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부 공중분해?
  • 장영희 ·안은주 기자 ()
  • 승인 2002.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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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강국 건설·벤처 육성 등을 외친 DJ 정부에서 잘 나가던 정통부가 잇단정책 실수로 무력감에 빠진 데다 내년 초 조직 개편을 앞두고 불안에 떨고 있다
김대중 정부에서 단연 잘 나가는 부처는 정보통신부(정통부)였다. 1990년대 후반 산업 사회에서 지식 기반의 정보화 사회로 옮아가야 한다는 시대 흐름이 강조되면서 정통부는 자연스럽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정보화를 기획하고 정보통신 산업을 관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보기술(IT)과 벤처를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힘을 받는 부처도 정통부였다.





그런 정통부가 요즘 눈에 띄게 활력을 잃었다. 한 과장은 “1995년부터 2000년까지 정말 재미있게 일했다. 우리가 국가의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긍심도 컸다”라며 현재의 무력감을 호소한다. 되는 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는 이른바 임기말 증후군을 정통부도 겪고 있는 것일까. 정통부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임기말 현상이라는 말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정통부 공무원 사이에는 무력감을 넘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퍼져 있다. 서기관과 사무관 같은 젊은 공무원들은 더하다. 두세 사람만 모여도 자기 조직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걱정과 초조감을 내비친다.


재경부 못지 않은 ‘젊은 인재의 보고’


정통부의 전신은 체신부다. 정보화와 우편 기능을 담당하던 체신부는 1994년 말 김영삼 정부의 정부 조직 개편 때 당시 상공자원부(산업자원부의 전신) 등의 업무를 넘겨 받아 확대 개편되었다. 당시 재경원 등에서 유능한 관료들도 수혈했다. 정부 서열도 말석에서 다섯 단계나 뛰어올랐다. 1990년대 후반 들어 행정고시 성적 우수생들이 정통부행을 선호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이른바 고시 10등 가운데 3∼4명은 산업자원부(산자부)가 아닌 정통부행을 택했던 것이다(물론 재정경제부 선호 현상은 아직 여전하다). 서기관급 이하 젊은 공무원의 질이 인재의 보고라는 재경부에 못지 않다는 얘기가 흘러나온 것도 그 덕분이었다.


이처럼 한껏 고무되어 있던 정통부의 분위기가 왜 가라앉은 것일까. 심지어 정체성 위기를 맞았다는 말조차 나오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유필계 공보관은, IMT2000 사업자 선정 같은 굵직한 일들이 지나갔고, 아무래도 임기 말에는 벌여 놓았던 일을 마무리하는 데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한 국장은 미국의 IT 산업 침체로 국내 경기가 좋지 않고 벤처도 빈사 상태이니 담당 부처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반응한다. 하지만 정통부의 분위기가 음울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우선 정통부는 주요 정책에서 잇달아 실수를 저질러 무능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2000년 3세대 이동 통신이라는 IMT2000 사업자 선정과 올해 5월 KT(옛 한국통신) 민영화 작업, 최근 들어 다시 격화하고 있는 이동 전화 보조금 갈등이 대표적이다. IMT2000 사업은 동기식이냐 비동기식이냐 하는 기술 표준을 둘러싸고 2000년 내내 정통부와 통신 서비스 업체들이 으르렁거렸다. 상당수 통신 전문가들은 정부가 동기식 사업자가 꼭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면 적어도 처음부터 분명히 선정 방침을 밝혔어야 옳았다고 지적한다. KT 민영화 건도 비슷한 경우다.

정부가 가진 KT 지분을 파는 과정에서 SK텔레콤은 이른바 ‘풀베팅’을 감행했다. 그 결과 SK텔레콤은 KT의 최대 주주로 떠올랐지만 법을 위반한 것은 아니다. 어떤 한 기업이 최대 주주가 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지 못한 허점을 보인 셈이다. 보조금 논란도 정통부의 권위를 위협하고 있다. 정통부는 2000년 6월 보조금 지원을 금지했지만 본사-대리점-판매점으로 이어지는 유통 구조가 복잡하기 짝이 없고, 출고가 이하 판매를 무조건 보조금 지급으로 본다는 모호한 규정 등이 얽히고 설키면서, 보조금을 둘러싼 싸움이 종식되지 않고 있다.





