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대선 태세로 "헤쳐 모여"
  • 정희상·권은중 기자 (hschung@e-sisa.co.kr)
  • 승인 2001.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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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대규모 인사 앞두고 술렁…

DJ, 정권 재창출 위한 '신승남 체제' 구축할 듯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김 아무개 변호사(54)는 4년 전 지방의 한 대도시에서 검사장을 지내다 검사 생활을 마감했다. 그는 5월 검찰 인사를 앞두고 1996년 자기가 겪었던 검찰 수뇌부 인사의 비화 한 토막을 소개했다. "정권이 임기 2년을 남겨둔 시점에서는 정권 재창출과 임기 말 관리를 위해 검찰에 특별한 역할을 부여하고 싶어한다. 1996년 초에도 그랬다. 당시 김영삼 정권 핵심이 검찰에 맡긴 특별 임무는 김대중 킬(kill) 작전이었다. 정치자금 20억원 플러스 알파를 파헤쳐 결정타를 날리려는 야심이었고, 이 작전은 대선용 검찰 판짜기를 통해 시도되었다. 그러나 김총재에게는 천운이 따랐다."


"YS 임기 말, DJ 죽이기 작전 있었다"




그가 말한 천운이란 그 무렵 노태우 비자금을 폭로한 박계동 의원의 돌출 행동이었다고 한다. 당시 정권 핵심은 '김대중 킬 작전'을 대선 1년 전까지로 늦추면 시기를 놓친다고 판단하고 2년쯤 전에 검찰 새 판짜기를 통해 검찰내 PK 인맥인 안강민 검사를 중수부장에 기용해 그 임무를 맡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느닷없이 국회에서 박계동 의원이 노태우 비자금 서류를 흔드는 바람에 작전에 혼선이 생겼다. 중수부가 노태우·전두환 씨 비자금부터 치고 들어가지 않을 수 없게 되자 김대중 킬 작전은 그 다음 순서로 미루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정권 재창출을 위해 검찰을 동원해 눈엣 가시 같은 야당 총재를 고사시키려던 YS 정권의 당초 생각은 상황에 밀려 대선 시기로 넘어갔다. 게다가 김현철 사건으로 YS의 수족이 묶이는 바람에 오랫동안 '준비'해온 김대중 고사 작전은 '물 건너간' 셈이 되었다. 대선 직전에야 강삼재 의원의 폭로를 통해 검찰을 압박하려 했지만 불발로 그치고 말았다는 것이다.


당시 고검장 승진을 놓고 순리적인 인사를 기대했던 김변호사는 내심 영전 소식을 기다렸지만 YS 정권의 핵심 인사로부터 "지방에 있으면서 DJ 측근 거물 몇 사람만 기획 수사해 집어넣으면 좋은 기회가 올 것이다"라는 언질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이 말을 가슴 속에 묻어버렸다는 것이다.


이런 경험 때문에 그는, 차기 대통령 선거를 2년 앞둔 정권 임기 말의 검찰 수뇌부 인사가 정치 색채를 띨 수밖에 없는 것이 한국 검찰의 최근 역사라고 회고했다. 그는 현정권도 정권 재창출에 집착할 경우 가장 막강한 적수인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를 고사시키거나 견제하기 위해 검찰을 통해 광범위한 작전을 수행할 시기가 지금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박순용 검찰총장의 임기가 끝나는 오는 5월 신임 총장을 포함해 대대적인 물갈이에 들어가는 검찰 인사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현정부 들어 수많은 정치적 파란을 겪은 검찰 조직이 5월 인사를 앞두고 술렁거리고 있다. 이번 검찰 인사는 내년 봄에 있을 지방자치 단체장 선거와 내년 말 대통령 선거라는 굵직한 국가 중대 사안을 앞두고 단행된다. 임기 말 권력 누수 방지와 정권 재창출에 사활을 걸고 있는 정권으로서는 그만큼 검찰에 정치적으로 특별한 역할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그러면 이런 시각에서 검찰 안팎에서는 차기 검찰 수뇌부가 어떤 면면들로 채워지리라고 보고 있을까. 다음 검찰총장은 사시 9∼12회가 포진한 고검장급에서 나올 전망이다. 현재 검찰 안팎에서는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 신승남 대검 차장(사시 9회)을 유일하게 꼽고 있다. 그는 목포고 출신으로 검찰 내 호남 인맥의 대부 격인 데다 그동안 박순용 총장(사시 8회) 체제에서도 사실상 정권이 신뢰하는 실세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그와 경합할 기수인 사시 9회와 10회는 지난해 인사에서 거의 배제된 상태이다. 당시 그같은 인사를 놓고 검찰 일각에서는 신승남 차장을 정권 말 검찰총장에 기용하려고 주변을 미리 정돈해 주었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그 아래 기수인 사시 11회가 주로 영남 출신이라는 점에서도 신승남 총장 구도를 위협할 상황은 못된다. 지난해 한나라당이 검찰총장과 차장에 대해 한꺼번에 탄핵안을 낸 것도 대선을 앞두고 신승남 총장 구도를 막아 보겠다는 필사의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올 들어 야당의 정치 공세 수위가 낮아지면서 그의 총장 가도에 도사린 외부 장애물은 그리 크지 않은 상황이다.


