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급 호텔들, 무엇으로 돈 버나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2.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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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실·식당보다 면세점·연회 사업 이익 ‘짭짤’…외식업에 꽃 판매까지
지난 4월19일 낮 12시, 서울 남산 그랜드하얏트호텔 카페테리아는 테이블이 50개가 족히 넘어 보이는데도, 빈자리가 없었다. 갈비탕·초밥·스테이크 등 여러 가지 음식을 즐기고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인이었다.
4월23일 밤 10시30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앞은 대낮 같았다. 천 개가 넘는 객실 가운데 절반 이상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5대 호텔, 9·11 테러 여파에도 이익 내



호텔업계에서는 ‘호텔업은 초기 투자 비용이 엄청나서 돈을 벌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자본 회수 기간만 20년 넘게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호텔들은 돈을 벌고 있다. 최소한 그랜드인터컨티넨탈을 비롯한 5개 특급 호텔은 ‘9·11 테러’ 여파로 호텔업계 최고 불황기였던 지난해에도 적지 않은 이익을 냈다. 조선호텔은 지난해 1천7백억원 매출에 91억원 이익을 냈고, 신라호텔은 1백60억원을 남겼다. 어디서 그 많은 이익을 남긴 것일까.



호텔의 주된 상품은 무어니 무어니 해도 객실이다. 초기에 설비 투자만 해놓으면 유지·관리비가 적어 매출의 절반 이상을 남길 수 있다. 하지만 국내 특급 호텔 가운데 객실 매출로만 돈을 버는 호텔은 드물다. 보통 객실 10개 가운데 7~8개는 항상 손님이 드는데도 거기서 얻는 이익은 크지 않다.






롯데호텔과 신라호텔은 면세점이 가장 짭짤한 수입원이다. 롯데호텔의 경우 이익의 75% 이상이 면세점에서 나오고, 신라호텔 역시 면세점 수익이 전체 이익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67쪽 표의 매출 구성비는 면세점 매출을 제외한 것임). 호텔 이용 고객은 한 사람이 하루에 100만원을 쓰기도 벅차지만, 면세점 고객은 한 시간 만에 천만원도 너끈히 쓴다.



면세점을 갖고 있지 않은 조선호텔은 호텔의 브랜드 파워를 이용해서 진출한 외식 사업과 제과 사업으로 버는 돈이 쏠쏠하다. 조선호텔 전체 매출 가운데 서울의 호텔이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외식 사업과 베이커리에서 올린 매출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일찌감치 사업 다각화로 재미를 본 조선호텔은 올해에도 호텔 본업 외의 사업을 더 확대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신세계 강남점에 ‘제인패커’라는 꽃집 체인 1호점을 열고, 꽃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영국의 대표적인 꽃장식가 제인 패커와 제휴해 국내 명품 꽃 문화를 개척해 돈을 벌겠다는 야심이다.



면세점을 갖고 있지 않고 사업 다각화에도 관심이 없는 인터컨티넨탈이나 하얏트는 어떤가. 하얏트는 다른 호텔과 달리 식음료나 연회에서 돈을 번다. 표에서 보듯 전체 매출에서 식음료 및 연회가 차지하는 비중은 다른 호텔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속내는 좀 다르다.






각 호텔마다 10개 이상 갖고 있는 식당들은 경영자 처지에서 보면 ‘애물’에 가깝다. 식자재 값이 워낙 비싼 데다 인건비가 적지 않게 들기 때문이다. 소공동 롯데호텔의 직원 수가 총 1천7백명인데, 이 가운데 천명이 식음료 분야(연회 포함)에서 일한다. 그런데도 식음료 매출은 전체 매출의 30%가 채 안되고, 순이익은 연간 2억∼3억 원밖에 안 난다. 송용덕 이사(롯데호텔 마케팅 담당)는 “TGI프라이데이스와 같은 외국계 패밀리 레스토랑이 한 지점에서 평균 6억원 이상 남기는 것에 비하면 형편없는 성적표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나마 커피숍이나 바와 같은 ‘물장사’가 식당의 손실을 보완해 이 정도 성적을 거두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위기에 빠진 호텔이 경영 컨설턴팅을 요청하면 컨설턴트는 우선 식당가를 없애라고 충고한다. 미국을 비롯한 서양 호텔들이 식당을 잘 운영하지 않는 까닭도 그래서이다.



