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마이웨이' 부시의 오만과 편견
  • 워싱턴·변창섭 편집위원 ()
  • 승인 2001.04.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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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원 장악한 공화당 우파에 '발목'
교토 의정서 파기 등 일방적 행보
우방과도 대립해 반미 기류 자초


부시 행정부가 온 사방을 휘젓고 다니면서 사람들의 눈을 찌르고 있다."
최근 외신에 인용된, 한 유럽 외교관이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보인 최근 외교 행태를 꼬집은 말이다. 이 외교관이 지적한 대로, 부시 행정부는 지난 1월 중순 출범 이후 불과 3개월도 안돼 일방주의를 넘어 오만함에 가깝다는 인상을 줄 정도로 무리한 대외정책을 펼쳐 왔다. 가장 최근의 일로는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교토 의정서를 실천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일이다(68쪽 기사 참조). 오만한 사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국제 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가미사일방어(NMD) 계획을 강행하려는 것이나, 자체 방위기구를 창설하려는 유럽연합의 구상에 제동을 건 것, 동아시아 평화의 열쇠를 쥔 북한과 대화의 문을 닫겠다고 한 것, 나아가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을 공공연히 전복하겠다고 밝힌 것 모두가 국제 사회로부터 빈축을 사고 있다.




미국이 외부 세계에 일방주의적이고 오만한 모습으로 비친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이를테면 클린턴 행정부 때인 지난해 10월 미국은 전세계 1백50개국이 서명한 포괄핵실험금지조약(CTBT)을 의회에서 비준하지 못해 전세계의 빗발치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고, 유엔 개혁을 전제 조건으로 한동안 수억 달러에 이르는 유엔 분담금을 내지 않아 빈축을 사기도 했다. 미국은 1997년 범세계적인 지뢰금지조약에 서명을 거부했고, 국제전범재판소 설치에도 반대했다. 나아가 문화 배경이 다른 아시아와 아랍권 나라에 자국의 잣대로 인권과 민주주의를 강요하려다 거센 반미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하버드 대학 새뮤얼 헌팅턴 교수는 이런 미국을 두고 '외로운 슈퍼파워'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최근 부시 행정부가 보여준 일련의 행태는 가장 가까운 우방들마저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교토 의정서를 일방적으로 파기한 부시 대통령의 결정에 대해 유럽 우방들은 '무책임하다' '오만하다' '판을 깨자는 것'이라는 등 극한 표현을 써가며 강력히 비난했다. 미국은 냉전 시절이나 지금도 나토를 통해 유럽과는 돈독한 동맹 관계를 맺고 있다.


부시의 '발목잡기'에 유럽연합 '돌팔매질'


그런 유럽이 이제 부시의 미국을 향해 돌팔매질을 해대고 있는 것이다. 15개 회원국으로 이루어진 유럽연합의 로마노 프로디 의장은 "세계 지도자가 되려면 미국 산업만 지킬 것이 아니라 지구 전체도 돌봐야 한다"라며, 경제적 이유를 내세워 교토 의정서를 실천할 수 없다고 결정한 부시 대통령을 맹공격했다.