호남 총장 체제를 뒷받침할 하부 검찰 핵심 요직은 호남 실세와 TK 인맥을 적절히 섞어서 안배하리라는 관측이 많다. 우선 차기 검찰 차장은 사시 11회 동기생인 검찰 내 이른바 'TK 3인' 가운데 한 사람이 기용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김경한 법무부 차관(경북고) 이명재 서울고검장(경북고) 김영철 대구고검장(경북 사대부고)이 그들이다.


이어서 서울 고검장에는 사시 12회로 검찰 내 호남 인맥의 실세로 꼽히는 신광옥 청와대 민정수석(광주일고)과 임휘윤 부산고검장(이리 남성고)이 유력한 후보로 꼽히고 있다.


검사장급에서도 서울지검장은 내년 지자체 선거와 대선을 앞두고 정권이 가장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자리이다. 군대로 치면 일선 사단장 격인 검사장은 사시 13∼15회가 주로 포진해 있다. 그 중 현정부 들어 중용된 호남 인맥의 핵심은 김대웅 대검 중수부장(광주일고) 김학재 법무부 검찰국장(목포고) 정충수 수원지검장(목포고) 김규섭 대전지검장(목포고)이다. 신광옥 민정수석의 광주일고 3년 후배로, 현정부로부터 한나라당 안기부 예산 전용 사건과 경부고속철 로비 사건을 깔끔하게 파헤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사시 13회 김대웅 중수부장과 김학재 법무부 검찰국장이 차기 서울지검장 자리를 놓고 경합할 것으로 보인다.


검사장 노리는 16∼18회 검사들




이번에 단행될 검찰 인사는 대대적인 물갈이이기 때문에 일선 검사들은 수뇌부를 누가 차지하느냐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기수별 인사 동향에 대해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재 지청장을 맡고 있는 사시 16∼18회 검사들은 검사장을 넘보고 있다. 그러나 자리는 턱없이 부족하다. 현정부 들어 단행된 '기수 파괴 인사'로 지검장을 거치지 않고 고검장급에 오른 검사가 많기 때문이다. 이들의 불안감을 의식해 법무부가 한때 검사장급 여섯 자리 정도를 신설한다는 얘기가 검찰 주변에 설득력 있게 나돌기도 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차장검사를 하다가 얼마 전 검찰을 떠난 한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박순용 검찰총장 체제가 들어서면서 8회 이상은 모두 옷을 벗었다. 당시 정부는 검찰 인사 혁신이라고 했지만 일선 검사들 사이에서는 수뇌부의 총체적 황폐화를 낳았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았다. 구심점이 없어지면서 서울지검은 자연히 호남 출신으로 물갈이가 이루어져 그 체제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는 현정부 들어 자주 시행된 기수 파괴 인사가 법원에 비해 승진 격차가 늘어나는 기형을 낳고 검찰 내부에 상대적 불만 요인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파격적 승진이 문제가 아니라, 일선 지청장 한번 지내지 않은 채 고검장으로 전격 승진한 뒤 그 다음 인사 때 검찰을 떠나야 하는 처지로 몰렸다는 불만이 자리 잡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는 진형구 전 대검 공안부장의 조폐공사 파업 유도 발언 파문도 우발적이라기보다는 그런 인사 난맥이 불러들인 필연적 결과였다고 해석했다. 또 이같은 기수 파괴 인사는 한창 검사 정신을 발휘해야 할 일선 검사 사이에 사건을 열심히 수사하는 것보다 결재하는 자리에 오르는 데만 관심을 기울이게 하는 부작용도 불러 왔다고 진단했다.


