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 포기’ 검찰에 5·18 또 맡기랴
  • 차병직 (변호사) ()
  • 승인 1995.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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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수사·기소 범위까지 지시… 공정 수사 한계,‘특별검사제’가 해법
불의와 부패가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우리가 몰랐던 바는 아니다. 범죄자들은 정치 권력과 그를 추종하는 검찰의 힘을 빌려 ‘역사의 심판’을 외쳐대기도 하였지만, 이제야 비로소 법의 심판으로 귀결되는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우리 앞에 전개된 상황은 법치주의적 감수성을 잃지 않은 전국민이 분투한 성과임이 분명하다. 이제는 모든 정치적인 영역의 문제도 법치주의를 실현하여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하는 수준에 온 것이다.

범죄 행위에 대한 법치주의 실현은 엄정한 처벌과 집행이겠으나, 그 출발은 수사에 있다. 제대로 된 수사가 없고서는 어떠한 결말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정부가 5·18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든, 헌법재판소가 검찰의 5·18 불기소 처분의 불법성을 인정하든, 가장 절실한 것은 공정한 수사권·소추권을 행사하는 일이다.

검찰 수사권의 바른 행사는 사후에 법원의 형사 재판권에 의해 보장될 수도 있지만, 사전에 철저히 담보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수사의 공정성이 의심될 만한 사건을 검찰에 맡기는 것은, 마치 자신의 사건에 대해 자신이 수사하도록 맡겨놓는 것과 마찬가지로 타당치 않다. 이렇듯 간단하고도 명료한 원리에서 요청된 것이 특별검사제도라는 것이다.

워터게이트 사건 등서 특별 검사 맹활약

특별검사제도는 미국의 독특한 제도에서 비롯하였다. 우리가 ‘특별 검사’라고 부르는 미국의 제도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오래 전부터 있어 온 ‘특별 검사(special counsel)’라는 것으로, 흔히 사인소추의 전통에서 시작한 관습적인 것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이 특별 검사는 미국 정부조직법상 검사를 임명할 권한을 가진 법무장관이 법률상 규정을 근거로 하여 특별한 사건을 수사할 검사를 임명하는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독립 검사(independent counsel)’라는 것으로, 별도로 제정된 특별법에 따라 법원이 임명한다. 미국의 경우 독립검사제도에 관한 특별법이 발효 중일 때는 ‘독립 검사’에 의하여, 그렇지 아니할 경우에는 ‘특별 검사’에 의하여 고위 공무원이 저지른 특별한 사건이 다루어진다. 이 두 가지를 합쳐서 편의상 특별 검사(special prosecutor)라 부른다. 양자 사이에 뚜렷한 기능 차이는 없으나, 단지 독립검사제도는 독립된 법률에 의해 그 권한과 의무가 명확히 규정되어 있다는 점이 다르다.

독립검사제도가 생겨난 것은 민주당 선거본부 사무실에 괴한이 침입한 72년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문제되기 시작하자 닉슨 대통령은 클라인딘스트를 경질하고 리처드슨을 새 법무장관에 임명하였다. 리처드슨은 사건 처리를 위하여 당시 하버드 대학 법대 교수이던 콕스를 특별 검사로 임명했다. 콕스는 대통령에게 백악관에 보관하고 있는 비밀 녹음 테이프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여러 압력에도 불구하고 콕스가 테이프 입수 시도를 포기하지 않자 닉슨은 73년 법무장관으로 하여금 콕스를 해임하도록 지시하였다. 그런데 리처드슨 법무장관과 러켈샤우스 법무차관은 대통령의 지시에 맞서 콕스를 해임하는 대신 스스로 사임해 버렸다. 그러자 법무부 서열 세 번째이던 보크가 법무장관을 대행하여 콕스를 해임하고 자보르스키 변호사를 후임 특별 검사로 임명하였다. 그런 자보르스키마저 테이프 제출을 요구하고 나서자 며칠 후 닉슨은 사임하고 만 것이다.

