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감시뿐인 보건 전책, 에이즈 확산 부채질
  • 丁喜相 기자 ()
  • 승인 1998.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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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검진 등 보건 당국의 정책, 효과 없이 돈 낭비…일반인의 편견도 ‘지하 전염’ 부채질
지난 85년 현대판 흑사병으로 불리는 에이즈가 국내에 처음 상륙한 이래 감염자 수는 나날이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98년 9월 말 기준으로 보건복지부가 확인·관리하는 감염자는 총 8백44명. 이들 중 1백86명이 발병 또는 자살로 생을 마쳤다.

해마다 백여 명씩 감염자가 추가로 밝혀지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당국의 안테나에 잡힌 수치일 뿐이다. 보건복지부에서조차 현재 국내 에이즈 감염자 수가 4천5백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감염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추정치는 훨씬 많다. 감시와 단속 위주의 관리 정책 때문에 지하로 잠적해 무방비 상태에서 에이즈가 전파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당국의 추정치 4천여 명의 10배는 잡아야 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는 실정이다.

사태가 이렇게 심각한데도 에이즈에 대한 국민 일반의 인식은 80년대 에이즈 상륙 초기에 비해 별다른 변화가 없다. 감염자가 노출될 때마다 극도의 혐오감과 불안감 때문에, 철저한 격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보건 당국을 성토하기 일쑤이다. 에이즈 감염자를 도와 이들이 일부러 반사회적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하자는 목소리는 거의 찾기 어렵다. 결국 에이즈 예방의 걸림돌은 국민 의식 속에도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담당 공무원 불친절·전문성 결여도 한몫

보건 당국 역시 이런 국민 정서를 반영하듯 에이즈 감염자를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감시망으로 묶어 두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같은 국민 의식과 보건 정책이 에이즈 확산 방지에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국이 파악한 소수의 감염자들마저 극심한 감시 때문에 노출 피해 의식을 느끼고 정부와 사회를 원망하며 지하로 잠적하고 있다.

현재 관리 대상 감염자 8백44명 중 보건 당국의 감시를 피해 종적을 감춘 사람은 47명에 이른다. 이런 현상을 부추긴 데는 이들의 관리를 담당하는 일선 보건 공무원들의 불친절과 전문성 결여도 한몫을 하고 있다. 보건 당국이 에이즈 감염자를 관리하는 담당자로 보건이나 간호와 거리가 먼 일용직·별정직 공무원을 배치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감염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고충은 매우 클 수밖에 없다. <시사저널> 취재진이 익명을 전제로 만난 감염자 다섯 사람은 한결같이 이런 불만을 토로했다. “담당 직원이 전화를 걸 때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 없이 발병 증상이 있는지만 꼬치꼬치 캐물어 마치 내가 빨리 죽어야 보고서에 기록을 한 건 올릴 수 있다며 기다리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현행 에이즈 예방법에 실명의 강제 검진·관리가 의무 조항으로 되어 있어 자신의 감염이 의심되는 많은 국민들은 감염 사실 자체보다도 양성 반응으로 나올 경우 신분이 노출된다는 공포감에 시달려 검진을 기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후진적인 에이즈 검진 및 감염자 관리 정책이 계속되다 보니 스스로 감염을 의심하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 가운데는 신분 노출을 우려해 익명의 검진과 치료가 보장되는 해외로 나가고 있는 추세이다. 의료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재 사회 지도층 인사 10여 명이 에이즈에 감염되어 일본을 오가며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해외 검진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보통 사람’들은 감염 여부조차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형편이다.

실명으로 강제 검진을 받도록 의무화한 에이즈 확산 방지 정책은 효과도 없이 엄청난 국민 세금을 축내는 주범이기도 하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김정순 교수팀이 최근 매춘여성과 서비스업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현행 에이즈 강제 검진 제도는 4만명당 1명꼴로 감염자를 찾아내는 데 그쳐 감염자 한 사람을 발견하는 데 무려 2억원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스스로 에이즈 감염이 의심스러워 병·의원을 찾아 검사를 받은 사람은 2천7백건당 감염자가 1명으로 밝혀져 강제 검진보다 15배 가량 높은 효율성을 보였다는 것이다.

인권 측면에서 보았을 때 에이즈 감염자의 인권과 별개로, 에이즈에 감염되지 않은 대다수 일반인이 에이즈 균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권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문제는 양쪽의 인권이 수레의 양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야 에이즈 확산을 방지할 수 있는데, 국민 의식과 보건 정책은 그간 에이즈 확산 위험을 오히려 키워 왔다는 점이다.
무료 보급 에이즈 퇴치약, 감염자에겐 ‘그림의 떡’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달은 보건 당국은 그동안 일부 확인된 감염자 격리 및 감시 중심의 예방 대책에서 감염자 지원과 교육 홍보에 차츰 눈길을 돌리는 쪽으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익명 검사 제도 도입을 검토한다든지, 감염자 자활 시설 설치를 지원한다든지 에이즈 치료약(AZT)을 무료 보급하는 것이 그에 해당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에이즈 감염자들에게는 보건 당국의 이런 변화가 별로 피부에 와닿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월18일 보건복지부가 지원해 한국에이즈퇴치연맹이 개설한 쉼터(서울 747-4070~2)를 이용하는 보균자는 20명을 밑돌고 있다. 밤에 잠을 잘 수 없을 뿐 아니라 정부의 관리를 받아 신분이 노출되기 때문이다. 쉼터 운영에 대해 연맹 김훈수 사무국장은 “쉼터는 국가가 에이즈 감염자를 공식 지원하는 첫 번째 작업인 때문인지 계속 감시당한다는 느낌이 든다며 감염자들이 이용을 꺼리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감염자는 누구든지 익명으로 신고만 하면 이용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정부가 감염인 치료 지원책으로 내놓은 에이즈 퇴치약 무료 보급도 실상을 들여다보면 대다수 감염자에게 그림의 떡이다. 후불 지원 제도여서 경제 여력이 없는 대다수 감염자들은 혜택을 받지 못한다. 이른바 칵테일 요법으로 불리는 이 치료제는 한달 약값이 보통 1백50만∼1백80만 원에 달한다. 감염자가 국가 지원을 받으려면 자비로 약을 산 뒤 영수증을 보건 당국에 내야 한다. 결국 끼니조차 때울 수 없는 처지인 감염자들과 이 약은 거리가 먼 셈이다. 보건복지부가 국회에 낸 국감 자료에 따르면 치료 약제를 지원받은 감염자는 연간 1백50명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래서 약을 구하고자 하는 감염자들은 보건복지부가 치료약을 일괄 구입해 직접 나누어주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감염자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것은 자기들을 ‘걸어다니는 시한 폭탄’쯤으로 바라보며 보건 당국에 격리를 요구하는 일반인들의 정서이다. 어떤 경로를 통해 감염되었건 그들은 일단 감염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회에 죄의식을 느껴 숨어 살려고만 한다. 이런 실정에서 에이즈는 계속 확산 일로이다.

에이즈 공포를 효과적으로 줄이는 방안에 대해서는 미국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지난 6월 미국 연방대법원은 에이즈 감염자를 장애인으로 간주해 법적 지원과 보호 대상으로 삼도록 결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미국의 이런 정책이 에이즈 확산을 막는 데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최근 수년간 미국에서 감염자 증가세가 둔화하고 있는 것으로 입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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