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는 나의 힘" 불꽃 튀는 맞수
  • 김은남·고재열·신호철 기자 ()
  • 승인 2002.01.0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중 문화 ‘N세대 라이벌’/재능·실력 엇비슷, 끼·꾀·땀으로 새 지평 열어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겠지만, 특히나 창조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최고의 경쟁자는 자기 자신이다. 작가는 자신의 나약함과 게으름, 능력 부족을 탓하면서 창작의 고통을 온몸으로 끌어안는다. 그렇지만 이 세계라고 경쟁자가 없을까. 재능과 실력이 엇비슷한 이들은 상대가 이룩한 성과물을 서로 곁눈질하면서 더 높고 아득한 곳으로 자신을 밀어올린다. 2002년 새해를 맞아 캐릭터·게임·인디 음악·만화·영상 등 대중 문화계에서 주목받는 젊은 맞수들을 소개한다.



캐릭터/김득헌 vs 김부경

‘똥폼의 왕자’ 졸라맨
‘터프한 공주’ 뿌까?



72년생 동갑내기이면서, 척박한 국내 캐릭터 산업 분야를 이끌 기대주로 손꼽히는 김득헌씨와 김부경씨. 두 김씨를 처음 만난 사람은 내심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과묵하고 표정 굳어 있기로 쌍벽을 이룰 듯한 두 사람에게서 오두방정을 떠는 ‘졸라맨’이나 꽉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귀여운 ‘뿌까’의 이미지를 떠올리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시대적 코드를 적시에 포착함으로써 대성공을 거두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일단 플래시(1997년 매크로미디어 사가 개발한 웹 기반의 동영상 저작 도구)를 도구로 선택한 것부터가 그랬다. 김득헌씨는 “정통 셀 애니메이션을 공부하다가 플래시를 처음 접한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라고 말했다. 적은 용량으로도 인터넷에서 살아 움직이는 화면을 만들 수 있는 이 소프트웨어는, 웹에서 정지해 있는 그림만 보자니 답답하고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자니 아직은 회선 속도가 받쳐주지 않는 틈새를 절묘하게 파고들었다.






엽기·코믹·패러디 같은 문화 코드를 정확히 간파했다는 점도 성공 요소였다. 입만 열면 사랑과 정의를 외치며 ‘똥폼’을 잡다가 뒷골목 깡패라도 만날 양이면 슬금슬금 꽁무니를 빼는 졸라맨은 영웅을 꿈꾸면서도 소심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소시민들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고도 유쾌하게 까발려 주었다.


엉겁결에 탄생한 ‘졸라맨’, 기획의 산물 ‘뿌까’


이 작품은 독창적인 패러디로도 폭소를 유발했다. 이를테면 길바닥에 떨어진 10원짜리 동전을 주은 뒤 졸라맨이 신나게 추는 개다리 춤이나 이른바 파워 변신을 할 때마다 외치는 주문 “파워:많이많이, 변신:무조건 이쁘게”는 각각 신바람 이박사와 일본 만화 영화 <세일러 문>을 슬쩍 비튼 것이었다. 국내 최초라는 선형(線形) 캐릭터와 ‘궁시렁 궁시렁’대는 목소리 또한 졸라맨의 빼놓을 수 없는 개성이자 매력.


한편 거룡반점 외동딸 뿌까는 한눈에 찜한 남자 친구 ‘가루’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캐릭터로, 연애가 지상 최대 관심사인 요즘 신세대의 정서를 흡인력 있게 파고들었다. 남자 친구에게 수중 키스·인공 호흡 키스·짜장면 키스 따위 기기묘묘한 입맞춤을 잇달아 퍼부어댄 뒤 씩 웃음짓는 뿌까. 가식과 내숭과는 거리가 먼, 터프한 그녀의 모습은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전지현이 보여준 엽기 발랄한 신세대 여성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닮아 있다.


졸라맨과 뿌까는 이처럼 플래시 애니메이션으로 출발해 오프라인 캐릭터 사업에까지 진출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핸드폰 줄·인형·필기구에서 채팅용 아바타(분신)까지 이들 캐릭터는 수십 종의 상품으로 출시되고 있다. 김부경씨가 예상하는 2002년 뿌까 관련 상품의 전체 시장 규모는 4백억원대.



