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정권은 '빚 낳는 거위'
  • 宋 俊 기자 ()
  • 승인 1998.09.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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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정권, 방송 사업 무리하게 추진…케이블 TV·민방 사업자 경영난에 허덕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대 투명 사업.’ 김영삼 대통령 집권 당시 공보처가 케이블 TV와 지역 민방 사업을 벌이면서 골백번 되풀이한 자랑이다. 그 투명 사업이 비리 청문회 도마 위에 오른다. 여권은 김현철·홍인길 씨 수사 내용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조사 자료 등을 근거로 비리 관련자 사정에 자신감을 내보이고 있다.

문제는 금품 수수뿐만이 아니다. 사업 시기·상황 판단에서 업자 선정·방송법 개정에 이르기까지 YS 정권의 방송 사업은 ‘건국 이래 최대 졸속 사업’으로 꼽힐 만하다. 왜 그렇게 서둘렀는지부터 납득이 되지 않는다. 김영삼 정부는 94년께부터 ‘꿈의 다매체·다채널 시대’ ‘황금 알을 낳는 거위’ 따위 장밋빛 수사를 휘날리며 온 나라를 방송 과열 상태로 달구었다. 떠들썩한 준비 끝에 95년 3월1일 케이블 TV가 첫 서비스를 시작했고, 겨우 1년 반 만에 케이블 TV 채널 29개(채널당 1개사)와 지역 민방 8개가 한꺼번에 생겨났다.

수십 개 방송국을 꾸려갈 전문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고, 이는 부실 프로그램 양산으로 이어졌다. ‘황금 알’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지역 민방의 광고 수익은 예상치의 50% 선을 가까스로 넘겼고, 케이블 TV 가입자는 예상치의 23.9%에 그쳤다. 주먹구구식 예측과 선동이 화려한 수사로 포장되었을 뿐, 수십 개 방송국을 우루루 세워야 했던 사업적 타당성은 전혀 입증되지 못했다.

장비 구입 비용도 엄청났다. 예컨대 2차 민방 4개 사의 장비 구입비만도 8백69억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4백7억원을 외제 장비를 들여오는 데 썼다. 와중에 민방과 케이블 TV 방송국의 전체 은행 여신 규모가 97년 11월 말 현재 22조2천억원에 달할 정도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적자도 해마다 쌓여갔다. 국민회의 추정에 따르면, 3∼4년 사이에 누적된 손실액은 무려 4조원에 달한다. 민방과 케이블 TV 업체, 백여 회사가 난립했던 프로덕션, 그리고 무궁화 위성이 활용되지 않아 발생한 채널 운영 손실 및 투자·설비비 손실 등을 합산한 결과다.

김승수 교수(전북대·신문방송학)의 논문 ‘지역 민방의 사업자 선정과 향후 과제’에 따르면, 공보처가 선정 주체였던 점도 문제다. “사전 검열 행위의 일종으로 위헌적 요소가 있다. 방송법을 비롯한 기타 어떤 법조문에도 공보처가 선정 기준을 만들어도 좋다는 근거는 찾기 힘들다.”

졸속 정책은 두고두고 방송의 체질을 좀먹는 구조적 문제로 이어졌다. 특히 ‘다채널 시대의 총아’로 기대를 모았던 케이블 TV가 ‘애물단지’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케이블 TV 방송은 크게 세 단계 과정으로 나뉜다. 하나는 방송 프로그램 공급자(PP), 즉 채널 보유자다. 이 채널들을 필요한 만큼 확보해 관리 영역 안의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방송 사업자(종합 유선 방송국:SO)도 필요하다. 케이블 TV는 전파가 아닌 유선망(케이블)으로 ‘PP→SO→시청자’에게 방송을 송출한다. 이 케이블을 설치하는 전송망 사업자(NO)도 필수이다.

문제는 공보처가 케이블 TV 사업자를 선정하면서 SO의 숨통을 바짝 죈 데서 말미암는다. 관할 구역을 좁게 잡고, 채널 계약 선택권을 없앰으로써(28개 채널을 기본 옵션으로 묶음) SO의 사업 재량을 사실상 동결한 것이다. 그 결과 유선 방송 가입자를 확보하기가 어려워졌고, 낮은 시청률은 PP의 광고 단가를 떨어뜨리는 악순환을 낳았다. 수익성이 떨어지자 한국전력 등 NO가 퇴출을 희망하면서 전송망을 깔아주지 않아 20여 SO는 방송조차 못하는 실정이다.

