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벤처 기업인이 몰려온다
  • 신호철 기자 (eco@e-sisa.co.kr)
  • 승인 2001.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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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모험'을 두려워하랴/
여성 벤처 기업 2년 만에 11배 늘어 3백76개…
'접대' 아닌 '기술'로 승부


주부 김정신씨(49)는 집에서 고기를 구울 때 연기와 냄새에 시달려 불만이었다. 그는 새로운 그릴(석쇠)을 만들어 보겠다고 마음먹고 2년 동안 연구한 끝에 개량 그릴을 발명했다. 김씨는 특허를 낸 뒤 내친 김에 지난 2월 아예 벤처 회사(아이에스디지털)를 차렸다. 이 회사는 반 년 만에 8천만원 매출을 올렸다.




여성이 벤처를 창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2년 전 33개이던 여성 벤처는 지난해 9월 1백46개로 늘더니 지금은 3백76개가 되었다. 여성이 벤처에 뛰어드는 이유는 자아 실현 욕구가 커지고 구조 조정 등으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는 이가 늘어났기 때문이지만, 벤처 특성상 여성이 최고경영자(CEO)가 되기에 유리한 면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접대 문화다. 음주와 향응으로 이어지는 한국 기업 문화는 여자에게는 고역이다. 하지만 기술력으로 승부하는 벤처 기업은 상대적으로 접대를 덜 의식해도 된다. 팀인터페이스 대표 이성혜씨(36)는 술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는다. 식사 모임에서 반주를 권하던 상대가 의아해 하지만 본인은 개의치 않는다. "술을 안 마신다는 이유로 사업에서 손해 본 적은 없다." 이헬스컨설팅 대표 서현정씨(38)는 "여자이다 보니 오히려 술을 강권하는 사람이 없어 좋다. 남자 경영자보다 판공비를 적게 쓰는 점이 유리하다"라고 말한다. 회소 가치를 누리기도 한다. 웹포러스 대표 김세은씨(27)는 "여자라고 하면 사람들이 한번 더 쳐다보는 이점이 있다"라고 말한다. 언론에 오르기도 쉽다.


물론 여성에게 불리한 점도 있다. 퇴근 시간이 따로 없는 벤처 기업은 다른 어떤 기업보다 경영자가 기업 경영에 시간을 많이 쏟아야 한다. 당연히 육아·교육 문제가 부담으로 떠오른다. 서지현(버추얼텍)·송혜자(우암닷컴)·정영희(소프트맥스) 등 이름 난 사장들이 한결같이 미혼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여성개발원 김영옥 박사는 "한국 벤처는 장시간 노동이 특징이다. 육아 문제가 여성 벤처 사장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점이다"라고 말한다.


인맥 약해 고전, 엔지니어 출신 CEO 적어


남자 사업가에 비해 인맥이 별로 없다는 점도 힘든 요소다. '벤처는 네트워크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IT업계는 거미줄 같은 인적 교류를 중요하게 여긴다. 업계에 친구·동료가 부족한 여성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 모임도 생겨나고 있다. 여성벤처협회를 비롯 '위윈' '일하는 e-여성의 모임' '여성IT벤처포럼', 이화여대 벤처 동문인 '이화IT', 20대 여성 벤처 모임인 '크리스탈' 등은 최근 생긴 여성 벤처 모임이다. 남성 벤처 모임이 줄어드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남편의 인맥을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ㅇ벤처 기업 ㄱ사장은 "성공한 벤처 가운데는 남편이 비슷한 업종에서 일하는 기업인이거나 고위 공무원, 언론인인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 못한 나는 불리하다고 느꼈다"라고 토로했다.


아내가 대표로 있는 회사에서 남편이 같이 일하는 예도 많다. '컴투스' '이지디지털' 등이 그렇다. 여성 벤처 기업인의 10∼30%는 '부부 벤처'로 알려져 있다. 엔지니어 출신인 남편이 기술 실무를 맡고 아내가 경영과 대외 활동에 나서는 경우도 많다.


기술자 출신이 적은 것은 여성 CEO의 또 다른 약점이다. 여성 벤처들은 주로 디자인·그래픽·패션 업종에 많다. 기술력은 낮지만 시장성은 높은 '니치' 업종이 48.8%를 차지한다.


요즘에는 이공계 대학을 졸업한 엔지니어 출신 여사장이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 10년간 여성 공학박사가 9배로 늘어난 점을 감안한다면 앞으로 기술을 가진 여성 인력이 많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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