부시 행정부가 유럽 우방과 충돌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부시 행정부는 발칸 지역에 국제평화유지군으로 파견되어 있는 미군을 일방적으로 철수할 뜻을 밝혔다가 유럽 우방들의 강력한 반발을 샀다. 결국 양측의 긴장 관계는 파월 국무장관이 유럽을 방문해 미군 철수 의사를 철회함으로써 누그러지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유럽 우방들은 배신감을 느꼈다. 러시아와 중국은 물론 유럽 우방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강행하려는 국가미사일방어 계획도 마찬가지다. 유럽은 부시가 이 계획을 강행할 경우 1972년 미국과 옛 소련이 맺은 ABM(탄도요격미사일) 억제 협정이 깨지고 결과적으로 새로운 동서 핵경쟁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들어 강력히 반대해 왔다. 유럽의 반대가 의외로 거세자 부시 대통령은 지난 2월 가장 든든한 우방인 영국의 블레어 총리를 만나 지지를 요청했으나 보기 좋게 퇴짜를 맞았다. 유럽은 또 이른바 '유럽안보방위정책'(ESDP)에 따라 나토와는 별도로 자체 신속대응군을 창설하려다 부시 행정부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심사가 뒤틀려 있다. 유럽은 신속대응군을 창설하는 것이 나토를 위태롭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미국측에 분명히 다짐했지만, 미국은 회의적이다. 미국이 배제된 유럽 자체의 군사기구가 태어날 경우 미국이 주도해 1947년 창설한 나토의 입지가 약화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아시아로 눈길을 돌려보자. 우선 부시 행정부는 이번 교토 의정서 탈퇴와 관련해 일본의 강한 불만을 샀다. 1997년 교토 의정서 주최국인 일본은 미국의 일방적인 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시하는 서한을 최근 백악관에 전달했다. 오키나와 주둔 미군의 범죄 사건으로 가뜩이나 미국에 감정이 안 좋은 일본 국민은 최근 하와이 앞바다에서 벌어진 미국 핵잠수함과 일본 어선 충돌 사건 이후 보인 미국의 오만한 태도에 분노하고 있다. 최근 미국 정찰기 충돌 사건에서 보듯, 중국과도 긴장 관계의 연속이다. 중국을 '전략적 동반자'로 본 클린턴 행정부 때와는 사정이 180° 다르다. 부시 행정부가 타이완에 무기를 판매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 것도 중국을 잠재적 위협국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우방인 한국과는 어떤가. 최근 한·미 정상회담차 워싱턴을 방문했던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향후 협상에 대한 검증을 확보하지 못하는 한 북한과 대화에 나서지 않겠다"라는 경고성 메시지를 들어야 했다. 부시 대통령은 특히 북한과의 미사일 협상과 관련해 클린턴 행정부가 남기고 간 유망한 자리에서 출발하겠다고 대화 재개 의욕을 밝힌 콜린 파월 국무장관의 입장을 하루 만에 뒤집었다. 이처럼 동맹인 한국의 처지를 무시한 부시의 오만한 처사에 대해 최근 〈워싱턴 포스트〉 칼럼니스트 메리 맥그로리 여사가 신랄히 비판했다. 이어 민주당 소속 조셉 바이든 상원의원과 리처드 게파트 하원 원내총무까지도 부시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바이든 상원의원은 특히 지난 4월3일 조지타운 대학에서 행한 연설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실패라고 규정짓고, 부시 대통령이 대북 개입정책을 선언하지 않은 것은 실수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부시 행정부가 정권 출범 초기부터 유럽과 아시아의 전통 우방과 충돌하고 있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더군다나 부시 외교팀은 외교 문외한이 아니고 모두가 전직 관료 출신 프로페셔널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전문가들은 그 해답의 일단을 부시 행정부의 우경화 노선에서 찾고 있다. 대통령 자신은 물론 행정부 고위직 인사 거개가 보수 성향인 데다 상·하원 모두를 공화당이 장악한 상황에서 부시 행정부의 정책도 온건보다는 우파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반낙태주의자로 유명한 존 애시크로프트를 법무장관에 임명한 것이나, 종교집단에 대한 보조금을 연방 정부가 지원토록 한 것, 자유주의적인 미국변호사협회 출신 변호사를 연방 판사에 임명하지 않은 것, 나아가 최근 교토 의정서를 파기한 것 등등이 공화당 우파의 구상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두고 클린턴 대통령의 정책보좌관을 지낸 램 엠마뉴얼 씨는 최근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와의 회견에서 '일반 대중이 출범 3개월째인 부시 행정부에 대해 갖는 인상은, 행정부는 극우파에 볼모로 잡혀 있고 대통령은 보수파 전략가의 취향에 자신의 정치적 장래를 맡긴 형국'이라고 비판했다.


부시 개인의 성향이나 각료 면면을 보면 그가 이끄는 행정부는 우파까지는 아니더라도 거개가 보수파 인사들로 채워져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와 관련해 최근 〈워싱턴 포스트〉는 부시 행정부 고위직 인사들을 분석한 기사를 통해 '부시 대통령이 각료 인선에서 이념적 성향을 중시했던 레이건 대통령을 능가할 정도로 보수적인 행정부를 구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각료급은 덜하지만 준각료급을 비롯한 고위직은 거개가 보수적 두뇌 집단이나 우파 언론 매체, 우파 법조인들로 채워진 것이 사실이다. 〈워싱턴 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일부 각료급을 포함해 행정부 고위직을 차지한 사람 대부분이 이른바 보수주의 '운동권' 출신이다. 게다가 보수파 지도자들과의 연락 업무를 맡게 될 백악관 자문관들이 한결같이 보수파 대법원 판사 밑에서 서기를 지낸 사람과 보수우파 단체인 페더럴리스트 협회 출신으로 채워진 것도 특기할 만하다.


