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방학엔 과외를 끊자 ②
  • 김은남 기자 (ken@e-sisa.co.kr)
  • 승인 2001.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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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즐거운학교 공동 기획/
초등학생 스트레스 1순위는 '과외'
서울 지역 고학년 1,074명 설문조사/90%가 '사교육' 매달려


온라인 교육 정보 업체 '즐거운학교'(www.njoyschool.net)와 함께 과외 추방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시사저널〉은 방학 중 '과외 감옥'에 갇힌 아이들의 실태를 고발한 지난호에 이어 대규모 설문 조사를 기획했다. 서울 지역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4∼6학년 학생 천여 명을 대상으로 '스트레스 지수'를 조사한 것이다. 아직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간직하고 있어야 할 우리 아이들은 과연 무엇에 눌리고 있는 것일까. 초등학생의 스트레스에 관한, 초유의 조사 보고서를 소개한다.




요즘 아이들의 보편적인 인사법은 "내일 학원에서 보자"라고 한다. "학교에서 보자"는 옛말이다. 이번 여론조사는 이 말이 결코 그르지 않음을 보여 주었다. 초등학생 10명 가운데 9명(90.3%)은 과외를 하고 있으며, 이들이 받는 과외 종목은 평균 3.13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가장 많이 받는 과외는 학습지(평균 0.96개)→보습 학원(0.95개)→예체능 학원(0.55개)→개인 과외(0.60개) 순이었다.


이는 교육인적자원부가 지난해 전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초등학생 과외 비율(70.7%)보다 훨씬 높게 나타난 수치이다. 이번 조사의 경우 △전국이 아닌 서울 지역 △학부모를 제외한 초등학생만을 대상으로 삼아 이런 결과가 나온 것으로 분석된다(학부모는 과외 종목·비용에 관해 진실한 답변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가 내린 과외 금지 위헌 판결 또한 과외 비율 증가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아이들이 과외 수업에 들이는 시간은 하루 평균 2시간 37분. 이 중 강남 지역 아이들의 과외 시간은 3시간 3분으로 강북 지역 아이들(2시간)보다 1시간 가량 많았다. 1일 과외 시간에 합산하지 않은 개인 과외 교습 시간 또한 강남이 강북보다 2배 넘게 많았다. 이번 조사에 나타난 개인 과외 교습 비율은 강남 45.3%, 강북 21.5%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어린 학생을 상대로 한 설문 조사의 특성상 이번 조사는 스트레스 여부를 직접 묻기보다 간접 유추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조사 결과 초등학생들은 지금보다 더 해 보고 싶은 일로 컴퓨터(57.7%)·친구와 놀기(46.6%)·책 읽기(28.5%)·텔레비전 시청(21.6%)·가족과의 대화(20.7%)를 꼽았고, 덜하고 싶은 일로 학원 수업(53.6%)·학습지 풀기(39.9%)·학교 숙제(39.7%)·개인 과외(18.2%)·책 읽기(10.8%)를 꼽았다.


아이들이 가장 덜하고 싶어하는 일 상위 5개 순위 중 3개(학원 수업·학습지·개인 과외)가 과외와 직접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 눈길을 끄는데, 이는 아이들이 받는 스트레스의 상당 부분이 과도한 사교육에서 말미암았으리라는 추정을 뒷받침한다. 특히 학교가 끝난 후 과외 수업 시간이 많고 강남에 사는 학생일수록 이 세 가지를 덜하고 싶다는 응답률이 높았다.


힘들고 피곤해 "학교 가기 싫다"




재미있는 것은, 책 읽기가 각각 더해 보고 싶은 일 3위와 덜하고 싶은 일 5위에 나란히 올라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책 읽기가 자발적이냐 비자발적이냐에 따라 아이들이 수용하는 태도가 정반대로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준다(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독서와 글짓기를 상품으로 내건 학원들이 성업이다).


아이들은 학교 때문에도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학생 10명 중 7명은 학교 가기 싫다는 생각을 자주(10.7%) 또는 가끔(62.4%) 했다고 응답했으며,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학교에 대한 거부감이 커졌다.


그러나 이것이 학교 내부의 문제만은 아닌 듯하다. 이번 조사에서는 학교 수업이 '재미 없고'(31.1%), '선생님이 싫어서'(3.4%)라는 이유 못지 않게 '힘들고 피곤해서'(19.2%) '학원에서 이미 배운 것을 똑같이 반복하니까'(18.3%) 학교 가기가 싫다는 학생의 비율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과외 시간이 긴 아이일수록 피곤하고 학원에서 배운 것을 반복하기 싫어 학교에 가기 싫다는 응답률이 높았다.


