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 걸렸다 믿는 당신, 걱정 말라
  • 정희상 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2.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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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을 결혼 날짜를 받아둔 미혼 여성 장 아무개씨(28)는 요즘 말 그대로 죽고 싶은 심정이다. 지난 6월 초 언론을 떠들썩하게 장식했던 `여수 윤락가 에이즈 여인 ‘구 아무개씨 사건’을 보고 나서부터다. 장씨는 올 봄 결혼 상대를 만나기 이전에 헤어진 남자 친구가 있었다. 옛 남자 친구와 교제할 때 결혼을 전제로 자연스레 밤을 함께 보낸 일이 많았던 장씨는 문득 그가 여수 지방에서 단란주점을 운영한 적이 있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장씨가 그와 헤어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도 직업 여성들과 너무 난잡하게 접촉한다는 사실을 알고서였다. 에이즈에 걸린 여인이 남성 수천 명과 성접촉을 했다고 나온 기사를 보고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서 시작된 장씨의 고민은 몇날 며칠을 잠 못 이루고 뒤척이는 나날로 이어졌다. 고민이 깊어가자 장씨에게는 공교롭게도 혀에 백태가 끼고, 설사 증세와 피부에 모기 물린 자국 같은 붉은 반점이 생겼다. 인터넷 검색 사이트를 통해 알아보니 자신에게 나타난 증세들은 전형적인 에이즈 초기 증상이었다.


여수 에이즈 여인 사건 이후 포비아 급증


에이즈라고 단정하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충격에 휩싸인 장씨는 결혼할 남자가 이 사실을 알기 전에 죽어야겠다고 결심하고 ‘마지막’이라는 아이디로 에이즈 예방 단체에 상담을 의뢰했다. 이 단체는 장씨를 설득해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도록 권유했다. 2주 후 혈청 검사 결과 장씨는 에이즈 음성으로 나왔다. 그러나 그녀는 처음에 음성이다가 나중에 양성으로 나온 사례도 있다는 에이즈 관련 책자의 내용이 마음에 걸려 아직도 완전히 걱정을 떨치지 못한 채 불안해 하고 있다.


서울에 사는 이장환씨(가명·39세)도 요즘 죽을 맛이다. 지난 3년간 회사 업무 출장 관계로 여수에 여섯 차례 다녀온 이씨는 그 지역 윤락가를 몇 차례 드나들었다. 지난 겨울부터 근육·요도 통증과 설사 증세가 보여 치료를 받은 이씨가 죄책감에 빠진 것은 봄부터 아내에게 전에 없던 증상이 나타났기 때문. 아내가 갑자기 피곤해지고, 벌레 물린 것처럼 피부에 뭐가 나며 멍이 들면 잘 낫지 않는다고 호소해 에이즈가 아닌가 아찔해졌다.


‘지은 죄’가 있는 이씨는 고민 끝에 다른 동네 보건소를 찾아 피검사를 받았다. 3주 후 나온 반응은 에이즈 음성 판정. 막 안심할 무렵 언론에 여수 윤락가 에이즈 여인 사건이 불거져 나왔고 그는 다시 불안에 휩싸였다. 에이즈는 잠복 기간이 길다는 점이 걸렸기 때문이다. 또다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은 이씨는 최근 ‘대한 에이즈 예방 협회’ 상담 코너에 들어가 자기가 여수 지역 사창가를 대여섯 차례 들른 일과 예방 조처 없이 직업 여성과 성접촉한 사실을 털어놓고 죽고 싶다고 호소했다. 상담자는 이미 보건소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으면 안심해도 된다고 설득했지만 그는 막무가내로 죽어야겠다고 한탄하는 답신을 보내왔다.




이처럼 실제 에이즈와는 상관이 없는데도 의심을 하기 시작하면 유사한 증세가 나타나고, 검사를 받아 음성 판정을 받고도 이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에이즈 포비아(phobia)라고 부른다.
여수 에이즈 여인 사건 이후 국민들 사이에 에이즈에 대한 불안감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포비아도 급증하고 있다. 대한에이즈예방협회(www.aids.or.kr)와 한국에이즈퇴치연맹(www.aids114.org), 그리고 국내 에이즈 감염인들이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인 ‘러포원’(love4one.com)에는 6월 들어 포비아 증세를 호소하는 상담 글이 폭주하고 있다. 구씨 사건이 불거진 이후에는 콘돔을 사용하지 않고 주로 직업 매춘 여성과 성접촉을 했던 사람들이 대거 포비아 대열에 합류했다.


