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는 마약 박사 만드는 교육장"
  • 정리·정희상 기자 (hschung@e-sisa.co.kr)
  • 승인 2001.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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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밀매·중독 경험자 5명 '진솔한 방담'


마약의 해악을 경고하는 정보는 넘친다. 주로 단속하는 쪽인 검찰이나 경찰이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면의 진실일 뿐이다. 마약 중독자와 밀매자의 실상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경험자의 생생한 육성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시사저널〉은 오랜 세월 마약에 빠졌다가 수렁에서 탈출하려고 몸부림치는 중독자와 밀거래 경험자 5명을 한자리에 모았다. 짧게는 6년, 길게는 16년 동안 마약을 밀거래하고 중독자로 살아온 이들은 최근 '단약모임'(NA)을 만들어 마약에서 벗어나려고 악전 고투하고 있다. 3월29일 밤 인천시 연수구에 있는 한 사무실에서 열린 마약중독자 비공개 모임에서, 이들이 3시간 동안 가족과 사회·정부를 향해 토해낸 말을 지상 중계한다.




기자 : 악몽 같은 마약 체험담을 들려주기로 용기를 내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먼저 마약 경력부터 밝히는 것으로 이야기를 풀어 보지요.


신용원 : 저희 집은 기독교 집안이었는데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고등학교 때부터 본드를 시작해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뒤 16년 동안 안해 본 마약이 없었어요. 감옥에도 두 번이나 들어갔고,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지요. 자살하기 직전에 교도소에서 한 목사님을 만나 권유를 받고 2년간 신학 공부를 한 뒤 지금은 전국의 소년원과 보호관찰소를 돌며 마약 중독자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금단 증세의 속삭임 "칼로 손목 그어라"


심학재 : 대우자동차에 입사한 뒤 스물두 살 때부터 히로뽕에 손을 댔으니까 9년 되었지요. 대마초 사범으로 구속됐다 풀려난 고교 동창을 만나 '한 대 맞으면 뿅 간다'고 해서 히로뽕에 손댔어요. 직장 동료들이 일 끝나면 술을 마시며 스트레스 풀 듯이 저는 히로뽕을 한 대씩 맞았어요. 처음에는 한번에 10만원씩 주고 맞았는데 횟수가 느니까 월급을 다 털어도 모자랐어요. 결국 적금을 깨고, 10년간 불입한 보험도 해약했어요. 나중에는 자동차까지 팔아서 투약했지만 몸이 망가지니까 직장에서도 들통나 쫓겨났어요. 돈이 없어 다른 마약을 찾게 되었는데 누바인이었지요. 누바인 판매책으로 나서서 돈도 벌고 투약도 하다가 작년에 붙잡혀 징역을 살고 올해 초 나왔어요.


이영숙 : 스물세 살 때 사귀던 애인이 히로뽕을 가져와 처음으로 같이 주사를 맞았어요. 처음에는 뭔지도 모르고 그냥 섹스할 때 죽여준다고 해서 맞았는데 너무 기분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여러 번 맞게 되었고, 점점 뇌가 고장이 났어요. 정신병 증상이 생겨 끊으려고 했지만 맘대로 안되었어요. 애인이랑 붙잡혀 교도소로 간 뒤 나는 출소해 일본에 갔어요. 거기서는 코카인을 했어요. 그러다 정신 이상 증세가 심해져 약물 병동에 입원했지요. 치료받고 나와 새 남자를 사귀었는데 그도 히로뽕을 하고 있었어요. 이번에도 같이 구속되었다가 나는 4개월간 징역을 살고 풀려났어요. 그 뒤 부모님이 집에 창살을 치고 가두셨는데 발작 증상이 나타나고 자살 소동을 벌이는 등 금단 현상이 너무 심했어요.


