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옹성 청남대, 하늘길도 막는다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2.05.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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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급 보안구역, 무조건 비행금지”…과도한 통제 물의 빚어
충청북도 청원군 문의면에서 회남면 쪽으로 뻗은 509번 지방도로. 수풀 사이로 뻗은 도로를 타고 자동차로 20여 분 달리면 낯선 표지판이 나타난다. 손바닥이 그려진 표지판에는 ‘더 이상 출입할 수 없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바리케이드 너머로 철문이 닫혀 있다. 철문 오른편에 놓인 인터폰을 들자 “출입할 수 없다. 돌아가라”는 음성이 들려왔다. 철문 왼편의 카메라가 취재진을 따라 360° 회전하며 감시했다. “이곳은 취재 금지 구역이다. 돌아가라”는 경고음이 다시 들려왔다. 녹색 군복을 입은 병사가 나타났고, 병사의 어깨에는 ‘대통령 경호실’이라는 견장이 붙어 있었다. 1983년 12월에 만들어진 대통령 휴양지, 청남대는 이렇게 일반인의 접근을 거부했다.


대청호에 자리 잡은 청남대는 1급 보안지역이다. 육지에서는 바리케이드가, 호수에서는 경비정이 접근을 차단한다. 하늘에도 보이지 않는 바리케이드가 있다. 청남대를 중심으로 반경 4.8km, 고도 3km까지 모든 항공기의 비행이 금지된다.


문의면 주민 천여명 개방 요구 시위


청남대는 대통령이 1년에 1주일 정도 이용한다. 지난 4년 동안 김대중 대통령은 20일 남짓 이곳에서 보내며 ‘청남대 구상’을 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이용하지 않을 때도 청남대는 철옹성이다. 지난해 6월 문의면 주민 천여명이 청남대 개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청남대 때문에 관광 개발이 중단되고, 어업 구역이 축소되는 등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문의면뿐 아니라 청남대 때문에 피해를 보는 곳이 또 있다. 공군사관학교 역시 지난 20년 동안 ‘벙어리 냉가슴’을 앓아 왔다. 1985년 공군사관학교는 서울에서 청주로 이전했다. 초등 비행 훈련을 맡고 있는 212 비행교육대도 이곳으로 이전했다. 사관생도들은 212 비행교육대에서 1년에 한 번씩 비행수칙을 익히는 ‘관숙 비행’을 한다. 그리고 졸업 후 정밀신체검사를 통과하면 이곳에서 4개월 동안 비행 훈련을 받는다. 212 비행교육대는 ‘빨간 마후라’를 양성하는 핵심 교육기관인 셈이다. 문제는 청남대의 비행금지 구역이, 도로로 따지면 주행선의 옆 차선에 해당하리만큼 212 비행교육대와 가깝다는 데 있다.


212 비행교육대의 한 교수는 “청남대는 민감한 문제다”라며 입을 뗐다. 그는 “청남대 공역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청남대가 없다면 훨씬 수월하게 훈련할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피해서 훈련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공군사관학교 생도들은 청남대 때문에 가까운 곳을 놓아두고 옥천·공주·논산 방면으로 날아가 훈련한다. 212 비행교육대에서 퇴임한 한 교수는 “대통령이 없을 때는 공역을 개방해야 한다. 그래야만 제대로 훈련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군 특성상 정식으로 청남대 공역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미국 공군 전투기는 버젓이 드나들어


그런데 반경 4.8km, 고도 3km 이내 비행금지 규정은 오히려 확대 적용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제공되는 비행 차트에 청남대는 ‘P112’로 표기되어 있다. P는 금지(prohibit)를 나타내는 약자다. 우리나라에는 항로 16개, 접근관제구역 14개, 특수공역 1백14개가 존재한다.


청남대는 특수공역 1백14개 가운데 하나이다. 특수공역은 크게 비행금지구역·비행제한구역·위험구역·경계구역·군작전구역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비행금지구역은 휴전선 일대(P518), 청와대를 포함한 수도권 일대(P73A/B), 청남대(P112) 등 세곳이다. 휴전선과 수도권 일대 비행금지구역에는 고도 제한이 없다. 반면 청남대 부근은 지표부터 3km까지만 비행이 금지된다. 비행 차트에도 ‘GND(지상)-10000’, 지상 1만 피트(3km)까지 비행금지라고 표기되어 있다. 그 이상이면 항공기 운항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민항기는 보통 4.3∼18km 사이를 운항한다. 규정대로라면 민항기는 청남대 상공을 통과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통과하지 못한다. 청남대는 서울에서부터 대구 사이 항로(A582)에 인접해 있다. 운항 중 기상이 나빠져 항공기가 우회하는 경우, 청남대 쪽은 ‘우회 불가’ 지역이다.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 문팔암 이사는 “지상에서 항공기를 관제할 때 아예 청남대 쪽으로는 통과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공군도 청남대 상공을 지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퇴임한 공군 조종사는 “훈련할 때 한번 청남대 상공을 스쳐 지나갔다. 훈련을 마친 뒤 곧바로 경위서를 써야 했다”라고 말했다.


건설교통부 관계자는 “청남대 상공 3km 이상에서도 비행을 금지하는 것은 과도한 통제다”라고 말했다. 청남대 상공의 공역은 국방부가 맡고 있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청남대는 1급 보안구역이다. 무조건 비행 금지다”라고 말했다. 3km까지만 비행이 금지된다는 규정에 대해서도 이 관계자는 “보안 지역이어서 확인해 줄 수 없다. 그런 조항이 있다면 건교부 입장이고, 국방부는 국방부다”라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국방부의 완강한 입장에 예외가 있었다. 미국 공군 전투기는 청남대 상공을 버젓이 드나들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노코멘트’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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