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가서 잘 먹고 잘 살자
  • 베이징·주장환 통신원 (jjhlmc@e-sisa.co.kr)
  • 승인 2001.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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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대, 수백만명 선진국으로 떠나... 개성과 자유 추구, 국가관 '냉담'
베이징(北京)에 있는 한 대학 강의실에 마르크스·레닌·마오쩌둥 사상을 강의하기 위해 교수가 들어갔다. 교수는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학생들에게 마르크스·레닌·마오쩌둥을 아는 사람은 손을 들라고 말했다. 그러자 대부분의 학생이 손을 들었다. 교수는 마르크스·레닌·마오쩌둥 전집이나 선집을 읽어본 사람은 계속 손을 들고 아닌 사람은 손을 내리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학생들 대부분이 손을 내렸다. 두세 명만이 계속 손을 들고 있었다. 이에 놀란 교수는 “그러면 도대체 어디에서 마르크스·레닌·마오쩌둥을 알게 됐나?” 여기저기서 대답이 산발적으로 터졌다. “TV 연속극이요.” “교과서요.” “우리 집 벽에 마오쩌둥 초상화가 걸려 있어요.” “대학 들어오려면 반드시 공부해야 하잖아요.”




강의실 뒤쪽에 앉은 학생들은 노트 밑에 영어 단어 책이나 토플 책을 펴놓고 있다. 한 대학 강의실에서 벌어진 풍경은 지구상에 몇 남지 않은 사회주의 국가 중국의 최고 학부에 다니는 학생들의 상황을 말해준다.


20∼30년 이후 중국을 이끌어갈 중국의 신세대는 도대체 누구인가? 일반적으로 한 사회의 세대를 신세대와 구세대로 나눈다. 중국의 경우에는 노년층에 이른 혁명 세대와 40∼50대 중년층인 문화대혁명 세대, 그리고 신세대라고 불리는 청년 세대(개혁 개방 세대)로 나눌 수 있다.



혁명 세대는 혁명전쟁에 참가하고 사회주의 이념을 지니고 살아온 결과 완전히 변화한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당혹감을 느끼는 세대다. 문화대혁명 때 마오쩌둥에게서 신뢰를 받은 홍위병 출신 등이 문화대혁명 세대인데, 농촌 샤팡(下放)을 통해서 쓰라린 경험을 한 중년층은 복잡하고 미묘한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 특히 국가나 정치 문제에 대해서는 긴장하고 조심스러워하면서도 금전이나 경제 문제에서는 자신에 찬 모습을 보인다. 경제 개혁과 대외 개방 분위기에서, 자라난 청년 세대는 1978년부터 시작된 ‘지화성위(計劃生育·가족계획)’ 정책의 산물로서, 대부분 외동으로 자라나 앞의 두 세대와는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최근 베이징 시 사회과학원이 실시한 중국의 신세대 천 명에 대한 의식 조사는 이들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먼저 국가관이 ‘냉담하다’. 정부를 옹호하지도 정치에 참여하지도 않는, 그야말로 정치와 국가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는 근본적으로 직접 정치에 참여할 길이 막혀 있고, 공산당이 장기간 안정을 가져다 주었으며, 개혁 개방 이후 공산당이 의식적으로 정치 개혁보다는 경제 개혁 쪽으로 초점을 맞춘 것과 관련이 있다.


사회주의 평등 윤리 반대, 반항적인 ‘나 홀로 세대’


그러나 초등학교부터 십수 년 간에 걸쳐 시행된 반미·반제국주의 교육은 적시에 효과를 발휘하기도 했다. 1998년 유고 주재 중국대사관이 피폭되자, 각 기업과 학교 당 조직이 시위를 조직하기는 했으나 참여자 대부분이 진심으로 분노했었다고 당시 시위에 참여했던 베이징 원화(文化) 대학 학생들은 말했다.


중국 대학생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대상은 졸업하기 전에 유학이 확정된 이들이다. ‘대학 4년을 유학을 위해 보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 신세대, 특히 대학생들의 유학 열정은 대단하다. 새벽부터 시작되는 각종 영어 시험에 대비하는 학원의 강의실은 학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이렇게 중국을 떠난 이들만 해도 비공식 집계로 개혁 개방 이후 수백만명이다. 특히 유학하는 동기가 선진국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금의 환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돌아오는 이도 매우 적다. 그래서 그 심각함을 인식한 중앙 정부와 각 성(省)이 유학한 인재들을 유치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각종 우대 정책을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신세대는 가부장적인 전통 윤리나 사회주의 평등 윤리 모두에 반대하며, 행동 양식에서는 매우 반항적인 태도를 보인다. 새로운 윤리가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쟁으로 내몰리고 있는 중국 청소년의 범죄율은 1990년대 초 이래 매년 평균 100%씩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에서는 한국의 ‘특수 목적고’ 격인 ‘중뎬(重點)’고등학교에 다니는 한 학생이 잔소리를 심하게 한다는 이유로 어머니를 망치로 때려 숨지게 한 뒤 시체를 유기한 사건이 발생해 온나라가 떠들썩했다.




직업관에서 신세대는 개인 지향인 동시에 자유 경쟁 지향이다. 명성이나 안정성 등을 추구하는 보수적인 사고 방식과 사회주의적 평등에 반대하며 능력주의적 경쟁을 주장한다. 베이징 <칭녠바오(靑年報)>는 최근 보도에서 신세대가 직장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는 것은 취미와 흥미 생활 보장이라고 밝혔다. 그래서 신세대들은 정부기관이나 국영 기업보다 외국계 기업이나 IT 기업을 선호한다.


개인주의적인 성향의 원천은 이들의 교육 환경에 있다. 중국의 대학생은 기본적으로 전원이 기숙사 생활이다. 한 방에 학부생은 6명이, 석사생은 4명이 같이 거주한다. 6명이 4년을 한 방에서 생활하다 보니 당연히 자신의 공간을 갈구하기 마련이다. 이것이 중국 대학생들이 한 달 평균 용돈의 10배 가까이 되는 2천∼3천 위안(약 31만~47만원)짜리 핸드폰을 사는 이유이다. 이들은 대부분 통신비로 매달 2백∼3백 위안(약 3만1천~4만7천원)씩 쓴다고 베이징 대학 학생서비스센터 관계자는 전했다. 개인주의 성향이 높아지게 된 또 다른 배경은 이들이 도시 가정의 경우 한 자녀밖에 갖지 못하는 정책인 ‘지화성위’ 세대라는 데 있다. 1978년부터 시작되어, 1980년대 초에 강화된 이 정책은 중국의 신세대를 ‘나 홀로 세대’로 만들었다. 대부분 맞벌이 부모 밑에서 혼자 생활할 수밖에 없었던 신세대가 개인주의 성향을 띠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어느 시대에나 신세대는 도전적이고 반항적이었다. 아직까지 중국의 신세대는 자신의 삶의 영역에서 개성과 자유를 추구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전체 사회로 확산될 것인지 아닌지를 전망하기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세계무역기구 가입, 올림픽 개최 등 개혁 개방의 속도를 늦추지 않을 것이 확실한 만큼 이들이 중국 사회의 주역이 될 때 좀더 활기차고 도전적인 사회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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