검찰 인사 적체 현상은 그 아래 기수로 내려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검사장을 노리는 사시 17회의 뒤를 이어, 전국 13개 지검 산하 40개 지청장 자리는 현재 차장검사에 포진해 있는 사시 18회가 넘보고 있다. 이번 인사를 앞둔 사시 19회의 분위기에 대해 대검의 한 현직 과장 검사는 이렇게 전했다. "호남 출신 검사들은 이번 기회에 차장검사로 나가지 않으면 기회가 완전히 없어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로비에 신경을 쓰는 경우가 많지만, 그밖의 지역 출신은 차라리 이 기간에 시골 한적한 지청에 가서 쉬고 돌아오고 싶다며 무관심한 편이다."


서울지검 부장 노리는 23회


검찰 조직에서 특수한 기수는 사시 23회(연수원 13기)이다. 서울지검 부장검사 자리를 노리는 이들은 총 60여 명이다. 사시 23회는 합격자 수를 그 이전 100명에서 3백명으로 늘려 뽑기 시작한 첫 세대로서, 이미 20여 명에 불과한 초임 지청장을 놓고 동기생끼리 치열한 접전을 벌인 바 있다. 서울지검 부장을 이들이 선호하는 이유는 '검찰의 별'인 검사장 승진에 필수 코스로 여겨지는 관행 때문이다. 그만큼 서울지검 부장 자리는 출신지와 로비력에 따라 인사가 크게 좌우된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서울지검 부장 자리는 19개 정도에 불과하고 선배 기수들이 잔류할 가능성도 높아, 실제 사시 23회가 차지할 수 있는 자리는 10개 정도이다. 실정이 이렇다 보니 법무부는 인사 적체 해소를 명분으로 서울지검 6개 부장 자리를 포함해 20여개 부장검사 직을 신설하기 위한 인사개편안을 마련했다.


검찰 요직뿐만 아니라 임기말 법무부장관이 누가 될 것이냐도 관심사 가운데 하나이다. 법무부 내에서는 호남 출신인 김정길 장관(조선대)의 유임을 점치는 분위기도 있지만, 새로운 사정 체제 구축에 맞추어 바뀌리라는 전망이 더 우세하다. 검찰 내에서는 TK 출신인 박순용 검찰총장을 법무부장관 후보로 거론하는 사람이 많다. 박총장은 정치권에서 사실상 호남 인맥으로 분류되고 있다. 서울고검장 출신 장인이 호남 출신인 데다 장모가 이희호 여사와 교분이 두텁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권과 검찰 일각에서는 김대통령이 임기 말 법무부장관으로 의외의 인물을 기용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그 후보로 가장 자주 거론되는 인물은 심재륜 전 대전고검장(사시 7회)이다. 1999년 봄 대전 법조비리 사건과 관련해 김태정 검찰총장을 '정치 검사'라고 공개 비판하는 검찰 사상 초유의 항명 파동을 일으킨 심재륜 전 대전고검장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정치권과 검찰 일각에서는 그가 법무부장관에 발탁될 가능성을 거론한다.


정치권에서는 김대통령이 정치적 고려로 호남 실세 직할 검찰 진용을 짠 뒤 대통령 선거 공정 관리에 어긋난다는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심재륜 법무부장관 카드를 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게다가 심재륜 변호사가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복직 요구 소송이 현재 대법원 확정 판결을 앞둔 시점이어서 복직이 최종 확정될 경우 부담을 우려한 정부가 법무부장관 직을 타협안으로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가 복직 판결을 받으면 고검장 복직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사시 9회 아래 기수가 검찰총장을 맡는 시대에 사시 7회인 그의 거취는 정권은 물론 검찰 조직에 엄청난 소용돌이를 몰고 올 수 있다.