대한에이즈예방협회 이창우 사무국장은 “구씨 사건 이후 며칠 만에 4천여 건의 포비아 상담이 쇄도했다. 에이즈 걱정을 부르는 원인 행위를 최근에 한 이들보다는 5년 전이나 7년 전, 심지어 10년 전에 콘돔 없이 매춘 여성과 성접촉을 했다는 사람들이 주로 불안 심리에 빠져 찾고 있다”라고 전했다.


우리 사회의 성윤리가 이중적인 만큼 포비아 증세로 고통받는 유형과 연령층도 그만큼 다양하다. 성폭행을 당했다는 여자 중학생부터, 10대 동성애자 그리고 학생·주부·직장인 등 남녀 노소와 직업을 가리지 않는다.


“콘돔 챙겨오라는 그녀의 말 무시했으니…”


최근 남편 때문에 포비아 증후군에 빠진 한 40대 가정주부는 포비아 상담 난에 이런 글을 올려놓았다. ‘몰라도 너무 모른 남편의 단 한번 실수로 나는 에이즈 감염 공포 속에 살고 있다. 지방 파견 근무지에서 고생한다고 본사에서 내려와 대접한다는 게 단란주점 2차였고, 남편은 이성은 사라진 채 본능만 남아 그짓을 한 뒤 피부 반점·설사·고열 등 에이즈 증세를 보이고 있다. 나에게도 전파되었는지 나도 남편과 똑같은 증세에 시달린다. 지금 남편은 내 앞에서 후회로 가슴을 치지만 에이즈라는 공포에 나와 함께 불면의 밤을 보내며 온가족이 죽어버릴까 고민하고 있다.’


인터넷 채팅을 통해 만난 어느 여성과 성접촉을 했다가 에이즈 증세가 나타났다며 불안에 떠는, 결혼을 앞둔 20대 후반 미혼 남성도 있다. “연상의 여자와 몇 차례 채팅을 하다가 만나자고 해서 좋다고 응했더니 콘돔을 챙겨오라는 말을 했다. 총각이라서 모르고 급하게 나갔다가 성접촉 후 왜 나에게 콘돔을 가져오라 했을까 하고 깊이 생각하니 불현듯 에이즈 생각이 떠올랐다. 그 뒤부터 몸이 가렵고, 목이 부으며 설사 증세가 시작되었다. 에이즈는 이렇게 나에게 찾아왔는데 결혼할 여자 친구 얼굴을 떠올리면 죽고만 싶다.”




포비아 단계 거친 감염자 거의 없어


이처럼 극단적인 불안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포비아들의 공통 특징은 자가 진단을 확신하고 검사를 기피한다는 점이다. 또 병원이나 보건소를 찾아 검사를 한 뒤 에이즈 음성 판정을 받은 후에도 안심하지 않고 계속 자기만 예외라고 믿기도 한다. 포비아들이 호소하는 초기 증세는 피부병(반점)·감기·설사·두통·근육통·입안 백태·체중 감소 등이다. 이런 증상은 에이즈 감염 초기에 나타나기도 하지만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아도 똑같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연세대 세브란스 감염내과 김준명 교수는 “인간이 3백65일 동안 건강할 수는 없는 일인데, 포비아들은 피곤하거나 근심 걱정으로 잠못 이룰 경우 생기는 백태와 임파선 부종·설사·여드름·습진 따위를 곧바로 에이즈 초기 증세로 자가 진단한다”라고 말한다. 실제 에이즈 초기 증세는 감염 원인 행위가 있은 지 15일을 전후해 잠시 나타났다가 바로 없어지고 이후 8~10년 동안 건강한 상태가 계속된다고 한다.


