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인의 탈주, 누구 작품인가
  • 정리·특별취재팀 ()
  • 승인 2002.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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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집단 망명’ 기획·참여한 한국인 활동가 증언/대사관 진입 ‘5대 비사’
탈북자 25명의 ‘기획 망명’은 누가 도왔나. 그들은 왜, 어떻게 탈출을 지원했나. 지난 3월14일 오전 9시50분 베이징 주재 스페인대사관에서 시작된 탈북자 집단 망명 사건은 지난 3월18일 이들이 필리핀을 거쳐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그러나 과연 누가 이들의 전격적인 탈출 과정을 지원했는지에 대해서는 설왕설래가 그치지 않고 있다.





사태 초기에는 현장에 있었던 독일 의사 노르베르트 플러첸 씨, 그리고 탈북자들의 성명서를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도운 ‘북조선 난민 구호기금’이라는 시민단체가 주목되기도 했다. 그러나 베이징 현장에서 거사에 가담했던 국내 탈북자 단체 관계자들의 증언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어떤 한 단체나 개인이 아니라 국내외 인권활동가들이 힘을 합쳤다는 사실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또한 일부 언론에서는 중국을 무대로 오랫동안 활동해온 한국인 활동가의 역할을 부각하기도 했다.


그동안의 보도들은 모두 일단의 진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일에 처음부터 직접 참여했던 사람으로부터 들은 증언이 아니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지난 3월16일 <시사저널>이 접촉한 A씨는 이번 일의 발단에서부터 진행 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목격한 인물이다. 그는 중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탈북자들이 베이징 근교까지 이동할 수 있도록 도왔고, 또한 거사가 있기 전 주요 구성원을 중국 현지에서 직접 인터뷰하기도 했다(24~28쪽 기사 참조). 따라서 A 씨의 증언은 현재까지는 이번 기획 망명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추진되어 왔는지를 밝히는 가장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은 A씨의 증언을 토대로 이번 탈출 과정을 재구성한 것이다.



중국 어디에서 어떻게 살았나:탈북자들은 중국의 지린성과 헤이룽장성의 각 도시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옌지·창춘·하얼빈·무단강·선양 등이다. 이들은 가족 또는 개인 단위로 현지에서 도와주는 사람들의 숙소 등에 숨어 있었다. 그 중에는 탈북한 지 3∼5년 되는 사람도 있고, 최근 넘어온 사람도 있다. 그리고 80% 이상이 한번 이상 북한에 잡혀갔다가 다시 탈북해 나온 사람이다. 중국 공안들의 그물을 피해 다녀야 했기 때문에 심신이 극도로 지쳐 있었고 크고 작은 질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누가 그들을 도왔나:몇 단계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 우선 중국 내 각지에서는 한국인 활동가들이 그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했다. 선교사도 있고 자원봉사자도 있다. 탈북자들과 의사 소통 문제 등이 있기 때문에 한국 활동가들이 1차적으로 접촉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활동가들은 도시 별로 점조직으로 연결되어 있어 서로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 다음 탈북자들의 전체적인 탈출 과정과 스페인대사관 진입 결정 등은 국제적인 자원봉사자 그룹이 담당했다. 가칭 ‘국제 인권 자원봉사자 모임(International Human Rights Volunteers)’이라는 느슨한 연대 조직에 속한 사람들이다. 여기에는 미국·프랑스·벨기에·영국·일본 사람이 포함되어 있다. 독일인 의사 노르베르트 플러첸 씨나 일본 시민단체도 이들 중 일부이다. 이 조직은 말 그대로 자원봉사자 조직이다. 따라서 조직의 이름이나 기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때그때 개별적으로 활동하다가 필요할 때 서로 의견을 교환해 사업을 추진하는 식으로 움직인다고 한다.


세 번째는 이들 외국의 자원봉사자들과 현장의 활동가들을 연결한 인물이다. 그는 ‘국제 인권 자원봉사자 모임’에 속한 유일한 한국인 활동가로서 사실상 이번 거사 과정에서 중추 역할을 한 인물이다(22쪽 인터뷰 참조). 그는 중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현장 활동가들을 서로 연결하고 또 직접 탈북자들을 면담해 대상자를 선정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일부 언론에 따르면, 대사관 점거도 그의 아이디어라고 한다.





25명 어떻게 선정했나:그동안에도 몽골이나 동남아 등으로 탈북자들을 피신시킨 일은 여러 차례 있었다. 대사관 점거형 탈출에 대해서도 사실 오래 전부터 검토해 왔다. 중국 내에서 치외법권 지역은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 등 유엔 기구와 각국 대사관뿐이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은 지난해 6월 장길수 가족 망명 사건으로 중국 공안의 단속이 강화된 이후부터 논의가 본격화했다고 보도했다. 대상자 선정은 올해 초에 이루어졌다. 그 뒤에도 몇 차례 만나 결심을 확인하기도 했다. 국외 탈출을 최종 결정하게 된 것은 1월 말~2월 말이었다.


대상자는 한국인 핵심 활동가가 직접 가서 면담했다. 왜 탈북했는지,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그리고 국외 탈출에 대한 의지 등을 이모저모 확인했다. 특히 탈출 과정에서 성공 가능성이 10%밖에 안된다는 점을 주지시키고, 죽으면 죽었지 더 이상 중국 땅에서 못 견디겠다는 사람만을 대상자로 선별했다. 실제로 이번에 탈출을 결행한 사람 중에는 팬티 속에 극약을 숨겨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중간에 배반하는 사람이나 이중 첩자가 섞일 수도 있기 때문에 대상자 선정은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베이징까지 어떻게 이동했나:가족·개인 단위로 지린성과 헤이룽장성의 거주지에서 베이징까지 서서히 이동했다. 탈북자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다음 행선지가 어디며 몇 명이 모이는지를 전혀 몰랐고, 안내하는 사람의 지시에 따라서만 움직였다.

현지에서 베이징까지는 주로 기차를 이용했다. 한 가족의 경우 새옷으로 모두 갈아입히고 장신구도 달고 짐을 가볍게 해 친척집에 다니러 가는 것처럼 위장했다. 옌지에서 창춘까지 침대칸을 타고 8시간 반 정도 이동하는데, 중간에 검표원이 두 차례나 여권과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했다. 두 차례 모두 안내하는 사람이 기지를 발휘해 무사히 넘겼다.


이들은 베이징 시내에 미리 정해 놓은 몇몇 숙소에 흩어져 있다가 14일 오전 관광객으로 위장하고 스페인대사관 정문을 일거에 밀고 들어갔다. 지원 그룹 멤버들이 알고 지내던 CNN 기자와 AP 통신 사진기자한테 대사관 난입 직전에 미리 연락해 현장에서 기다리도록 했다.


탈출 비용은 어떻게 마련했나:탈북자 한 사람당 하루에 먹고 자는 비용이 8달러쯤 든다. 여기에 약값과 이동 경비도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 자원봉사자 각자가 비용을 염출해 충당했다. 외국인 현장 활동가들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한국인 활동가의 경우 이미 수천만원을 빚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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