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큰손들
  • 소종섭·고재열·이문환·신호철 기자 (kumkang@e-sisa.co.kr)
  • 승인 2001.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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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 산업 고속 성장…
삼성 등 재벌 가세, 관련 펀드 2천개 넘어
"황금 땅으로 가자." 한국 영화의 흥행 열기와 함께 엔터테인먼트 사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떠올랐다. 영화뿐만 아니라 게임·애니메이션·공연에 대한 투자도 활발하다. 이 대박 사업을 이끄는 주역들은 누구인가.


먼저 몇 가지 풍경을 보자. 지난 10월11일, KTB네트워크는 엔터테인먼트 팀을 분사해 KTB엔터테인먼트를 만들었다. 10월17일, 안양 본백화점은 본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고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진출했다. 10월19일, 가오닉스는 홍콩에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목적으로 한 현지 법인을 설립했다. 10월29일, 기라정보통신은 영화 〈친구〉를 제작한 JR픽처스를 인수한다고 공시했다.


시장 규모 6조7천억원




게임 산업은 내수보다는 수출에 유망한 분야로 삼성 그룹이 관심을 갖고 있다. 위는 서울 강남 한국 종합 전시장에 있는 메가웹스테이션에서 열린 게임 대회 모습.


이처럼 엔터테인먼트 사업(영화·애니메이션·캐릭터·게임·음반·매니지먼트)에 뛰어드는 기업이 늘고 있다. 특히 몇몇 영화가 잇달아 '대박'을 터뜨리자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인식까지 생겨나 게임·애니메이션·공연 등에 대한 투자도 활발해지고 있다.


'한국e(엔터테인먼트) 컨텐츠 연합'의 자료에 따르면, 현재 6조6천9백억원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엔터테인먼트 시장은 최근 2∼3년 간 연 10∼30%대 고성장을 해왔다. △고부가가치 산업이어서 현금 회수가 빠르고 △모바일 시장이 커지고 위성 방송이 시작되는 등 관련 매체가 늘어나고 있고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점 등이 고속 성장의 배경이 되고 있다.


최근 엔터테인먼트 산업 관련자들 사이에서는 튜브엔터테인먼트(대표 김승범)가 CJ엔터테인먼트(대표 이강복)와 손잡은 일이 화제이다. CJ엔터테인먼트는 튜브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하는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장선우 감독) 등 네 작품에 투자하고 배급을 맡기로 했다. 업계에서는 두 회사가 전략적인 제휴를 맺는다면 멀티플렉스관 CGV를 통해 스크린 80개를 갖고 있어 최강의 배급력을 자랑하는 CJ엔터테인먼트가 제작과 매니지먼트 분야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갖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에서 촬영한 영화 <무사>제작 장면. <친구> 등 영화에서 터진 '대박'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호황을 불러왔다.


1995년부터 이 분야에 뛰어든 CJ엔터테인먼트는 현재 엔터테인먼트 업계 최고의 큰손으로 꼽힌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조카인 이재현 부회장이 이끄는 제일제당에서 분사한 이 회사는 든든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올 들어 영화 쪽에만 5백억원을 투자하는 등 영화와 극장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이에 맞서 최근 떠오르고 있는 큰손은 지난 9월1일 동양그룹에서 계열 분리한 오리온그룹(회장 담철곤)이다. 이 회사는 만화 케이블TV 채널인 투니버스,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제미로 등 아홉 계열사로 이루어진 엔터테인먼트 전문 그룹이다. 10월27일 부산 서면에 7개 스크린, 11월9일 수원에 5개 스크린을 갖춘 영화관을 개관한 오리온그룹은 2003년까지 스크린을 100개 확보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어 CJ엔터테인먼트와의 한판 승부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오리온그룹은 그동안 손을 뻗치지 않았던 영화 제작과 배급 쪽에도 팀을 만드는 등 공격적인 전략을 짜고 있어 머지 않아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일대 지각변동이 일어나리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오리온그룹은 계열사인 제미로에서 제작비가 100억원이 넘는 뮤지컬 〈유령〉을 만드는 등 CJ엔터테인먼트와 달리 공연 분야에도 많이 투자하고 있다.


삼성·한솔·롯데 등 재벌도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삼성은 에버랜드가 9월20일 나래디지틀엔터테인먼트 등과 3D 애니메이션 '꾸러기 더키'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삼성전자가 12월 초에 세계 최초로 제1회 게임올림픽 대회를 여는 등 게임과 애니메이션 쪽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솔그룹은 한솔창투가 지난해 1백50억원 규모의 조합을 만들어 게임 개발 업체에 투자했고, 한솔아이벤쳐스는 한솔그룹과 연계해 컨텐츠를 유럽 등에 수출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롯데그룹은 롯데백화점에 극장을 꾸준히 열고 있다.


벤처 캐피탈 사이에서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대한 투자 바람이 더욱 거세게 불고 있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30% 이상 수익을 거둔 KTB네트워크는 올 들어 2백억원이 넘게 영화에 투자했다. 앞으로도 영화 부문에 대한 투자에 주력한다는 전략이다.


일본 회사와 손잡고 2천억원 투자




KTB네트워크와 함께 큰손으로 통하는 산은캐피탈은 올해 70억원을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쏟아부었다. 윤정석 팀장은 〈난타〉 등 공연과 음반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는 점이 KTB측과 다른 점이라고 설명했다. 무한기술투자·IMM창업투자·한국기술투자도 잇달아 수십억원 규모의 투자 조합을 만들고 있다.


아직 눈길을 많이 끌지 못하고 있지만 지난 10월17일 설립된 본엔터테인먼트는 잠재력이 주목되는 회사이다. 이 회사는 2천억원을 투자해 서울 강남역 부근에 지상 20층 규모로 극장과 코미디센터 등이 들어설 '본스퀘어'를 만들고 있다. 일본의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주주로 참여하고 있을 뿐더러 일본 문화가 전면적으로 개방될 것에 대비해 일본인 고문을 두고 연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남궁본 사장은 "일본 쪽과 이미 상당한 네트워크를 확보해 놓았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관심이 높아지자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그동안의 주먹구구 식에서 벗어나 체계적인 틀을 갖추어 가고 있다. ICBN 유호천 대표는 "올해는 엔터테인먼트 분야가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첫해이다"라고 진단했다. 그는 현재 만들어진 엔터테인먼트 관련 펀드가 2천개가 넘는다며, 상승 효과를 얻기 위해 업체간, 펀드 간에 기획·마케팅 등 역할을 나누어 짝짓기하는 작업이 한창이라고 전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10월18일 엔터테인먼트 전문 업체인 크레타콤과 공동으로 '제1회 전경련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 경영자 과정'을 개설하는 등 이런 흐름에 가세했다. 이원모 전경련 국제경영원 신규사업본부장은 "앞으로는 제조업도 엔터테인먼트를 결합하지 않으면 경쟁력을 가질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10월 말에는 강제규 필름 등 20여 업체가 모여 '한국e(엔터테인먼트) 컨텐츠 연합'도 발족했다.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기획·제작·마케팅 등 분업화한 틀을 갖자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이 일을 주도한 ICBN 유호천 대표는 "일본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 한국은 아시아권에서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주도할 수 있는 유리한 환경이다. 한류 바람도 불고 있다. 이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경쟁력을 키워야 할 때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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