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어라 넋이여, 함께 가자 생명이여"
  • 경남 산청/글 이문재·사진 안희태 기자 (moon@e-sisa.co.kr)
  • 승인 2001.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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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850리 도보 순례' 현장 중계①/
현대사 비극 돌아보며 상생의 비전 모색




분단 이후 처음으로 종교계가 손잡고 '지리산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천주교 기독교 원불교 불교 유교 천도교 등 종교인들이 지난 2월16일부터 좌우 대립으로 희생된 넋을 위로하는 100일 기도를 올리고 있으며, 그 사이에 백두대간 1천5백리 종주를 마쳤다(2월17일∼4월30일). 5월3∼18일은 지리산 8백50리를 일주하는 도보 순례가 진행되고, 오는 5월26일에는 지리산 달궁에서 위령제가 거행된다.

지리산 위령제는 단순한 과거 돌아보기나 왁자지껄한 1회성 행사가 아니다.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을 어루만지며, 상생의 논리에 바탕을 둔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시사저널〉은 지역·종교·이념의 벽을 허물고 민족 화합과 생명 평화를 위한 대장정, 지리산 8백50리 도보 순례에 동참해 지리산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온몸으로 느껴보고자 한다. 더 다양하고 상세한 기사는 인터넷 홈페이지(www.e-sisa.co.kr)에서 중계하고 있다.


[5월3일(목) 첫째 날]




뉘엿, 해가 넘어가자 소쩍새 소리가 가깝다. 경남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 문정초등학교 자리. 오후 2시부터 4시40분까지 7km를 걸어온 순례단이 대형 텐트 2동을 세우고, 막 저녁 식사를 마친 뒤였다.


문하 마을 이장이 스피커로 주민들을 '동원'하고 있었다. "주민 여러분, 잠시 후 8시부터 학교 운동장에서 영화 상영이 있사오니, 저녁을 일찍 드시고 많이 관람해 주시기 바랍니다."


〈태백산맥〉과 함께 깊어간 첫날밤


8시가 가까워오자, 어둑신한 운동장으로 주민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마을 앞을 흐르는 엄천강 아래쪽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천왕봉 북동쪽, 가파른 계곡의 저녁은 이내 어두워진다. 상현달이 구름 사이로 잠시 얼굴을 내비쳤다가 사라진다.


지리산 북쪽, 함양군 마천면 의탄리에서 출발해, 시계 방향으로 지리산을 한바퀴 도는 8백50리 도보 순례의 첫날밤은 영화 〈태백산맥〉과 함께 깊어가고 있었다. 지리산에서 태어나 평생을 지리산 자락에서 살아왔을 문하 마을 노인들은 50년 전 산골 아이의 눈으로 지켜보았을 그 '무서운 시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날 오후 1시. 칠선계곡 입구 의탄분교 운동장에서 도보 순례단과 시민·환경 단체, 지역 주민 2백여 명이 출정식을 가졌다. 지리산 댐 백지화 및 엄천강 살리기 결의대회와 함께. 엄천강은 전북 남원 운봉에서 시작해 이곳 마천면을 지나 함양군 유림면에 이르는 물길이다.


엄천강은 짙은 녹색이었다. 바닥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던 1급수가 4급수 이하로 오염된 것이다. 엄천강살리기대책위에 따르면, 상류 남원 지역이 지난 몇 년 사이 난개발되면서 오염 물질이 급증해 지난 4월부터 녹조현상이 나타났다. 대책위는 수질 관리를 일원화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엄천강 상류 전북 지역은 영산강 수계이고, 함양군 마천면부터는 낙동강 수계여서 수질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오후 2시 정각. 드디어 16일에 걸친 지리산 8백50리 도보 순례가 첫발을 떼었다. 순례단 단장 수경 스님과 순례단 대장 이원규(지리산살리기국민행동 사무처장·시인), 백두대간 종주단 대장 박기성씨가 선두에 서고, 순례단 대원 22명과 이병철·이선종 지리산살리기국민행동 공동대표를 비롯한 구간 참가자(하루나 이틀, 일정한 구간을 걸을 수 있다) 10여 명이 대열을 이루었다. 이병철 대표는 전국귀농운동본부 본부장이고, 이선종 대표는 원불교 종로교당 교무이다.


행렬은 엄천강을 따라 함양으로 향한다. 날씨는 쾌청하고 지리산은 연초록빛을 내뿜고 있었다. 2차선 지방 도로에는 오가는 차량이 적고, 행인은 전혀 없었다. 이제 도로는 걷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오직 자동차를 위한 길이다.


