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독면 쓰면 무엇이 두려우랴
  • 신호철 기자 (eco@e-sisa.co.kr)
  • 승인 2001.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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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터 · 활성타층, 탄저균 99.9% 걸러내…
의학 · 산업용 마스크도 효과
군대 신병훈련소를 거쳐본 사람은 지옥 같은 가스실에서도 방독면만 쓰면 아무렇지 않았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탄저균 테러로 오염된 거리에서도 방독면만 쓰면 유유히 걸어다닐 수 있을까?


탄저균의 크기는 4∼8 ㎛(마이크로미터. 100만분의 1m) 정도다. 이 정도 크기의 입자는 보통 방독면이라도 99.9% 이상 걸러낼 수 있다. 일단 방독면을 쓰면 탄저균은 문제 없다는 이야기다.




방독면이 탄저균을 막아내는 것은 정화통에 있는 필터층 때문이다. 필터는 채가 굵은 돌을 걸러내듯이 공기에 섞여 있는 입자들을 걸러낸다. 탄저균보다 10배 작은 물질도 95% 이상 차단한다. 단순히 필터만으로도 탄저균을 비롯한 일반 세균·곰팡이·최루가스(CS) 따위를 막을 수 있다.


필터는 종이와 면(綿)을 배합해 제조한다. 원재료는 동남아 등지에서 전량 수입한다. 물론 필터만으로 모든 생물 화학 테러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995년 일본 지하철 테러에 쓰였던 사린 가스처럼 작은 입자는 필터로 막을 수 없다. 그래서 정화통 필터층 뒤에 다시 활성탄층이 달려 있다. 활성탄층은 가스와 화학 작용을 일으켜 입자를 붙잡아 버린다. 신경작용제·수포작용제·혈액작용제(CK)·질식작용제(포스겐)를 이 단계에서 제독한다.


활성탄은 야자 열매를 태워서 만들 수도 있고, 석탄가루에 금속 처리를 해서 만들기도 한다. 역시 미국 등지에서 전량 수입한다.


이렇게 필터층과 활성탄층을 합친 것이 방독면 정화통이다. 필터층을 물리적 여과기, 활성탄층을 화학적 여과기라고 부른다. 1980년대 중반부터 일반인에게 배포가 허용된 민간용 방독면(KM9A1)은 물리적 여과기인 필터층이 없었다. 그 방독면으로는 화학 가스를 막을 수는 있지만 최루 가스는 막을 수 없었다. 방독면 제조업체와 민방위 관계자들은 당시 전두환 정권이 시위대가 민간 방독면을 대량 입수할 경우 진압하기 어려울까 봐 그랬다고 말한다.


방독면 66만개, 전국 통·반장 통해 보급


1998년부터 민방위 훈련에서 보급되고 있는 방독면에는 필터층이 포함되어 있다. 행정자치부는 전국의 통·반장을 대상으로 방독면 66만개를 올해 안으로 보급할 계획이다.


지난 3월 우리 군이 자체 실험해 조사한 결과 현재 군에 보급한 방독면(K1) 두건 봉제 부위에서 가스가 샌다는 사실이 발견되어 국회에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후 새로 제작된 방독면은 이 부분이 보완되었지만, 이미 배포된 군용 방독면 수십만 개는 어쩔 수 없이 남아 있다.


방독면으로 도저히 막을 수 없는 병균도 있다. 천연두를 비롯한 각종 바이러스는 크기가 0.01∼0.27 ㎛여서 방독면 정화통으로는 거르기 힘들다. 다만 바이러스는 탄저균에 비해 인공 제조와 배양이 힘들어 테러 무기로 본격적으로 쓰일 가능성은 적다.


방독면 없이도 탄저균을 막을 수 있을까? 귀에 거는 마스크로도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다. 수술에 쓰이는 의학용 마스크는 탄저균의 10분의 1 박테리아도 막을 수 있다. 먼지를 막는 산업용 마스크도 1㎛ 정도의 입자를 95% 이상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방독면과 달리 얼굴 접촉 부위에 틈새가 있어서 완전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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