이 아이들이 가장 고민되는 일 1순위로 꼽은 것은 단연 공부와 성적(57.3%)이다. 다음으로 아이들은 친구 관계(12.0%)·노는 시간 부족(11.5%)·이성 문제(5.5%)·외모(3.8%)를 고민거리로 꼽았지만, 공부와 성적 고민에 비할 바가 못되었다.


특히 부모 학력이 고졸 이하일수록, 거주 지역이 강북일수록, 어머니가 전업 주부일수록 이같은 경향이 두드러졌다. 공부와 성적이 가장 걱정된다는 아이의 부모 학력이 고졸 이하인 경우는 63.2%로 대졸 이상(56.1%)인 경우보다 7.1% 포인트 높았고, 거주 지역이 강북인 경우는 62.8%로 강남(53.4%)보다 9.4% 포인트 높았다.


문제 아이 뒤에 문제 부모 있다는 전문가들의 말마따나, 나이 어린 자녀로 하여금 과도하게 성적 문제를 걱정하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하는 사람은 부모이다. 이번 조사에서 아이들은 평소 부모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공부해라'(37.3%)라고 응답했다. 이밖에도 부모들은 아이에게 '쟤만큼만 해봐'(10.9%) '말 좀 들어'(9.9%) '심부름 좀 해라'(4.6%) 같은 강요성 언사를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듣기 싫은 말 "공부해라"




이에 대해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가장 듣기 싫은 말 1위로 '공부해라'(42.4%)를 꼽았다. 다음이 '넌 왜 그 모양이니'(36.6%) '그만 놀거라'(29.2%) '이것도 성적이라고 받아 왔어'(29.1%) 순으로, 대부분 공부를 종용하는 내용이었다. 아이들은 이밖에 '말 좀 들어라'(10.6%) '자꾸 그러면 맞는다'(8.4%) '넌 왜 그렇게 못생겼니'(4.3%) 같은 말에 대해서도 반감을 표시했다.


아이들은 이런 말 대신 '용돈 올려줄까'(34.7%) '공부에 너무 신경쓰지 마라'(34.7%) '넌 잘할 수 있어'(29.0%) 같은 말을 듣고 싶다고 응답했다. 단 성별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었다. 남학생들이 '용돈 올려 줄까'(38.4%)처럼 물질적인 지지를 부모에게 가장 많이 기대한 반면 여학생들은 '공부에 너무 신경쓰지 마라'(39.0%) '넌 잘할 수 있어'(35.2%)처럼 정서적인 지지를 더 많이 기대했다.


공부하라는 말 또한 부모 학력이 고졸 이하일수록, 아버지 직업이 블루칼라일수록 더 많이 사용했다. 이에 반해 대졸 이상 학력을 가진 부모(22.6%)는 고졸 이하 부모(12.3%)에 비해 아이에게 '잘했다'는 말을 더 자주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학력 부모들의 긍정적인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상대적으로 높은 교양 수준 내지 자신감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학력이나 맞벌이 여부보다 아이의 교육 방식을 결정하는 가장 근본적인 변수는 부모의 성격과 가치관이라고 홍강의 교수(서울대·소아정신과)는 지적했다. 장재홍 교수(한국청소년상담원) 또한 "부모의 애정과 신뢰를 많이 받고 자란 아이일수록 잘 놀고 탐험심·지적 호기심도 크다"라며, 부모가 자녀에게 애정과 신뢰를 쏟지 못하고 무엇인가를 과도하게 요구하기만 하면 아이가 호기심은 물론 삶에 대한 열의마저 잃을 위험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번 조사 결과는 부모 자식 간에 애정과 신뢰를 쌓을 절대 시간조차 부족함을 보여준다. 조사에 응한 초등학생 2명 중 1명은 부모와 대화하는 시간이 하루 30분 이하(48.7%)라고 대답했다. 더 큰 문제는 대화의 양보다 질이다. 이번 조사에 따르면, 부모에게 자기 고민을 털어놓는 초등학생은 42.1%밖에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초등학생 4명 중 1명(25.6%)은 고민이 있을 때 다른 사람과 상의하지 않고 이를 혼자 끌어안는다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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