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속임수에 조선족 ‘신음’
  • 丁喜相 기자 ()
  • 승인 1995.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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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1백60억, 증오의 복수도…상호 불신 악순환 조짐
중국 땅에서 같은 민족(현지 투자 한국 기업과 조선족) 사이에 법정 싸움을 벌이게 될지도 모를 불미스런 사태가 생겼다. 흑룡강 성 하얼빈 시에서 ‘대세계 상성’(백화점) 경영에 참여하는 조선족 실업가 최수일씨(56)는 요즘 한국에서 이곳에 진출한 한 대기업 계열사를 상대로 고소장을 쓰고 있다. 지난 2개월간 ‘같은 동포끼리 차마…’하고 망설이다 끝내 변호사를 선임했다는 최씨는, <시사저널> 취재반이 찾아가자 관련 증거 서류를 들이대며 그 기업을 중국 법정에 세우기로 결심한 사연을 털어놓았다.

지난 6월22일 최수일씨는 한국 국제종합건설(주) 하얼빈 판사처 책임자로 파견된 김병건씨를 처음 만났다. 당시 최씨는 하얼빈 시 남강 구 교통 요충에 건설되던 대세계 백화점 투자 지분 일부(미화 5백만달러)를 확보하고 한국 기업과 합자하려고 대상을 물색하고 있었다. 양측은 논의한 끝에 각각 2백50만달러씩 지분을 나눠 투자키로 의견을 모았다. 국제종합건설이 현지에 파견한 책임자 김병건씨는 이 사실을 본사에 알렸고, 때마침 모기업인 극동그룹 김용산 회장 일행이 6월29일께 하얼빈을 방문하자 최수일씨와 면담을 주선했다. 최씨가 김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백화점 합자투자 건을 설명하자 김회장은 ‘투자를 검토하라’는 긍정 답변을 내놓았다고 한다.

이튿날인 6월30일 최수일씨측과 국제측 김병건씨는 서명 즉시 법률상 효력을 발생시키는 데 합의하는 협의서를 체결했다. 계약 내용에는 쌍방이 자기 책임을 지지 못할 경우 어긴 측이 20만달러를 현금 배상키로 하는 책임 규정도 포함됐다.

그 뒤 ‘서명 후 30일 이내에 양측은 각각 중국돈 5백만위안(최씨측, 5억원)과 백만달러(국제측, 약 8억원)를 1차 입금시킨다’는 협의서 규정에 따라 최수일씨측은 이를 이행했다. 그러나 국제종합건설은 이행하지 않았다. 대신 서울 본사 해외사업본부장 이춘길 이사가 8월3일께 하얼빈에 찾아와 최씨에게 ‘주차장 면적이 적고, 투자 지분이 낮다’는 등 네 가지 이유를 들며 사업에 참여할 수 없다고 통보하고 돌아갔다.

최수일씨 사건은 빙산의 일각

당황한 최수일씨측은 국제측 계약 당사자인 김병건씨를 서둘러 찾았으나 <시사저널> 취재반이 만난 9월 하순까지 연락 두절 상태에 빠져 있다고 했다. 이로 인해 8월18일 개업키로 한 백화점은 한달 이상 늦은 9월22일에야 문을 열 수 있었다. 그동안 백방으로 뛰며 자본을 끌어모아 겨우 개업하게 된 최씨측은 이 백화점에 대한 투자 지분을 맨 처음 나눈 다른 측(남강구 상업위원회와 공상은행)에 한 달 이상 개업이 늦어진 데 따른 손실을 보전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결국 9월부터 변호사를 선임해 고소장을 쓰게 됐다는 최수일씨는 “한국의 큰 회사가 조선족 사업가에게 이렇게 해를 입혀도 되는가 하는 원망과 분노 속에 소송을 준비하면서도 ‘같은 민족인데…’하고 망설여 왔다. 그러나 개인적 피해가 너무 컸음은 물론 이와 비슷한 일이 되풀이되면 다른 한국 기업조차 이곳에서 일하기 힘들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소송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계약 당사자인 국제종합건설 하얼빈 판사처 책임자 김병건씨는 “개인적 판단으로는 괜찮은 사업으로 보여 서울 본사에 보고하고, 김용산 회장이 관광차 방문했을 때 현지 보고했더니 ‘투자를 검토하라’고 중국 현지 관계자들에게 위임했다. 그러나 본사에서는 처음부터 포기할 생각이었다. 최수일씨가 재촉하니까 개인적인 서류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체결했다. 그 뒤 여러 사정 때문에 계속 투자할 여건이 안된다며 이춘길 이사가 나와 취소하여 해결된 줄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이춘길 이사는 “중국에서는 협의서 작성이 대수롭지 않은 관행이다. 고문 변호사의 자문에 따라 대처하겠다”고 말한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런 일이 어쩌다 한 번 일어난 특수한 예가 아니라는 데 있다. 취재반은 동북 3성을 훑어나가면서 이와 유사한 사례가 비일비재해 현지에서 한국 기업 전체에 대해 불신을 부추기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연길 시 정부는 2년 전 시내에 있는 모아산을 관광 휴양지로 개발키로 하고 한국의 한 기업과 50 대 50으로 합자 투자키로 하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이 과정에서 연길 시 정부는 한국 기업인들을 수 차례 초청해 모든 비용을 부담했다. 그러나 그 기업이 계약을 위반하고 종적을 감추는 바람에 이 사업은 백지화됐다. 그런데도 연길 시 정부는 소송을 내지 않았다. 선의를 가진 한국 기업들이 다른 부문을 지원하는 현실에서 동포끼리 차마 문제 삼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또 다른 사례는, 중국 전역에 한국 기업의 이미지를 크게 떨어뜨린 경우이다. 93년 한국의 한 대기업과 연길 시 정부는 공동 투자해 연길 시 이란향에 중국 최대 규모의 목장을 건설키로 하고 계약을 맺었다. 대규모 목장과 한우육 가공 공장을 설립해 한국과 중국에 한우육을 공급키로 한 사업이었다. 이 사업은 5억달러에 이르는 규모라서 중국 중앙 정부의 비준이 필요했다. 중국 농업부가 이 사업을 승인하자 <인민일보>와 국영 TV가 이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이 사업 역시 한국 기업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하고 떠나 버림으로써 끝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연길 시 정부가 입은 손실은 30만위안(3천만원)에 달했다.
조선족 유지들 “한국 상대로 국제 재판”