강한수 :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본드를 시작한 뒤 15년간 히로뽕을 투약하고 팔아 왔어요. 남들 못지 않게 놀고 즐기는 쾌락의 삶을 살았지요. 한 번도 안 걸렸는데 4년 전 히로뽕을 팔다 잡혀 1년6개월을 살았어요. 나와서 히로뽕을 투약했는데 출소한 지 3일 만에 다시 붙잡혔어요. 운수 사납다는 생각보다는 보이지 않는 손이 나를 교도소에서 내보냈다가 다시 구속해 한 건 더 올리려고 각본을 짰다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고요. 다시 2년을 꼬박 살고 올해 초에 나왔어요. 내가 아는 세상은 마약밖에 없었으니 마약도 사회 생활이라고 봐요. 15년 동안 맺은 인맥과 주변 인물이 모두 마약 관련자뿐이라 출소하면 영락없이 그 소굴로 다시 들어가겠더라고요. 기댈 데 없는 고독한 마약쟁이들은 결국 다시 그렇게 됩니다. 사회가 그 점을 알아야 해요. 그래서 두 달 간 혼자 방황하다가 신용원 전도사님을 만나 이 모임에 나왔어요.


이재영 : 잘 나가던 건설 사업이 휘청거리던 IMF 전해부터 히로뽕에 손을 댔어요. 사업이 기우니까 마약을 도피처로 삼게 되더라고요. 실제 히로뽕 투약 기간은 3년이었지만 고통은 너무 컸어요. 다른 사람이 하루 한 대 맞을 때 나는 모르고 5대, 10대씩 맞았거든요. 1998년 초에 붙잡혀 1년6개월을 살고 얼마 전에 나왔어요. 수감 기간에 매일 울면서 기도하고 신앙에 매달렸어요. 나오면 다시 손댈 것 같아 이 모임에 참석하게 됐어요.


기자 : 마약에 중독된 뒤 어떤 후유증을 겪고 있나요?


이영숙 : 마약이 안 들어가면 자살 소동을 벌였어요. 엄마 아빠가 저를 집에 가두니까 금단 현상이 심할 때는 식구들이 다 나더러 죽으라고 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가끔씩 어떤 무서운 힘이 내 귀에 대고 속삭여요. '손목을 칼로 세 번만 그어라.' 그 지시를 받고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따라 했어요. 언니가 발견해 목숨은 구했지만 그 뒤 내 귀에는 다른 목소리가 들렸어요. 베란다로 달려가 뛰어내리라는 절대적인 명령이었어요. 속삭이는 그 명령을 복창하며 뛰어가면 식구들이 나와 만류하고, 그때 귓속에서는 가족을 때려눕히고 뛰라는 속삭임이 또 들려요. 그렇게 몸부림치다 붙들리곤 했어요(이영숙씨는 이 대목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심학재 : 나는 히로뽕을 맞으면 경찰서에 전화해 나를 잡아가라고 큰소리 치는 버릇이 있어요. 대개 무시하지만 한번은 경찰이 찾아와 소변 검사만 하고 그냥 돌아갔어요. 우리는 그런 경우를 만세 부른다고 해요. 정량을 초과해 약물을 맞을 때 검찰청이나 경찰서로 뛰어드는 현상이지요. 언론에는 자수라고 나오는데, 사실은 환각 후유증으로 습격하는 행위이지요. 약물에서 깨어나면 자기가 왜 거기 있는지도 몰라요.


신용원 : 나는 16년간 마약을 달고 살아놔서 눈썹이 다 빠지고 머리도 빠지고 치아가 주저앉았어요. 성기능 장애도 생겼고요. 약을 끊은 뒤로는 머리카락이 조금씩 늘고 성기능도 되찾았지만 보다시피 지금도 눈썹이 없어요.


강한수 : 히로뽕을 하면서부터 불면증이 심해져 괴로우니까 누바인을 번갈아 맞기 시작했어요. 누바인 주사를 많이 찌르면 거의 기절하는데, 그렇게 축 늘어진 상태가 불면증보다 편해요. 처음에 히로뽕 맛을 들일 때는 몇날 며칠 음식도 안 먹었는데 나중에는 몸이 축나니까 히로뽕을 맞기 위해 억지로 음식을 쑤셔넣게 되더라고요.


히로뽕은 끊어도 누바인은 끊기 어려워




기자 : 여러분이 히로뽕과 누바인을 같이 투약했다는데, 누바인이 그렇게 환각 효과가 큽니까?