이 소용돌이를 치르고, 미국 의회는 고위직 공무원들의 형사 범죄 행위에 대해서는 수사와 기소에 관한 새로운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으게 되었다. 그에 따라 78년 10월12일 공포된 정부공직자윤리법에 특별검사제도를 신설하여 5년간 유효한 한시법으로 운용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82년 의회가 효력 연장을 결정함으로써 다시 5년간 유효하게 되었는데, 이 때 특별 검사라는 명칭이 독립 검사로 바뀌었다. 이 제도는 87년 이란·콘트라 사건 때문에 재차 연장되었으나, 이에 불만을 가진 레이건 행정부에 의해 위헌 쟁송이 벌어져 연방대법원에서 합헌 판결이 나기도 하였다.
세 번째 수명을 마친 독립검사제도는 92년 12월 이후 공화당의 저지로 효력 재연장에 실패하였으나, 클린턴 행정부 출범과 함께 터진, 클린턴의 아칸소 주지사 시절 비리 혐의와 관련된 화이트게이트 사건을 계기로 오히려 공화당의 요구에 따라 94년 독립검사재수권법이 통과됐다. 이에 따라 법의 효력이 정지된 기간에 임명된 특별 검사 피스크는 해임되고 스타 변호사가 독립 검사로 임명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미국의 독립 검사는 대통령이나 부통령, 그밖에 법률이 정하는 일정한 지위의 고위 공직자 혐의 사실에 대하여 추가 조사 등이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 법무장관이 제청하면 법원이 임명한다. 이 때 상하 양원 법사위원회가 문서로 법무장관에게 독립 검사 임명 제청을 요구할 수도 있다. 임명된 독립 검사는 필요한 범위 내에서 모든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는다.

사무소를 개설하고 수사에 필요한 인원을 임명함과 동시에 그들의 보수를 정할 수 있고, 법무부에 대하여 자료 이용은 물론 인적·물적 지원을 요구할 수도 있다. 독립 검사가 사건을 인수하면 그의 동의가 없는 한 법무부 소속 모든 공무원은 그 사건에 대한 조사 활동을 중단하여야 한다. 독립 검사에 대한 업무 감독은 그를 임명한 법원과 의회가 하는데, 독립 검사는 일정한 보고서를 매년 의회에 제출하여야 한다. 독립 검사는 임무가 끝나거나 법원의 결정에 의해 업무가 종료된다.

검찰, 특별법 제정 발표 뒤에도 궤변

이와 같은 독립검사제도에 의해 79~92년에만 주요 사건 13건이 처리되어 그 중 4건이 기소되었다. 이란·콘트라 사건의 경우 6년에 걸쳐 3천5백만달러가 경비로 지출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끊임없이 특별검사제가 논의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적절하지 못한 검찰권 행사가 거듭되면서 자연스럽게 요청된 것이다. 검찰은 그동안 국민적 관심을 끈 주요 사건들에서 의혹을 남기지 않은 적이 한번도 없었다. 진상을 파헤치지 않고 덮어 버리거나, 극히 일부만 드러내어 끝내기에 급급하였다. 아니면 12·12나 5·18 불기소 처분과 같이 공소권을 행사하지 않는 방법으로 수사권을 남용하였다.

검찰은 때로는 다른 상황에 의하여 불가피한 부분만 수사하기도 하였다. 현재 진행 중인 노태우씨 비자금 사건이 대표적인 예로, 처음에는 뜬소문이라 하여 수사 착수조차 않다가 야당 의원이 증거를 제시하자 수사에 들어갔고, 노씨가 자백한 범위 내에서 액수만 고쳐 맞추고 있던 중에, 영장 심사 법관의 발설 파장으로 대선 자금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이원조씨 등을 소환하기도 하였다. 언론과 일부 독설가들의 간섭이 지나친 감도 없지 않으나, 한마디로 자발적 수사 의욕과 그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검찰로 하여금 빗나간 수사 관행에 빠지게 한 절대적 요인은 역시 정치권의 영향력이다. 공소권이 없다는 결정은 행정부의 5·18 특별법 제정 선언으로 한순간에 뒤집혔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은 ‘주범자에 한하여 처벌한다’는 취지로 이미 수사와 기소 범위까지 지시하고 있지 않은가.

덧붙여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그럼에도 검찰은 결코 잘못을 자인하거나 반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별법 제정 발표 직후, 불기소 처분 당시 서울지검 공안1부장으로서 수사를 지휘했던 장윤석 인천지검 차장검사는 “특별법을 제정한다는 자체가 공소권 없음 결정이 옳았다는 증거 아니냐”라고 했는데, 이는 대단한 착각이다. 특별법은 주로 공소 시효와 관련해 기소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지, 공소권 없는 사건에 특별히 공소권을 부여하자는 것이 아닌 것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그 다음날의 일이다. 대검 공안부는 헌법 제정 권력의 결단에 의해 5·18 과정이 ‘실패한 쿠데타’가 되었으므로 사법 심사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궤변을 내놓음으로써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이론을 끝까지 고집하고 있다.

이러한 형편 아래서 그 누가 전국민적 투쟁으로 쟁취한 12·12 및 5·18에 대한 공소권을 검찰에 계속 맡기자고 할 것인가. 오히려 특별검사제만은 수용할 수 없다는 정부와, 수사권만은 침해 당할 수 없다는 검찰 스스로가 특별 검사의 출현을 재촉하고 있는 꼴이다. 지금 그들이 준비해야 할 일은, 필요에 따라 특별 검사가 임명되면 두 사건의 수사 기록을 넘겨주어 협조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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