이같은 분위기에 대해 심재륜 변호사는 "만약 복직 허용 최종 판결을 받게 되면 정부는 나에게 사과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법무부장관 후보로 거론되는 데 대해 현재 분위기가 잘못 전달되고 있는 것이라며 그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1999년 항명 파동 때 내가 성명서를 발표하자 동교동계 구주류 쪽에서 사람을 넣어 조금만 참았더라면 대통령이 기회를 주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표명한 적은 있다. 그러나 명예가 걸린 문제여서 내 원칙대로 행동했다. 그러다가 지난 2월 김중권 대표 체제가 들어서기 전에 김원기 대표 체제가 거론될 때 여야 간에 연립 내각을 만든다는 대타협안이 민주당과 한나라당 일각에서 한창 논의되었고, 그때 민주당측에서 사람을 내게 보내와 차기 법무부장관 직에 대한 의사를 타진한 적은 있다. 그러나 이후 김중권 대표 체제가 되어 강성 정치로 흘렀기 때문에 그런 구상은 물 건너간 것으로 알고 있다."


"또 정치 검찰 오명 쓸라" 내부 우려도 높아




어쨌든 이번 검찰 인사는 호남 실세와 TK 인맥을 중심으로 한 임기 말 친정 체제로 가리라는 것이 검찰 안팎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시기적으로 민감한 때이기 때문에 검찰 내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검찰 조직이 또다시 정치적 소용돌이에 말려들어 정치 검찰이라는 오명을 덮어쓰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일선 검사들의 우려는 정권이 검찰 수뇌부를 교체해 임기 말 정치 검찰로 몰아갈지 모른다는 데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인사 불안에 따른 검사들의 스트레스도 사기 저하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검찰 인사의 가장 큰 폐해는 줄서기 풍토이다. 특히 지난 10년 동안 TK→ PK→ MK로 이어지는 검찰 핵심 세력 이동 과정에서 검찰 내부에는 저마다 정권을 잡은 지역 출신의 검찰 안팎 핵심 실세에 인사 청탁을 하는 풍토가 생겨났다.


복잡한 검찰 조직의 검사 계급을 단순화하면 크게 4등급으로 분류된다. 총장-차장/고검장-검사장-검사이다. 흔히 평검사에서부터 부장검사 및 차장검사까지는 '검사 묶음'으로 보면 된다. 그러나 같은 평검사라 하더라도 지청 검사와 본청 검사, 시골 검사와 서울 검사 등으로 갈린다. 부부장검사 역시 지방과 서울로, 그리고 부장검사는 지청 부장과 중앙 부장으로 나뉜다. 이처럼 계급이 촘촘하다 보니 지방과 서울 간의 인사 교류, 서울과 수도권의 인사 교류가 잦다. 대검에서는 이에 대해 단순한 순환 보직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정작 인사를 받아들이는 일선 검사들의 생각은 다르다. 자리에 따라 물 먹는 코스냐, 차기 승진이 보장된 코스냐 등이 확연히 갈린다는 것이다. 부부장 이상인 대부분의 검사들이 매번 인사 대상이 되다 보니 수사 업무에 집중하기 어렵고, 국회의원·학맥·인맥·지방색 등에 줄을 대는 현상도 근래 들어 더 심해졌다는 것이다.


대검의 한 과장 검사는 최근의 검찰 분위기에 대해 "요즘 검사들에게는 눈치 보지 않고 소신 있게 수사할 수 있는 풍토가 없어졌다. 김영삼 정권 때만 해도 낭만이 있었다. 대통령 아들도 잡아넣고 되든 안되든 열심히 수사에 전념하면 후배 검사들이 따르는 낭만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마저 없어졌다"라고 전했다. 그는 현정권 들어 호남 출신 검사들을 편중시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경험 없는 사람을 다만 호남 출신이라는 이유로 경험이 필요한 부서에 배치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많은 검사들이 이번 인사를 앞두고 걱정하는 점도 5년 단임제 정권 마지막 인사에서 챙겨야 할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챙기는 방식의 인사가 되지 않겠느냐는 점이다.


검찰 내부의 이같은 구조적인 인사 불만 요인에 대해 임기 말 대규모 검찰 인사에서 김대통령과 검찰 수뇌부가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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