그러나 두 김씨가 이 일에 뛰어들게 된 경위나 사업 방식은 상당히 대조적이다. 김득헌씨는 유한공고와 전문대를 나와 엔지니어로 일하다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 싶어 애니메이터로 변신했다. <딴지일보>에서 잠시 수습 기자로 근무하던 시절 습작 삼아 만든 <졸라맨>이 엄청난 인기를 얻는 바람에 엉겁결에 캐릭터 업계에 뛰어들었다.



이에 반해 뿌까는 철저한 기획에 따른 산물이다. 영남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한 뒤 팬시·문구 업체를 전전하던 김부경씨는 1999년 말 아예 ‘부즈’라는 캐릭터 전문 회사를 따로 차렸다. 창업 자금은 단돈 4백만원. 그렇지만 김씨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창작 캐릭터를 키울 의지가 눈꼽만큼도 없는 업자들 밑에서 일하느니 제작자가 직접 나서자”라는 그의 ‘선동’에 동료들도 하나둘 포섭되었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뿌까는 개발 과정부터 철저한 시장 조사 및 타깃층 분석이 뒷받침된 캐릭터이다. 중국인인지 한국인인지 국적이 헷갈리는 뿌까의 외모는 세계 시장을 겨냥한 것. 김씨는 뿌까 외에도 전투하는 돼지 ‘무라’, 이소룡을 본뜬 ‘아뵤’ 등 후속 캐릭터 20여 종을 줄줄이 대기시켜 놓고 있다.


신인다운 도발성이 매력적인 김득헌씨와 프로다운 철저함이 돋보이는 김부경씨. 두 사람은 서로의 작품을 ‘동양적인 미완(未完)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캐릭터’(졸라맨) ‘독창적인 개성을 지닌 캐릭터’(뿌까)라고 치켜 세운다. 최근 2∼3년 사이 배 이상의 규모로 급속하게 성장한 국내 캐릭터 시장은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대중 음악/주석 vs 노브레인


무게 잡는 ‘힙합 지존’
무게 없는 ‘록 이단아’



힙합의 지존’과 ‘록의 이단아’라는 별칭을 가진 힙합 가수 주 석(24)과 펑크 로큰롤 그룹 노브레인은 지난해 오랜 언더그라운드 생활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기성 무대에 진출했다. 이들의 목표는 댄스와 발라드 일색인 ‘음악판’을 한번 뒤집어 보는 것이었다. 그 작업은 비록 무위로 그쳤지만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소개하려는 이들의 시도는 경직된 대중 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동년배 친구들이 댄스와 발라드에 빠져들 때 힙합과 록에 빠져든 이들은 1996년부터 홍익대 주변 언더그라운드 클럽을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내공을 쌓은 이들은 그동안 주로 공동 앨범에 참여하다가 지난해 정규 앨범 (주 석)과 (노브레인)을 내놓았다. 주 석은 첫 번째 정규 앨범이었고 노브레인은 두 번째였다.


기성 무대에서 활동하면서도 이들은 자기 음악색을 유지하기 위해 앨범을 메이저 음반회사가 아닌 인디(독립) 음반회사에서 제작했다. 하지만 주류 음악이 아닌 데다가 메이저 음반사의 도움도 없어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특히 어둡고 반항적인 주 석의 음악은 공중파 방송을 전혀 타지 못했다.

노브레인은 몇 차례 방송에 나갔지만 음악프로가 아니라 대부분 텔레비전 뉴스였다. ‘안티서태지 콘서트’를 개최한 것과, 지난해 역사 교과서 왜곡 파동이 있은 직후 일본 공연에서 일장기를 찢은 사건 때문이었다. 멤버들이 “문화부 기자보다 사회부 기자가 더 익숙하다”라고 말할 정도로 이들은 뉴스에 자주 나왔다.




“대안이 없으면 저항을 말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방송에 나가지 못한 것에 대해 이들은 그다지 아쉬워하지 않는다. 오락 프로그램에 나가 각종 가학적인 코너에서 ‘모르모트’가 되거나 ‘개인기’를 부리는 것이 힙합이나 펑크의 라이프 스타일과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비록 음반 판매 실적이 좋지는 않지만 이들은 스스로 만든 음악을 통해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음악도 나름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이들은 해외 공연을 통해 무대를 확장하고 있는데, 특히 주 석은 일본·타이완·홍콩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힙합 가수의 역량을 십분 과시했다.


