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즐거워야 노년이 아름답다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2.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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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노년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행복한 삶이다. 자연이 부과한 수명의 한계 안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결론은 하나다. “인생을 즐겨라.”
한 국에서 노화는 서러운 일이다. 노인이 되면 누구나 고독해지기 마련이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사회적 외면과 푸대접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들이 노인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명료하다. 경험이 풍부하고 존경할 만한 인간, 한없이 너그러운 현자의 모습이다. 그러나 노인들의 실제 이미지는 적잖이 다르다. 그들은 무능하고 때로 추레하다. 우리 사회가 노인을 냉대하고 무시하는 것은 바로 거기에서 비롯된다.





이같이 불우한 노인이 늘고 있는 가운데 한국도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고령화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1년 현재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 인구의 7.9%인 3백77만 명이다. 2019년에는 그 비율이 14.4%로 높아져 고령화 사회로 탈바꿈한다. 전문가들은 노인에 대한 사회의 ‘불경한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미래의 노인들’(지금의 30∼50대)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박상철 국제노인학회장(서울대·생화학)은 “노화와 노인의 삶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 그것이 고령화 사회의 문제를 푸는 첫 단추다”라고 말한다.


노화에 대한 사람들의 관점은 비슷하다. 젊을수록 무관심하다. 특히 20∼30대에게 노화란 자신과 하등 관계없는 말이다. “노화는 노인들 문제 아닌가요?”(21세 대학생). “오면 받아들이겠죠. 그러나 아직은….”(33세 직장인). 40대도 몸에 노화의 징후가 나타나지만 위기 의식은 별로 없어 보인다. “언제부턴가 검버섯이 피고 상처 낫는 속도가 더뎌졌어요. 그래도 아직 노화가 시작되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45세 직장인).


그러나 젊다고 노화의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다. 현대 의학에 따르면, 노화는 25세 안팎에 시작된다. 자연적 기억력은 그보다 빨라 12세부터 떨어지고, 성적 능력(남성)은 16세부터 퇴화한다(킨제이 보고서). 정신 작용의 신속성은 35세부터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찰·추상·종합·통합 능력같이 적응을 전제로 한 능력도 마찬가지다. 35세가 한계이다.


젊을수록 “노화는 노인들 문제”라며 무관심


사람마다 노화 증세는 다르게 나타난다. 우선 뼈가 약해지고 심장과 순환계 기능이 떨어진다. 혈액 순환도 느려지고, 혈압이 올라가는 사람도 있다. 뇌의 산소량이 줄어들고, 흉곽이 더 단단해져 25세에 5ℓ이던 호흡량이 65세에는 3ℓ로 떨어지기도 한다. 근력도 줄어든다. 운동 신경이 자극을 천천히 전달해 반응도 느려진다. 신장과 소화샘, 간도 쇠약해진다(시몬 드 보부아르 <노화>)


서울 상계백병원 이정호 교수(인제대·정신의학)는 뇌세포 감소도 노화의 흔한 증세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기억력 감퇴와 건망증은 뇌세포가 감소하고 뇌의 무게가 줄 때 일어난다.” 이교수에 따르면, 고집이 세지고, 자기 중심적이 되고, 점점 꼼꼼해지는 행동도 뇌세포 감소 탓이다. 남을 자주 의심하고, 자기 비하가 심하고, 쉽게 불면증을 겪는 것도 마찬가지다. 기억력은 보통 손일을 했던 사람보다 지적인 일을 했던 사람이, 막일꾼보다 기능공이, 퇴직한 사람보다 아직 일하고 있는 사람이 덜 감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다른 증세로 노화를 자각하는 사람도 있다. 서른다섯 살인 김경옥씨(회사원)는 계단을 오를 때마다 자신이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2, 3년 전부터 무릎 관절이 저리고 아파 온다는 것이다. “노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은 서럽다. 가끔 긴장감이 들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늙는 건 아닐까 하는 위기감도 함께 생긴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마흔여섯 살 백 아무개씨(회사원)는 쑥쑥 크는 자녀들을 보며 청춘이 가고 노화가 오고 있음을 눈치챈다.





쉰여섯 살인 박혜란씨(여성학자)가 체감하는 노화는 30∼40대에 비해 훨씬 복잡하다. 그녀는 노화 속도가 자신의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생각했지만, 3년 전부터 어쩔 수 없이 노화의 빠르기를 체감하고 있다. 계기가 있었다. 당시 그녀는 나이를 잊은 채 강연과 집필 활동을 쉬지 않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돌연 빈혈로 쓰러졌다. 10년 동안 누적된 과로 탓이었다. 평생 진통제 한 알 안 먹던 그녀로서는 충격이었다. 더 큰 충격은 자궁과 난소를 들어낸 수술이었다. 그녀는 수술 뒤에 “그동안 사명감과 정과 돈 때문에 일을 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요즘은 몸을 위해 일한다”라고 말했다.


