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여야 똑같이 지원”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2.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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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대선 정치자금, 5 대 5로 분배한 듯…아태재단에도 큰돈 기부
"규선이, 대우를 도와주게.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 큰 힘을 발휘했네. 그리고 김우중씨 같은 사람 없네.”
“저는 당선자의 말을 듣고 ‘아, 대우를 밀어야겠구나’라고 생각했고, 당시 환율이 1천8백원일 때 알 왈리드가 1억5천만 달러를 투자했으니 대우로 봐서는 어마어마한 쾌거를 올린 것입니다.”


최규선 미래도시환경 대표가 전남 영암으로 가는 차 안에서 녹음했다는 녹취록의 한 대목이다. 최씨의 말을 전해들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한 측근은 분개했다. “김회장은 1997년 9월 이전에 이미 알 왈리드와 접촉했다. 대우그룹 초청으로 그가 한국에 온 적도 있다. 최씨가 다리를 놓아 알 왈리드의 돈을 유치했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최씨 성격이면 분명히 기념 사진을 찍었을 텐데, 자신 있으면 내놓으라고 해라. 또 김회장이 최씨에게 전화하고 7억원을 건넸다고 했는데, 두 사람은 알지도 못한다. 완전히 소설을 쓰고 있다.”


김우중씨측에서는 최씨의 말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보도자료까지 만들어 언론사에 돌렸다. ‘감히 회장님이 외자를 유치한 공을 가로채다니!’ 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최근 정보기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김우중 9월 귀국설’이 돌고 있다. 그가 대선 정국이 무르익었을 때 귀국해서 특정 후보에게 유리한 진술을 하는 식으로 영향을 미친 뒤 대선 이후 사면을 받으려 한다는 것이다. 정보기관 인사가 재계 관계자에게 전한 이 시나리오가 얼마나 사실에 가까운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김씨의 동태를 살피고 있어 소재지도 파악하고 있을 정보기관 쪽에서 이런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은 예사롭지 않다.





김우중 측근들, DJ 정권에 분노


사실 김우중씨 쪽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꾸준히 ‘귀국설’을 흘려 왔다. 김씨의 ‘입’으로 통했던 최측근 인사인 백기승 전 대우 이사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누구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대우가 왜 망했고 그 상황과 과정은 어떠했는지를 따져보아야 한다”라는 논리로 ‘우호적인 여론 조성’에 앞장서 왔다.


‘친 김우중파’로 분류되는 옛 대우 사람들은 최근 “김회장이 스스로 나간 것이 아니다. 현정권에서 ‘잘 처리하고 나면 들어오셔서 몇몇 계열사를 맡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며 출국을 종용했다. 내보낸 쪽에서 뭔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현정권이 김회장을 ‘사기꾼, 도망자’로 만든 것에 하나같이 분노하고 있다.


특히 김씨의 측근들은 강봉균·이헌재 등 현정권 초기 경제 관료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한 측근이 작성한 <대우 죽이기의 실체>라는 문건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국민의 정부의 가혹한 재벌 개혁에 대한 방향 수정과 경제 회생 방안을 마련하는 데 전경련 회장·김대통령과의 친분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간여하게 되면서, 노선과 이념적 배경이 다른 신흥 경제 관료들과의 갈등과 대립이 격화되었다. 그 결과 그들은 대우를 겨냥한 압박을 통해 기획된 해체 순서를 밟아갔다.’


어쨌든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뒤 전경련 회장이 되며 승승장구했던 김우중씨는 2년도 지나지 않은 1999년 말 해외 유랑길에 올랐다. 명목은 ‘베트남 현지 공장 시찰’. 그러나 그는 귀국길이 막히면서 현재 특정범죄가중처벌법(사기 등)과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수배되어 있다. 2000년 9월16일에는 금융감독위원회가 41조원을 분식 회계한 혐의로, 2001년 4월2일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위장 계열사 6개를 운영해 온 혐의로 그를 검찰에 고발했기 때문이다. 최소 10년 이상은 교도소 생활을 해야 하는 혐의이다.





“지난 대선 때 수백억원 전달”


전 대우그룹 관계자들은 최규선씨의 녹취록에 나와 있는 대로 김대중 대통령이 김회장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라고 증언한다. 한 관계자는 1997년 대선 때 김회장은 여야에 정확히 5 대 5로 정치자금을 전달했다고 강조했다. 7 대 3 정도로 여당에 더 많이 주는 것이 관례인데 그는 똑같이 주었다는 것이다. 액수는 수백억원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박정훈 전 의원의 부인인 김재옥씨는 1987년 대선을 앞두고도 거액이 대우에서 김대중 후보측에 건너갔다고 증언한 바 있다. 김우중씨는 아태재단에도 상당액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그가 귀국해 이런 부분에 대해 입을 열 경우 김대통령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은 분명하다.


김씨는 현재 1백98개국 인터폴의 추적을 받고 있는데도 여러 나라를 오가고 있다는 소문이 전·현직 대우 관계자들 사이에 돌고 있다. 가장 최근 소식은 한 측근이 베트남을 방문해 그를 만나고 왔다는 것. 그 일이 대우 창사 기념일인 3월 말에 있었다는 그럴듯한 배경 설명도 같이 나온다. 그러나 당사자로 거론된 인사는 “갔다오기는 했지만 사업 관계였을 뿐이지 김회장을 만난 적은 없다”라고 밝혔다. 그런데도 ‘옛 대우 계열사 아무개 사장이 김씨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거나 ‘김씨의 옛 측근들은 지금도 그에게 주요 사항을 보고하고 있다’는 얘기가 대우 관계사 주변에 끊이지 않고 있어, 어떤 식이든 김씨와 옛 대우그룹 핵심 관계자들의 접촉은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씨의 측근에 따르면, 유럽 쪽에 머무르고 있다는 김씨는 머지 않아 수술을 받을 예정이라고 한다. 장이 자꾸 꼬이는 장협착 증세가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쪽 다리를 절고 있는 부인 정희자씨는 가끔 김씨와 같이 머무르며 한 달에 한 번씩 미국을 오간다. 미국에 있는 한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김우중 귀국설과 맞물려 대선 정국이 달아오를수록 현정권과 대우그룹의 관계는 더욱 주목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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