걸음걸이에서 리듬이 생기지 않는다. 긴장했기 때문일까. 햇빛이 목덜미에 떨어진다. 짧은 그림자가 앞선다. 얼마 만에 그림자를 내려다보며 걸어보는 것인가. 잊었던, 아니 도시에 의해 빼앗겼던 그림자를 되찾은 것이다.


오후 4시40분, 행렬은 엄천강을 건너 문정초등학교 자리로 들어섰다. 이곳에서 도보 순례의 첫날밤을 맞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낙동강 1천3백리 도보 순례를 마쳤을 때 내건 현수막이 그대로 걸려 있다. 이번 도보 순례는 낙동강 순례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5월4일(금) 둘째 날]




텐트 밖으로 나오자 신새벽이었다. 안개가 자욱하다. 밤새 침낭 속에서 뒤척였다. 오랜만에 '지구 표면'에 등을 붙이고 잠을 잤던 것이다. 수경 스님은 벌써 일어나 쓰레기 봉투를 들고 꽁초와 휴지를 줍고 있다.


아침 메뉴는 떡국에 백김치·마늘쫑·겉절이. 사찰에서와 똑같이 큰 그릇 하나에 밥과 반찬을 담는다. 양껏 먹되, 남기지 않아야 한다. 숭늉으로 그릇을 부시고 그 물을 마신 다음, 휴지로 닦아낸다. 버리는 것이 없다. 물을 사용하는 설거지는 하지 않는다. 이번 순례에서 '발우공양'만 몸에 익혀도 큰 수확일 것 같다.


알고 보니, 우리가 첫날밤을 지낸 문정초등학교 바로 앞이 지리산 문정댐이 들어설 자리였다. 수경 스님은 "지리산 위령제가 끝나면, 지리산 댐 계획은 철회될 것이다"라고 말했다(98쪽 상자 기사 참조).


오전 8시 정각. 깃발을 앞세우고 문정초등학교 정문을 나섰다. 선두는 도로 쪽으로 나가지 않고 고샅길로 들어섰다. 행렬은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비석 앞에 섰다. '김길동 공덕비'였다. 이병철 대표가 비문을 읽어 내려갔다.


김길동 이장은 1951년 2월8∼9일, 함양군 일대에서 대대적인 양민 학살이 자행될 때 기지를 발휘해 문하 마을 주민 2백여 명의 목숨을 살려냈다. 하지만 금서면 반곡, 유림면 서주, 거창군 신원면에서는 이틀 사이에 천여 명이 공비와 내통했다는 죄목으로 죽어갔다.


오늘 순례는 그 비극의 현장으로 향한다. 오후 3시, 유림면 서주 마을에서 위령제를 지낸다. 50년 전 정월 초이튿날 아침, 주민 1백7명이 구덩이에 파묻혀 죽어갔다(왼쪽 상자 기사 참조).


행렬은 엄천강을 오른쪽에 두고 걷는다. 누군가 '아, 아카시아 꽃이다'라고 탄성을 질렀다. 찔레 순을 따는 이도 있다. 50여 년 전, 전쟁의 와중에도 꽃은 피고 새순은 솟아올랐으리라. 토벌대도, 빨치산도 그 꽃과 순을 입에 넣었을 것이다. 하지만 젊은 순례자들은 꽃이나 새순을 선뜻 받아들이지 않는다. 인간이 인간을 증오하며 저지른 오욕의 역사가 불과 반 세기 만에 인간과 자연의 단절로 전이되고 있는 것인가. 지리산에서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겠다는 생명의 패러다임은 아직 관념인 것인가.


위령제를 지내고 2km를 걸어 화개 마을 망경루에서 야영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다. 핸드폰을 충전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전원이 없는 곳, 핸드폰이 두절되는 곳, 그곳이 바로 망명지였다.


"도보 순례는 자기 몸을 성찰하는 것"


[5월5일(토) 셋째 날]




지난 이틀은 도보 순례의 '워밍 업'이었다. 오늘부터 본격적인 '도보'에 돌입한다. 산청읍까지 21km. 한낮의 더위를 뚫고 나갈 수 있을까. 걱정이다.


계곡에 엎드려 세수하다가 멈칫했다. 돌 틈에서 쌀알만한 새끼 가재들이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피라미들도 있었다. 차마 '푸카푸카'거리며 세수할 수가 없었다. 두 손에 살짝 물을 묻혀 얼굴을 문질렀다.


오늘도 엄천강을 따라 걷는다. 엄천강은 산청군 생초면에서 경호강으로 이름을 바꾼다. 경호강은 다시 진주에 이르러 남강으로 불린다. 오전 10시께 '신호'가 왔다. 오른쪽 무릎 관절 아래, 이른바 '촛대뼈'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평소 걷지 않았다는 증거다. 11시부터는 허리가 시큰거린다. 이러다가 낙오하는 것이 아닌가, 불안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반가웠다. 상한 몸이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명현 현상'일 것이기 때문이다. 사흘 내리 걸어본 적이 있었던가. 초등학교 졸업 이후 처음인 것 같다. 30년 만의 일대 사건이다. 그러니 몸은 더 아플 것이다. 당연하다. 바퀴와 엘리베이터에 두 발을 내준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할 것이다.