주 석과 노브레인의 음악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세상이 어두우니까 음악도 어둡다”라고 말하는 주 석의 음악은 다소 어두운 편으로 우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반면 노브레인의 음악은 밝은 편이다. 주된 메시지는 ‘우리 한번 힘 좀 내 젊음을 불태워 보자’는 것이다. 장르의 특성상 둘의 음악은 반항적이고 저항적일 것 같은데 실제 들어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저항에는 대안까지 담겨 있어야 한다. 거기까지 관심이 없기 때문에 섣부르게 저항을 말하지 않는다”라는 것이 주 석의 설명이다.


이들의 올해 목표는 소박하다. 함께 음악을 나눌 팬을 확보하고 대중 음악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다. 본토 음악을 어설프게 모방했다는 평가를 극복하고 한국적 힙합과 펑크를 보여주는 것이 앞으로 이들의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영상/유소라 vs 오병용


“너희가 고딩을 아느냐”
단편 영화 두 ‘꼬마 감독’


지난해 스크린을 달군 한국 영화 열풍은 학교 교실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청소년영화제마다 응모 작품이 수백 편씩 몰렸다.

이 중에서도 유난히 눈에 띈 작품은 영파여고 2학년 유소라양(18)의 단편 영화 <난중일기>였다. 이 작품으로 유양은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와 한국디지털청소년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것을 비롯해 광주국제영상축제에서도 교육인적자원부장관상을 탔다. 이를테면 청소년영화제에서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셈이다. 다큐멘터리 <가출한 헨젤과 그레텔>로 서울넷페스티벌에서 영리더상을 받은 용산고 3학년 오병용군(19)도 이에 뒤지지 않게 상복이 많았다.




<난중일기>와 <가출한 헨젤과 그레텔>은 둘 다 교육 현장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난중일기>는 한 초등학생이 겨울 방학 일기를 미리 다 써둔 다음 일기에 적은 대로 행동한다는 내용으로, 획일적인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한 작품이다. <가출한 헨젤과 그레텔>은 가출 청소년 10여명의 생활을 세밀하게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유양과 오군, 두 ‘꼬마 감독’의 작업 방식은 조금 차이가 난다. <너희가 중딩을 아느냐>에 조연출로 참여하면서 영화를 시작한 유양은 영화를 느리게 찍는 편이다. 이번 작품도 제작 기간이 10개월이나 걸렸다. 중간에 친구가 떨어져나가는 바람에 혼자 촬영을 진행한 유양은 용돈을 탈탈 털어 겨우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

유양은 ‘느릿느릿’, 오군은 ‘속전속결’


이에 반해 친구들과 함께하는 단체 작업을 즐겨 하는 오군은 영화를 빨리 찍기 때문에 다작을 하는 편이다. 그는 고등학교 3년 동안 뮤직 비디오 3편과 단편 영화 6편, 다큐멘터리 4편 등 총 13편을 제작하는 데 참여했다.


유양의 재산목록 1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산 비디오 카메라이다. 그녀는 비디오 카메라를 마치 분신처럼 ‘데리고’ 다니며 카메라와 끝없이 대화한다. 카메라가 눈에 보여야 잠이 오기 때문에 잘 때도 머리맡에 놓아둔다. 학교 갈 때도 가져가서 수업시간에 선생님과 친구들 모습을 몰래 찍는다. 심지어 복도에서 벌을 설 때도 카메라로 자기 모습을 찍는다.

이런 유양에게 영화는 성장의 에너지였다. 그녀는 영화를 만들면서 스스로에게 끝없이 물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통해 그녀는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았다.


반면 오군에게 그 작업은 미로를 풀 듯 답을 찾는 작업이었다. 그에게 영화를 찍는 작업은 마치 수수께끼를 푸는 것과 같았다. 영화를 찍는 작업을 통해 그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갖추었다. <가출한 헨젤과 그레텔>도 자신의 눈으로 가출 문제를 바라보고 싶어서 만든 작품이었다.