그러나 하얏트는 식음료 부문에서 20% 정도의 이익을 꼬박꼬박 내고 있다. 그 비결은 ‘이익을 못내는 업장은 문을 닫는다’는 강력한 경영 전략과 젊은층 공략에 성공한 데 있다. 하얏트의 양식당 파리스 그릴은 발렌타인데이나 크리스마스 때에는 한 달 전에 예약해야 할 만큼 젊은 연인들 사이에서 데이트 명소로 꼽힌다. 심지어 웃돈까지 얹어 예약권을 사고 파는 젊은이들도 있다. 박성주 이사(그랜드하얏트 마케팅 담당)는 “그 나라 주방장이 만든다는 전술 덕이다”라고 말했다. 이 호텔 외국인 주방장들은 각 나라에서 유행하는 음식을 국내에서 가장 먼저 선보여 유행에 민감한 젊은층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옥석’ 가려 고객 유치하기도



결혼식을 포함한 연회도 하얏트의 효자 상품이다. 사실 연회는 하얏트뿐 아니라 어느 호텔이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다. 호텔 결혼식의 경우 하객이 5백∼1천5백 명 가량 오기 때문에, 빠른 시간에 매출을 많이 올릴 수 있다. 연회 음식은 식당에서처럼 최고급 자재를 쓰지 않고, 서비스 인력 또한 넘치게 투입되지 않으므로 지출 비용보다 이익이 크다.



그러나 자칫 잘못했다가는 호텔 이미지에 먹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특급 호텔들은 결혼식 고객을 유치할 때 ‘옥석’을 고르는 편이다. 일부 호텔에서는 단가를 높게 책정해서 일정 수준이 안 되는 사람은 꿈도 못 꾸게 걸러내 예약 단계에서 거절한다. 대개 특급 호텔 결혼식 예약은 ‘연줄’을 대고 들어오기 때문에 그 경로만 파악해도 고객 신분을 파악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한 호텔 관계자는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 해도 조폭이 이 호텔에서 결혼하게 할 수는 없잖은가”라고 말했다.



호텔의 주력 상품이라고 할 수 있는 객실 판매로 수익을 가장 많이 남기는 호텔은 인터컨티넨탈이다. 정보 기술(IT) 산업의 요람인 테헤란밸리와 무역센터를 끼고 있는 지리적 여건에다 전세계에 2천1백만 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인터컨티넨탈그룹 체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건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1주일만 자면 하룻밤 정도는 공짜로 잘 수 있는 마일리지가 적립되고, 이 마일리지를 항공·식사·쇼핑 때에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인터컨티넨탈 마니아’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 덕에 이 호텔은 객실의 70%를 단골 고객으로 채운다. 호텔업계에서는 ‘인터컨티넨탈 판촉부는 손님을 찾아 나서는 대신 예약 전화를 거절하는 일로 더 바쁘다’는 소문도 있다.






세계적인 체인망을 갖고 있는 국내 특급 호텔은 인터컨티넨탈만이 아니다. 하얏트·웨스틴 조선·힐튼·리츠칼튼·메리엇 등 웬만한 글로벌 호텔 체인은 다 국내에 들어와 있다. 이런 체인 호텔은 마일리지를 비롯한 다양한 마케팅 툴을 갖고 있어 신라나 롯데와 같은 토종 호텔에 비해 고객을 유치하기가 쉽다. 그래서 대개 체인 호텔 투숙객 둘 중 하나는 체인 마일리지를 이용하는 단골이다. 이런 체인 호텔들과 경쟁하기 위해 신라나 롯데도 ‘LHW’(신라)나 ‘써밋’(롯데) 같은 토종 호텔 중심의 체인에 가입해서 공동 마일리지 제도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 체인망을 통해 유치되는 고객은 전체 고객의 10%도 채 안 된다.



특급 호텔이라고 해서 외국인만 바라보고 장사하는 것은 아니다. 특급 호텔의 식당가나 연회 고객은 주로 내국인이므로 특급 호텔들은 내국인을 잡기 위한 마케팅 경쟁도 치열하게 벌인다. 호텔들은 내국인 VIP 고객 10만 명 정도를 별도로 관리하고 있다. 연회비를 받는 대신 호텔을 이용할 때 할인 혜택을 주고, 다달이 승마나 골프 강습을 해주거나 스타 초청 공연 등을 열어 회원과의 유대 관계를 이어간다. 또 호텔 식당이나 바에서 이벤트나 연주회를 끊임없이 기획해 고객으로 하여금 호텔을 자주 찾을 기회를 마련한다. 이렇게 찾아 온 고객들이 호텔 매출의 절반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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