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만난 블레어 "내가 세계 대통령"
  • 런던·김용기 편집위원 (ykim@e-sisa.co.kr)
  • 승인 2001.10.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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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만난 고기' 블레어 "세계 대통령은 나야 나"
테러 사건 이후 토니 블레어 총리는 미국의 군사 동맹국 면모를 유감 없이 보여주며 반테러 연합전선 선봉에 서는 등 종횡무진 '오버'하고 있다.




지금 토니 블레어의 영국은 최근까지 이라크에 폭격을 감행해 온 '유일한' 미국의 군사 동맹국으로서 면모를 유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외교적으로도 반테러 연합을 구축하는 최전선에 서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지나침'이 대외 관계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대내적으로도 '오버'하고 있다. 지난 10월2일 노동당 전당대회에서의 행한 그의 연설을 보면 지금 블레어는 '갈 수 있는 한 최대 한도까지 간' 것으로 보인다.


영국 주간 신문 〈옵서버〉의 정치 평론가 앤드루 론슬리는 "노동당 내각의 한 멤버는 이 날 블레어의 연설을 세계 대통령의 취임 연설이라고 표현했다"라고 전했다. 오사마 빈 라덴과 탈레반 정권을 포함한 국제 테러 조직을 격퇴하겠다는 차원을 넘어, 아랍과 이스라엘간 분쟁 종식, 새로운 아프리카 건설, 마약 거래 근절, 지구 온난화 문제와 지구상 수십억 절대 빈곤층 문제 해결에 혼신의 힘을 바치겠다고 블레어는 선언했다. 그래서 론슬리는 블레어를 '테러와 기아와 질병으로부터 세계를 구하고, 탈삼림(脫森林) 현상까지 잊지 않고 해결하기 원하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미국에서 벌어진 테러의 비극을 감동적으로 설명할 때 블레어의 모습은 미국민이 선출한 지도자 같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미국 대통령 부시의 이름을 한 차례도 거론하지 않았고, 국내 교통·의료·교육 문제를 철저히 외면했다.


블레어가 이렇듯 대내외적으로 '오버'하는 것은 그의 개인적 성향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블레어는 선(善)과 악(惡)으로 문제를 재단하고 선을 위해 용기를 내자는 식의 방식을 정치에 자주 도입해 왔는데, 그것이 이번에도 드러났다는 것이다.


개인 성향·국내 정치 이해 맞물린 '오버 플레이'


도덕적 성향이 뒷받침된 블레어의 '흠뻑 젖은' 우울한 표정은 아주 진실해 보인다. 윈스턴 처칠이 2차 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무너진 런던의 건물 사이를 심각한 표정으로 홀로 거닐었을 때처럼, 대서양을 건너 폐허가 된 뉴욕 거리를 방문한 블레어가 시종 그러한 표정으로 일관했다고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전한다. 전쟁 지도자로서 이만한 자질을 갖춘 사람도 흔치 않다는 분석이다.


블레어가 '오버'하는 또 다른 이유는 국내 정치적 이해다. 노동당의 가장 버거운 과제인 '유로' 가입을 위한 돌파구로 이번 일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간 노동당 지지도는 압도적인 반면 노동당 주요 공약인 유럽통화제도에 영국이 가입하는 데 대한 지지도는 항상 낮았다. 노동당은 지난 여름 선거 당시 공약을 통해 앞으로 2년 내에 유로 가입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다.


블레어의 최근 행보에 경계하는 시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코노미스트〉나 〈파이낸셜 타임스〉 등 권위 있는 언론은 그의 과도한 '오버'와 이에 따른 국내 교통·교육·의료 등 3대 개혁 과제에 대한 소홀함을 강하게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영국 주요 언론들은 테러 이후 요즘 몇 주간이 블레어에게 '최고의 순간들'이라는 데 이의를 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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