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취재] 그 많던 '소신파'어디로 사라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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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8.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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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시절 ‘돈 키호테’ 검사들, 권력 핵심부 사정없이 파헤쳐
기사에게 기사도(騎士道)가 있다면 검찰에는 ‘검사도(檢事道)’가 있다. 검사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정의된 것이 없다. 그러나 권력과 여론에 아부하지 말고, 국민의 처지에서 사실을 추적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면 별 이견이 없을 것이다.

사법부에서는 소장 판사들이 ‘사법 파동’을 몇 차례 일으켰다. 88년 6월15일 서울 지역 판사 59명이 ‘새로운 대법원 구성에 즈음한 우리의 견해’라는 성명을 발표함으로써 김용철 대법원장이 사퇴한 사건이 있었다.

검찰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박정희 군사 통치의 서슬이 시퍼렇던 64년,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들의 사표 제출 사건은 검사도를 지키려 한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김형욱 부장이 이끌던 중앙정보부는 ‘인혁당 사건’을 대대적으로 언론에 발표하고, 수사 자료를 서울지검 공안부로 보냈다. 그러나 자료를 검토하고 구속자를 재차 조사한 이용훈 공안부장(71)과 김병리·장원찬 검사는 혐의 사실을 입증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상부에 기소할 수 없다고 보고했다.

주임검사들의 기소 포기는 검찰은 물론이고 법무부와 중앙정보부·청와대까지 발칵 뒤집어 놓았다. 권력층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기소하라고 압력을 넣자 세 검사는 언론 플레이를 한 중앙정보부를 비난하며 사표 제출로 맞섰다. 세 검사의 고집을 꺾지 못한 권력층은 서울지검 차장을 비롯한 여러 명의 검사에게 대신 기소장에 서명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그러다 숙직자이던 정 아무개 검사로부터 겨우 서명을 받아 기소장을 제출했다.

93년 함승희 검사가 주도한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 수사와 홍준표 검사가 터뜨린 슬롯 머신 사건 수사는 당시의 권력층을 사정 대상으로 삼았다. 함승희 검사의 동화은행 비자금 수사는 결국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까지 찾아냄으로써 6공의 보호막 속에 탄생한 문민 정부측과 극심한 마찰을 빚었다. 그로 인해 수사는 중도에서 좌절되고 얼마 후 함검사는 조용히 검찰을 떠났다.

‘돈 키호테’ 홍검사는 YS 당선에 일조한 이건개 대전 고검장·이인섭 경찰청장·엄삼탁 전 안기부장 특보 등 검·경·안의 실력자와 6공 실력자였던 박철언씨를 구속하고, 신 건·전재기 두 검사장으로 하여금 검찰을 떠나게 했다. 슬롯 머신 사건 수사는 그후 일부 인사가 무죄를 선고받음으로써 다소 무리한 점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권세가 시퍼렇던 정권 출범 초기에 문민 정부 실력자들에게 ‘칼끝’을 겨누었다는 점에서 지금도 검찰도를 보여준 사례로 회자된다.

항상 상부 지시에 대들고 권력층의 비리만 밝히는 것이 검사도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진정한 사정은 남보다는 나를 먼저 단죄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국민의 정부 검사들에게서는 진정한 검사도를 발견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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