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판 짜기' 촉매제, 개헌론
  • 안철흥 기자 (epigon@e-sisa.co.kr)
  • 승인 2001.0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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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중임 정·부통령제, 정치권 화두로떠올라… 세력 간 '접착제' 될 가능성

사진설명 국민의 뜻은? 개헌론은 정계 개편을 위한 초석 차원에서 거론되고 있다. 오른쪽은 1987년 개헌 국민투표 모습

4년 중임정·부통령제 개헌론이 정치권의화두로 빠르게 떠오르고 있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이 연말 기자간담회에서 한 '동서화합 큰 결심' 발언이 개헌가능성을 언급한것이라는 해석을 낳고 있다. 민주당 김중권 대표와자민련 김종호 대행도 입을 맞춘 듯 개헌론을 언급했다. 여권의 차기 주자중 한 사람인이인제 최고위원은 지난해7월부터 개헌론을 주장해 오고 있다. 그는 대중강연 때마다 이주장을 빠뜨리지 않고 있다.더구나 한나라당박근혜 부총재와 김덕룡 의원이 최근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여권과 한나라당 비주류를 중심으로 개헌론 연대 가능성까지 점쳐지는 형국이다. 민주당의 한 최고위원은, 여야가 합의한다면 사실개헌 작업은 4개월이면 끝난다면서한나라당 내부의 개헌론 확산을 주목했다.


김중권 대표·김종호 대행 '입맞춘 듯' 언급

개헌론은 한나라당 비주류의이해 관계와도 맞닿아 있다. 한나라당의 비주류는 지금처럼 이회창 1인 독주 체제에서는 역할을 제대로 찾기 힘들다. 이총재 독주 체제를 흔들고 틈새를마련하기 위해서도 정계 개편 분위기가 절실하다. 민국당 김윤환 대표도 생존차원에서 개헌 정국에 합승하고 있다. 허주는 최근 여야의주요 인사들을 접촉하며반 이회창연대의 지렛대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이처럼 개헌론이 반 이회창연대의 틀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개헌은 정계 개편논의와 맥을 같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시나리오가 실현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여권 내부의 조율이 문제이다. 민주당은 그동안 내부에서 끊임없이 정계 개편 시나리오를 가다듬어 왔다. 지난해 말 급작스레불거진 'DJP+α' 구상도 그 중의 하나. 이 구상은 실현된다고 하더라도 원내 의석안정 과반수를 확보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난점이다. 또한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도 근본적인정치권 판갈이가 불가피하다. 여권이 DJP 재결합 못지않게 개헌론에 신경 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자민련이 개헌론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내각제 변수를 넘어서야 한다.

자민련 내부에도 대통령제 불가피론자들이 있다. 이한동 총리와 김종호 대행이 이미 '내각제 유보와 정·부통령제 개헌'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내각제고수론자들이 다수이다. 강창희 의원은 여전히 내각제 포기를전제로 한 양당 합당에 부정적이다. 정우택의원도 "자민련과 민주당의공조 재개는 내각제를 고리로 할 수밖에 없으며, 여권이 내각제개헌을 선언할 경우 한나라당에서최소한 20명 이상이 동조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3김씨가 자신들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결국은 내각제 개헌에동의할 수밖에없으리라는 것이 이들의 예측이다.

그러나 자민련이 내각제 개헌을 끝까지 고집하지는 않을 것이라는전망이 우세하다.그런 점에서 김종호 대행이12월27일 기자간담회에서 "(개인적으로) 내각제가 국민의 이해 부족으로 정 안된다면 4년중임 정·부통령제라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생각한다"라고 한 발언은 중요한 시사점이 될수 있다. 특히민주당 김중권 대표가 "당장 추진하기는 어렵지만,원론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4년중임제 정·부통령 개헌이 바람직하다"라고 말한 직후 이 발언이 나왔다는 점에서 양당의의견 접근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이런 점에서 여권은 '공식 입장은 자제, 개별 의견은 허용' 쪽으로개헌론에 합류해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도, 차기 주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정략적으로비치지만, 소장파가 주장한다면 국민적인공감대를 얻을 수 있다면서 은근히 개헌론공방을 즐기는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여야 소장파가 모여개헌론을 치고나올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개헌론이 일단 공개적인 논의의 장에 등장할 경우 여야 소장파 사이에서 파장이커질 개연성이 매우 높다. <시사저널>이 총선 직후 당선자1백70명을 조사한 결과 72.1%가 개헌 필요성에 공감했고, 이들 중57.6%는 4년중임제 개헌에 찬성했다.

하지만 현재 거론되는 개헌론의가장 큰 문제점은 현실성이 별로없다는 점이다.개헌은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지금 정치 지형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민주당의 한 최고위원은 지금의개헌 논의가 신기루와 같다면서, 개헌론이 실체는 없는'론'으로만 끝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회창 총재 '개헌론' 전격 수용할 수도

민주당은 개헌을 절실히 원하지만, 원내 사정상 직접 나서서 불을 지필 수는 없는 입장이다. 한나라당 비주류도 마찬가지다. 개헌론의키는 이회창 총재가 잡고 있다. 그러나 이총재의입장은 개헌의 '개'자도 꺼내지 말라는 것이다. 따라서 개헌론이 실제개헌으로 이어지기보다는 정계 개편 촉발제로 작용할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 정치권의 분석이다. 민주당의 한관계자는, 개헌이 되면 좋지만 되지 않더라도개헌론 공방 자체가정계 개편에 촉발제가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만약 4년 중임 정·부통령제 개헌론이 각 정치 세력 간의 접착제 구실을 한다면 여당의 정계 개편 구상은 탄력을받을 수 있다.다양한 합종연횡을 바탕으로 한 여권의 차기 구도에도 훨씬 여유가 생길 수 있다. 한나라당김덕룡·박근혜 의원도 여권의 차기대선 파트너로 운신할 폭을 넓힐 수 있다.

그렇다면 이회창 총재의 '개헌불가' 입장은 끝까지 유지될까. 애초 지난해 총선 직후이총재는 "4년 중임제개헌이 필요하다"라면서 개헌론의 선수를 치고 나왔다가, 정·부통령제 개헌이 이슈가 되자마자 개헌불가 입장으로 돌아섰다. 이총재의 '호헌' 입장은 당분간 변할 가능성이 없다. 이대로 가면 대선 승리가확실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다만 여권일각에서는이총재가 4년 중임 정·부통령제를 전격적으로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박근혜 부총재가 개헌론을 주장하면서 뛰쳐나가거나, 영남 신당이 뜰 징후가보일 경우 이를 막을 방법으로 고려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영남이 텃밭이면서도 영남 출신이 아니라는 이총재의 처지는 이런 개연성을 뒷받침하는 한 요인이기도 하다.

이래저래 정계 개편이라는고난도 방정식을 어떻게 푸느냐가 올해 정국을 관전하는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개헌 논의는 정계 개편 방정식의 출발점이자 중간 도착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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