공보처 졸속 정책 탓에 방송 민주화 뒷걸음

95년 공보처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케이블 TV 방송망을 초고속 정보통신의 기간망으로 활용해 정보화 사회의 기반을 구축하겠다’고 공언했다. 게다가 위성 방송이 시작될 경우 SO는 위성 채널을 받아 ‘채널 백화점’ 차원의 전천후 다채널 시대를 열 주역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 대목이다. 전국방송노조연합 박기완 정책실장은 “SO의 위상이 취약해지면 머독 같은 외국 자본이나 재벌이 덤벼들 가능성이 커진다. 그렇게 되면 가뜩이나 어려운 방송 민주화의 꿈이 한 발짝 더 멀어지게 된다”라며 케이블 TV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명진 교수(서울대·언론정보학)는 “중계 유선 방송을 종합 유선 방송(케이블 TV)의 구조 속으로 흡수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정책 실수이다”라고 지적했다. 중계 유선 방송이란 난시청 해결을 겸하여 유선망으로 비디오·위성 방송 일부 등을 공급해 온 이른바 ‘동네 방송’을 일컫는다. 이들이 자연 도태하리라는 공보처의 예측은 빗나갔다. 95년 12월부터 정보통신부 관할로 들어간 동네 방송은 케이블 TV의 3분의 1도 안되는 싼 이용료를 무기 삼아 오히려 성장세를 보였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케이블협회)는 중계 유선 방송은 불법 영업과 정보통신부의 비호로 생명력을 유지했다고 주장한다. 유선방송관리법이 정한 사업자당 한계 채널 수가 12개인데, 8백60여개 중계 유선 방송 업체의 59.9%가 불법 영업을 하고 있으며 60∼70여 채널을 운영하는 업체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관할 부처인 정보통신부가 이를 단속하기는커녕 거꾸로 지원 정책을 발표하자 협회측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케이블협회와 중계 유선 방송의 대립은 올 8월 들어 문화관광부(케이블 TV 관할 부처)와 정보통신부의 전면 대리전 형태로 진전되며 점입가경 양상을 보이고 있다. 케이블협회는 최근 논의 중인 ‘통합방송법’ 추이를 지켜본 뒤, 정보통신부장관과 중계 유선 방송측을 각각 직무 유기·직권 남용과 불법·탈세 혐의로 고발할 작정이다.

지역 민방도 공보처의 졸속 정책 탓이라며 볼이 부어 있기는 마찬가지다. 가시청 지역을 좁게 잡는 바람에 광고 수익성이 현저히 떨어진 점이 대표적인 불만이다. 관할 지역이 좁을수록 자체 프로그램을 제작할 여지가 좁아질 것은 불문가지다. 그 결과 관할권 확장 경쟁이 무차별 진행되는 문제가 생겨났다. 부산방송과 울산방송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두 방송사는 올해 1월 경남 양산 지역의 무인 중계소 설치 문제로 1차 격돌했다. 부산방송이 다시 7월1일에 마산·창원·진주 지역 중계소 설치를 신청하자 울산방송은 7월28일 경남 전역에 중계소를 설치하겠다고 나섰다. 그러자 부산방송은 지리적·문화적 인접성을 상세히 밝히며 8월4일 청와대·감사원·국무총리실·문화관광부 등에 진정서를 보냈다(근거:부산-양산 하루 4백64회 버스 운행. 울산-양산은 80회. 부산-양산 지하철 공사 2001년 완공 예정 등).

방송 청문회를 앞두고 방송계 종사자와 학자들은 이같은 파행적 방송 구조를 바로잡는 것이 비리 사정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지난 8월27일 발족한 언론개혁시민연대(언개연)는 창립 성명서에서 ‘청문회 논의를 환영하며, 잘못된 방송 정책 결정에 연루된 관료·정치인을 방송 관련 직무에서 영구히 배제하라’고 주장했다. 언개연에는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한국기자협회·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각 분야 운동 단체 34개가 모였다. “이번 청문회와 방송법 개정 논의는 방송 개혁의 거의 마지막 기회이다. 정치적 꼼수를 도모한다면 현정권은 예상치 못한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라고 이들은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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