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의 선사의 '이도' 최초 공개
  • 충북 단양·이문재 편집위원 (moon@e-sisa.co.kr)
  • 승인 2001.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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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성우 스님, 최초 공개…"다도 중흥 계기 되었으면"




초의 선사(1786∼1866)가 쓰던 이도차완이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지난 9월3일 오전 7시40분, 석성우 스님이 소장하고 있는 이도 두 점이 남향 유리창으로부터 들어오는 맑은 햇살을 받고 있었다. 1975년, 초의 선사의 다법을 계승한 응송 스님으로부터 전해 받은 '명품'이었다. 당시에는 초의 선사가 쓰던 찻사발 정도로만 알았지, 그것이 이도인 줄은 몰랐다.


두 점 중에 하나에만 이름이 있는데, 석성우 스님이 지었다. '오목이도'(지름 14cm, 높이 7cm, 굽지름 7.5cm). 이 이도는 찻사발 안쪽에 있는 빙결(찻금)이 가장 큰 특징이다. 한가운데에서 가장자리로 올라갈수록 빙결이 작아지며 기하학적인 리듬감을 자아낸다. 기본형에서 일탈한 오목형이지만, 보면 볼수록 편안하다. 옅은 상아색에는 은은한 연초록색이 스며 있다. 다른 한 점은 은근한 갈색인데, 일곱 개의 그릇눈이 있고, 굽에는 약간의 매화피가 있다. 외형이 기본형에 속한다.


선(禪)·경(經)·율(律)에 두루 밝았을 뿐 아니라 시·서·화, 조경, 어산(염불)에도 능통했던 초의 선사가 애용하던 이도를 볼 때마다 만감이 교차한다는 석성우 스님은, 정동주씨의 저서와 길 성씨의 이도 재현을 계기로 한국 다도가 정체성을 찾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26년 동안 소장해 오던 초의 선사의 이도 두 점을 공개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첫 외출' : 처음으로 공개되는 초의 선사가 쓰던 이도차완. 위 왼쪽이 '오목이도'. 기본형에서 일탈했지만 편안한 느낌이다. 위 오른쪽 이도는 아직 이름이 없다.


석성우 스님은 1963년 통도사에서 경봉 큰스님이 건네주는 차 한잔을 마시고 다도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때 차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징검다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석성우 스님은, 한국 다도의 요체는 발우 공양에 바탕을 둔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교감에 있다면서, 다도는 종합 예술이라고 말한다.


스님은 두 손을 펼쳐 찻사발을 감싸안을 때 '인간의 본질적인 사랑의 질감'을 온몸으로 전해 받는다. 이도의 '피부'는 그렇게 따뜻하다. 좋은 찻사발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고, 차를 마시는 사람 자신에게는 잃어버린 본성을 되찾게 해준다. 스님은 초의 선사가 쓰던 '오목이도'에서 비파색보다는 가난하지만 기품을 잃지 않았던 조선 시대 서민들의 낯빛을 떠올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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