사물을 세심히 관찰하는 오군의 능력은 단편 영화보다 다큐멘터리에서 빛을 발했다. 이번에 상을 받은 <가출한 헨젤과 그레텔>은 청소년 문제를 다룬 3편의 연작 다큐멘터리(가출·학교 폭력·교실 붕괴) 중 첫 작품에 해당한다.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그는 가출한 청소년을 3개월 동안 취재했고, 이 중 10여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두 시네마키드는 이번 방학 때 모두 여행을 떠났다. 새 작품을 기획하기 위해서이다.








만화/김기정 vs 윤인완

한국 만화에 ‘만’ 살려낸
무대리와 암행어사



한국 만화는 화(畵·그림)는 수준급인데 만(漫·이야기)이 딸린다. 이것이 한국 만화가 일본 만화에 처지는 최대 원인이다.” 일본 3대 메이저 출판사 중 하나인 고단샤 관계자가 한 말이다.

그렇다고 한국 만화에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김기정씨(33)나 윤인완씨(26)처럼 역량있는 젊은 작가가 이 바닥에 속속 투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코믹 만화와 판타지 만화라는 서로 다른 장르 만큼이나 두 사람의 개성은 판이하다. 만년 대리의 애환을 코믹하게 묘사한 첫 작품 <무대리, 용하다 용해>로 필명을 날린 이래 고등학교에 입학한 조폭 두목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그린 <차카게 살자>(월간 <영 점프> 연재 중)로 인기 상종가를 이어가고 있는 김기정씨는 본래 만화 잡지 기자 출신이다. 구조 조정의 칼바람이 매섭던 1998년 자진해 회사를 그만둔 그는 오랫동안 꿈꾸어온 스토리 작가로 변신을 감행했다.



비록 두 아이에, 셋째까지 임신한 아내가 딸려 있는 가장이었지만 겁날 것은 없었다. 그에게는 기자 시절 쌓은 인맥과 노하우, 무엇보다 꿈을 현실로 옮긴 사람의 긍지가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가혹했다. 한때 친하게 어울렸던 만화가들은 안면 몰수하고 “돈을 포기하든, 이름을 포기하든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잘라 말했다. 심지어 출판사조차 스토리 작가를 만화가의 부속품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밀린 원고료를 만화가에게만 지급하는 출판사, 자기네가 알아서 스토리 작가 이름을 미리 빼버리는 출판사들의 행태에 그는 절망감을 느꼈다.


한국 만화계에 ‘스토리 작가 시대’ 열다


김씨와 달리 윤인완씨는 처음부터 만화를 그리겠다는 신념으로, 한때 고등학교마저 중퇴하려 했던 ‘무서운 신세대’이다. 그는 5년 전 어느 날 우연히 만화가 양경일씨 화실에 놀러 갔다가 만화가에서 스토리 작가로, 삶의 목표를 수정하게 되었다. 일급 만화가 반열에 올라 있던 양씨는 윤씨가 학창 시절부터 구상했다는 스토리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의기투합한 두 사람이 만든 첫 작품이 만화 <아일랜드>였다.



퇴마(退魔)·추리·판타지 물을 뒤섞은 듯한 이 작품에서 윤씨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섬 제주도를 정염귀·요괴·좀비가 들끓는 핏빛 섬으로 탈바꿈시키는 대담한 상상력을 발휘했다. 결과는 대성공. 만화의 인기에 힘입어 그는 같은 제목의 판타지 소설까지 썼다.


그러나 윤씨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한국 만화 시장에서는 출구가 없다는 데 의견이 일치한 그와 양경일씨는 2년 전 포트폴리오를 들고 무작정 일본 출판사들을 찾아갔다. 다행히 반응은 우호적이었고, 그 결과 쇼카쿠칸이 발행하는 월간 만화 잡지 <선데이 GX>에 지난해 4월부터 연재하게 된 것이 <신암행어사>이다.

패망한 가상국 ‘쥬신’의 암행어사 문수가 세상을 떠돌며 부패한 관리들을 징치한다는 줄거리의 이 작품에서도 윤씨는 그만의 독특한 세계관과 연출로 일본 독자를 사로잡고 있다. 암행어사 출두에 열광하는 백성들에게 “내가 너희를 위해 이런 일을 하는 줄 아느냐”라며 냉소하는 문수는 확실히 동서 고금의 영웅상과는 동떨어진 캐릭터이다. 절세 미녀가 아닌 절세의 인간 병기(兵器) 춘향이가 암행어사를 수행한다는 설정 또한 파격적이다.


