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 확인의 문제점
  • 蘇成玟 기자 ()
  • 승인 1995.08.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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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과수 유전자 감식 한 달 이상 걸려…신빙성에도 일부 이견, “초동 대응만 잘했어도…”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신이 무더기로 발굴되면서 삼풍백화점 사고는 사고대책본부와 실종자 가족들에게 새로운 고민거리를 안겨 주었다.

7월22일 현재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맡은 신원 미상 시신은 거의 완전한 상태의 시신 63구와 부분 시신을 포함해 총 1백10여 구이다. 그러나 사고대책본부가 집계한 실종자 수는 22일 현재 1백44명이다. 부분 시신까지 신원 미상 시신에 포함한다 해도 실종자 34명은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린 셈이 된다.

시신과 실종자 수가 불일치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단 두 가지 숙제를 풀어야 한다.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는 일과 허위 실종 신고를 가려내는 일이다. 이 가운데 시신의 신원을 밝혀내는 일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에 주어진 임무이다. 선박이나 항공기 사고에서도 형체를 분간하기 어려운 시신이 많이 나오지만 대개의 경우 시신과 실종자 수는 일치한다. 이번 삼풍 사고처럼 시신마저 증발해버린 경우는 드물다.

사고 현장에서 발굴된 시신은 일단 병원으로 후송된다. 뒤늦게 발굴된 시신일수록 심하게 부패하여 지문이나 인상 착의만 가지고 현장에서 신원을 감식하기는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사고가 발생한 지 13일째인 7월11일에 3구, 12일에 6구가 발굴되었던 신원 미상 시신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 15·16일에는 이틀새에 무려 40여 구나 나왔다. 잔해더미에 짓눌리고 더위에 부패한 상태로 국과수에 이송된 시신들은 이미 타버렸거나 백골화해 가는 상태였다.

“갈비뼈 한 조각만 있어도 확인 가능”

국과수 감식반장인 최상규 과장(생물학과·이학박사)에 따르면, 유전자 감식을 의뢰받은 시신들은 8월 말이나 지나야 신원이 밝혀질 것 같다. 시신 유전자를 1백10개 이상 판독하여 실종자 가족 유전자 1백50개와 비교·대조하는 작업이 40일 넘게 걸리기 때문이다.

가족의 유전자를 조사하기 위해 국과수는 지난 20·21일 이틀간 서울교육대학에서 삼성의료원 의료진이 채취한 실종자 가족 1백50명의 혈액을 넘겨 받았다.

감식해야 할 시신 유전자를 1백10개 이상으로 추산하는 것은, 신원 미상 시신이 현재 80구이지만 난지도 매립지에 쌓여 있는 삼풍 건물의 잔해더미에서 부분 시신들이 계속 발굴되고 있기 때문이다.

난지도 매립지에서는 21일까지 시신 조각 12점이 발견되었다. 1만5천여평에 쌓여 있는 잔해더미를 굴삭기 10대를 동원해 9천6백여 평(전체의 64%)까지 수색해낸 결과이다.

국과수 냉동실에 안치된 시신을 핵DNA 분석법으로 유전자 감식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 적절한 부위를 채취해 시료로 삼는다. 시료는 1.5㎖ 튜브에 담겨 원심분리기에 넣는다. 세포 내의 DNA를 추출하기 위해 56℃에서 하루 정도 반응시켜 세포를 깨뜨린다.

깨진 세포는 원심분리기에 넣어 잔해물을 제거하고 순수한 DNA를 정제해낸다. 정제된 DNA를 증폭시켜 가로 5㎝·세로 3㎝ 가량의 아가로스젤 형태로 만든다. 이 젤을 자외선 조명기(UV illuminator)에 비추어 DNA가 잘 분리되었는지 확인한다. 확인된 DNA를 가지고 특정 부위를 증폭시켜 가로 15㎝·세로 20㎝ 가량의 아크릴아마이드젤 형태로 만들어 최종 판독한다. 젤로 만들 때마다 전기 영동 작업을 거친다.

DNA를 분리해 내고, 증폭해서, 전기 영동 작업을 하는 데 각각 2∼3일이 걸리기 때문에 시신 1구의 유전자를 확인하는 데는 7~10일이 걸린다. 그러나 시신에는 DNA를 가장 확실히 추출해 낼 수 있는 혈액이 없기 때문에 골수나 간조직 등에서 최소한 두 가지를 시료로 채취해 분석한다.

