 동향(충남) 출신인 강신한 발행인을 내세워 기사를 통한 대리전을 치르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즉 기무사 출신으로 사정 과정에서 쫓겨난 원복(원대 복귀 및 일반 부대 전출)·전역자들이 불만을 품고 ‘요람’을 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사뉴스>측도 문제의 발단이 된 기사(77호)의 말미에서 ‘문민 정부 출범과 함께 기무사 수뇌부는 개혁을 빌미로 하나회 출신 기무사 요원을 내쫓는 과정에서 자기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육사 출신 ㅂ·ㄱ·ㅇ·ㅁ 대령과 공사 출신 ㅈ대령 등 고급 간부들을 쫓아냈고, 이들은 지금도 조직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면서 명예 회복을 위해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라고 기술해 ‘기무사의 편협한 수뇌부’에 대한 공격적 기사(후속 기사)가 이어질 것임을 시사했다.

기무사측은 이에 대해 기사와 관련된 대령 5명의 인사 기록 카드를 제시하며 “개혁 과정에서 일부 부대원을 정리한 것은 사실이나 그들은 모두 하나회 관련이거나, 진급 청탁, 개인 비리 등 명확한 사유가 있어 자체 심의를 거쳐 처리했다”라고 해명했다. 그중 ㅂ대령은 기무사가 주장하는 대로 하나회 출신이다. 그러나 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일부는 비하나회 출신으로 억울하게 정리되어 명예 회복을 벼르는 인사도 있다. 또 이들 가운데 일부는 존안·감찰 카드 허위 조작에 의해 기무사에서 쫓겨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기무사가 ‘배후 세력’이라며 주목하는 인사는 일반 부대로 전출돼 전역 대기 중인 ㅁ대령이다. 기무사의 한 관계자는 그 근거로 강신한 사장이 기무사 참모장 이성범 준장과 감찰실장 주○○ 대령 등과 만났을 때 ‘억울하게 쫓겨난 ㅁ대령을 복권시키라’고 요청한 것을 지적했다.

ㅁ대령(육사 28기)은 전임 김도윤 사령관 시절 감찰실장을 지낸 인물이다. 20년 군 생활의 태반을 기무(보안)사에서 보낸 ㅁ대령은 하나회가 아니라는 이유로 주변에서만 맴돌다가 91년에 본부 5처장(당시 정보처장)을 지냈다. 그러다 92년 12월 노태우 정부가 마지막으로 군부 주요 보직을 자신의 인맥으로 채울 때 강릉지역 기무부대장으로 ‘유배’되었다. 본부에서 정치과장을 지낸 그가 지나치게 ‘정치적’이라는 이유였다. 실제로 그는 기무사에서는 보기 드물게 당시 민자당 김영삼 후보와 매우 가까운 사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바로 그 덕분에 그는 새 정부가 들어선 직후인 93년 3월 초 있었던 전격적인 기무사 개편 때 감찰실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해 이른바 1차 군 개혁을 지휘했다.

하지만 ㅁ대령은 그 해 10월 기무사 2차 개편 때 김도윤 사령관이 전격 경질되고 임재문 사령관(학군 3기)­송대성 참모장(공사) 체제가 들어서면서 대전지역 기무부대장으로 전출되었다. 이후 자진 전역을 강요 받은 그는 현재 교육사 연구위원으로 전역 대기 중이다. 문제는 당시 기무사의 ‘마지막 육사 출신 수뇌부’로 통했던 ㅁ대령을 육사 대 비육사간 권력 투쟁의 희생물로 보는 시각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에 대한 평가는, 1차 개혁을 주도했던 인물로서 군 통수권자의 개혁 의지에 미흡했다는 책임론과, 육사 출신에 대한 과도한 견제 때문에 장군 진급 문턱에서 아깝게 낙마한 희생양이라는 것으로 엇갈린다.


기무사 구조 개편으로 불똥 튈 수도

물론 이같은 시각은 93년 10월 사상 처음으로 비육사 출신이 기무사령관으로 보임되던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되어 있던 것이다. 이에 대해 기무사측은 대통령 2명을 포함한 역대 군부 실력자들이 모두 기무(보안)사령관 출신이었고, 육사 출신들이 여전히 육군 수뇌부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비육사 출신이 이들을 견제·감시하도록 하는 현재의 구도는 군 구조 개편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은 것이라는 시각이다. 그러나 육사 출신들은 김영삼 대통령의 이같은 군 통수 및 용인술에 저항감을 보인다. 이는 결국 통수권자에게 자신감이 결여된 데서 말미암은 것으로 ‘의사는 의대 출신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현재의 한약 분규와 닮은꼴이다.

따라서 한 언론사의 보도로 불거진 이번 사건은 군 개혁을 주도했다가 ‘토사구팽’된 한 장교의 개인적 명예 회복 차원을 떠나 기무사 구조 개편과도 연결되는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기무사측도 인정했지만 ㅁ대령은 현재 기무사의 집중 감시를 받고 있어 취재진은 그를 만날 수가 없었다. 기무사는 ㅁ대령과 강사장뿐만 아니라 이들과 친분이 있는 전·현직 장교(장성)들도 미행·감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도피중 취재진과 인터뷰한 강신한씨는, 적당한 시점에 검찰에 출두해 법정에서 모든 증거 자료를 공개하고 기무사를 무고죄로 맞고소하겠다고 밝혀 ‘막강 기무사’와 ‘작은 언론’과의 2차전은 법정 공방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군 최고 정보기관인 기무사의 책임자가 조직을 미숙하게 관리한 데 따른 비판은 면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 내에서 기무사 구조 개편 문제가 다시 조심스럽게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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