늙지 않는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직 박씨는 자신이 그다지 늙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60대를 중년의 끝이면서 노년의 시작으로 본다고 했다. 그녀는 “어쩌면 백 살까지 살아야 할지 모른다. 이제 반 조금 더 산 셈이다. 그렇게 보면 쉰여섯은 새로운 삶을 계획할 나이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계획 가운데에는 사회에 좀더 기여하고, 노화를 늦추는 일도 들어 있다.


노화를 늦추고 싶어하는 것은 박씨뿐만이 아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도 40세에 늙어간다는 사실이 안타까워 거울 앞에 꼼짝 않고 서서 “나는 마흔 살이다”라고 중얼거리곤 했다. 수많은 의학자가 노화 지연법을 찾아나섰지만 모두를 만족시킬 만한 방법은 아직 없다. 요즘도 노화를 늦추는 새 방법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는 보도나 서적이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지만, 신뢰성이 떨어진다. 따라서 인간의 기대 수명은 지금보다 더 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머지 않아 인간 수명이 1백50세로 늘어난다고 전망하는 학자도 있지만, 획기적인 생의학 발전을 전제로 한 의견일 뿐이다(20세기 최고령자는 1997년 1백22.5세에 사망한 프랑스의 잔 칼망 여사이다).


노화를 늦춘다고 인간이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시각·청각 상실, 골다공증·관절염·치매·알츠하이머 같은 만성적인 노인병 때문에 더 괴로울 수도 있다. <걸리버 여행기>에는 스트럴드브럭이라는 불사신들이 등장한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이들은 평생 아무 걱정이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사정은 정반대이다. 이들에게 영생은 곧 저주이다. 이들은 서른 살까지는 정상적인 삶을 누리지만, 그 이후부터는 우울하고 절망적인 나날을 보낸다. 이들에게 죽음은 곧 행운이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생명의학이 발달해 더 오래 살더라도, 병약한 몸 때문에 자신은 물론 사랑하는 친지들까지 정서적·재정적으로 참기 어려운 고통을 겪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마음까지 우울하고 염세적으로 늙어갈 필요는 없다. 노화의 방향을 역전시킬 수는 없지만, 노화를 최상의 상태로 유지할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의학자들은 운동을 ‘청춘의 샘’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운동을 나이에 관계없이 자동차에 공급하는 ‘윤활유 같은 것’이라고 치켜세운다. 일부 의학자는 칼로리 섭취를 줄이라고 충고한다. 죽음을 뒤로 미룰 뿐만 아니라, 뼈의 강도와 피부 두께·뇌기능·면역 기능이 잘 보존된다는 것이다. 일에 열중하고, 우리의 내면에 이미 미래의 노인이 살고 있다고 여기고 30~40대에 노후에 대비하는 것도 아름다운 노년을 맞이하는 방법이다(65쪽 딸린 기사 참조).


그런 의미에서 보면 예순다섯 살 서상록씨(65)와 일흔아홉 살 노민자씨(79)는 제대로 ‘청춘의 샘’을 찾은 것 같다. 최근 대통령 선거 출마를 밝힌 서씨는, 평생 생일을 챙긴 적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살았다. 노화를 처음 체감한 것도 3년 전 회사가 부도 나 집에 들어앉았을 때였다. “이제 인생이 끝났구나 싶었다. 새삼 흰머리가 안쓰럽게 보였다”라고 그는 회고했다.


그 위기를 쉽게 벗어난 것은 긍정적 사고 덕이다. 이제껏 그는 자신의 몸과 생활에 대해 단 한번도 부정해본 적이 없다. 틈만 나면 거울 앞에 서서 “서상록 넌 참 행운아야. 밥 한 숟가락 제대로 못 먹던 네가 최고급 주택에 살아보고, 미국도 가보고, 하원 의원에 출마도 해보고, 대기업 임원도 되어보았으니 얼마나 훌륭하냐”라며 자신에게 상을 주는 것도 노화를 이겨내는 또 다른 비결이다. 그는 욕심이 질병을 부른다며 12월 대선에서 떨어지면 “풍산개·삽살개·진돗개를 한 마리씩 키우면서 초등학교에서 무보수로 영어를 가르치겠다”라고 말했다.


긍정적 사고로 자기 최면 거는 방법도


한국 최고령 보험 설계사인 노민자씨는 일을 통해 노화를 극복하고 있다. 그녀가 보험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1972년, 노화가 한창 진행 중이던 마흔아홉 살 때였다. 이제껏 그녀는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다’라는 긍정적 사고로 살아왔다. 그리고 가톨릭에 귀의해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하려고 노력해왔다. 덕분에 그녀는 이제껏 단 한번도 일을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요즘도 그녀는 한 달에 네댓 명의 고객을 확보할 정도로 정력적으로 일한다.


<인간은 얼마나 오래 살 수 있는가>(궁리)를 쓴 스튜어트 올샨스키 교수(일리노이 대학·공공보건)는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늙을 것인가보다는 어떻게 하면 매일매일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자연이 부여한 한계 내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라고 덧붙인다. 그가 하루하루 노화하고 있는 우리에게 내리는 결론은 간단하다. “인생을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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