윤인완씨는 계약 당시 완결된 스토리를 요구한 것으로도 모자라 매회 꼼꼼하게 진행 상황을 체크하는 일본 잡지의 작업 방식을 따라가다 보니 연출이나 복선 구사가 훨씬 치밀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만화의 질을 끌어올리는 것은 작가 개인만이 아니라 전체 시스템의 문제라는 지적이다.




프로게이머/임요한 vs 김두형


스타 크래프트 ‘황제’
피파의 ‘떠오르는 별’




2001년 12월9일 4만 관중이 지켜보는 데서 한국 축구 대표팀이 미국 대표팀과 싸우던 그 시간, 서울 코엑스에서는 또 다른 국가 대표팀이 싸우고 있었다. 잔디 운동장은 아니었지만 2천여 관중이 모여들었고, 네티즌 90만명이 인터넷으로 경기 중계를 지켜 보았다. 그것은 컴퓨터 게임 올림픽(월드 사이버게임즈)이었다.



여섯 종목 경기를 치른 이 대회에서 한국은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임요환 선수(22)와 김두형 선수(20)가 각각 <스타 크래프트>와 <피파2001> 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덕분이었다. 경기를 지켜본 네티즌들에게 12월9일은 한국 축구팀이 미국팀을 1대0으로 이긴 날이 아니라, 온라인 게임이 국가의 명예를 높이는 문화 자산이라는 점을 확인한 날이었다.



한국 우승의 주역인 두 선수는 시상식 전 정겹게 대형 태극기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하지만 이들은 용모에서부터 대조적이었다. 임요환 선수가 180cm 큰 키에 미남형으로 차분한 말씨를 가진 ‘테리우스’형 스타라면, 두 살 어린 김두형 선수는 귀엽고 발랄한 깜찍 스타였다. 게임 스타일에서도 이들은 달랐다. 임요환 선수는 “만약 <스타 크래프트>의 인기가 시들해지면 <워 크래프트> 게이머로 변신할 수도 있다”라며 타고난 전사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에 비해 김두형 선수는 “죽고 죽이는 전쟁 게임은 하고 싶지 않다”라고 말한다.



언젠가 ‘정면 승부’ 펼칠 날 올 수도





이 두 사람을 라이벌로 취급하는 것은 부적절할 수도 있다. 임요환 선수가 1999년 이후 열한 번이나 우승한 대 스타라면 김두형 선수는 비인기 종목에서 막 떠오르는 신인이기 때문이다. 올해 초만 해도 무명이었던 김선수가 조 1위로 예선을 통과하자 언론은 ‘파란’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본선에서 패자부활전 끝에 우승을 거머쥐었다. 임요환 선수가 NBA의 마이클 조던이라면 김두형 선수는 대학 농구 신인왕에 비견할 수 있다. 그러나 멀지 않은 장래에 이들이 어깨를 겨루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스타 크래프트>가 ‘한 물 간’ 게임 취급을 받는 반면, <피파2001>은 <피파2002> <피파 2006> 등으로 해마다 업그레이드되면서 게임 수명을 늘려갈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만 빼면 세계적으로는 <스타 크래프트>보다 피파 시리즈가 더 인기 있는 것도 고려할 만한 요소다.


한 인터넷 잡지는 임요환 선수를 ‘게임을 보는’ 세대가 낳은 최초의 스타라고 표현했다. 비록 <스타 크래프트>를 직접 즐기지 않고 구경만 하는 사람조차도 팬으로 끌어들인 최초의 인물이라는 뜻이다. 임요환 선수 때문에 <스타 크래프트>에 빠졌다는 사람도 많다. 화려한 전술과 기발한 아이디어, 쇼맨쉽은 그를 <스타 크래프트>의 왕자를 넘어 신세대 대중 문화의 대변자로 만들었다. 김두형 선수가 임요환 선수의 뒤를 이어 세계 게임계의 지존으로 등극할 수 있을지 올해 월드컵 일정에 맞추어 열리는 세계 피파 게임대회가 주목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