감염자에 따라서는 스스로 그런 자각 증상을 느끼지 못한 채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포비아들은 짧게는 석 달, 길게는 수년 동안 ‘초기 증상’을 호소하며 음성으로 나온 검사 결과를 믿지 못하고 번민의 나날을 보낸다. 극도의 고민이 부르는 스트레스성 질환과 고민이 되풀이되는 데 불과하다는 것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에이즈 감염자와 포비아들을 상담해온 서울시 서초구 보건소 김형수씨는 지금까지 포비아가 혈액 검사에서 에이즈 양성 반응을 보인 예는 단 한건도 없다고 말했다. 실제 에이즈 감염자는 포비아 단계를 거친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포비아 증세에 사로잡혀 고생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한국 특유의 성윤리와 성문화에서 기인한다고 김씨는 분석한다. “성윤리와 실제 성문화가 비개방적이고 이중적이다 보니 조금 이상한 증세만 느껴져도 ‘죄의식’이 너무 크게 작용한다. 술집 접대부나 매춘 여성과 접촉했던 사람 중에는 죄의식이 살아나 과도한 의심 확대 단계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과도한 공포 때문에 포비아가 죽음을 택하는 비극도 발생하고 있다. 1998년 11월에는 자기가 에이즈에 걸렸다고 자가 진단한 채 비관하던 40대 가장이 부인과 두 자녀를 승용차에 태우고 동반 자살한 사건이 일어났다. 경상남도의 한 소도시에서 자영업을 하던 임 아무개씨(44)가 부인과 아들 딸을 태우고 바닷가 전신주를 들이받아 일어난 끔찍한 사고였다. 당시 직업 여성과 성접촉을 한 뒤 고민하던 임씨는 얼마 후 배와 등 부위에 피부병이 생기자 에이즈로 단정하고 고민하다가 일가족 동반 자살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살극을 벌일 때까지 임씨는 검사를 받은 적이 없었다. 사고 후 지역 보건소가 검사한 결과 임씨는 에이즈에 걸리지 않은 것으로 판명났다.


포비아 가족 자살 사건은 경기도에서도 발생했다. 1997년 가을 중학교 교사였던 김 아무개씨(39)가 어린 딸과 함께 동반 자살을 시도한 것이다. 윤락 여성과 접촉한 이 교사 역시 얼마 뒤 스트레스성 피부 질환과 설사, 불면증이 계속되자 포비아가 되었다. 공교롭게 네살짜리 딸의 몸에서도 피부병이 발생하자 그는 자기가 전파한 것으로 믿고서 고민 끝에 딸과 함께 동반 자살을 택했다.





1999년에는 유흥업소 접대부로 일하던 조 아무개씨(44)가 몸무게가 갑자기 줄자 에이즈 증세로 믿고 목을 맸다. 이 무렵 재미 동포에게 성폭행당한 20대 미혼 여성은 피부에 두드러기가 나자 지독한 에이즈 포비아가 되어 투신 자살했다. 그녀는 아무런 검사도 받지 않은 채 ‘에이즈에 걸린 것 같아 못살겠다’는 요지의 유서 3장만 달랑 남겼다. 1995년부터 50여 차례나 보건소에 상담하러 다니던 포비아는 음성 판정이 나왔어도 믿지 못하고 최근 목을 맸다.


물론 포비아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이라 해서 모두 이들처럼 극단적인 길을 택하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는 `‘죽고 싶다’ ‘마지막이다’라는 말을 하며 에이즈 상담 단체나 보건소를 찾아 상담하지만, 결국 검사를 권유받고 음성 판정을 받은 뒤 정상인으로 돌아가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아가고 있다.
암암리에 포비아 증세가 확산하는 데는 선정적인 언론의 보도 태도도 한몫을 하고 있다. 에이즈 예방과 상담 단체의 문을 두드린 포비아 가운데는, 최근 에이즈 관련 언론 보도를 보고 나서 그동안 잊고 지냈던 직업 여성과의 성접촉 경험 등이 떠올라 불안 심리에 빠지고, 자각 증세가 시작되었다고 호소하는 글을 올린 경우가 많다. 특히 최근 구씨 사건에 대해서는 일부 언론이 마치 구씨가 전국을 돌며 고의적으로 남성 수천 명을 상대로 ‘에이즈 테러’를 벌인 것처럼 묘사해 포비아 증가에 한몫 했다는 전문가의 지적도 있다.


에이즈 환자 최고 2만명 추산


물론 포비아 확산을 불러들인 더 근본적인 이유는 1990년대 후반부터 에이즈 감염자 수가 급증한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10년 전만 해도 매년 수십명 선에 머무르던 감염자 수는 1990년대 말 들어 연평균 2백∼3백 명씩 늘어나고 있다. 지난 3월 말까지 보건 당국이 확인한 감염자는 총 1천6백86명으로, 올 들어 3개월 동안에만 75명이 신규 감염자로 밝혀졌다. 그러나 실제 통계에 잡히지 않은 감염자는 이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추정이다. 그 규모에 대해서는 에이즈 관련 단체마다 다르지만 최소 5천명에서 많게는 2만명까지로 본다.


월드컵 축제 기간이 에이즈 확산에 또 하나의 분기점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중점적으로 예방 활동을 펴고 있는 에이즈예방협회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여수 사건은 어쩌면 예견된 것이고, 앞으로 유사 사건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일반인은 예방 조처 없이 성접촉에 나섰다가 사건이 터질 때마다 포비아 증후군에 시달릴 것이 아니라 감염인이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흩어져 산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예방법을 터득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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