중국 중앙 정부가 비준한 농업 부문 최대 규모의 사업이 한국 기업의 일방적 위약으로 깨지자 중국 언론들이 이 사실을 대서 특필해 중국 전역에서 한국 기업에 대한 여론이 크게 악화되었다. 연변 대학 공학원장 허상림 교수는 이런 실정과 관련해, 요즘 중국 사회에 널리 퍼진 유행어를 예로 들었다. “미국과는 말로 OK하면 끝나고, 일본인과는 말 OK를 지나 계약 서류에 사인하면 아무 탈이 생기지 않지만, 한국인과는 두 가지 절차를 다 거쳐도 끝까지 가 봐야 안다는 말이 생겨났다. 그만큼 신뢰도가 떨어진 것이다.”

한국 기업이 일으킨 불미스런 일들은 주로 기업인과 중·상층 조선족의 여론을 악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일반 조선족들마저도 한국에 대해 나쁜 인식을 갖게 하는 사례는 많다. 한·중 수교 후 조선족 사회에 열병처럼 번진 ‘코리안 드림’을 악용해 한국내 인력 송출업자와 브로커가 동북 3성을 돌며 엄청난 피해자를 양산한 것이다.

<시사저널> 취재반이 하얼빈 시 조선족기업연합회 사무실은 찾은 것은 9월23일이었다. 그곳은 가산을 탕진한 피해자들 때문에 허탈감에 빠져 있었다. 문제의 발단은 한국 삼불무역과 하얼빈 시 국제기술공사가 선원 송출 계약을 맺고 조선족 5백명으로부터 1인당 중국돈 1만3천5백위안(1백35만원)씩 받은 뒤 한국측이 연락을 끊어 버린 것이었다. 재산을 다 팔고 빚을 얻어 돈을 마련한 조선족들은 사정이 이렇게 되자 선원 교육을 위탁 받아 수행해온 조선족기업가연합회측에 찾아가 항의했다. 연합회는 할 수 없이 중국 대련의 한 인력 송출 회사에 부탁해 부산의 선박회사 상선에 10명을 태울 수 있었지만 나머지 4백90명은 재산이 거덜나 한국을 ‘증오’하는 처지가 돼버렸다.

이런 비극은 동북 3성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요령 성 심양에서 발행되는 한글판 <요녕신문> 계광현 총편집은 이와 관련해 “뜻있는 조선족 유지들이 그동안 조선족이 한국의 사기단에 해를 입은 액수를 조사하니 2천만달러(약 1백60억원)에 이르렀다. 모국과 조선족의 관계는 절망으로 치닫고 있다”고 걱정한다. 그에 따르면, 일부 조선족 유지들은 그 주요한 책임이 모국에 있다고 보고, 한국 정부를 국제법상 배상 책임자로 하여 국제 재판에 회부할 법률 절차를 밟고 있다고 한다.

한·중 수교 후 한국인과 조선족 관계는 ‘민족 비극’의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불길한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 해를 입은 조선족 가운데는 중오에 사무쳐 한국인 관광객과 기업인들을 상대로 강도질을 일삼는가 하면 집단 폭력을 가하는 일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

비극의 씨앗은 일부 한국인들이 뿌렸지만 그 부작용은 한국 전체를 향하고 있다. 한국과 조선족 사이의 ‘잘못된 만남’을 청산할 1차적 책임은 어쨌든 한국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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