신용원 : 주사제로 이걸 맞으면 히로뽕보다 더 맛이 가지요. 워낙 중독성이 심해 히로뽕은 끊어도 누바인은 끊기 힘들어요. 현재 인천 지역에서 마약에 손댄 웬만한 고등학생은 대부분 누바인 주사 경험이 있다고 보아야 할 정도로 심각합니다. 얼마 전에는 누바인을 싣고 가던 병원 차량이 통째로 털린 적도 있어요. 지난달 법이 통과되어 누바인을 마약으로 단속하니까 요즘은 사제품이 시중에 나돕니다.


강한수 : 그동안 히로뽕은 부산에서 전국으로 퍼졌지만 누바인은 인천에서 전국으로 확산되었어요. 몇년 전만 해도 이 약은 인천 지역 중독자들만 하던 거였거든요. 나도 한때 누바인 장사를 했는데, 제약회사 영업하는 사람과 연결된 상선(공급책)에 접근하면 몇 곽씩 받아낼 수 있었어요. 요새는 한 병에 2만5천원 한다는데, 몇년 전만 해도 4만원 주면 10병을 구할 수 있었어요.


이영숙 : 누바인 때문에 인천 지역에 여자 마약 중독자 숫자가 특별히 많은 것 같아요. 인천 유흥업소 아가씨들이 충청도와 전라도를 돌면서 누바인을 많이 퍼뜨렸어요.


심학재 : 히로뽕을 하는 사람이라도 절대 누바인에는 손대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 누바인은 보통 히로뽕 맞은 후 잠이 안 오고 찌뿌드드한 기분이 싫어서 축 늘어지는 맛 때문에 하거든요. 그런데 너무 힘들어져요. 나도 버릇 되니까 매일 한번씩 누바인을 맞다가 점점 담배 피우는 속도로 늘고, 나중에는 주사기를 꽂고 살다시피 했어요. 그 후유증으로 지금 고통이 너무 심해요.


이영숙 : 맞아요. 한 일곱 시간은 안해도 되는데 몸에서 자꾸 부르니까 한 시간에 한두 번씩 꽂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몸이 가버리고 정신 이상이 심해지는 것 같았어요.


기자 : 중독된 여러분들도 힘들었겠지만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본 가족은 더한 고통을 겪었을 텐데요.


이재영 : 처자식을 두고 마약을 시작하니 가족이 너무 힘들어 했어요. 그 전에는 사업이 잘되어 풍족하게 살았는데, 나는 자꾸 가출하지, 사업은 무너지지 하니까 가정이 엉망이 되었어요. 그러나 내 눈에는 마약만 보였지요. 감옥에 들어갔다 나오니 아내가 내 변호사비며 생활비로 돈을 다 까먹고 식당에 잡일하러 나가고 있더라고요. 그게 제일 미안해요.


이영숙 : 엄마가 특히 고생이 심했어요. 내가 불면에 시달리며 자꾸 자살 소동을 벌이니까 엄마가 매일같이 잠을 못 주무시고 내 옆에서 눈물로 지켰어요. 외롭고 무서웠지만 이런 모임이 있어서 이제는 행복해요.


신용원 : 마약 중독자들은 가족이 믿음을 가지고 기다려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약을 시작하면 대개 부모 형제 아내가 힘들어 하죠. 그런데 중독자 처지에서는 그 과정이 가족이 자기를 학대하고 미워하는 것으로 비치거든요. 의심하고 구속하는 자세로 대하면 중독에서 구출하기가 더 힘들어집니다.


이재영 : 맞아요. 나도 식구들이 너무 힘들게 하니까 가출해서 넉 달 간 방황했어요. 마약을 끊으면 좋지만 그게 어디 쉽나요. 솔직히 약을 끊는 것보다 누가 팔 다리를 잘라가는 것이 더 편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거든요. 마약 할 때보다 이렇게 단약하는 기간이 더욱 힘들어요. 그래서 중독자에게는, 특히 출감 후 가족의 역할이 중요한 것 같아요. 돌아오면 절대 의심하거나 힘들게 만드는 것은 금물이에요. 그게 힘들어 다시 손대는 일이 많거든요.


기자 : 처음 마약에 손댔다가 처벌 받은 뒤에 더 깊이 마약에 빠져드는 이유가 뭡니까?