양촌 마을 정자나무 아래서 점심을 먹고, 경호강 줄기를 따라간다. 양촌 강변 유원지에서 대열은 갑자기 멈추어 섰다. 징검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징검다리 가운데가 유실되어 있었다. 다행히 수심이 낮은 곳이 있었다. 선발대가 먼저 건너가며 '길'을 냈다. 모두 신발과 양말을 벗고 경호강을 건넜다. 물 속 돌들이 매우 미끄러웠다. 녹조 현상 때문이리라. 맨발로 강 건너기. 이 또한 30여 년 만이다.


어젯밤 전체 평가회의에서 총괄 진행을 맡은 허 욱 국민행동 사무국장이 밝힌 '도보 순례론'이 떠오른다. 도보 순례는 역사 기행과 다르다는 것이다. 새로운 지식보다는 몸이 먼저라는 것. 백 가지 지식보다 자기 몸을 성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충고였다. 낙동강 도보 순례에 참가했던 화가 장영철씨는 "시인에게 영감이 가장 잘 떠오를 때가 바로 걸을 때라는 조사 결과가 있다"라며, 도보 순례가 각자 자기 자신을 점검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산청읍 산청교 아래 강변에 텐트를 쳤다. 자녀와 떨어져 있는 대원들은 핸드폰으로 어린이날 인사를 주고받았다.


[5월6일(일) 넷째 날]




경호강을 따라 남하한다. 곳곳에서 새로 길을 뚫는 공사 현장과 마주친다. 새로 나는 도로는 모두 두 가지 원칙에 복종한다. 직선화와 평지화. 구불구불한 옛길은 폐기되고 반듯한 직선 도로가 뚫린다. 고갯길도 버려진다. 고갯길 아래로 터널이 뚫린다. 이 직선 숭배는 속도제일주의가 낳은 폭력이다. 오직 인간만이 직선을 고집한다. 자연에는 직선이 거의 없다. 아마 한 세대 뒤쯤에는 '옛길 살리기 시민운동'이 전개될지도 모른다.


허리 통증은 박기성 대원의 응급 처치로 조금 가라앉았다. 산악구조대원인 그의 조언에 따라, 발을 뒤로 추켜올리는 운동을 자주 한다. 척추, 내 몸의 백두대간이 아픈 것이다. 지리산이 그렇듯이.


오전에는 아스팔트길을 벗어나 강변 숲길을 걸었다. 안개가 걷히자, 바로 앞에 웅석봉이 떡 하니 버티고 서 있다. 백두대간의 시발점이다. 허 욱 국장이 말했다. "흔히들 지리산 하면 노고단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능선을 연상하는데, 웅석봉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능선이 노고단∼천왕봉 능선만큼 길다." 지리산의 품이 의외로 넓다.


빨치산 추모하는 날 '빨치산 토벌 기념관' 개관


경호강은 남강에 가까워질수록 오염이 심하다. 거품이 자주 보인다. 강변에는 장마철 큰물이 버리고 갔을 온갖 쓰레기가 곳곳에 있다. 냉장고에서부터 운동화, 그리고 수많은 빈 병. 인간은 '쓰레기를 만드는 동물'이다.


산청군 단성면 성내리, 목화씨 시배지 전시관 옆에 짐을 부렸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내일 외공 마을 위령제를 진행할 서봉석 군의회 의원과 수경 스님·허 욱 국장·이원규 대장 등이 둘러앉아 지리산 일대 개발 문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관광 버스가 왔다는 전갈이 왔다. 수경 스님과 서의원이 급히 일어났다.


서울통일광장·범민련·통일을여는사람들 등 11개 단체 회원과 학생들이 빨치산 출신 노인들과 함께 지리산 삼성궁에서 추모제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지리산 삼성궁에서 빨치산 100여 명이 몰살당했는데, 지난해 시신 7구를 발굴해 추모제를 지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부산 범민련 의장 서상권씨와 하동 지역 전투부대원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 남은 박순자씨 등이 버스에서 내려 수경 스님과 인사를 나누었다. 이들은 5월26일 달궁에서 열리는 위령제에 참석한다고 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지리산에서 '남부군' 출신 생존자와 통일운동 단체들이 모여 빨치산을 추모한 오늘, 산청군에서는 '빨치산 토벌 기념관'을 개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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