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특례제도 = 병역비리제도?
  • 정희상 기자 (hschung@e-sisa.co.kr)
  • 승인 2001.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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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체·연구기관 근무로 군복무 대체…
불법·편법 기피 방법으로 악용돼


부모의 '백'이나 뒷돈을 이용해 병역을 피하는 수법이 된서리를 맞으면서 병역 기피에도 신종 수법이 등장했다. 박노항 원사가 저지른 병무 비리 실상이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키자 과거 수법으로 군대 빼돌리기가 어려워진 데다, 병무청도 비리의 소지를 봉쇄하기 위해 다양한 병무 행정 개선 대책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최근 병무청은 지난 30년간 수작업으로 기록해오던 신체검사 항목을 전산을 통한 자동 판정 및 기록 시스템으로 바꾸었다. 또 면제 판정을 받은 사람 명단을 시민단체 인사를 포함한 외부 심의위원회에 통보해 정밀 검증을 거치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빈발하는 신종 병역 비리는 병역특례제도를 악용한 경우가 주종을 이룬다. 병역특례제도란 정부가 지정한 산업체나 연구기관에서 일정한 기간 근무하면 병역을 마친 것으로 인정하는 제도를 말한다. 문제는 최근 들어 병역특례제도가 병역 기피의 한 방편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늘어난다는 데 있다. 벤처 붐에 편승해 병역특례 지정 업체가 기하급수로 증가하는데도, 이를 감독 조사할 병무청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병역 특례자는 해마다 6만7천여 명으로 전체 국군 병력(69만명)의 10%에 달한다. 병역특례 지정 업체는 IMF 전인 1997년 말 9천4백55개이던 것이 현재 1만7천23개 업체로 늘었다. 정부가 주도한 벤처 창업 붐에 따른 현상이다.


이처럼 수많은 벤처 기업이 병역특례업체로 지정되자 이를 이용한 불법·편법 병역 기피가 급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제도를 악용해 알선 업체들이 사기를 일삼는가 하면, 일부 특례 업체에서는 병역특례자라는 약점을 이용해 현대판 노예 노동을 강요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위장 취업·전직·친척 채용 등 수법 다양


병역특례제도를 악용한 대표적인 불법·편법 유형은 군대를 피하기 위해 일단 병역특례업체에 입사했다가 일반 회사로 전직하는 경우이다. 벤처 기업을 창업한 후 자기 회사에는 부인을 앉히고 자기는 다른 벤처 기업에 위장 취업(연구직 특례자)한 경우도 적발되었다. 일부 병역특례업체는 군에 입대할 친인척을 취업시켜 면제받는 수법도 동원하고 있다.


병무청이 적발한 이같은 병역특례업체 비리는 1999년 8백50건, 2000년 7백71건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전국 7만여 명의 특례자를 감독하는 병무청 인력이 70여 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적발된 비리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병무청의 한 관계자는 "정부 구조 조정으로 단속 인력이 30% 준 데다 감독 대상 업체가 1만7천여 개에 달해 불시에 표본 실태 점검을 하기도 힘들다"라고 말했다. 또 병역특례업체로 지정된 벤처 기업의 경우 정부 방침이 지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웬만한 불법 사항이 적발되더라도 규제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고 실토했다.


이는 병역특례업체를 엄격한 기준 없이 양산한 탓이다. 벤처 붐이 일기 시작한 1999년에 병역특례업체로 지정해 달라고 신청한 벤처 기업은 3천개였다. 그 중 2천6백87개 업체가 지정되어 선정률이 90%에 달했다. 현행 병역특례제도가 원래 취지에서 벗어나 '특혜' 수단으로 악용되어 형평성 시비를 불러일으키는 셈이다.


이런 실정에서 군입대를 앞둔 병역 의무자들이 줄지어 특례 지원에 몰려들고 있다. 현재 병무청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특례 지원자가 7천여 명 대기 중이고, 전국적으로는 연간 7만여 명의 지원 대기자가 있다. 이 문제 해결을 미룰 경우 병역특례제도는 신종 병역 비리의 온상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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