강한수 : 나는 본드를 하다 잡혀들어간 뒤 교도소에서 본격적으로 마약을 배워 나왔어요. 한 방에 5명이 있었는데 본드·대마초·히로뽕·아편을 한 사람들이었거든요. 그 사람들이 나보고 본드도 약이냐고 놀리면서 히로뽕은 죽여주는 약이라고 하더라고요. 거기서 교육을 받고 바깥 상선 전화번호를 받아가지고 나와 히로뽕으로 옮겨탔어요.


심학재 : 감옥에서 대화 내용은 아침에 눈 뜰 때부터 잠들 때까지 마약 이야기, 여자 이야기밖에 없어요. 스무살 갓 넘어 들어간 나의 머리 속에 마약이 확실히 박혔어요.


강한수 : 나도 감옥에서 한 방에 20명이 살았는데 본드·가스·누바인·대마초·히로뽕 중독자 집합소였어요. 가스나 본드 하는 어린애들이 거기서 다 히로뽕으로 갈아타는 법을 배워서 나와요. 그러다 보니 먼저 출소한 애들이 얼마 안 있어 히로뽕 사범으로 잡혀서 다시 들어오더라고요.


신용원 : 교도소 정책에 문제가 있어요. 마약 투약자를 징역 보내면 사회에 나와서는 마약 장사꾼 동업자로 만나는 일이 대부분이에요. 향정사범과 대마 사범을 분류해야 하는데 한꺼번에 수용하니까 감옥이 마약 박사 만드는 교육장이 되는 거죠. 가스나 본드를 하고 잡혀들어간 아이들이 나중에 히로뽕 판매 투약 사범으로 성장하는 것도 그 때문이지요.


이영숙 : 여자 교도소도 마찬가지였어요. 초범이든 재범이든 모두 한 방에 수용해요. 여자 수인들 생활도 눈만 뜨면 마약과 남자 얘기뿐이에요. 거기서는 사회에서 고생했다는 사람 한 명도 못봤어요. 모두 잘 나가고 뿅가는 생활을 했다는 자랑뿐이에요. 마약 하면 기분이 어쨌다는 둥 어떤 마약이 더 좋다는 둥 밥만 먹으면 그런 얘기뿐이지요.


건수 올리기식 함정·품앗이 수사




기자 : 여자 마약 사범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이영숙 : 20명이 수감된 방에서 4개월을 지냈는데 10대 후반에서 40대 후반까지 다양했어요. 아이를 둔 주부도 있고, 직장 잘 나가던 회사원이 애인과 함께 히로뽕을 하다 걸려들어온 경우도 있었어요. 술집에서 일하다 들어온 아가씨들이 많지요. 여자들은 대개 남자 공범이 있어요. 애인이나 남편이에요. 애 둘만 두고 부부가 잡혀온 경우도 있었고요. 여자 마약 중독자의 사생활을 들어보면 공범 따로 애인 따로 남편 따로 둔 경우가 많아요. 원래 여자가 마약을 하면 섹스 상대로 남자를 가리지 않거든요.


이재영 : 교도관들이 마약 사범을 대하는 태도에도 문제가 있어요. 초범은 구속되면 처음에는 크게 후회하며 마약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칩니다. 저도 그랬어요. 그러나 교도관들은 마약 사범을 죄다 인간 쓰레기 취급을 합니다. 그런 분위기에서는 마약에서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가 없게 되죠. 또 수사 과정에서도 비열한 일이 많이 일어나요. 건수 올리기식 함정 수사에 걸려드는 사람이 많지요.


강한수 : 맞아요. 내가 밀거래를 하다 잡혔는데 투약자는 거의 수사관의 '작업'으로 잡힌다고 보면 돼요. 나도 수사관에게 내가 마약을 넘긴 사람들 명단을 협조해 주는 대가로 선처를 받고 또 그런 일을 반복했습니다. 형사들은 함정 파는 작업을 지능적으로 해요. 내가 분 애가 인천에 살면 절대 인천 경찰은 걔를 안 잡아요. 수원 경찰에 연락해서 잡아넣도록 하고, 다음에는 수원에 있는 투약자를 인천 경찰이 잡도록 그렇게 건수 올리기 품앗이를 하지요.