여기에 비교해야 할 시료가 부·모·형제로부터 채취한 세 가지 혈액이다. 혈액 채취에 응한 1백50명은, 가족 단위로 보면 70여 가족에 지나지 않는다. 시신 한 구의 신원을 밝히는 데 부모의 혈액이 모두 필요하기 때문이다. 부모 중 한 쪽이 없을 때는 실종자의 배우자 및 자녀, 배우자가 없으면 동기간의 혈액이 필요하다. 부모가 모두 없는 경우에도 최소한 2명 이상의 직계 가족에게서 혈액을 채취해야만 유전자 감식이 가능하다.
따라서 일치하는 가족 유전자가 나올 때까지 1백50명의 가족 유전자를 일일이 대조해야 한다. 시신에서 채취한 시료의 DNA 한두 가지만으로는 가족의 DNA와 우연히 일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완벽을 기하기 위해 세가지 유전자형까지 분석한다. 이처럼 시료 네가지(시신 2·가족 2)에 유전자형까지 알아내려면 열두 차례가 넘는 복잡한 검사 과정을 거쳐야 한다. 결국 시신의 신원 확인 시일을 단축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이다.

결국 이같은 핵DNA 감식법으로 확보된 시신이나마 신원이 확실한 것인지가 실종자 가족들에게는 큰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시신 일부만 발견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과수 최상규 과장은 “갈비뼈 한 조각이라도 있기만 하면 가능하다. 양이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정작 문제는 부패 상태다. 부패란 시신에 포함된 단백질이 균에 의해 파괴되는 현상이다. 균의 DNA가 시신의 DNA와 뒤섞여 판독을 어렵게 하는 것이다. 최과장은 “미토콘드리아 염기 서열 분석법도 있기 때문에 불가능한 경우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미토콘드리아 염기 서열 분석법은 핵이 없어도 유전자 감식이 가능한 신종 시신 감식법으로, 부산 강주영양 유괴 살인 사건 때 법의학 논쟁을 불러모았던 방법이다.

“모든 시신 확인 장담하기 어렵다”

이것은 핵을 둘러싸는 세포 내의 핵막에 있는 미토콘드리아를 추출해 아데닌·구아닌·시토신·티민 네 가지 염기 서열을 비교 대상과 대조해 동일인 여부를 판단하는 방법이다. 즉 1만6천개가 넘는 염기 서열 중에 사람마다 심한 차이를 보이는 천개 이상의 구간을 비교하는 것이다. 부패가 더딘 뼈·치아·손톱의 경조직 또는 모근 없는 머리카락만 갖고도 분석이 가능하지만, 시일이 한달 이상 걸릴 뿐만 아니라 아직 실험 단계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런 까닭에 최과장은 “네 종류까지 분석해 동일인 여부를 판정할 경우 핵DNA법이 현재로서는 가장 정확한 유전자 분석법이다”라고 말한다.

유전자 감식만으로 불충분할 때는 어떻게 할까? 이때 남은 방법은 시신의 두개골에 생전의 사진을 겹쳐 동일인 여부를 가리는 ‘이중인화(Super impose)’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다. 국과수 복안과 이영석 실장은 “이 방법은 90%까지 증거 능력을 인정 받는다”고 말했다. 두개골의 아래턱 부위(하악골)가 없어도 이중인화법으로 동일인 판독이 가능하다는 것이 이실장의 말이다.

최상규 과장은 유전자 감식의 신뢰성이 알려짐으로써 가짜 실종 신고자들이 겁을 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모든 시신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국과수를 포함해 유전자 감식 업무를 의뢰 받은 대학 법의학 교실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유전자 감식은 신속한 작업을 바라는 실종자 가족들의 요청에 따라 국과수 주도로 서울대 및 고려대 법의학교실·서울대 분자생물학과·대검찰청 유전자감식실 등 네 곳에 분산해 의뢰되어 있다. 그러나 이같은 작업 분산은 어차피 최종 책임을 져야 할 국과수 작업에 비교하기 위한 조처여서 시일을 단축하는 데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서울대 법의학교실 이윤성 주임교수는 “유전자 감식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최후에 사용해야 할 방법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지 않은 채 ‘지문 감식으로 신원 확인이 안되면 유전자 감식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여론이 조성된 점도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맨 처음 실종자 가족들에게서 실종자의 신체적 특징을 세부적으로 접수해 자료화했다면, 설령 지문 감식이 되지 않더라도 자료만 대조해서도 신원을 파악할 수 있었으리라는 지적이다.

사고 초기에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우왕좌왕한 결과 번거로운 고민거리를 떠안게 되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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