여기에 더해 상·하원 모두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다. 비교적 당파적 정쟁이 덜한 상원은 접어두고라도, 하루가 멀다고 당파적 싸움을 일삼는 하원의 경우 딕 아미 원내총무와 톰 덜레이 사무총장 등 우파가 공화당 지도부를 형성하고 있다. 의회의 협조 없이는 대내외 정책을 단 한 발짝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부시 행정부는 공화당 지도부의 '의중'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감세와 총기 규제 등 일부 국내 정책에서는 절대적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부시 행정부가 공화당 우파에 발목이 잡혀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닌 것 같다.


진보적 정치 평론가 짐 로브에 따르면, 딕 체니 부통령을 정점으로 한 공화당 우파의 세계관은 온건파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를테면 이라크에 대해 우파는 필요하다면 반 후세인 저항 세력을 길러 강제로 후세인을 전복하자는 입장이다. 타이완 문제와 관련해서도 우파의 입장은 확고하다. 우파는 중국 본토로부터 타이완의 독립을 지지하는 것은 물론 타이완 안보를 위해 대대적인 무기 판매를 주장하고 있다.


나아가 중국을 미국에 대한 군사적 위협국으로 간주하고 있다. 북한의 경우 공화당 우파는 북한의 핵동결을 담보한 19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문 무용론을 주장한다. 나아가 북한이 또다시 핵을 개발하려 하거나 미사일을 쏘아댈 경우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군사적 보복을 서슴지 말자는 입장이다. 국가미사일방어망만 해도 우파는 유럽과 아시아 우방들과의 관계가 손상되는 일이 있더라도 기필코 건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부시 행정부가 취해온 일련의 대외 정책은 엄밀히 말하면 우파 쪽에 가까운 것이 사실이다.


유럽 우방, '정찰기 충돌 사건' 미국 두둔 안해


아무튼 부시 대통령의 전격적인 교토 의정서 파기 결정으로 다시금 촉발된 범세계적인 반미 기류는 앞으로 부시 행정부의 국정 수행에도 부담이 될 것 같다. 이미 그런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우선 공화당 온건파 의원들이 부시 대통령의 결정에 낙심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루키마 하원의원은 부시 대통령이 교토 의정서를 파기하기로 선언한 직후 "건강과 안전이 우선이다. 파기 결정을 재고할 것을 가장 강력한 어조로 촉구한다"라며 반발했다. 또 링컨 차피 상원의원은 지난 4월4일 〈뉴욕 타임스〉와의 회견에서 부시가 교토 의정서를 파기하기로 결정한 배경에 서부 지역의 일부 상원의원과 강경 보수파의 입김이 작용했다고 밝혔다. 그가 말한 '서부 지역'이란 특정 이해단체인 에너지 업계가 몰려 있는 캘리포니아를 말한다. 부시의 결정은 보수 우파 의원들을 만족시켰는지는 몰라도 온건파 공화당 의원들과 초당적 입장인 민주당 의원 다수를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대외적으로도 부시의 결정은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 유럽연합은 곧 열릴 유엔인권위원회에서 중국의 인권 상황을 규탄하자는 미국의 결의안에 동조하지 않을 방침이다. 유럽 우방들은 4월1일 중국 상공에서 발생한 미군 정찰기 충돌 사건과 관련해 공개적으로 미국 편을 들지 않고 있다. 4월6일 유럽 주재 한 미국 외교관은 로이터 통신과의 회견에서 "미국은 정찰기 충돌 사건과 관련해 유럽 동맹국들로부터 공개적인 지지를 끌어내지 못했다"라고 고백했다. 여기에는 다분히 교토 의정서 파기와 같은 일방주의적 외교 행태에 대한 불만이 섞여 있다는 지적이다.


나아가 유럽 우방들은 중국과의 정찰기 충돌 사건말고도 최근 스파이 혐의를 빌미로 워싱턴 주재 러시아 외교관 50명을 무더기로 추방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부시 행정부가 충돌 지향적이며 자국 중심의 외교 정책을 펼치는 것을 불쾌해 하는 것 같다. 이런 기류를 대변하듯,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정찰기 충돌 사건 직후 때마침 파리를 방문한 탕자쉬안(唐家璇) 중국 외교부장을 접견한 자리에서도 그 사건에 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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