심학재 : 나는 중간에 히로뽕을 끊고 단약 중일 때 잡혔어요. 기가 막히더라고요. 알고 보니 붙잡힌 상선이 옛날에 나에게 팔았다고 분 거에요. 억울하고 열 받아서 다음에는 마약이나 제대로 하다가 잡혀도 잡히자는 심정이 되었어요. 마약 전과가 5범인 사람이 한 방에 들어왔는데 6개월만 살고 나가더라고요.투약자 5명을 분 대가로 형량을 줄여 받았다더군요.


강한수 : 상선은 실제로 형사들이 잘 안 건드려요. 상선에게서 마약 사러 온 사람들 전화번호를 받아서 투약자를 잡지요. 국술작업이라는 것도 있다고 해요. 수사관이 마약을 미끼로 덫을 놓아두고 찾아오는 투약자를 현장에서 붙잡는 방식이지요.


이영숙 : 여자 마약 사범도 마찬가지에요. 내가 처음 붙잡혔을 때 수사관이 내게 아는 사람 몇 명만 불면 내보내준다고 했어요. 나는 애인이 주사를 놔줬기 때문에 그 남자밖에 불 사람이 없었지만, 이미 잡혀들어간 뒤였거든요. 그런데 검찰에서 조서 꾸밀 때 보니까 히로뽕으로 들어온 한 여자는 바로 풀려나더라고요. 물어봤더니 25명을 불었다고 해요.


기자 : 마약으로 산전수전을 겪고 단약을 실천하는 여러분은 특별히 다른 중독자들과 그 가족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 텐데요.


강한수 : 마약 중독을 치료하는 의사들은 자기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하지만, 내가 겪어 보니 마약은 개인 의지로는 도저히 끊기 어려워요. 신앙의 힘이나 공동체의 힘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단약 모임을 알고 보니 마약보다 더 좋은 것이 있다는 것, 마약을 하고 나서 처음으로 나와 처지가 같은 사람들이 힘들어 하면서도 서로 믿고 격려한다는 것을 보고 새출발할 의지가 생깁니다.


심학재 : 사회가 마약 중독자들을 중범죄인 취급하는 것이 문제에요. 심지어 제 어머니도 저를 그렇게 보시거든요. 언론이 그렇게 만들었어요. 방송에서 마약 투약자를 다룰 때 인질극이나 벌이고 남을 죽이는 것처럼 몰아가니 우린 흉악 범죄자 취급을 받는 겁니다.


마약 중독자는 범죄자가 아니라 환자


이재영 : 마약 중독자를 범죄자로 보면 안돼요. 환자거든요. 자기 가족이 마약을 하지 않더라도 약물이라는 바이러스는 전염병이라는 인식을 가져 주었으면 합니다. 중독자를 치료하면 바이러스가 퇴출된다고 생각하고, 사회 전체가 공동으로 책임지는 의식을 가지기를 부탁하고 싶어요.


이영숙 : 외롭고 무서웠는데 이런 모임이 있어서 이젠 행복해요. 여기서 확실히 약을 끊고, 지금 교도소에 있는 애인도 출소하면 이 모임으로 인도해 마약에서 손 떼게 한 뒤 늦게나마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어요.


신용원 : 오늘은 원래 순수 NA 비밀 모임인데 기자가 와서 이야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많이 흘렀군요. 여기 온 회원들은 소년원의 약물 하는 아이들, 보호관찰소 중독자들과 1 대 1로 자매결연을 맺고 마약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이에요. 국내에도 NA가 뿌리 내릴 수 있도록 도와야 해요. 우리 중독자 눈으로 보면 마약은 상담과 교육, 구속 수감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스스로가 치료 공동체를 만들어야 해요. 우리도 쓰레기가 아니라 보람 있는 일로 사회에 복귀할 수 있다는 자신을 얻는 것이 중요해요. 그래서 두레마을이나 음성 꽃동네처럼 가족에게까지 버림받고 소외된 마약 중독자들이 다 모여 사는 마을을 만들려고 해요. 그 안에서 치료 공동체를 이룰 것입니다. 전국의 마약 중독자 가족이 이 모임의 문을 두드리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연락처 : 011-9054-7815 신용원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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