사실 통신사업자에 대한 규제권을 가진 정통부가 통신사업자와 반목해온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정통부 관료들은 예전과 달리, 막강해진 SK텔레콤과 KT가 정부의 말을 잘 듣지 않아 정책을 펴기 어렵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통신사업자들이 언론과 국회의원을 동원해 노골적으로 정통부를 흔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정통부 공무원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좌불안석인 것이 그 때문만은 아니다. 내년 초에 있을 정부 조직 개편이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정통부 영역 노리는 부처 수두룩


정통부가 조직 개편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이른바 ‘내부의 적’이 많기 때문이다. 정통부는 그동안 여러 부처와 싸워왔다. 자신들의 메인 비즈니스인 정보통신산업은 산자부가 탐내고 있고, 디지털 컨텐츠나 영화 산업, 게임 산업 같은 영역은 문화관광부와 갈등을 빚었다. 최근 이상철 장관이 통신 사업자들로 하여금 3천억원의 IT펀드(총 1조8천억원)를 11월 말까지 조성하게 했고 이 돈을 애니메이션 같은 디지털 컨텐츠 개발에 투자하게 하겠다고 밝혔다. 문화관광부의 시선이 곱지 않을 수밖에 없다. 또 정보화 기획은 국무조정실과, 전자정부 추진 건은 행정자치부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통신위원회는 요금 규제를 둘러싸고 공정거래위원회와 이견을 보여왔다.


이런 부처간 영역 다툼 때문에 심지어 정통부가 공중 분해될지 모른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판국이다. 국가 정보화 기획은 모든 부처를 상대하는 총리실이 수행하는 것이 낫고, IT 산업 육성 및 수출 지원은 산업 주관 부처인 산자부로 돌려 주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다. 또 통신사업 규제도 선진국처럼 독립 위원회 조직이 맡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결국 정통부의 3대 핵심 기능인 정보화 기획·IT 산업 육성·통신산업 규제 건이 정통부에서 떨어져 나간다면 정통부는 하나의 부로 존재하기가 어려워진다. 정통부라는 본부 조직을 떠받치고 있던 우정사업본부는 지난해 7월 책임 경영제 도입으로 떨어져 나간 것과 진배없고 KT도 완전 민영화해 이미 정통부는 왜소해진 상태이다.


정부내 적들에 대해서도 정통부는 벌써부터 무력감을 보이고 있다. 한 국장은 “김대중 정부 들어 정통부에 힘이 실렸다고 하지만 우정사업본부장을 빼면 1급 공무원이 2명밖에 없는 미니 부처다”라고 속내를 비친다. 한 서기관도 “개편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면 이른바 방어 논리는 온데 간데 없어진다. 결국 끗발과 로비력이 센 부처는 살아 남고 그렇지 않은 부처는 공중 분해되거나 반토막이 났다”라며 불안해 한다.

정통부 공무원들의 공적 1호는 산자부다. 이번 정부 들어 산자부가 부침을 거듭해 왔다고 하지만, 로비력에서는 당할 재간이 없다는 것이다. 산자부에 대한 이런 피해 의식은 IT 산업의 중요성이 강조될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산자부 역시 IT 산업 권한을 빼앗아가려고 기를 쓸 것이 불보듯하기 때문이다.


정통부 공무원들은 만일 정통부의 3개 핵심 기능을 분리한다면, IT 강국과 정보화 사회라는 국가 목표를 이룰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에 대한 한 과장의 주장은 이랬다. “이 세 가지 핵심 기능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상승 효과를 내왔다. 정보화 기획 업무와 정보통신 산업 기능을 국무조정실과 산자부로 가져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이 일은 그 부처가 해야 할 많은 일 중에 하나가 되어 버린다. 정통부라는 한 조직에서 선택과 집중을 했던 것과는 차원이 달라진다. 금세 추진력을 잃고 말 것이다. 떼어내 각각 다른 부처로 흡수시키겠다는 발상은 단견 중의 단견이다.”





정통부는 정부 안팎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정통부 공무원들은 물론 업계나 이 분야 전문가들은 정통부의 최대 치적으로 이동통신 분야의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방식 상용화 성공과 초고속 정보통신망 설치 등을 꼽는다. 한국이 1996년 세계 최초로 CDMA 상용화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현재 휴대전화 같은 이동통신 기술로 한국 기업이 세계 시장을 석권하다시피 하는 일은 일어날 수 없었다.

물론 CDMA 상용화는 기업과 연구기관이 이룩한 것이지 정부가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시 힘 없는 부처였던 체신부가 이론적 가능성만 검증된 CDMA 방식을 채택하는 프론티어 정신을 보이지 않았다면, 또 정통부가 초대 경상현 장관 때부터 통신업계와 엔지니어들을 독려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면 이룰 수 없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1995년 3월 초고속 정보통신 기반 구축 계획을 세운 것도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 해 7월 서울과 대전을 잇는 초고속정보통신망(ISDN) 선도 시험망이 개통됨으로써 한국은 고속 멀티미디어 시대를 열었다. 현재 2단계 추진 계획이 진행 중인데, 최근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가 천만명을 넘어서고 한국의 정보화 순위가 세계 19위를 기록한 것 등은 모두 통신망이라는 정보 인프라가 깔려 있어서 가능했다.


과보다 공이 크다고 하지만, 정통부는 지난해부터 부쩍 존재 가치에 대한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안철수연구소 안철수 사장은 IT 인력 육성에 정통부가 소홀했다고 꼬집는다.“5년 전에도 제대로 된 인력이 없다고 아우성쳤는데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해 산자부와 정통부가 모여서 e비지니스 인력은 산자부가, IT 인력은 정통부가 맡기로 구획했는데 이들 인력에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가. 두 부처가 우왕좌왕하면서 인력 양성은 물 건너갔다.”


“10~20년간 한국 먹여 살릴 사업 찾아내라”


벤처기업협회 오완진 부장은 아예 정통부가 있어야 하느냐고 되묻는다. “CDMA가 민간 기업의 손으로 넘어가 성장하는 단계에서 정통부가 굳이 독립된 부처로 남아 있어야 하는가. 그럼에도 존재 가치를 보이려면 10∼20년간 한국을 먹여 살릴 사업을 찾아내고 지원해야 하는데, 그런 준비를 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현 이상철 장관까지 이번 정권의 다섯 장관 가운데 첫 장관인 배순훈씨가 가장 낫다고 여기는 이가 많은 것은 그가 한국을 먹여 살릴 산업으로 정보통신을 꼽았기 때문이다.


정통부의 한 서기관은 “젊은 공무원들일수록 ‘제2의 CDMA 신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조바심을 가지고 있다. IT 기술 발전 속도가 현기증이 날 정도로 빠르고, IT에서 BT·NT 같은 6T로 번지는 것에서 보듯이 기술의 양상이 다변화하면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업계 사람들을 불러다 논의를 해봐도 각인각색이다. 이미 더 이상 벤치마킹할 대상이 없어진 상태에서 현재 ‘주식회사 한국’의 수익 모델에 관한 고민은 어쩌면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최대 고민이다.”


선배들의 CDMA 신화와 초고속망 건설이라는 치적을 능가할 무엇을 만들어내야 하지만 후배들은 무력감을 느낀다. 벤처 비리가 터질 때마다 정통부 연루설이 흘러나왔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조직 분위기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음을 부인할 수 없다. IMT2000 사업 같은 통신 정책이나 IT 인력 육성 같은 굵직한 정책에 대한 평가도 호평과는 거리가 멀다. 정통부는 안(다른 부처)에도 적이 많고 밖(통신 사업자나 벤처 기업)에도 이렇다할 원군이 없는 사면 초가 신세다. 내년 초 정부 조직 개편이 이루어질 때 공중분해될 수 있다는 걱정이 기우만은 아닌 것이다.
정통부가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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